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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춘극장
아저씨가 “마누라가 출타하고 없어 적적했는데 자네가 와서 잘 됐다. 물고기를 좀 잡아다가 매운탕을 끓여 술 한 잔 하자” 하시더니 강에 나갈 채비를 하셨다.
섭은 손씨를 아저씨라 부른다.
영천 읍 남쪽으로 주남 들을 지나면 도동이란 마을 있다.
마을 앞에 금호강을 따라 크고 작은 사과밭들이 우거져 있다.
강변에서 사과밭을 경영하시는 아저씨는 여가만 생기면 초망을 들고 강으로 나가 천렵을 즐겼다.
섭이가 아저씨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다.
친구들과 죽림사(竹林寺) 입구에서 고기를 잡다가 역시 고기를 잡으러 나온 아저씨가 강바닥에 있는 깨진 유리조각에 발이 베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섭이가 달려가 입고 있던 러닝사스를 벗어 찢어 발을 싸맨 후 타고 온 오토바이에 모시고 읍내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해 드렸다.
섭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찾아오셨던 아저씨는 오토바이나 타고 다니는 건달꾼으로 알았던 섭이가 성실하고 아름다운 꿈이 있는 것을 보고 조카처럼 사랑하시게 되었다.
처서를 맞은 초가을의 금호강은 살 오른 피라미 떼가 하얀 비늘을 빤짝이며 천렵꾼을 유혹했다.
학생 때부터 초망 질을 하셨다는 아저씨는 고기떼를 한쪽으로 몰아 투망을 던지는 솜씨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왼쪽 어깨에 걸친 그물을 양손에 나눠 잡고 오른 손으로 던지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떨어지는 그물에 놀란 고기떼가 사방으로 흩어지지만 그물에도 하얗게 잡혀 나왔다.
섭이가 매운탕을 끓이려고 해도 아저씨는 자기가 끓어야 맛이 제대로 난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개성에서 자라셨다는 아저씨는 어릴 적부터 임진강 지류인 사천에서 물고기를 즐겨 잡았다고 하신다.
그때부터 물고기 매운탕을 끓이셨다는 아저씨는 매운탕을 아주 맛있게 끓이신다.
작년 봄 진갑을 지내셨건만 40대로 볼만큼 젊고 건강하시다.
교회를 다니시기는 하지만 술을 좋아하시는 아저씨는 취흥으로 기분이 좋아지면 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 현인이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같이 애수에 젖은 노래를 곧잘 불렀다.
아저씨의 노래 소리에는 진한 고독과 슬픔이 묻어난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시는 아저씨는 혼자만의 시간이면 이애리수의 노래 「황성의 적」을 애절하게 부르신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나는 가리라 끌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는 이 심사를 가슴 속 깊이 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어라.
아저씨가 이런 애수에 젖은 노래를 부르시면 아주머니가 청승맞다고 못 부르게 하셨지만 들은 척도 않고 불렀다.
아주머니도 기어이 말리지는 않으셨다.
매운탕을 끓이면서 노래를 흥얼거리시던 아저씨가 예외 없이 「황성옛터」를 불렀다.
누가 따라 부르기라도 하면 아저씨는 노래를 그치고 부르지 않는다.
아저씨는 이런 노래로 자기 고독을 즐기신다.
매운탕을 끓을 동안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던 섭은 마루 구석에 놓여 있는 소설책을 한권 발견하였다.
김래성이 쓴 「청춘극장」이었다.
청송 정자목에서 태어난 섭이는 스물 두 살적에 작은 고모님이 사시는 금로동(영천)으로 이사를 왔다.
중학생 때 폐결핵이 걸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키우며 많은 책을 읽었고, 청춘극장도 읽어보았다.
읽어 본 책이지만 무료한 섭은 책장을 뒤적이고 있는데, 아저씨가 술상을 가져오시다 보고 “그 책은 전번에 화물차 운전수가 놓고 갔는데, 보고 싶으면 가져가서 보라”고 하셨다.
“아닙니다. 이 책은 저도 읽었습니다.” 하고 일어나 술상을 받았다.
언제 먹어도 아저씨가 끓인 매운탕 맛은 일품이다.
주량이 약한 섭은 소주 서너 잔에 취기가 올랐다.
취기로 약간 혀가 꼬부라진 섭은 진지한 표정으로 “아저씨! 제가 청춘극장 소설을 읽어보았는데 말입니다. 작자 김래성 선생님은 양반집 귀공 자셨는지 몰라도 좀 더럽게 썼더라고요.” 했다.
진지하게 말하는 섭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작가 김래성 선생님이 청춘극장을 더럽게 썼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김래성하면 탐정소설 「마인」 「백가면」 「비밀의 문」등을 발표했고, 대중소설로는 「인생화보」 「청춘극장」 「행복의 위치」 「인생 안내」등으로 국내 몇 안 되는 유명한 소설가였다.
취기에 혀가 고부라진 섭은 흥분한 어조로 『아저씨 청춘극장을 읽어 보셨습니까? 못 읽으셨다면 제가 좀 설명해 드리지요. 아저씨는 양반이셨습니까? 저는요, 조상님이 남의 집 산지기(남의 묘를 돌보는 하인)로 지낸 상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철이 들자, 못 배우고 무식하여 자존심조차 모르는 아버지를 독촉하여 태어나서 자란 고향 산천을 버리고 아무도 우리 집안의 내력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저도 소설가가 되려고 합니다. 무책임하고 더러운 흥미소설이 아니라 인간애가 넘치는 희망의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김래성 선생님은 「청춘극장」에서 사대부 양반님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상놈 준길이 놈을 악질 왜놈의 앞잡이로 만들어놓고, 백성의 피를 빨며 나라를 망해먹은 양반집 자제님들은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지사라는 거창한 배역을 맡겼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양반 댁 도련님들에게 상놈의 새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멸시와 따돌림을 당한 준길이었습니다. 양반 자제들의 미움과 천대에 반항과 증오심이 불탄 준길이는 멸시와 천대에서 벗어나려고 일본 헌병 오깟비키(岡っ引き보조)가 되었습니다. 오깟비키가 되자 양반 댁 아드님들께서 상놈의 자식은 천성이 비겁하고 악하기 때문에 민족을 배신하고 왜놈의 앞잡이가 되었다며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한 번도 같은 민족으로 사람대접을 해주지도 않았던 양반님들이 말입니다. 소위 나라의 독립 하겠다고 애국운동을 하는 청년들이 말입니다. 천출로 태어나 양반들의 멸시와 구박으로부터 벗어나려(독립)고 왜놈의 앞잡이가 되어버린 준길이를 감사안지 못하고 미워하는 이율배반적인 소설이더라 말입니다. 진정 국민의 소설이라면 일본의 압제로부터 빼앗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꿈꾸는 애국청년들이 자기들의 멸시와 천대로부터 자주(독립)하고 싶어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버린 쌍놈 준길이에게 오히려 미안해하고, 그간에 멸시와 천대한 자기들의 잘못을 용서 빌고 앞으로 해방 될 조국 강산에서 함께 살아가자고, 동포요 민족으로써 품어주어서야 옳지 않습니까? 자기네들의 잃어버린 주권은 찾겠다고 일제에 항거하는 선각자라면서 종놈 준길이의 주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몰지각한 가치관으로 쓰여 진 허접한 소설이드라 이 말입니다. 일본이 양반들의 원수였다면 양반은 준길이와 같은 쌍놈들의 원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대부 양반들에게 인간 이하의 멸시와 천대를 받은 준길이로서는 서럽고 한 많은 세상에서 양반들을 대적할 수만 있다면 왜놈 헌병 오깟비끼가 아니라 그 어떤 짓인들 못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쌍놈 준길이에게는 자기를 천대하는 민족보다야 쥐꼬리만 한 힘이라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왜놈 헌병 오깟비끼가 독립만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진정한 지식인이요 애국지사라면 준길이 같은 이들을 이해하고 동포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품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양반집 자제들에게 짐승처럼 천대나 받으며 굶주림의 가난 속에서 자란 준길이에게는 사대부 양반님들이 망해 먹은 조국이나 민족보다야 자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하고 자기를 천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 들 수 있도록 만들어준 침략국 일본이 오히려 고마운 구세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과거 급제를 해서 민초들의 피를 빨아먹던 조선의 양반님들이,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 일본 놈의 헌병 오깟비끼가 되어 반일 사상범을 잡아주는 준길이에게 과연 민족을 배신하였다고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 저는 준길이처럼 왜놈 헌병 오깟비끼들이 생기게 된 것은 양반님들이 저지른 업보요, 천대를 받아온 천민들의 통쾌한 복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대부 양반들이 준길이에게 인간 대접을 하였더라면 왜 왜놈의 앞잡이가 되었겠습니까? 준길이와 같은 쌍것들의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면서 자기들의 인권과 주권을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런 가소로운 소설이 무슨 문학적 가치가 있습니까? 쌍놈들에게는 이 나라 이 강산이 조국이나 민족이기보다는 철천지원수였을 것입니다. 비록 천대 받는 쌍놈이 아니었더라도 조반석죽을 못 끓여 먹고 살겠다고 일본헌병 앞잡이가 되었더라도 이 땅에서 태어난 같은 민족이기에, 조국이 해방되면 함께 살아가야할 동포이기에, 조건 없이 용서 해 주고, 민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품어주어야 진정한 지식인이요, 독립을 꿈꾸는 애국지사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조국의 독립을 꿈꾸는 소위 애국청년이라면서 민족을 대동단결할 수 있는 포용력은 없고, 왜놈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증오하는 이따위 소설 나부랭이가 민족 소설로 미화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이 나라 이 사회가 자유 평등 사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해방 후에 태어나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들에게 하대 받는 것을 보며 서럽게 자란 놈이라 가슴 속에 한이 서려있습니다. 조선의 양반님들이야말로 출세영달을 위해 주유하며 유세하던 공맹(孔孟) 따위의 더러운 놈의 이름을 팔아 권력의 칼을 휘두르며 순박한 백성들을 잡아먹은 인(人) 백정(白丁)들이며, 이 나라를 일본에 망하도록 만든 망국 범(亡國犯)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라를 망해먹은 저들이 자유 독립을 외치려면 힘없는 사람들을 쌍놈으로 묶어놓고 학대한 과거를 통회하고, 천민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버린 반민족 행위자까지도 이해하고 가슴으로 품어 안으며, 민족 통합을 이루려고 해서야 진정한 지도자요 지성인이요 애국지사가 아니겠습니까? 과거 이 나라 조선이 반상(班常)을 구별하지 않고 저마다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더라면 이 나라가 망하였겠습니까? 조선의 연암 박지원이를 보십시오. 재능 있는 서출(庶出)들을 얼마나 아꼈습니까? 참된 작가라면 왜놈의 앞잡이로 전락한 쌍놈 준길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가슴 아파하며 동포로서 포용하려는 소설을 썼어야 참으로 젊은이들의 생명이 약동하는 청춘극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천출이란 이유로 짐승처럼 멸시 받다가 이를 악물고 나라와 민족도 모르는 왜놈의 앞잡이가 되게 몰아놓고 자기들 양반네의 주권은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런 돼먹지 않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불쌍합니다. 아직도 청춘극장을 쓴 작가와 같은 정신문화를 가진 지식인들 때문에 해방 4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이 나라 이 강산이 분열과 부도덕의 늪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앞잡이가 된 천한 쌍놈들이 반민족 자가 아니라 가난한 백성을 착취하고 멸시 천대하므로 왜놈의 앞잡이가 되도록 내몬 양반네가 진정 반민족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이 되자 양반입네 하던 토호들이 능력도 없는 주재에 일어나 정치를 한답시고 모인 정치집단들이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사분오열하여 싸우다가 주류에서 밀려났던 자들이 군사쿠데타 후에 권력에 부침하려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재야에서 아무개는 친일 운운하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작자들이 과연 애국을 위해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까? 양반으로써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오적이 아니라면 그 어떤 친일 행위도 해방 된 조국에서 대 사면령(赦免令)을 내려 한겨레 한 동포로 품어서야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김래성 선생님이 쓴 이 청춘극장에서 과거의 잘못을 모두 품어 안도록 섰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승만대통령께서 반민족특위를 해체한 것을 비난하는 인간들을 저는 오히려 시대의 아픔을 모르는 반민족 악질분자라고 생각합니다. 제 부모님은 무식해서 천대를 받으면서도 억울한 줄을 모르고, 친일도 빨갱이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더 분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저씨 제가 취했나 봅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한바탕 횡설수설을 멈췄다.
아저씨는 때 아니게 섭이의 분노에 찬 항변을 듣느라 술이 확 깨버렸다.
“자네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 맞아! 그래 이야기를 계속 해봐라. 자네 말을 들으면서 내 평생 처음으로 스승을 만난 것 같다. 오늘 해가 저물고 또 밤을 새우더라도 자네와 같이 마음을 열어놓고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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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단숨에 끝까지 읽었습니다.
섭이야말로 진정한 소설가네요.
다음 편이 몹시 기대됩니다.
이 글은 어릴 때 폐결핵으로 죽은 친구 섭(가명)에게 들은 이야기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