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08 -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화재로 전소
국보 제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10일 밤 화재로 무너졌다.
불은 저녁 8시50분께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숭례문 2층 누각 천장에서 시작해 2층 지붕을 모두 태웠다. 이날 화재는 출동한 소방 당국이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서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화재 초반 소방 당국이 물을 계속 뿌리며 진압에 나서 불길이 잡히는 듯했다. 하지만 이날 밤 자정께 불길이 2층 지붕의 기왓장 사이를 뚫고 나오며 순식간에 2층 누각이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소방당국은 문화재청의 자문을 거쳐 불길이 처음 일어난 2층 누각 지붕의 기와 일부를 뜯어내려고 했으나 이미 많은 물이 뿌려진 기와 지붕이 붕괴될 위험이 높아 포기했다. 소방당국은 산소 질식제를 투입하며 진화에 나섰으나 이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가 커진 이유로 초동 화재 진압의 실패와 함께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거나 목재 방염 처리를 하지 않은 등 평소 안전 관리의 문제점을 꼽았다.
현장에 있던 문화재 전문가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모습같아 가슴이 아프다. 숭례문은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조각상 등 조선 초기 모습도 많이 갖추고 있었는데 모두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찰은 불이 나기 직전 한 남자가 숭례문 안으로 들어갔다는 신고를 받았고, 불이 처음 일어난 숭례문 2층 누각에는 전기 시설이 없는 점으로 미뤄 방화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택시기사 이상권(45)씨는 “숭례문 맞은 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 한 남자가 숭례문 가운데 홍예(무지개형으로 뚫린 곳)로 들어가는 걸 봤다”며 “얼마 뒤 2층 누각 가운데 부분에서 불꽃이 일었다”고 말했다. 이 남자는 불이 난 뒤 남산 방향으로 달아났다고 이씨는 전했다.
경찰은 숭례문 근처 남대문 시장에서 방화 용의자와 인상 착의가 비슷한 이아무개(55)씨를 붙잡아 조사를 벌였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해 귀가시켰다.
이날 숭례문 화재 현장에는 불을 끄기 위해 소방차 28대와 소방대원 133명, 경찰 50여명이 출동했다.
숭례문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7년(1398)에 완성됐고 현재의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이다.
최현준 기자 symbio@hani.co.kr 한겨레 2008-02-11 02:54:57
2008.2.12 - 경찰 '남대문 방화용의자, 범행 자백'
‘남대문’으로도 불리우는 한국 숭례문의 방화 용의자가 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숭례문 방화사건 합동수사본부는 12일 용의자인 70세의 채 모 씨가 개발자로부터 받은 보상금이 적은데 불만을 품고 숭례문에 불을 냈다고 밝혔습니다.
채 씨는 하루전인 11일 강화도에서 경찰에 체포된 후 범행 내용을 자백했습니다.
한국의 국보1호인 숭례문은 6백년된 목조건물이며 지난 10일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2층 누각이 전소됐습니다. 당시 인근을 지나던 택시기사가 불이 나기 직전에 한 남자가 남대문에 올라가는 것을 봤다고 제보했었습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채 씨는 2006년에도 서울 창경궁에 불을 놓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voanews 02/12/2008
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8-02/2008-02-12-voa18.cfm
- Election of V.Putin as President
2007 -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미국의 일극적 세계질서’를 강력하게 비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 작심한듯, 탈냉전 이후 ‘미국의 일극적 세계질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신냉전 선언’을 방불케 하는 고강도의 대미 비판연설이다. 다음날 연설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냉전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과 러시아, 이란 정상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정책회의에서 “국제회의이기에 논쟁적 발언을 하겠다”고 말문을 연 뒤 32분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을 조목조목 비난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단상 앞줄에 앉은 소련 연구자 출신의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서방 쪽 참석자들은 매우 놀라는 모습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지배하는 단극체제는 권력과 힘, 의사결정의 중심이 하나이고, 지배자와 주권도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내부로부터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의 군사행동을 두고 “일국적”, “불법적”이란 말을 쓰면서 “전세계 전쟁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느 나라도 국제법 뒤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없으므로 어느 나라도 더는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며 “이로 말미암아 군비경쟁이 촉진되고 핵무기를 가지려는 생각이 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 확장은 동맹 현대화나 유럽 안보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상호 신뢰를 잠식하는 심각한 요인”이라고 말해 러시아의 불만을 드러냈다. 또 미국은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가르치려 하면서 스스로는 민주주의를 배우려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공박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이 반대하지만 이란에 무기 판매를 계속할 것이며, 세르비아가 반대하는 코소보의 독립을 저지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은 ‘옛소련의 영광 재현’을 목표로 삼은 자신의 정책이 완결단계에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로 보인다. 또 그가 후견인이 될 ‘포스트 푸틴 러시아’가 녹록지 않은 상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어 연설에 나선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러시아는 신뢰할 만하고 예측 가능한 상대라는 느낌을 받아왔다. 서로 솔직하게 대화할 필요가 있고, 문제를 카펫 밑으로 쓸어넣을 필요는 없다”며 푸틴 대통령의 대립적 정세관을 넌지시 비판했다.
11일 연설에 나선 게이츠 장관은 “냉전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에너지 자원을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 쓰려는 시도 등, 러시아의 일부 정책들은 국제사회 안정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반박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한겨레 2007-02-11
(정식발행우표가 아닙니다.)
2007 - 오바마, 2008년 대선 공식 출마 선언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도전하는 바락 오바마(45) 상원의원이 10일(현지시각) 2008년 대선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오바마 상원의원은 이날 오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흑인 노예해방을 선언했던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옛 주의회 청사 광장에서 1만여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의 냉소주의와 부패, 편협한 정치의 종말”을 고하고 “세대교체의 기수”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링컨이 가졌던 공통의 희망과 꿈이 여전히 살아 있는 옛 청사 앞에서 출마를 선언하는 이유는 보다 희망찬 미국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연설 곳곳에서 링컨 대통령을 언급했듯이, 스프링필드의 옛 청사를 공식 출마 선언 장소로 택한 것은 매우 상징이다. 이곳은 중서부 촌뜨기라고 비판받던 링컨이 1858년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 있지 못한다”는 역사적 연설을 했던 곳이다. 또한 링컨이 1860년 이 곳에서 대통령선거본부를 꾸려 ‘변화의 약속’을 내걸고 워싱턴에 도전했던 장소이고, 1865년 암살된 뒤 묻힌 곳이다.
그러나 케냐 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를 둔 그는 자신이 흑인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고, ‘모든 인종의 미국’이 하나임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출마선언은 출사표라기보다 “세대교체 운동 선언”이라고 평했다. 그는 베이비붐 이후 세대로서 다른 대선주자들과의 차별을 시도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얕다는 지적에 대해 “워싱턴 방식을 배울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것은 알지만, 워싱턴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 만큼의 시간은 워싱턴에 있었다”고 반격했다.
그는 △전국적인 의료보험 확대 △외국 석유 의존 축소 △미국경제의 경쟁력 확보 △미국의 안보 및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전지구적 동맹 구축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또 이라크전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한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드러내며 당내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의 차이를 부각했다. 그는 “이라크인들에게 우리가 영원히 주둔하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는 게 수니파와 시아파간 협상을 압박할 수 있는 최후의, 최선의 방책”이라며 내년 3월까지 철군을 주장했다.
오바마 의원은 앞으로 현재 민주당의 선두주자인 클린턴 의원과 본격 세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11, 12일 클린턴 의원이 이번 주말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이오와·뉴햄프셔주를 전략적으로 방문해 맞대결 의지를 부각시킬 예정이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한겨레 2007-02-11
1999 - YWCA 이끈 여성계 원로 손인실(孫寅實) 여사 별세
손인실 [孫寅實, 1917~1999.2.10]
대한적십자사 부회장과 대한 YWCA연합회 회장을 지낸 손인실 여사가 1999년 2월 10일 지병으로 미국 뉴욕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였다. 손여사는 평생을 여성 운동과 시민 운동에 헌신한 여성계 원로다. 1935년 이화여전에 입학하면서 인연을 맺은 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에 평생 봉사해온 그는 이사와 실행위원, 연합회 회장, 명예 연합위원까지 지냈다.
학생 시절 스케이트 선수로도 이름날린 그는 훤칠한 인물과 활달한 성격에,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합리적 일처리로 해방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여성 운동 일선에서 존경받아왔다.
1917년 기독교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해 그곳서 자랐다. 정동제일교회 담임 손정도 목사가 아버지. 대한 YWCA 활동 외에도 재건 국민운동본부 중앙 부녀국장(63∼64), 범여성 가족법 개정촉진위원회 부회장(73∼78) 소비자보호단체 협의회 회장(80∼82)을 지내며 시민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조선
- Malcolm X
1992 - 소설 `뿌리`와 `말콤X`의 저자 헤일리(Haley, Alex) 사망
헤일리 [Haley, Alex Palmer, 1921?.8.11~1992.2.10]
소설 `뿌리`와 `말콤X`의 저자 알렉스 헤일리(70)가 1992년 2월 10일 급환으로 미국 시애틀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좇아 서부아프리카 감비아의 한 마을에 대한 사실을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를 토대로 소설 `뿌리`를 완성, 197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나중에 12시간짜리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방영됐는데 당시로는 미국 텔레비전 사상 최대기록인 1백30만명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선조들의 일상생활을 섬세한 정서와 풍부한 표현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흑인뿐 아니라 모든 인종들에게 뿌리찾기의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됐다.
1921년 8월 11일 뉴욕주 이타카에서 출생한 헤일리는 서부 테네시의 헤닝시에서 성장했다. 성장과정에서 그는 외조모 등 인척들이 전해주는 자신의 조상이야기를 듣고 나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20여년 간의 군복무를 마친 후 1959년부터 잡지사 투고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흑인 과격단체의 비판에도 불구, 그의 유려하고 섬세한 필치는 미 흑인문학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선
1987 - 미국 공중위생국 장관, 에이즈 확산 막기 위해 콘돔 TV광고 승인
1982 -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경로우대제 실시
경로우대제 [敬老優待制]
보건복지부가 사회복지시책의 일환으로 노인의 복지를 증진하고자 실시한 고령자에 대한 우대제도. 종래에는 70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1982년부터 65세로 낮추어 실시하고 있다. 노인복지법에 의하면 국가나 자치단체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국가나 자치단체의 운송시설·기타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된 요금으로 이용하게 할 수 있으며, 노인의 일상생활에 관련되는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게는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한 할인우대를 하도록 권유할 수 있고, 그와 같은 할인우대를 행하는 사업자에게는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할인우대를 적용한 사업의 종류와 할인율은 보건사회부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 후 공고하는데, 현재 시행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공립공원·고궁·능원·국공립박물관·전철·지하철 등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철도운임(통일호까지)은 50% 할인된다. 경로우대를 받고자 하는 65세 이상의 노인은 관할 읍·면·동장에게 경로우대증 발급을 신청하면 된다. /naver
1977 - 박정희 대통령 임시행정수도 건설구상 발표
1977년 2월10일,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 “통일이 될 때까지 임시행정수도를 이전·건설하는 문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서울 시민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착잡함이 교차했다. 교통난 해소를 반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유사시 정부가 서울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적의 지상포화 사정거리 안에 수도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 전국토의 0.63% 면적에 남한 인구의 20%(725만명)가 집중된 인구과밀이 행정수도 이전의 이유였다.
서울에서 고속도로·전철로 1시간~1시간 반에 닿을 수 있는 지점이 후보지 요건이었다. 후보지로 거명된 지역에서 투기 조짐이 일고 언론도 연일 관련기사를 쏟아내자 박 대통령은 3월7일 “10년 혹은 그 이상 걸릴 것” “서두르지 않겠다”며 분위기를 식혔다. 한편으로는 차분하게 수도이전을 준비해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마련, 국회에 제출(6월20일)했고 후보지도 내정했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충남 연기군 장기면이 후보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경 10km 부지에 인구 50만명 규모 도시가 당시의 계획. 설계도면·조감도·5층짜리 종합청사 모형까지 완성된 상태였으나 박 대통령 서거로 유야무야됐다. 1981년 새 정부가 임시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발표, 수도 이전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조선
1977 - 스페인 국왕 교황 방문
1977년 오늘,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 1938~ ) 스페인 국왕 부부가 로마 교황청을 방문했다.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 1897~1978)가 스페인 국왕부부를 반갑게 맞이했다.
스페인 국왕이 교황을 방문한 것은 40년 만의 일이다.
교황은 카를로스 국왕 부부와 스페인의 평화와 민주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YTN
1966 -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
KIST, 즉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1966년 오늘 발족한다.
미국의 재정적, 기술적인 도움을 받아 설립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초대 소장으로 원자력학자인 최형섭 박사를 임명했다.
KIST는 1981년 과학원과 함께 한국과학기술원 KAIST로 통합됐다가 198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으로 독립한다. /YTN
연혁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발족(1966. 2. 4)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재단법인 설립(1966. 2. 10)
미국 바텔기념연구소와 기술교류협정 체결(1966. 6. 10)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기공(1966. 10. 6)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준공(1969. 10. 23)
- 소양댐 사진, 관광인 (춘천 허선구 님 자료제공)
1965 - 춘천댐 완공
1965년 오늘, 강원도 춘천 서북쪽 북한강 상류에 춘천댐이 완공됐다.
1961년 9월 착공해 완공하기까지 3년 5개월이 걸렸다.
춘천댐은 높이 40m, 길이 450m에 12개의 수문을 갖춘 콘크리트 댐이다.
춘천댐은 수력발전과 홍수예방 등에 크게 기여했다. /YTN
- Rudolf Abel, 1903~1971
1962 - 소련 영공에서 격추당한 미국 U-2기 조종사 개리 파워스와 소련 거물 스파이 루돌프 아벨, 베를린 그리니케다리에서 맞교환
동서의 대립이 핵전쟁의 문턱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1962년 2월 10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잇는 ‘글리니케’ (Glienicke Bridge) 다리에서는 냉전의 어두움을 상징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미국과 소련이 각기 구금하고 있던 스파이들을 교환하는 일이었죠. 미국이 내놓은 인물은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다 FBI에 검거된 KGB 대령 ‘루돌프 아벨’이었고, 소련 측의 맞교환 상대는 CIA 정찰기 조종사 ‘프란시스 게리 파워즈’였습니다.
http://blog.ohmynews.com/gompd/147996
美정찰기 U-2 피격 격추 사건(1960.5.1)
소련 상공을 침범한 미국 정찰기 ‘U2기’가 1960년 5월 1일 오전 7시30분경, 소련 우랄산맥 상공 2만m에서 격추됐다. 소련 총리 흐루시초프가 오전 5시에 U2기의 영공침입을 보고 받고 격추를 지시한 뒤였다.
소련은 그동안 U2기의 영공침범에 대해 수차례 항의했지만 미국은 1956년 7월 이후 줄곧 소련 전역을 정찰하고서도 이 사실을 부인해 왔다. 소련은 내심 분통을 터뜨렸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데다 아직 요격기나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해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다.
U2기는 최대상승고도 2만7400m에 속도는 마하 0.7의 제원을 갖고 있는, 록히드사가 극비리에 개발한 첨단 첩보기였다. 목표지 상공에서는 제트엔진을 정지시켜 소리를 내지 않고도 정찰비행이 가능하고, 광선 반사를 막기 위해 기체 전체를 검은색으로 뒤덮어 ‘검은 스파이기’라고도 불렸다. 이날 격추된 U2기는 파키스탄의 페샤와르를 발진해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어 소련 영토를 가로지른 후 노르웨이에 기착할 예정이었다. 조종사 게리 파워스는 기체가 피격되면 기체를 파괴해야 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자살용 독약도 사용하지 않고 체포돼 결국 미 CIA의 정찰기라는 사실을 자백하고 말았다. 미국은 이 사실도 모른 채 기상관측기가 실종됐다고 둘러대다가 흐루시초프가 증거를 들이대자 그제서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10년형을 선고받은 조종사는 1962년 2월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과 독일 그리니케 다리에서 교환됐다. /조선
1961 - 가나 인공항구 테마(Tema)항 개항
1961년 오늘, 아프리카 중서부 가나의 '테마(Tema)항' 개항식이 열렸다.
8년 동안 천만 톤의 암석을 쏟아 부어 만든 근대식 외항이다.
가나의 초대대통령 은크루마는 테마항이 가나의 큰 자랑거리라고 치하했다.
테마항은 5km의 방파제와 12개의 부두, 유조선 전용부두가 있으며 14,000t급 선박의 입항이 가능하다.
인근에 있는 수도 아크라의 공업지대와 고속도로로 연결돼 있다. /YTN
1948 - 김구, '3천만 동포에 읍소한다'는 남한 단정 수립 반대 성명 발표
남한에서의 김구 선생은 1948년 2월10일 『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란 성명서를 통해 『마음속의 38선을 무너뜨리고 자주독립의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호소하였다. 분단된 상태의 건국보다는 통일을 우선시 한다, 하여 5 •10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거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1948년4월19일 남북 협상 차 평양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에 의해 민족 통일 정부수립의 좌절을 안고 1948년5월5일 서울로 돌아 왔다.
서울로 돌아 온 김구 선생은 건국 실천원 양성소의 일에 주력하면서 구국 통일의 일군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서울과 평양에 남•북한 단독 정부가 수립된 이후 민족 분단의 비애를 딛고 민족 통일 운동을 재야에서 전개해 나갔다.
[박달재]자유북한방송 /Google
1939 - 로마교황 비오 11세(Pius XI) 사망
비오 11세 [Pius XI, 1857.5.31~1939.2.10]
1870년의 이탈리아 왕국의 로마 병합 이후 교황청과 이탈리아 왕국은 대립을 계속해 오고 있었는데, 비오 11세는 1929년 2월 무솔리니 정권과의 사이에 라테란협정을 체결하여 오랜 세월의 분쟁을 해결, 이에 따라 바티칸시국(市國)의 확립을 보았다. 그는 가톨릭의 해외 포교에 힘쓰는 한편, 공산주의와 소련을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naver
- 한글학회 창립 50돌 기념
1927 - 조선어 연구회가 기관지 <한글>을 창간하다
[한글] - 1927년 2월에 창간된 한글학회(옛 조선어연구회)의 기관지.
주로 국어학에 관한 연구를 게재하고 있는 기관지로, 주시경(周時經)의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고 국어의 학문적 이론의 연구와 한글 보급을 위하여 1927년 2월 10일에 창간호를 동인지 형식으로 낸 것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편집 겸 발행인은 신명균(申明均)이며, 편집동인은 권덕규·김윤경·이병기·이윤재·정열모·최현배 등이었다.
1928년 10월 통권 제9호로 일단 정간하였다가 1931년 1월 조선어연구회를 조선어학회로 개칭하면서 학술 기관지의 필요성을 느껴 1932년 5월 1일 다시 창간호로 출판한 이후 월간 또는 계간으로 내게 되었다.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번번히 휴간되다가 8·15광복 후인 1946년 4월 속간되었다. 6·25전쟁으로 다시 중단되었다가 1954년 4월 속간되어 현재 계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2000년 겨울호로 통권 250호를 맞고 있다.
구하기 힘든 오래된 한글(1927.2~1949.7)을 영인하여 엮은 합본 형식의 책이 제16권으로 묶여져 나왔다. /naver
1923 -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Röntgen, Wilhelm C.) 사망
뢴트겐 [Röntgen, Wilhelm Conrad, 1845.3.27~1923.2.10]
X선을 발견한 W. C. 뢴트겐이 1923년 2월 10일 71세의 나이로 뮌헨에서 사망했다.
뢴트겐은 1869년 취리히공과대학 졸업 후 A.쿤트의 조수가 되어 1872년 그를 따라 뷔르츠부르크대학으로 옮겼다가 1874년 슈트라스부르크대학 강사, 1875년 호켄하임농과대학 수학 ·물리학 교수, 1876년 슈트라스부르크대학 초청교수, 1879년 기센대학 물리학 교수 ·물리연구소 소장을 냈으며, 1888년 뷔르츠부르크대학 물리학 교수로 돌아왔다가 1900년 뮌헨대학 교수가 됐다.
뢴트겐은 1895년 바바리아에 있는 브르소브루크대학에 있을 당시 음극선관에서 방출되는 새로운 방사선을 발견했다. 그는 이 방사선의 성질을 잘 몰랐고 X는 수학적으로 미지의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므로 그것을 X선으로 명명했다. 사람 손의 뼈를 보여주는 첫번째 X선 사진은 몇주 후 찍혀졌으며, 뢴트겐의 발견은 급속도로 의학에 이용되어서 질병을 진단하고 몸속의 물질들을 탐지했다. 1901년 그의 업적을 기리며 첫번째 노벨물리학상이 그에게 수여됐다. /조선
1912 - 영국의 외과의사 리스터(Lister, Joseph) 사망
리스터 [Lister, Joseph, 1827.4.5~1912.2.10]
에식스주(州) 업턴 출생. 무균수술의 창시자이다. 1852년 런던대학을 졸업하고, 1853년 에든버러대학 외과학교수 J.사임의 조수가 되어, 염증 ·괴사 ·혈액응고에 관한 연구를 하고, 1860년 글래스고대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외과적 질환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화농 문제에 대하여 파스퇴르의 발효 ·부패에 관한 세균감염설을 토대로 연구를 진행시켜 1865년 페놀에 의한 무균수술법을 고안하였다. 이듬해 이의 실제적인 응용에도 성공하여 외과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1897년 의사로서는 최초로 남작(男爵)이 되었다. /naver
1910 - 벨기에의 도미니크회 수도사 피르(Pire, Dominique) 출생
피르 [Pire, Dominique (Georges), 1910.2.10~1969.1.30]
벨기에 다낭에서 출생하였다. 1937∼1947년 라사르트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빈민구제활동에 종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저항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전후에는 난민구호사업에 투신, 1949년부터 구호기관을 각지에 설립하고 '우애의 대화'를 통한 적극적 평화의 실현에 노력하였다. 1960년 벨기에의 호이에 청년교육을 위한 마하트마 간디 국제청년 평화센터(후의 평화대학)를 창립하였으며, 1962년부터는 파키스탄·인도 등지에서 국제적 공동체 계획인 '평화의 섬'을 실현시켰다. 유럽의 난민구제에 진력한 공로로 1958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naver
|
첫댓글 우표로서 얻는것이 넘 많은것같습니다.
귀한 정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자료가 앞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한 교본이 될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장의 우표로 그 우표가 뜻하는 공부를 해 볼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