청정계곡과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의 산
전북 익산에서 곡성, 순천 등을 지나 여수에 이르는 전라선에 몸을 싣는다. 서울에서 동악산이 우뚝 솟아있는 전남 곡성까지 4시간 정도 걸리니,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그러다보니 열차 안에서 시체처럼 잠드는 것은 당연지사. 부랴부랴 익산에서 최두열(43세, 한국철도산악연맹 구조대장), 이현미(43세, 한자지도사)씨와 합류하곤 곧장 오늘의 종착역인 곡성역으로 향한다.
우리나라 4대 강 중의 하나인 섬진강이 흐르고, 효녀 심청의 모텔이자 실존 인물인 '원홍장'의 고향이기도 한 곡성에 발들 들이자 늦가을의 따사로움이 머릿결 위로 쏟아진다. 추위를 단단히 각오하고 왔건만 남도 땅의 따스함이 정겹다.
택시를 타고 산행들머리인 도림사로 접어든다. 기사 아저씨의 안내로 차창 너머 동악산과 형제봉을 바라보니, 형제봉은 작은 봉우리 두 개가 귀를 쫑긋 세운 듯 솟아있다. 도림사 입구에 닿자 옆으로는 곡성의 유명 경승지인 도림사계곡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길이만도 200여m에 달한다고 한다.
천년고찰 도림사에 들어서니 한창 중창불사 중이다. 기거하는 보살에게 물어보니 공사가 시작한지 겨우 10일 되었다고 한다. 석달 공사 예정에, 보물 1341호인 괘불탱은 고사하고 대웅전도 둘러볼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요사채 뒤에 마련된 약수를 수통 가득 채우곤 취재진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본지 93년 9월호에 실린 동악산 기사를 보고는 행여나 등산로가 잘 나있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것이었다. 12년 세월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희미한 등산로는 누가 봐도 길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잘 닦여 있으며, 수많은 표지기들을 보아하니 곡성의 진산임에 틀림없다.
취재진은 형제봉을 둘러보는 것이 마땅하지만 당일산행인지라 계획한대로 코스를 짧게 잡기로 했다. 열차 시간을 고려해 동악산 정상을 올라 배넘어재에서 도림사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이현미씨는 이번 산행에서도 싱글벙글이다. 지난 달에 다녀온 포성봉 산행의 재미를 잊지 못해 다시금 찾았다고 하니 취재진 또한 반갑다. 산이 좋고 사람이 좋다며 이현미씨가 준비한 간식 보따리가 한아름이다. 덕분에 일행들도 덩달아 싱글벙글이다.
철다리를 건너자 너른 암반이 나타났다. 쉬어가기 딱 좋은, 여름철이었으면 더 좋았을 법한 암반 위에는 옛 선인들이 글을 새겨놓았다.
"三綱五倫(삼강오륜)"
"그런데 삼강오륜에 대한 구는 안보이네. 이거 혹시 낙서해놓은 거 아닐까?"
"정은동, 은서 형제가 썼나 봐."
"中流砥株(중류지주) 百世淸風(백세청풍)"
이렇게 바위에 새겨진 글들이 도림사계곡의 참 볼거리고, 동악산의 참 묘미이다. 한자지도사인 최두열, 이현미씨는 삼강오륜이 적힌 바위는 낙서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곤 발걸음을 옮긴다.
10분 만에 형제봉과 동악산 방면으로 나누어지는 길을 만났다. 취재진은 '동악산(3.0km), 배넘어재(2.2km)'라 적힌 이정표에 따라 동악산 방면으로 발길을 돌린다. 정성스레 쌓인 돌탑을 지나치자 바윗길이 이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곤 올라오던 길을 뒤돌아보니 가을볕에 반짝이는 단풍이 찬연하다. 새소리에 묻어오는 늦가을의 정취는 '삶의 여유'가 무엇인지를 맛보게 만든다.
"근데 여기 전라도 아니야? 저건 분명 경상도 사투리인데..."
저만치서 들리는 이야기 소리에 기자도 한참이나 헷갈렸다. 이곳은 전라남도인데 어떻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는지. 혹시나 지리적으로 가까운가 하고 생각을 해봐도 경상도 사투리가 들릴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산 정상부에서 한 무리가 내려온다.
"어디서 오셨어요?"
"부산 해운대! 아이고~아가씨야, 모자 쓰라. 모자 안 쓰면 얼굴 다 끄슬린다."
기자의 피부까지 신경써준 부산 아주머니는, 친구들과 단체로 동악산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유로 부산에서 곡성까지왔냐는 물음을 던지려는 찰나, 미안하게도 금세 내려가버린다.
표지기를 따라 5분여를 가자 곧 신선바위다. 평평하고 너른 바위에서는 동서쪽으로 형제봉이 바라보이고, 서쪽으로 월봉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그러니 분명 그 옛날 신선이 조망을 즐기며 이곳에서 노닐었을 테지.
신선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곤 다시금 오르막을 오른다. 20분을 가자 동악산 정상이다. 이곳에는 곡성군에서 세운 정상석과 시평산악회에서 쌓은 돌탑이 놓여있다. 돌탑 맨 윗부분에는 배를 타고 임당수에 빠지려는 심청전의 한 장면이 조각돼 이색적이다. 올 8월에 이사차, 김광수, 주영민 선생에 의해 완공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최근 발행한 음영지형도에 따르면, 정상석이 있는 이 지점은 730m 고지이며, 삼각점(736.8m)은 15분 거리에 놓여있다. 또한 동악산 하면 보통 '바위 악(岳)' 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특이하게도 '풍류 악(樂)' 자를 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는 산에서 음악이 울린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전한다. 바로 아래에 있는 산불무인감시카메라를 지나자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곧게 허리를 뻗은 산세를 따라 20분 정도 가자 청계동과 동악산, 형제봉으로 나뉘는 삼거리다. 청계동 방면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내 10분만에 가파른 철계단이 나타났다. 암릉 구간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바위 악' 자로 생각하기 십상이겠다. 시원스레 확 트인 조망을 감상하며 2분을 더 가서 만난 이정표에는 곧장 이어지는 길은 험로로 폐쇄되었다고 적혀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20분을 가서 당도한 배넘어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도림사 방면으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도림사까지는 2.4km 거리로 약 40분이면 날머리에 도착한다.
*산행길잡이
도림사-(10분)-형제봉, 동악산 갈림길-(35분)-신선바위, 월봉리 갈림길-(10분)-신선바위-(20분)-동악산 정상석(730m)-(30분)-철계단-(30분)-배넘어재-(40분)-도림사
고전소설 심청전의 본거지인 전남 곡성에 자리한 동악산은 진산이다. 암릉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산세는 물론이고 도림사계곡, 청계동계곡이 유명하여 더 많이 알려졌다. 배넘어재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동악산이, 남쪽에는 형제봉이 솟아 있는데 이 두 봉우리가 동악산군을 이루고 있다. 또 두 봉우리를 아우른 것이 동악산의 종주코스로, 이 코스는 산행시간만 6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크게 도림사와 삼인동, 청계동으로 나뉘는 들머리에서 어느 코스를 잡느냐에 따라 짧게는 3시간 산행도 가능하다. 대개는 도림사를 들머리로 많이 이용하며, 형제봉 또는 동악산만을 오를 수 있다. 등산로 곳곳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참고하기 좋다.
도림사계곡은 그리 깊진 않지만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너른 암반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또한 반반한 암반에 새겨진 글씨는 동악산의 볼거리 중 하나다.
도림사를 들머리로 할 경우, 이내 나오는 철다리를 건너자마자 암반에 새겨진 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10분을 가면 형제봉과 동악산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당도한다 산죽길로 이어지는 동악산 방면으로 10분을 더 가면 신선바위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난다. 바윗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신선바위와 월봉리 갈림길에 닿지만 신선바위 방면으로 계속 나아간다. 조망하기 좋은 신선바위는 도림사에서 55분 거리다. 곡성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는 동악산 730m 고지까지는 20분 걸린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음영지형도에 표기된 삼각점은 북서쪽으로 15분 거리에 놓여 있다.
정상부를 이루고 있는 바위능선을 따라 가다 가파른 철계단을 만나 내려서서 30분만 가면 배넘어재에 이른다.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도림사까지는 40분 거리다.
*교통
동악산에 가려면, 용산역에서 전라선을 타고 곡성역에서 내리면 된다. 용산에서 출발하는 곡성행 열차는 06:50부터 22:50까지, 곡성에서 출발하는 용산행 열차는 심야 12시21분 출발행을 포함 07:19~23:34까지 1일 13회 다닌다. 무궁화호는 약 4시간20분 걸리며, 요금 19,300원. 새마을호는 약 4시간 걸리며 요금 28,600원이다.
산행들머리인 도림사로 가기 위해서는 곡성공용정류장(061-363-3919)에서 도림사행 버스를 탄다.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40분까지 20회 다니며, 요금 730원, 10분 걸린다. 그러나 곡성공용정류장은 곡성역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도림사정류장에서 내려 25분 정도 도림사까지 걸어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따라서 역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요금 약 2,300원.
*잘 데와 먹을 데
곡성역 주변에 잘 데와 먹을 데가 많다. 역에서 도보로 약 30분 거리에 자리한 함박가든(061-363-8484)에는 양식, 한식, 회, 중식 등 다양한 메뉴가 있으며, 전라도 음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회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도림사 인근에 부부가든(362-6808), 동악산장(362-6230) 등이 있다.
잘 데는 알프스모텔(363-8029), 도림관광호텔(362-9112), 대곡관광모텔(363-7000), 코리아모텔(362-1599), 스마일모텔(363-8002) 등이 있다.
*볼거리
도림사 전남문화재자로 22호인 도림사는 무여왕 7년(660)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헌강왕 2년(876)에 도선국사가 중창했으며, 이때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인들이 숲같이 모여들었다고 하여 '도림사'로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입장료 어른 1,500원.
도림사괘불탱 조선시대 불화로 전남 유형문화재에서 2002년에 보물 1341호로 승격되었다. 또 가로 708cm, 세로 775cm의 크기인 도림사괘불탱은 숙종 9년(1683)에 제작되었으며, 큰 행사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도림사계곡 도림사 옆에 저리한 계곡으로 넓은 암반과 풍부한 수량으로 여름철이면 많은 이들이 찾는 곡성의 유명 경승지다.
섬진강기차마을 곡성역 일대에 조성된 섬진강기차마을(360-8850, 8378)에는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운행하던 증기기관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구 곡성역사에는 관광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철도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철로자전거, 하늘자전거 등 놀이시설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드라마 토지의 촬영지로 이용된 전시용 증기기관열차가 마련되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