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년전 !
12월이 되기 전 아니 11월 25일경이 지나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려퍼졌다.
그땐 지금과 비교하면 참 살기 힘든 시기였다.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권을 획득한 군사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여기 저기 공공기관 건물앞에는 탱크를 앞세우고
총을 들고 서있는 군인들이 즐비하고
우리 국민들은 그 매서운 군인들 눈초리에 질려
혹시라도 부르면 어쩌나 하고 눈치를 살피며 종종걸음으로
그들 앞을 지나가는 것을 두려워 했다.
그게 아마 12.12사태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 선
제5공화국이였다.
그래도 그 시절 비상계엄하에서도 차가워야 할 것 같은
우리 사회는 동병상련이라서 일까?
이웃들과 또 거리마다 따스한 온기가 퍼졌고
가게앞마다 내놓은 스피커에서는 유행가가 울려 퍼지고
하루종일 시끄럽지만 그러려니 하고 시끄럽다고 탓하는
사람도 없어서 사람사는 사회 같았다.
그 시절 난 공부한답시고 종로 고시학원에서
밤 늦도록 하얗게 날리는 분필가루 칠판을 쳐다보며
졸린 눈을 비비고, 밖에서 들려오는 캐럴송과 젊은 청춘 남녀들의
웃음소리에 귀를 닫아야 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아무런 능력도 없고
힘도 없으면서 쥐뿔도 없이 젊음하나로 꿈만 잔뜩 가슴속에 품고
불속에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하루 두끼중에서 한끼는 그저 넘기고
한끼는 김치도 없이 밀가루 냄새나는 안성탕면이라는 라면으로
젊음을 소비하는 서글픈 방황하는 그 시대의 젊은이 중의 하나였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아직도 별볼일없는 중년의 늙은이로 흘러가지만,
지금이 먹거리나 생활하는 방식과 모든 면에 있어서 좀더 편리하고
여유로워 졌지만, 뭔가 허전한 것은 세월탓이련가?
80년대 데모 진압용 취루탄 가스에 서울거리가 온통 매케하고
자욱한 연기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입고 코를 손수건으로 막고 다녀도
그 때가 지나면 거리에 웃음이 넘쳐나곤 했었다.
거리엔 리어카에 해적판(불법복제 카세트 테이프)을 잔뜩 싣고
시장골목과 거리를 누비는 테이프 장사 아저씨
리어카에서 울려나오는 유행가가 대마초사건으로 가까스로 해금된
조용필씨의 " 창밖에 여자" 는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 지
온종일 여기 저기서 목이 터져라 외쳐대고
외국가요 이럽션의 원웨이티켙을 번역한 방미의 " 날보러와요"
등 이었을 것이다.
그당시 휴해하던 팝송은도나 썸머의 "핫스타프". 이럽션의 "원웨이 티켓"
바브라스트라이 샌드. 신디루퍼. 케니로저스. 올리비아뉴튼존 등 등 ~
박정희 정권시절
그 땐 참 금지곡도 많아서 "이장희. 송창식. 신중현. 정미조.
등 금지곡 사유도 가지 가지 국민의 가수인 이미자씨
노래마저도 유신정권 때 왜색이 짙다고하여 금지한 곡이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 등 많은 금지곡들이 있었지 만
우리 국민들의 귀는 그런 곡들을 내치지도 안았고 암시장으로 만들어진
해적판으로 시장바닥을 울리고,
우리도 그런 것들을 사다가 들었다.
불법복제 한것이니 제대로 만들리 없다.
어떤 것은 노래가 중간에 끊기고 노래가 축늘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제목과 달리 엉뚱한 노래가 나오고
참 기가막혀 듣다가도 허허 웃고 말았었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불량품이니, 그것을 다시 바꿔 달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시장에서 다시 만나도 아저씨 먼저것은
못듣겠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정도였었다.
그 땐 정품이라고 성음. 지구레코드. 오아시스. 선경레코드 등 있었으나
넘 비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정품을 사기가 힘들었던 시기이다.
겨울이 오기전에 연탄들여 놓고 쌀사놓고 김장해놓으면
현찰이야 있고 없고 떠나서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던
백성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물질로 행복을 살순 없다는 말이 그래서 인지,
지금처럼 그런 삶에 기초적인 것이 해결된 지금,
사람들의 삶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예전보다 지금이 더많은 거 같고,
더 희망도 없어 보이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우리의 마음은 이미 세상에 병들어 있는 것이 아닌지~
지난 주말 퇴근길에 신도림 전철역에서 빨간색 연미복을 입고
자선남비를 앞에 놓고 종을 흔드는 어린 학생들이 보였다.
12월이면 어김없이 추운 거리에 나서는 구세군의 자선남비
어떤이는 이름도 남김없이
그곳에 수억원을 넣고 가서 가끔씩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나서 불우한 이웃을 돕고자
뜻을 모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 구세군회관이 아닌가.
그동안 여러해 동안
그늘지고 아픈이들을 위하여 많은 봉사를 해오고 어려운이에게
희망과 도움을 준것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전 이 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성금을 엉뚱한 곳에 썻다고
언론에서 지탄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일까?
사람들의 온정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그런 불미스런 일은 불과 소수 몇백 몇천명중의 옳지못한 생각을 가진
한두사람으로 인하여 벌어진 일이다.
그 한두사람의 잘못을 가지고 수천명의 착한 천사를 모두 싸잡아
나쁜 집단처럼 매도하는 것은 우리가 큰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어둡고 추운곳을 찾아나서 남모르게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간다.
이런 사람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이 있기에
물질과 이기심으로 물든 이사회가 기울어 지지 않고 지탱하며 버티는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하여 여러분들도 내가 도둑놈 먹여 살릴일있냐고 하지 마시고
예전에 하던 대로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자선남지 앞에가서 단돈 천원이라도 넣고
지나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이번 사태를 핑게삼아 겨우 가끔씩 단 몇푼 기부하던
양심마져 버리려 한다면,
그건 이번 사태를 발생시킨 이들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고 본다.
내가 누굴위해 기부를 했으면
그게 여러분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고 여러분의 따스한
심장의 사랑이며 은혜이다.
소수의 그런 나쁜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어려운 이웃이
또 수많은 어린이들이 엄동설한에 춥고 배고프게 할 수는 없지 않은 가?
그 소수의 사람때문에 여러분의 내면에 간직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다면
여러분 또한 그 소수의 사람과 다를게 무엇인가?
그 소수의 사람을 탓하고 도움을 뿌리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 사람은 남을 도울 마음이 없고
이핑게 저핑게로 자신의 자그마한 세상에 대한
의무 마져도 다 하지 않을 사람이다.
여러분의 따스하고 어려운 이웃을 여기는 "측은지심"
남을 위해 베푸는 마음이 있어
여러분의 체온이 춥지않고 세상이 더 이상 얼어붙지 않고
여러분이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러분의 형제 자매 자녀 등 가족들이 행복을 누린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 까?
우리가 남을 위해 할수 있는 작은 일들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유난히도 추운 12월 이해가 가기전에 더 늦기전에
우리는 많은 사랑을 우리의 이웃과 우리 자식들을 위해
모두 함께 세상에 나누자 ~
저무는 해를 보며 - 시인과 나-
첫댓글 경제력이 부족하면 불편한게 많아지죠
그 불편함 때문에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구요
작은 것을 나누고 그 것을 고마워하고 감사해하며
더 많이 베풀지 못함을 미안해한다면 . . .
살면 살수록 돈이 남는게 아니라 사람이 남는다고
믿고 사는 나와 우리 모두에게 행복과 사랑이 넘치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