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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형성과 전승 (The Formation and Transmission of the OT)
조 휘 (아세아연합신학대학 구약학)
들어가는 말
개신교의 교리적 특성 중 하나는 정경론이다. 헬라어 원어로는 “바른 막대기” (straight rod) 혹은 “잣대”(ruler)를 뜻하며 이것이 발전하여 “규범”(standard)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데 기독교에서는 “신앙의 규범이 되는 신적 권위가 있는 책”을 의미한다. 또한 정경은 “완결되어 닫혀진 책(the completed and closed book)”으로 더 이상의 추가나 삭제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갖게 된다. 개신교에서는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으로 66권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1) 개신교의 구약 39권은 유대교의 정경인 타나크(TNK)와 비교할 때 책들의 명칭, 구분 및 배열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동일하다.2) 타나크(TNK)는 히브리어 본문으로 맛소라 본문(the Masoretic text)에 기초하고 있다.3)
개신교와 유대교에서 권위가 있는 정경으로 수용하고 있는 구약성경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근본적인 논의들 중 중요한 두 가지 이슈는 (1) 구약성경의 형성(the formation of the OT)과 (2) 구약성경의 전승(the transmission of the OT)이다. 이것은 구약의 39권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또한 언제 현재의 형태로 형성되었는가의 문제이며 이렇게 형성된 구약성경이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전승되었는가의 이슈이며 더 나아가 여기서 발전하여 전달된 구약성경의 신빙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구약성경의 형성과 전승 및 개신교 구약 성경의 기초가 되는 맛소라 본문의 신빙성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고자 한다.
구약성경의 형성 (the Formation of the OT)
구약성경의 형성에 관한 비평주의 학자들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벨하우젠(Wellhausen)의 문서설(documentary hypothesis)에 기초하고 있으며 구약성경의 삼중구조를 따라 대략 세 단계의 형성과정을 주장한다. 히브리어 성경인 타나크(TNK)라는 명칭은 삼중구조의 각 단락 명칭의 첫 글자들을 의미한다. 즉 첫 번째 단락인 “토라”(Torah; 율법서)에서 T, 두 번째 단락인 “네비임”(Nevi'im; 선지서)에서 N, 마지막 세 번째 단락인 “케투빔”(Khetuvim; 성문서)에서 K를 사용하여 타나크(TNK)라고 부른다.4) 비평주의 학자들은 이러한 삼중 구조가 바로 구약성경의 형성 단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5) 단순화된 설명이지만 간단히 그들의 견해를 설명하면 “토라”(율법서)는 이스라엘의 분열왕국 시대인 기원전 850년에 시작된 문서(J)를 시작으로 그 후 약 200년에 걸쳐 후대 문서들(E와 D)이 형성되고 전수되어 오다가 요시아 왕의 개혁 때 신명기서(D)의 정경적 권위가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D 문서를 중심으로 바벨론 포로기(586-538 BC) 중에 의식과 제의에 관한 부분(P)이 레위지파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고 다른 문서들이 모아져서 결국 에스라시대(400년대)에 “토라”가 완성된 것으로 본다.
두 번째 단락인 “네비임”은 “토라”가 완성된 후인 기원전 300-200년 사이에 각기 전승되던 것들이 비로소 정경적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고 따라서 함께 모아진 것으로 본다. 비평적 이론에 따르면 이사야서(제 3 이사야)를 비롯하여 일부 선지서가 기원전 3세기까지 기록이 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한 주장 중의 하나는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 공동체와 분리되면서 그들만의 정경, 즉 사마리아 오경(the Samaritan Pentateuch)을 갖게 되는데 이들이 이때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포함하지 않고 단지 오경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마리아인들의 분리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을 기원전 5세기 내지는 4세기로 본다면 “네비임”과 “케투빔”의 완성 시기가 그 이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락인 “케투빔”에 속하는 본문들의 저작 연대가 후대이며 특히 “케투빔”에 속하는 다니엘서의 저작 연대를 기원전 168년으로 볼 때 “케투빔”의 형성 연대를 그 이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케투빔”이 정경적 권위를 가지고 수용된 시기를 기원전 150년에서 100년 사이로 제안하며 최종적으로 전체 구약성경이 정경으로 확정된 것을 기원후 90년 잠니아회의(Council of Jamnia)로 본다.
하지만 백위드(R. T. Beckwith)는 구약의 39권이 기원후 90년의 잠니아 회의(the Council of Jamnia)에서 확정되었다는 전형적인 비평적 견해를 반박한다.6) 그는 예수스 벤 시라(Jesus ben Sira)의 손자가 히브리어로 된 지혜서(Ecclesiasticus)를 헬라어로 번역한 책의 서문에 히브리어 성경의 삼중구조를 언급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번역본의 연대를 고려할 때 최소한 기원전 130년 이전에 이미 구약의 39권 모두가 정경적 권위를 가진 책으로 수용되었음을 주장한다. 또한 벡위드는 기원전 여러 문헌들에 나타난 삼중 구조에 대한 언급들이 구약의 39권을 포함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자세히 논증하고 있으며 특히 누가복음 24:44에 나타난 언급을 볼 때 그 당시에 이미 구약의 삼중구조가 확정되었음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벡위드는 잠니아 회의에서 구약성경의 39권이 비로소 최종적으로 정경화 되었다는 가정에 근거한 J. A. Sanders, G. F. Moore, 및 Meyer의 다양한 견해를 모두 거부한다.7)
구약성경의 형성 역사에 관한 논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구약 각 권의 저작(composition)이다. 출 17:14, 24:4-8, 34:27, 레 1:1-2, 10:8-11, 민 33:1-2, 신 31:9, 22, 24-26 등의 본문들에서 모세가 실제 경험하였던 사건 및 율법에 대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기록을 남기는 그의 저작 활동이 시사되고 있음을 볼 때 모세오경의 본질적인 내용(substantial content)에 대한 모세의 저작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창 26:5에서 아브라함의 순종이 모세의 율법을 의미하는 전형적인 표현인 “명령,” “계명,” “율례,” “법도”를 지킨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창세기의 오경의 다른 책들과의 관계 및 모세의 저작에 대한 간접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모세 오경의 저작연대를 모세 당시(기원전 1400년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8) 더 나아가 신 31:9-13, 24-26은 저작 때부터 모세의 기록이 이미 정경적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9) 특히 수 22:1-6, 23:6에서 여호수아 당시에 여전히 모세의 율법책을 권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네비임” 단락의 전기선지서(the former prophets: 여호수아-왕하)는 정복기부터 포로기(561 BCE)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다룬다. 따라서 이 단락의 최종 형태로의 완성은 포로기로 볼 수 있지만 이것은 모든 기록이 포로기에 저작된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 않는다. 사건 당시의 기록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수 6:25의 “오늘날까지”라는 표현은 라합의 생존 당시를 의미하게 된다. 즉 이 사건의 기록이 가나안 정복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후기선지서(the latter prophets: 이사야-말라기)의 형성은 각 선지자의 저작과 더불어 권위가 있는 책으로 전수되었음을 후대의 선지자가 전대의 선지자의 메시지와 신탁을 기억하고 존중하고 있는 것(e.g., 미 3:12과 렘 26:16-19)과 다니엘 9:1-2에서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신탁에 근거하여 회복을 간구하였던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다.10) 또한 각 선지서의 선지자들이 본문의 저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에 그 연대를 그들의 사역 당시로 볼 수 있으며 마지막 책인 말라기의 저작 연대를 기원전 460년으로 본다면 후기선지서의 저작이 이미 기원전 5세기에 마무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케투빔”의 최종 형태의 완성은 기원전 5세기에 완료된 것으로 본다. 욥기의 사건의 정황은 족장시대이다. 저작 시기를 포로후기로 보는 것은 사건의 정황과 시간의 간격을 고려할 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족장시대의 사건을 다루는 기록이지만 책의 내용과 문학적 형태에 따라 “케투빔”에 분류하여 시편과 더불어 지혜문헌 가운데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시편의 경우, 시편 90편의 모세 저작을 인정한다면 시편의 저작은 모세 당시로부터 시작되어 포로후기까지의 전 역사를 다 포함한다. 왜냐하면 시편 137편과 126편이 포로기와 포로후기의 정황을 각기 전제하기 때문이다. 또한 72편 19절에서 다윗 시의 모음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총 150편의 최종 형태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귀환 칙령의 선포(539 BCE)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완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축에 해당하는 책들은 절기에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함께 묶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즉, 룻기는 오순절에, 아가는 유월절에, 애가는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기념하는 아브월(유대력의 11월) 구일에, 전도서는 장막절에, 끝으로 에스더서는 부림절에 낭독한다. 이 책들이 제시하고 있는 저자와 사건 발생시기를 고려할 때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케투빔”에서 역사적 기록으로 분류되고 있는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및 역대기상하도 역시 사건 발생과 동시대적 기록으로 간주되며 포로기와 포로후기의 서사적 저작의 글이 함께 모아졌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약의 형성은 각 권의 저작과 더불어 기원전 1400년대부터 400년까지의 약 1000년의 기간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형성(the progressive formation of the OT)되었고 또한 신앙 공동체에 의해 구약의 정경적 권위가 인지(the recognition of the OT as canon; cf. 에 7장, 느 8-10장)되었다. 라소르(LaSor), 부시(Bush)와 허바드(Hubbard)는 구약의 최종형태의 완결에 있어서 기원전 400년대에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을 위해 충실히 사역을 하였던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제안한다.11) 그렇다면 이렇게 형성된 구약이 어떻게 전승되었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다음 단락에서는 이 전승의 문제를 간략히 서술하고자 한다.
구약성경의 전승 (the Transmission of the OT)12)
위에서 언급한 과정을 통하여 기원전 1400년대에서 400대까지 형성된 구약성경은 서기관들(scribes)에 의해 히브리어 자음으로만 필사되어 전수되었다. 기원후 탈무드시대(135-500년 또는 300-600년) 동안 자음본문(consonantal texts)에 절(verse)과 문단(paragraph)의 구분 및 의식을 위한 단락구분(liturgical divisions)이 첨가되었다. 기원후 500-950년 사이에는 이렇게 필사되던 본문을 보다 정확하게 필사하고 정확한 본문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모음체계를 고안하여 모음부호 및 악센트 등을 첨가하여 필사하게 된다.13) 이 시기에 히브리어 본문의 필사와 전수에 관여한 자들을 맛소라 학파(the Masorates)라고 하며 대표적인 맛소라 학파는 티베리아 학파, 팔레스타인 학파, 바벨론 학파이다. 특히 티베리아의 맛소라학파인 아론 벤 아쉐르(Aaron ben Asher)에 의해 고안된 모음체계가 대표적으로 사용되게 된다.14) 현재 출판된 히브리어 성경은 주로 아론 벤 아쉐르의 모음체계를 반영하고 있는 본문이다. 이 필사본들을 흔히 맛소라 본문(MT)이라고 부른다. 본문을 필사함에 있어서 “소페림”(soferim)은 자음 본문을 필사하고 이 자음 본문에 “나크다님”(naqdanim)이 모음과 엑센트 부호를 첨가하고 “바알레 하 맛소라”(ba‘ale ha-masorah)들이 맛소라 주(the Masoretic notes)를 작성하였다.15) 특히 탈무드 이전 및 탈무드시대에는 필사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는 “맛세크헤트 세페르 토라”(Massekhet Sefer Torah)를 사용하였고 탈무드 이후 시대에는 "맛세크헤트 소페림"(Massekhet Soferim)에 근거하여 필사를 하였다. “맛세크헤트 소페림”에 나타나는 “할라크호트”(halakhot: “religious instruction”)는 필사재료, 가죽, 각 장, 줄, 여백, 오류교정, 보관 등에 관한 자세한 규정을 담고 있고 이에 따라 필사자는 철저하고 신중하게 본문을 복사하였다.16)
구약성경 전체를 담고 있고 현존하는 대표적인 맛소라 본문으로 알렙포 코덱스(the Aleppo Codex; A)와 레닌그라드 코덱스(the Leningrad Codex; L)가 있다.17) 알렙포 코덱스는 주후 925년경에 아마도 팔레스타인의 디베랴 근방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솔로모 벤 부야아(Shelomo ben Buya‘a)가 자음을 쓰고 약 100년이 지난 후 아론 벤 아쉐르(Aaron ben Asher)가 이 자음 본문에 모음부호와 엑센트 및 맛소라 주(the Masoretic notes)를 체계적으로 첨가하여 완성된 사본으로 본다. 이 코덱스는 시리아 북부 알렙포에 보관되어 왔는데 1948년 반유대 폭동 때 거의 모든 모세오경 본문을 포함해 구약의 약 사분의 일(총 380페이지 중 294페이지) 정도가 파괴되었다.18) 이 사본을 1976년에 고센-고트스타인(M. H. Goshen-Gottstein)이 팩시밀리로 출간하였고 히브리 대학에서 그의 주도 하에 알렙포 코덱스에 근거한 구약 히브리성경을 편찬 중에 있다. 또한 1992년에 코헨(M. Cohen)이 알렙포 코텍스(A)와 중세 초기의 필사본들에 근거하여 Miqraot Gedolot ́Haketer ́를 출판하였다.19)
레닌그라드 코덱스(L)는 알렙포 코덱스와 가장 유사한 전승을 따르고 있으며 옛 카이로(Old Cairo)에서 기원후 1009년에 서기관 사무엘 벤 야곱(Samuel ben Jacob)이 아론 벤 아쉐르(Aaronben Asher)의 모음과 엑센트 체계를 따라 기록한 것이다. 구약성경 전체가 그대로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그 가치가 높기에 출판된 히브리어 성경의 기초사본(base text)으로 사용되었다. 1951년에 R. Kittel과 P. Kahle에 의해 편집된 Biblia Hebraica (BH)와 1967-1977년에 K. Elliger와 W. Rudolph에 의해 편집된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BHS)가 레닌그라드 코덱스를 사용하였다.20) 또한 1976년 텔아비브(Tel Aviv)에서 도탄(Aron. Dotan)이 히브리어성경의 연구 및 회당 의식에 사용할 목적으로 ADI 출판사가 1973년에 출판한 the Torah, Nevi'im u-Khetuvim을 완전히 개정하고 다시 식자(植字)하여 히브리어성경(Biblia Hebraica Leningradensia: BHL)을 출판하였는데 이 Adi판 역시 레닌그라드 코덱스(L)에 근거하고 있다.
출판된 히브리어 성경들이 이러한 맛소라 본문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 번역본이 아닌 원어본문(히브리어본문)이라는 점이며 기원후 1세기 이후 유태인 공동체가 거의 독점적으로 맛소라 본문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구약성경 전체를 모두 담고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원어 필사본이다. 셋째, 맛소라 본문(MT)의 모체로 추정되는 프로토-맛소라 본문(the proto-Masoretic text)에 근거하여 탈굼(the Targumim: 아람어), 페쉬타(the Peshitta: 아람어 방언인 시리아어), 라틴어 성경(the Vulgate) 등 여러 번역본들이 등장하였다. 넷째, 종교개혁 당시 루터와 종교 개혁가들이 로마교회의 라틴어성경(the Vulgate)을 거부한 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한 본문이 맛소라 성경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맛소라 본문이 히브리어 원문 사본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맛소라 본문이 최종적으로 그 형태를 갖추고 그 형태를 지속적으로 필사하게 되는 것이 중세 초기 이후라는 점이다. 즉,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맛소라 본문의 대표적인 필사본인 알렙포 코덱스(A)와 레닌그라드 코덱스(L)가 모두 기원후 10세기 이후의 본문이라는 사실이다.21) 따라서 구약성경 원본의 기록 연대와 비교할 때 최소한 2천년 정도의 간격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맛소라 본문들에 근거한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믿을 만한 본문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맛소라 본문의 신빙성(the Reliability of the Masoretic Text)
맛소라들에 의해 기원후 500-1000년 사이에 기록되고 전수된 필사본에 근거하여 출판된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비평학적 가치를 인정하고 필사본으로서의 정확성과 신빙성을 널리 인정받게 되는 계기는 세 명의 베두인 목동들이 1946/7년에 소위 말하는 “사해사본”(the Dead Sea scrolls) 혹은 “쿰란사본”(Qumran scrolls)을 우연히 발견한 사건이다.22) 현대 연대 측정 기술에 의하면 쿰란 사본들은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에 주로 예루살렘에서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성경 연구에 있어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된다.23) 수천 년이 넘게 전승되어온 다양한 필사본과 번역본, 고고학적 자료들을 이용하여 구약성경의 저자가 남긴 원문에 가장 근접한 본문을 복원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본문 비평학(textual criticism) 학자들은 1947년 이전에는 주로 맛소라 본문, 사마리아 오경, 칠십인경(LXX; Septuagint)이 본문 비평학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간주하여 사용하였다.24) 이 당시까지는 이 사본들의 기록 연대의 고대성을 고려할 때 맛소라 본문(기원후 10세기)에 비해 사마리아 오경(기원전 4세기)과 칠십인경(기원전 3세기)이 더 본문비평학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특히 칠십인경은 전체 구약성경을 담고 있기에 더욱 높은 가치가 부여되었다. 하지만 쿰란사본의 발견은 이러한 평가를 바꾸어 원어로 기록된 맛소라 본문에 본문 비평학적 가치의 무게를 더 두게 되었다.25) 예를 들면, 쿰란사본 중 가장 먼저 발견되었고 기원전 100년경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사야사본(the great Isaiah scroll: 1QIsaa)과 맛소라 본문의 이사야서를 대조하여 비교한 결과 이 두 사본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차이가 나타나는 것도 본문의 의미에 영향을 줄 만한 것들이 아니다.26) 따라서 버로우즈(Burrows)는 “여기에 그것[맛소라 본문과 쿰란 이사야서의 본질적인 동일성]의 주된 중요성이 있으며 맛소라 전승의 신빙성을 지지해 준다”고 적고 있다.27) 또한 다른 쿰란 성경사본들도 비교한 후 맛소라 본문이 1세기가 넘게 세심하고 엄격하게 필사되어 전승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28) 비록 쿰란에서 발견된 사본들이 구약 성경의 원문의 저작 연대와 여전히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 쿰란 사본들의 발견은 1947년 이전까지 맛소라 본문이 가지고 있었던 천여 년의 간격의 난제를 해결하고 맛소라 본문의 신빙성을 높여 주었다. 결국 이것은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최종적으로 형성되었을 구약성경의 본문이 세밀하고 충실하게 전승되었을 가능성을 높여 준다. 현대에 출판된 히브리어 성경의 기초 본문이 맛소라 본문인 것은 이 본문의 신빙성을 또한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나가는 말
개신교의 정경론이 수반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을 전제로 하는 “영감”(inspiration)이다. “영감”은 성경 저자가 저술한 최초의 원문에 제한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전승과 보존에 관여한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29)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은 그의 말씀인 구약성경을 온전히 보존하는데 나타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성경 저자의 원문을 우리에게 전달하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구약성경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오류/오기가 없도록 하시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수천 년 동안 그의 섭리와 간섭을 통하여 그의 말씀의 본질적인 내용을 충실히 보존하시어 치명적인 오류나 오염 및 훼손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바로 맛소라 본문의 세밀하고 정교한 전승의 역사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필사의 과정 중 있게 되는 다양한 오기로 인한 필사본 간의 차이점들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차이는 본질적인 내용을 수정해야할만한 오류들이 아니라 주로 구(phrase)나 단어에 제한되며 사본들 간의 일치성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윌트키(Waltke)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실제 사본들 간의 불일치는 전체 기록의 10% 정도에 불과하고 일치하는 부분은 90%에 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30) 기원후 10세기에 맛소라 본문이 체계화되고 정교하게 전승되기까지 모세로부터 시작된 최초의 구약성경기록(기원전 1400년대)은 20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하나님의 섭리와 그의 간섭을 통하여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메시지를 변함없이 명확히 전하여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1) 최초로 기독교에서 출판한 히브리어 성경은 여러 언어들(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라틴어)로 번역된 본문을 함께 묶어 놓은 Complutensian Polyglot (1514-17)이다. 2) 실제 유대교에서 정경은 구약성경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유대교에서는 구전 율법(Mishnah) 및 고대의 랍비문헌과 주석들도 동일한 권위가 있는 것으로 본다. 3) 맛소라 본문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위해서는 Israel Yeivin, Introduction to the Tiberian Masorah, trans. E. J. Revell (Missoula, Mont.: Scholars Press, 1980); P. Kelley, D. Mynatt, and T. Crawford, The Masorah of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Introduction and Annotated Glossary (Grand Rapids: Eerdmans, 1998)를 보라. 4) 율법서는 모세오경을 의미하고 선지서는 전선지서와 후선지서로 분류되는데 전자에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포함되고 후자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및 열두 소선지서가 포함된다. 성문서는 시편, 욥기, 잠언의 시서와 룻기, 아가, 애가, 전도서, 에스더서의 오축과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상하의 역사적 기록이 포함된다. 랍비 문헌에서는 구약성경을 “낭독된 것(what is read)”의 의미인 “하미크라”(rqmh) 또는 “기록되어진 것”의 의미로 “하케투브”(bwtkh)라고 부르거나 “토라”(hrwt: the Law)라고 부른다. 마지막 명칭인 “토라”는 직접적으로는 모세오경을 지칭하지만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5) Cf. W. H Schmidt, Old Testament Introduction, trans. M. J. O'connell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9), 6-7. 6) 자세한 논의를 보려면 Roger T. Beckwith, "Formation of the Hebrew Bible," in Mikra, ed. Marin Jan Mulder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8), 39-88을 보라. 또한 성경 형성의 과정에 대한 논의를 보려면 J. H. Sailhamer, How We Go the Bible (Grand Rapids: Zondervan, 1998)을 참조하라. 7) Beckwith는 삼중구조의 구약완성이 잠니아회의(90 CE)를 통해서가 아니라 제2 마카비서 2:13b-15에 근거하여 유다스 마카비우스(Judas Macaabeus) 당시(164 BCE)에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보수적인 유태인 학자인 A. Z. Leiman도 구약 39권의 완결이 기원전 2세기 이전에 이루어 진 것으로 주장한다(A. Z. Leiman, The Canonization of Hebrew Scripture, TCAAS 47 [Hamden Conn.: Archon Books, 1976]). 8) LaSor, Hubbard와 Bush는 창 36:31의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이 이러하니라”는 표현을 고려하여 모세 오경에 대한 모세의 실질적인 저작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최종형태의 오경이 최소한 다윗시대(1000 BCE)에는 완성된 것으로 주장한다(W. S. LaSor, D. A. Hubbard, and F. W. Bush, Old Testament Survey: The Message, Form and Background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2], 19). 9) 정경 개념의 고대성을 부인하는 비평적 견해에 대해 Hallo는 현존하는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근거하여 정경 개념의 고대성을 주장하고 있으며(cf. W. Hallo, "The Concept of Canonicity in Cuneiform and Biblical Literature: A Comparative Appraisal," in The Biblical Canon in Comparative Perspective: Scripture in Context IV, ANETS 11, ed. K. L. Younger, Jr., W. W. Hallo, and B. F. Batto [Lewiston: The Edwin Mellen Press, 1991], 1-19) 이와 유사하게 Vasholz는 이집트 문헌과 비교하여 동일한 주장을 한다(cf. R. I. Vasholz, The Old Testament Canon in the Old Testament Church, ANETS 7 [Lewiston: The Edwin Mellen Press, 1990], 6-8). 10) 히브리어 성경의 분류에 따르면 다니엘서는 세 번째 단락인 “케투빔‘에 등장한다. 이것은 아마도 다니엘서 1-6장의 서사적 기록에 무게를 두고 또한 에스라-느헤미야 및 역대기서의 연대적인 연관성(포로기에서 귀환선포 및 포로후기의 이스라엘의 역사) 때문인 것 같다. 다니엘서가 세 번째 단락에 분류된 것 자체가 반드시 다니엘서의 후대 저작의 결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11) Cf. LaSor, Hubbard, & Bush, Old Testament Survey, 21; John H. Skilton, "The Transmission of the Hebrew Text, " in The Infallible Word: A Symposium by the Members of the Faculty of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ed. N. B. Stonehouse and Paul Woolley, revised ed.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7), 5. 12) 구약의 전승에 관한 글을 보려면 Vasholz, The Old Testament, 69-103; Martin Jan Mulder, "The Transmission of the Biblical Text," in Mikra, ed. Marin Jan Mulder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8), 87-136; Emanuel Tov, Textual Criticism of the Hebrew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2), 199-286; Ellis R. Brotzman, Textual Criticism: A Practical Introduction (Grand Rapids: Baker, 1994), 37-62를 보라. 13) 왕정시대 이전에 구약본문 필사에 주로 사용된 재료는 돌, 토판, 나무, 토기, 파피루스, 금속이다. 왕정시대 이후에는 주로 파피루스나 양피지가 사용되었으며 파피루스를 주 재료로 한 두루마리(scroll) 형태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 양피지에 기록된 필사본들이 발견되었으며 쿰란에서 발견된 양피지 두루마리들 중에는 그 길이가 7 내지 8 미터에 달하는 것들과 27미터에 달하는 것(4QPentParaphrase)도 있다. 앙피지의 한 면에만 필사를 하여 말아서 사용하는 두루마리(scroll) 형태가 탈무드의 시기까지(600 CE) 주로 사용되었고 그 이후 시기에도 두루마리 형태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중세 시대의 히브리어 본문들은 책의 형태와 유사한 양피지 코덱스이다(보다 자세한 설명을 보려면 Tov, Textual Criticism, 201-7; A. Demsky, "Part One: The Biblical Period"와 M. Bar-Ilan, "Part Two: Scribes and Books in the Late Second Commonwealth and Rabbinic Period," in Mikra, ed. Marin Jan Mulder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8], 2-20, 21-38을 참조하라). 맛소라 학파에 의해 히브리어 자음 본문에 첨가된 내용은 (1) 모음부호, (2) 단락 및 장절 구분 등의 본문의 주변적 요소(para-textual elements), (3) 엑센트, 및 (4) 맛소라 주(the apparatus of Masorah)이다. 14) 히브리어 모음 체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팔레스타인 모음체계(Palestinian vocalization); (2) 바벨론 모음체계(Babylonian vocalization); (3) 티베리아 모음체계(Tiberian vocalization). 팔레스타인과 바벨론 모음체계는 모음 부호를 자음 위에 표기하는 반면에 티베리아 모음체계는 자음 아래 모음 부호를 표기한다. 이 중 티베리아 모음체계가 점차적으로 권위 있는 모음 체계로 수용되게 되며 아론 벤 아쉐르(Aaron ben Asher)가 티베리아 모음표기를 더욱 체계화하였다. 15) Cf. Tov, Textual Criticism, 22-24. 16) Ibid., 208-17; cf. Yeivin, Introduction, 11. 17) MS Sassoon(1053)도 약간의 본문을 제외하고 구약 성경 전체를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사본이지만 다른 사본들과 비교할 때 비교적 정교한 필사 작업이 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18) 현재 이 알렙포 사본은 예루살렘의 Ben-Zvi institute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19) 랍비들이 사용하는 성경을 "랍비성경"(Rabbinic Bible: Miqra ̓ot Gedolot, “extended Bible texts")라고 부르며 이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본문과 아람어 탈굼. 및 랍비들의 주석을 함께 담고 있다. 20) BH의 경우, 초판은 R. Kittel에 의해 제 2 랍비성경(the second Rabbinic Bible: Jacob ben Hayyim의 사본; Leipzig, 905)에 근거하여 편찬되었고 제 2판이 1913년에 Leipzig에서 출판되었다. 1929-1937에 기초본문(base text)을 레닌그라드 코덱스(L)로 바꾸어 Stuttgart에서 제 3판이 R. Kittel과 P. Kahle에 의해 출판되었는데 이때까지의 출판물을 BHK로 부른다(cf. Tov, Textual Criticism, 375). 1951년에 출판된 Kittel과 Kahle의 히브리어성경(BH)은 제 7판(또는 제 3판)이며 이 성경의 특징 중 하나는 이 전의 출판본과는 달리 성경본문 아래 이문(異文; textual variants)을 열거하는 장치(apparatus)에 쿰란 사본들의 이문들을 자세히 담고 있는 점이다. 21) 기원전 3세기 이전의 성경 사본이 현재까지는 발견된 것이 없다. 22) Cf. 쿰란 사본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보려면 James C. VanderKam, The Dead Sea Scrolls Today (Grand Rapids: Eerdmans, 1994)를 참조하라. 발견된 사본의 내용을 보려면 Geza Vermes, The Complete Dea Sea Scrolls in English (New York: Penguin, 1998)을 참조하는 것이 필요하며 쿰란 사본의 의의와 쿰란 공동체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위해서는 Timothy H. Lim, The Dead Sea Scrolls in Their Historical Context (Edinburgh: T & T Clark, 2000)를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Brotzman은 그의 책에서 쿰란 사본의 본문 비평학적 의의를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Brotzman, Textual Criticism, 87-96). 23) Cf. Tov, Textual Criticism, 117. Brotzman은 본문 비평학 분야의 변혁과 같은 것으로 쿰란사본 발견의 가치를 평가한다: “It is fair to say that the Qumran finds have revolutionized the field of textual criticism” (Brotzman, Textual Criticism, 95). 24) Waltke에 따르면 본문 비평학이 추구하는 목표를 대략 (1) 원저작(original composition)을 복원하는 것; (2) 최종형태의 본문(the final text)을 복원하는 것; (3) 가장 초기이며 입증된 본문 (the earliest attested text); (4) 수용된 본문들(accepted texts)을 복원하는 것; (5) 최종형태의 본문들(final texts)을 재구성하는 것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다(cf. Bruce K. Waltke, “Aims of OT Textual Criticism.”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51 [1989]: 93-108). 본문 비평학(textual criticism)에 관해 참고할 만한 서적은 Tov, Textual Criticism; Ernst WÜrthwein, The Text of the Old Testament. Trans. Erroll F. Rhodes. Grand Rapids: Eerdmans, 1988 (『성서본문비평입문』 방석종 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Brotzman, Textual Criticism (『구약본문비평의 이론과 실제』 이창배 옮김 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M. H. Goshen-Gottsein, “The Textual Criticism of the Old Testament: Rise, Decline, Rebirth,”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02 (1983): 365-99 등이 있다. 25) Tov는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여 맛소라 본문에 보다 무게를 두기는 하지만 칠십인경의 본문 비평학적 가치를 여전히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cf. Tov, Textual Criticism, 121-22). 칠십인경의 번역에 기초가 된 히브리어 본문이 맛소라 본문 보다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Wilson과 Skilton은 Ecclesiasticus나 the book of Jubilee 등에 나타나는 인용문들에 근거하여 칠십인경의 기초가 되었을 히브리어 본문과 맛소라 본문이 본질적인 면에서 동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cf. Skilton, "The Transmission," 5; R. D. Wilson, A Scientific Investigation of the Old Testament [Chicago: Moody Press, 1959], 63). 26) VanderKam, The Dead Sea Scroll, 126; cf. Sailhmar, How We Got, 44. 27) Brotzman의 책에서 재인용 및 한글번역(Brotzman, Textual Criticism, 95). 28) 쿰란에서 발견한 성경 본문 사본들과 맛소라 본문과 비교해 볼 때 사소하거나 아주 명백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차이점들과 더불어 쿰란사본들을 사마리아 오경과 칠십인경과 비교해 보았을 때 쿰란 사본들이 후자의 사본들에 더 일치하는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략 두 가지 이론을 제안한다. 하나는 Frank Moore Cross가 제안하는 “지역 본문 이론”(the theory of local texts)이다(VanderKam, The Dead Sea Scroll, 132-33). 이 이론은 팔레스타인, 바벨론, 이집트에서 구약성경이 서로 다른 전통 속에서 필사되고 전승된 것으로 본다. 팔레스타인에서 모세오경으로 시작된 본문이 바벨론과 이집트로 전달이 되었고 한편 바벨론에서는 맛소라 본문 전승이 형성되었고 이집트에서는 칠십인경 전승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가정한다. 또한 후대에 이 세 전승이 팔레스타인에 모아져 서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현존하는 맛소라 본문, 사마리아 오경, 및 칠십인경 안에 나타나는 차이점과 쿰란 사본들이 이 세 사본들의 형식을 모두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E. Tov가 제안하는 “복수 본문과 다양한 본문 이론”(the theory of textual plurality and variety)이다: "Therefore, the three texts [the Masoretic Text, the Samaritan Pentatuech, the Septuagint] which are generally described as the three central witnesses of the biblical text actually reflect only three of a much larger number of ancient texts" (Tov, Textual Criticism, 160-63). Tov는 다양한 본문들을 가정하여 세 개의 본문형태(textual type)를 거부하고 이를 확장하여 다섯 개의 그룹(the five groups of Qumran texts)으로 분류한다(cf. ibid., 114-16, 161-62). 29) Cf. Skilton, "The Transmission," 1-2; Brotzman, Textual Criticism, 22-24. 30) Cf. Ibid., 23; Bruce K. Waltke, "The Textual Criticism fo the Old Testament," vol. 1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ed. Frank E. Gaebelein (Grand Rapids: Zondervan, 1979), 211-18. Goshen-Gottsein이 사본들 간의 일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 . on one level, all biblical manuscripts are identical; on another, they differ in minutiae of plene-spellings of certain forms; but mainly in their ga ̒ya notations as well as parasha-divisions" (M. H. Goshen-Gottsein, "The Development of the Hebrew Text of the Bible: Theories and Practice of Textual Criticism,” Vetus Testamentum 42 [1992]: 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