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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26강
이 달은 부처님 오신 달이고 또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좋은 일이 아주 여러 가지 겹친 달입니다. 스승은 제가 스승이 아니라 석가모니부처님이 스승입니다. 각자 좋아하는 성인이 다 다르죠. 지장보살을 좋아 하는 이들이 있고 어떤 선지식, 살아있는 스님을 좋아하는 그런 불자도 계시고 또 관세음보살이다 뭐 아미타불이다 해서 불교 안에서 여러 성인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예불문(禮佛文)을 보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是我本師 釋迦牟尼佛]하는 그런 구절이 있습니다. 수많은 불교 안에서 우리가 스승을 경전이나 설법을 통해서 또는 이런저런 인연을 통해서 만난다고 하더라도 근본이 되는 스승. 본사(本師)! 근본이 되는 스승은 석가모니불이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잊어서는 안돼요. 관세음보살이고 지장보살이고 아무리 마음에 들고 좋더라도 다 그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우리가 소개받은 그런 부처님입니다.
오늘 마침 공부하는데 문수보살이다. 보현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이다. 하는 구절도 뒤편에 나옵니다만 불교는 뭐니뭐니해도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해서 출발을 했고 그런 까닭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와 그분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에 너무 끄달리다 보니까 또 그분을 잊어버리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머지않아 초파일도 다가오고 하는데 이런 때 일수록 불교에서는 수많은 스승이 계시지만 그래도 근본이 되는 스승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하는
그 근본을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되지요. 그 은혜를 생각하고 또 보답하고 하는 그런 문제를 석가모니 부처님과 우리가 연관시켜서 해야 되지 않겠나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공부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부처님 은혜에 제일 잘 보답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35쪽 13-9 할 차례입니다.
13-9 인생이 무상함을 알라
道流야 儞莫認著箇夢幻伴子하라遲晩中間에 便歸無常하나니
도류 이막인착개몽환반자 지만중간 편귀무상
儞向此世界中하야 覓箇什麽物作解脫고覓取一口飯喫하고
이향차세계중 멱개십마물작해탈 멱취일구반긱
補毳過時하야 且要訪尋知識이요 莫因循逐樂하라
보취과시 차요방심지식 막인순축낙
光陰可惜이니 念念無常하야 麤則被地水火風이요
광음가석 염념무상 추즉피지수화풍
細則被生住異滅四相所逼이니라
세즉피생주이멸사상소핍
道流야 今時에 且要識取四種無相境하야
도류 금시 차요식취사종무상경
免被境擺撲이어다
면피경파박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은 이 꿈 같고 허깨비 같은 몸뚱이를 잘못 알지 말라. 머지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곧 덧없음[無常,죽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들은 이 세계 속에서 무엇을 찾아 해탈을 하겠느냐? 그저 밥 한술 찾아먹고 누더기를 꿰매며 시간을 보내는 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지식을 찾아 참문(參問)하는 일이다. 그럭저럭 즐거운 일이나 쫓아 지내지 말라. 시간을 아껴라. 순간순간 덧없이 흘러가서 크게 보면 지.수.화.풍이 흩어지는 것이고, 미세하게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네 가지 변화에 쫒기고 있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지수화풍과 생주이멸의 형상 없는 경계를 잘 알아서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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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야
도류
도 닦는 벗들이여 또는 수행자들이여. 선지식들에 따라서 즐겨 부르는 말이 각각 다릅니다. 육조스님은 아주 특이하게 선지식아! 그래요. 모든 청중들을 통칭해서 그야말로 선지식이여.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지식아! 그것도 정신이 번쩍 나는 호칭이죠. 우리를 보고 아무 청중이나 다 듣는 사람을 모두 선지식아! 이렇게 부르니까 그 말 한마디에 졸리던 정신이 바짝 깨어날 수도 있는 그런 호칭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도류야! 하는 것도 이 법회의 청중에는 늘 말씀드리지만 출가한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출발이 재가한 부주왕상시라고하는 그런 거사의 청을 받아서 이 법회가 마련이 되었고 또 그로 인해서 큰 교화를 펼 수 있었던 임제스님이기 때문에 여기 도류야! 하는 말속에는 불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 불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 수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죠. 이 모든 이들을 함께 다 지칭하는 그런 말입니다.
儞莫認著箇夢幻伴子하라
이막인착개몽환반자
그대들은 이(儞), 그대들은. 막인착(莫認著), 잘못알지 말라. 오인하지 말라. 하는 그런 뜻인데 무엇을 오인해서는 안 되는가? 몽환반자(夢幻伴子), 꿈과 같고 환과 같은 이런 몸뚱이. 우리 육신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 허망한 몸뚱이가 영원할 것처럼 그렇게 오인하지 말라.
遲晩中間에 便歸無常하나니
지만중간 편귀무상
머뭇머뭇하는 그 사이에 이 몸뚱이라고 하는 것은 편귀무상(便歸無常)하나니, 여기서 무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죽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곧 죽음으로 돌아간다. 어물어물하다보면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지만중간(遲晩中間)에 편귀무상便歸無常)이라. 그렇죠.
지나온 세월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참 꽃다운 나이! 학창시절이 엊그제 같지만 벌써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게 오랜 세월이 아니라 구요.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곧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그런 나이가 된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그렇게 된 거예요. 지만중간(遲晩中間)에 그야말로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곧 죽음에 돌아오게 되나니.
儞向此世界中하야
이향차세계중
그대는 이 세계중(世界中)을 향해서 이 세계중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육신의 무상한 현실을 향해서. 그 말입니다. 이러한 세계! 이러한 상황 을 향해서
覓箇什麽物作解脫고
멱개십마물작해탈
무엇을 찾아서. 어떤 물건을 우리가 찾아야 해탈을 이룰 것인가? 이 허망한 몸뚱이 여기에서 도대체 뭘? 얼굴을 붙들고 ‘나’ 라고 해야 이게 해탈이 될 런지? 아니면 하도 귀가 좋은 말을 많이 들어와서 귀가 보배니까 그럼 귀를 붙들고 해탈을 구해야 할지? 좋은 말 많이 했다고 혀를 붙들고 해탈을 삼아야 할지? 뭐 발을 통해서 절에 열심히 쫓아 다녔으니까 그 발이 고마워서 그 발이 해탈이 될 런지?
도대체 무얼 가지고 우리가 정말 해탈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는 불교에서는 인생이 무상하다. 세월이 빠르다.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은 이 임제스님께서도 자주 이런 법문을 하십니다. 관심이라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깨달음에 대한 관심! 깨달음에 대한 어떤 관심이라고 하는 것은 그 출발이 세상사. 인생사. 이 육신.
이 모든 것들은 다 허망하고 꿈과 같고 환과 같은 그런 존재라고 하는 그런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거든요. 세상사. 인생사가 그냥 좋고 허망하지도 않고 영원할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은 이 불법 또는 종교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팔난(八難)! 불법 만나기 어려운 8가지 조건에서 재울단월난(在鬱單越難), 사람들이 불법 만나기 어렵다.
다시 말해서 재울단월난(在鬱單越難)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불법을 좋아할 그럴 겨를이 없다. 이것입니다. 워낙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모든 것이 풍요롭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가운데서 다시 말하면 발심을 하여 깨달음의 길을 찾으면 더욱 수승한 사람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풍요로운 집안에서 태어나서 호의호식하면 종교적으로 또는 불교적인 깨달음을 향해서 마음을 잘 쓰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울수록 도에 대한 마음을 더 낸다는 이야기도 있죠. 대개 우리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覓取一口飯喫하고補毳過時하야
멱취일구반긱 보취과시
우리가 살려고 한입 밥이나 찾아먹고. 누더기를 꿰매며 세월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밥 먹고 등 따뜻하면 그만 인생 다 됐다. 이렇게 보는 거야. 쉽게 말하자면 그런 뜻입니다. 밥 먹고 등 따뜻하다는 말을 글로 쓰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멱취일구반긱(覓取一口飯喫)보취과시(補毳過時), 한 입 밥을 찾아먹고 등 따뜻하게 하려면 어떻게? 누더기를 기우면서 세월을 시간을 보내도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아주 심하게 꾸짖는 표현입니다. 이 얼마나 심하게 꾸짖는 소리입니까?
且要訪尋知識이요 莫因循逐樂하라
차요방심지식 막인순축낙
선지식을 찾아가서 제대로 공부를 해야지. 인순(因循), 그럭저럭 대충대충 그냥 즐거움이나 쫓아다니지 말라.
光陰可惜이니
광음가석
시간을 가히 아껴야한다. 시간같이 소중한 것이 없다 이겁니다. 선지식을 찾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말 많이 듣고 그래서 인순축낙(因循逐樂), 그럭저럭하면서 즐거움을 쫓아다니지 말라. 그래서 시간을 함부로 허비해서야 되겠는가? 인생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무상한데. 지만중간(遲晩中間)에 편귀무상便歸無常)이라고 그랬죠? 머뭇머뭇하는 사이에 그만 곧 죽음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念念無常하야
염념무상
순간 순간 무상하다. 이 말입니다. 순간 순간 무상하다는 말이 뭔 말인 고 하니 우리가 10년을 잘라서 이렇게 과거를 생각해보면 10년 전하고 지금하고 현격하게 뭔가 차이가 드러나죠? 근 20년을 또 잘라서보면 더 두드러지는 거야. 너무나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느끼겠죠? 어린시절 생각하고 지금하고 견주어보면 이건 너무 환하게 드러나죠.
그렇지만 사실은 매일 매일. 일년 일년. 한달 한달. 아니 한 시간 한 시간. 분! 매 분. 아니 초! 초 보다도 더 짧은 시간이 염념(念念)입니다. 1초! 1초라고 합시다. 쉽게 마음에 와 닿게 1초 1초가 변해가고 있는 것 입니다. 염념무상이라고 하는 말이 1초 1초가 변해가고 있는 거야. 그래서 그걸 크게 보면
麤則被地水火風이요
추즉피지수화풍
추즉(麤則), 크게 보면 지. 수. 화. 풍을 입게 되는 것이고 지. 수. 화. 풍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죽어서 우리의 몸뚱이는 지. 수. 화. 풍 4대로 돌아간다. 미세하게 그야말로 세밀하게 염념무상의 입장에서 보면 나중에 죽어서 우리 몸뚱이가 사대로 돌아가는 것은 그것은 크게 보는 것이고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細則被生住異滅四相所逼이니라
세즉피생주이멸사상소핍
생. 주. 이. 멸(生. 住. 異. 滅) 이 네 가지 모습이 핍박해 오고 있다. 순간 순간으로 핍박해 오는 것을 입게 된다. 아주 미세하게 보면 그러니까 한 순간 한 순간. 1초 1초. 변해가고 있는 거야. 태어나서 머물러있고 달라지고 소멸해가는 것. 1초 1초 달라지는 거야. 뭐 수술해가지고 어떻게 하고 뭘 바르고 댕기고 해 봤자 근본적으로 이게 변해가도록 되어있어. 그러니까 겉으로 임시 땜발림 식으로 조금 좋게 보일뿐이지.
근본적으로 한번 태어난 이상 이것은 변해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주 절대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죠. 며칠 전에 TV를 보는데 어떤 건강하다는 노인이 노익장이라면서 나왔어요. 70. 80이 되어도 건강하다고 그렇게 건강하다고 막 취재를 해서 내 보이는 거야. 그런데 그 늙은 모습은 어떻게 할 길이 없는 거야. 보기가 안 됐더라고. 내가 보기에는...
내가 보기에는 안 되어 보이는 거야. 건강해서 활동은 잘하는데 그 늙은 모습은 어떻게 피할 길이 없어. 그와 같이 순간 순간 그렇게 변해간다고. 태권도가 뭐 100단 200단 되어도 어쩔 수 없는 거야. 하하하하하~ 핍박하는 것을 입게 된다. 생. 주. 이. 멸(生. 住. 異. 滅)! 자꾸 변천해 가고 순간 순간 변천 해. 변해가고 있는 거야.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늙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피할 길이 없다 구요. 이것은...
내가 범어사에 오던 날 가만히 보니까 매화 몇 송이가 필락말락하더라 구요. 그런데 벌써 다 떨어지고 매실이 토실토실하게 영글어가지고 곧 딸 때가 되었거든. 잎이 그냥 무성하여 여름이 되어 버리고. 불과 얼마 안 되더라고. 아파가지고 집에 가만히 있으니까 하루하루 변해가는 것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어서 그것도 큰 소득이라. 그게 생주이멸의 소핍(所逼)이라. 이건 생. 주. 이. 멸(生. 住. 異. 滅)이고.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피할 수가 없다.
道流야 今時에 且要識取四種無相境하야
도류 금시 차요식취사종무상경
도류들이여! 지금 중요한 것은 사종무상경(四種無相境)을 식취(識取)하라. 이 취(取)자를 잘 쓰죠. 아주 강한 표현인데. 그냥 알아라. 식(識)자 하나만 쓰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너희 것으로 간직을 하라. 이런 뜻입니다. 마음속 깊이 간직하라. 식취(識取)야! 취할 취(取)자. 알아서 취하라 이겁니다. 네 가지 무상한 경계! 이것을 알아서
免被境擺撲이어다
면피경파박
경계의 파박(擺撲) 입음을 면하라. 그랬어요. 이것은 무상한 네 가지 경계인데 이 경계는 말하자면 내 자신을 끌고 가는 거죠. 팔려서 끌려 다니는 그런 뜻이라. 파박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거기에 팔려서 끌려 다닌다. 팔리면 끌려 다녀야죠. 종이 되었던지. 뭐 소가 되었던지. 개가 되었던지 간에
그와 같이 소가 팔려가지고 새로운 주인에게 끌려가는 모습처럼 우리가 어떤 경계에 끌려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 수. 화. 풍이 계속 변모해가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그런 어떤 상황에 마치 소가 팔려서 끌려가듯이 그렇게 끌려가고 있는 사실에서 좀 변하도록 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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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 사종(四種)의 무상경(無相境)
問, 如何是四種無相境고 師云, 儞一念心疑가
문 여하시사종무상경 사운 이일념심의
被地來礙하며 儞一念心愛가被水來溺하며
피지래애 이일념심애 피수래익
儞一念心瞋이 被火來燒하며 儞一念心喜가
이일념심진 피하내소 이일념심희
被風來飄하나니 若能如是辨得하면 不被境轉하고 處處用境이라
피풍래표 약능여시변득 불피경전 처처용경
東涌西沒하며 南涌北沒하고 中涌邊沒하며 邊涌中沒하야
동용서몰 남용북몰 중용변몰 변용중몰
履水如地하며 履地如水하니라 緣何如此오
이수여지 이수여지 연하여차
爲達四大如夢如幻故니라
위달사대여몽여환고
“무엇이 네 가지 형상이 없는 경계입니까?”
“그대들의 한 생각 의심하는 마음이 흙이 되어 가로 막으며, 한 생각 애착하는 마음이 물이 되어 빠지게 하며, 한 생각 성내는 마음이 불이 되어 타게 하며, 한 생각 기뻐하는 마음이 바람이 되어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알아낼 수 있다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가는 곳마다 경계를 활용 할 것이다. 동쪽에서 나타났다가 서쪽으로 사라지고, 남쪽에서 나타났다가 북쪽에서 사라지고, 가운데서 나타났다가 가장자리에서 사라지고, 가장자리에서 나타났다가 가운데서 사라진다. 땅을 밟듯 물을 밟고, 물을 밟듯 땅을 밟는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사대육신(四大肉身)은 꿈과 같고 허깨비 같은 줄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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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 如何是四種無相境고
문 여하시사종무상경
그러면 사종무상경(四種無相境)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종경계는 지. 수. 화. 풍인데 그게 무상(無相), 모양이 없는 경계다. 라고 했을 때는 여기 설명이 또 있어요. 말하자면 사종에 끌려도 그것을 초월한 경계! 지. 수. 화. 풍으로 되어있는 이 몸뚱이가 변모해 간다고 하는 것.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것을 초월한 길! 이것을 무상경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인데 그것이 불교에서 제시하는 것. 다시 말해서 임제스님께서 제시하는 그런 어떤 길이 되겠죠. 무엇을 가지고 사종무상경이라고 하는가?
師云, 儞一念心疑가
사운 이일념심의
요컨대 그대들의 마음속에 (번뇌. 망상) 이것은 번뇌 망상의 대표적인 네 가지로 여기서 이야기를 하는데. 의심하는 것. 대개 보면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다섯 가지 큰 번뇌를 이야기할 때 보면 의(疑)가 들어있어요. 의심이 들어있어.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가 탐. 진. 치이고 거기서 두개를 더하면 남을 업신여기는 것과 의심하는 것. 이것이 다섯 가지.
거기에다가 다섯 가지를 더하면 또 열 가지. 그 다음에 거기서 108번뇌. 더 크게 나누어 이야기하면 팔만사천번뇌 이렇게 하는데 여기서는 특별히 지. 수. 화. 풍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거기에 맞추어서 네 가지 번뇌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의심하는 것. 이것을 뭐라고 하는가?
被地來礙하며
피지래애
지. 수. 화. 풍. 우리 몸을 형성하고 있는 땅의 요소. 흙의 요소. 흙의 요소의 장애가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 다음에 또 우리 마음의 번뇌 중에
儞一念心愛가
이일념심애
사랑하는 것과 애착하는 것. 큰 것이 또 한 가지 있어요. 오늘도 아주 내려오는데 계절이 너무 좋은 거야. 계절의 왕같이 참으로 화창한 날씨다. 이것도 화창하고 좋다고. 계절 좋고 날씨 좋다고 하는 것. 이것도 애(愛)야. 결국은... 우리는 온갖 것에 애착을 갖죠.
모처럼 비 오면 또 비 오는 것이 좋다고 애착하고 그러한 자연현상을 우리가 애착하는 것은 또 그것은 별것 아닌 거야. 그 보다 더 명예가 되었던지. 재산이 되었던지. 사람이 되었던지. 자식. 친척. 가족이 되었던지 간에 하여튼 뭘 좋아하던지 간에 내가 임제록이 좋으면 임제록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든 간에 이것 역시 애착이라고.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 몸의 물의 성분이라.
被水來溺하며
피수래익
물이 빠뜨리는 것을 입게 되는 것이다. 물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게 임제스님은 특별히 이런 것은 다른 경전이나 교리에는 없는 이야기예요. 임제스님이 이렇게 배대를 해 본 것이라. 임제스님께서 말씀하고 싶은 큰 번뇌죠.
儞一念心瞋이 被火來燒하며
이일념심진 피하내소
이건 아주 큰 번뇌죠. 탐(貪). 진(瞋). 치(痴) 할 때 삼독 중에도 해당되는 거죠. 貪은 愛에 해당될 수가 있어요. 탐애(貪愛) 라고 하는 말이 있으니까. 일념심진(一念心瞋) 피하내소(被火來燒)! 이것은 불의 태워버림을 입는 것이다. 분노는 불에 비유를 합니다. 불과 연관시켜서 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분노는 불길로 대개 이야기를 합니다.
분노를 한번내면 공덕의 숲을 태워버린다. 그러니까 진심을 한번내면 그것은 불의 태워버림에 해당되는 것이다. 불이 와서 태워버림을 입는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 몸의 지. 수. 화. 풍(地. 水. 火. 風)! 화(火)의 성질. 저기서는 지(地)의 성질. 수(水)의 성질. 이런 것들을 의(疑). 애(愛)하고 의심하는 것과 애착하는 것. 진심(瞋心)과 화(火), 불의 배대도 멋지고. 또 물(水)과 애(愛)의 배대. 이것도 관음경에도 이런 표현이 있는데 이것도 아주 멋진 배대예요. 그리고 땅하고 흙하고 의심하는 것. 그것도 의심하면 장애가 되잖아요. 역시 좋은 배대고 여기에 풍과 기쁨을 배대하는 것은 아주 이것은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듭니다.
儞一念心喜가 被風來飄하나니
이일념심희 피풍래표
그대들! 기쁨에 들떠있으면 막 날아갈 듯 하는 거죠. 나부낀다. 바람의 나부낌을 입는다 그래요. 기분이 좋으면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던지 간에 기분이 좋으면 그냥 자기 입장과 처지도 잊어버리고 까불어 대는 거죠. 말하자면 들떠가지고. 이일념심희(儞一念心喜) 피풍래표(被風來飄) 하나니, 그와 같이 의심하는 것. 애착하는 것. 기뻐하는 것. 이것이 큰 번뇌로서 우리들 자신을 뒤 흔든다는 것입니다. 지. 수. 화. 풍으로 이루어져있는 우리들의 자신을 뒤흔든다.
若能如是辨得하면 不被境轉하고 處處用境이라
약능여시변득 불피경전 처처용경
만약에 능히 이와 같이 분별해서 알 수 있다면. 우리 몸을 이렇게 분별해서 안다면. 네 가지 경계의 군림을 입지 아니하고.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어디를 가든지 간에 경계로서 사용을 해! 용경(用境)과 경전용경, 이건 반대말 이예요. 경계의 군림을 당한다. 그 다음에 용경은 말하자면 능동이죠. 저기는 피동이라면. 여기는 능동이 되는 거라. 경계를 내가 써야 되는 거죠. 그리고
東涌西沒하며 南涌北沒하고
동용서몰 남용북몰
동용서몰(東涌西沒), 동쪽에서 솟고 서쪽에서 빠져. 이것은 자유자재한 어떤 경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무애자재한 대자유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남용북몰(南涌北沒), 남쪽에서 솟고 북족에서 빠져. 이런 표현은 화엄경에서 어떤 신통변화에 대한 이야기 또는 무애자재한 이야기를 할 때 이런 표현을 하는데 삼매에서 이런 것을 한다는 표현도 있지요. 남쪽에서 솟고 북쪽에서 빠지고.
中涌邊沒하며 邊涌中沒하야
중용변몰 변용중몰
중용변몰(中涌邊沒), 가운데서 솟고 가장자리에서 빠지고. 변용중몰(邊涌中沒), 변두리에서 솟고 중간에서 빠져서.
履水如地하며 履地如水하니라
이수여지 이지여수
이수여지(履水如地), 물 밟기를 맨땅 밟듯이 하는 것입니다. 물을 땅위에서 걸어가듯이. 이지여수(履地如水), 땅을 밟는 것을 물 밟듯이 한다.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들을 물속 들어가듯이 땅속으로 쑤욱 그냥 들어가서 다닐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화엄경에서 [육종 18병] 대해탈의 어떤 경계를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는데
솔직하게 우리가 의심하는 번뇌. 애착하는 번뇌. 진심을 내는 번뇌. 기쁨에 들떠서 날뛰는 그런 번뇌. 이런 것만 우리가 다 초월해서 거기에 걸림이 없다면 대자유인이며 이와 같이 여기서 표현한 동용서몰. 남용불몰. 중용변몰. 변용중몰하는 어떤 자유자재한 마음의 경계를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경전의 표현 방법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자유인이 된다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걸리는 것이 무엇 때문에 걸립니까? 대개 애착 때문에 걸리는 거예요. 애착 때문에 거의가 걸리고 또 의심하는 그런 번뇌도 보통번뇌가 아니야. 의심하는 번뇌 때문에 거기에 또 걸리고. 화나가지고 원수 갚고 보복하고 하는 그런 것이 그게 전부 분노나 진심이거든요.
거기에 걸린 사람은 평생 원수 갚는데다가 그만 자기 생애를 다 바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한번 걸려 놓으면 애착 못지않게 보통 사람을 구속하는 게 아닙니다. 구속하는 문제가 보통이 아니라 구요. 역사서적 같은데서 보면 대개 원수 갚는 것. 진심 때문에 원수 갚는 일. 이것이 역사를 변형시키고 자기의 삶의 어떤 목적을 원수 갚는데 두는 그런 이야기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거기에 구애 받아가지고서 그것 밖에 옴짝달삭을 못하는 거예요. 그 밖의 어떤 인생사는 생각할 수가 없게 되는 거라. 그렇게 되면 그 인생 도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역사적인 소설을 보면 대개 그런 것을 가지고 물론 실제도 있는 일들도 많죠. 특히 정치적인 보복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그 문제입니다. 이건 사람이 산다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자유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疑).애(愛). 진(瞋). 희(喜) 이 네 가지 번뇌(큰 번뇌)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거기에 걸림이 없다면 대 자유인이 된다.
緣何如此오 爲達四大如夢如幻故니라
연하여차 위달사대여몽여환고
무엇을 인연해서 이와 같은가? 어째서 그런가? 사대(육신).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이 육신. 대개 이것을 ‘나’ 라고 하니까 거의 99%의 사람들이 이것을 ‘나’ 라고 하니까 이것 때문에 살고 있는 모든 그 삶을 꿈과 같고 환과 같다. 라고 생각한 그러한 꿈과 같고 환과 같은 것을 통달했기 때문이리라. 사대가 꿈과 같고 환과 같음을 통달했기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서 인생무상을 철저히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오온개공(五蘊皆空)! 우리가 반야심경에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그 말 있죠? 오온(五蘊)이 다 공(空)해! 그 공(空) 한줄 제대로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아무 문제가 없다. 일체고액(一切苦厄)! 어떤 문제도 해결한다.
첫댓글 _()()()_
爲達四大如夢如幻故라...地. 水. 火. 風 四大가 꿈과 같고 환과 같음을 통달했기 때문이리라..
한 생각에서 일어난 팔만사천 번뇌가 헛것이듯이 그 번뇌에 의해서 생긴 지.수.화.풍과 삼라만상도 꿈과 같고 허깨비 같은 줄 통달하였기 때문이라..^^
감사 합니다._()()()_
且要訪尋知識 이요 莫因循逐樂 하라 光陰 을 可惜 이니 念念無常 하야 추즉被地水火風 이요 오직 선지식을 찾아 뵙도록 해야지 괘락이나 좃아 그럭저럭 지내서는 않된다 촌음을 시간, 아께야 하니 생각생각덧 없시 흘러가 거칠게는, 지,수,화,풍,이요 사대,에 미세하게는 생주이멸 四相에 조여들게 되나니라,,一輪月님,,,수고하셧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若能如是辨得하면 不被境轉하고 處處用境이라... 만약에 능히 이와 같이 우리 몸을 분별해서 안다면, 네 가지 경계의 굴림을 입지 아니하고 어디를 가든지 간에 경계로서 사용을 할 수가 있다....一輪月 님! 감사드립니다... _()()()_
고맙습니다._()()()_
일륜월님 고맙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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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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