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세자 죽음의 비밀 | |
몇년전에 어떤 도굴범이 사도세자의 무덤을 파보았습니다. 그래도 왕의 아들이니 뭔가 귀중품이 있으려니 해서였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도세자의 무덤 속에서 발견된 것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고 바로 천부경과 옥추경만 발견되었습니다. 천부경이란 삼일신고, 참전계경과 함께 한민족의 3대 경전이라 불리는 민족의 가르침 중의 하나입니다. 천부경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예화가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에 박종흥 교수라는 분이 계셨더랍니다. 그 분이 어느 날 전주에서 강의할 때, 부끄러운 자기고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대의 철학과 교수라고 어깨에 힘주고 프랑스에 간 적이 있었답니다. 세계적인 철학자인 하이데거가 이 분을 초대했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하이데거가 신발도 신지 않고 마중나오며, 지나칠 정도로 예우를 갖추면서 정중한 인사가 끝난 뒤, 하이데거가 하는 말인 즉 "당신을 초청한 이유는 당신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유명해진 철학사상은 바로 동양의 무(無) 사상인데, 동양학을 공부하던 중, 아시아의 위대한 문명의 발상지는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역사상 가장 완전무결한 평화적인 정치를 2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동안 아시아 대륙을 통치한 단군시대가 있었음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동양사상의 종주국인 한국인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나도 無사상을 동양에서 배웠으며, 그 한 줄기를 이용해 이렇게 유명해졌지만, 아직 당신들의 국조 한배검님의 천부경은 이해를 못 하겠으니 설명을 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천부경을 펼쳐 놓더랍니다. 한국의 유명한 서울대 철학과 교수이니 당연히 한국의 천부경 찰학을 잘 알고 있으려니 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박종홍 교수가 천부경의 말만 들었지, 천부경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망신만 잔득 당한채, 얼이 빠져서 돌아왔답니다. 그래도 그 분은 양심적인 학자입니다. 창피한 개인적인 망신담을 강의에서 솔직히 밝혔으니까요. 하이데거처럼 세계적인 석학도 인정하는 사상이 바로 천부경입니다. 천부경을 연구하면 필연적으로 우리 민족 뿌리의 정신과 역사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도세자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이유는 바로 그 천부경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은 그 옛날 한인, 한웅, 단군 시대에 우리 동이족이 우수한 문화를 중국의 漢족들에게 전해주었고, 거기서 중국문명이 태동되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많은 역사서들을 금서(禁書)로 지정하고 읽는 것을 막았습니다. 어느 시대나 금서가 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한민족의 근원을 밝히는 모든 서적들이 읽어서는 않된다고 지정된 금서(禁書)였습니다. 천부경과 옥추경은 모두 신선도의 경전인 동시에 한민족의 근원을 밝히는 책들입니다. 결국 사도세자는 금서로 지정되어 있던 천부경을 공부하고, 비밀리에 민족전통의 신선도 수련을 했던 것입니다. 사도세자는 바로 이 민족 본래의 정신을 찾고자 하는 다물정신으로 금서를 읽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건국초기부터 이미 지나족 명나라의 눈치를 보던 정신적 속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이름도 명나라 황제의 낙점으로 결정되었고, 새 임금이 등극하거나 세자. 중전의 임명 등도 명나라에 보고를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 당시에 존재하였던 고조선秘史, 천부경, 대변설, 도징기, 삼성밀기, 옥추경, 조대기, ,지공기, 통천록, 표훈천사, 한단고기, 신지비사, 등 동이족의 역사와 사상을 기록하고 있는 책들은 중국에 의해 이씨조선의 금서(禁書)로 지정되어 마음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때 명나라의 정신적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조선에는 명의 첩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음 번 왕이 될 세자가 금서를 읽었다고 고해 바친 것이에요. 금서는 나라에서 금지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때 이미 조선은 명나라의 영향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나라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의해 금서를 읽은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보이지 않은 룰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조선 사람들이 금서들을 읽게 되면, 그래서 민족의 참 역사와 원리를 알게되면, 더 이상 명나라에 복종하지 않게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이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영원히 지배하기 위해서는 조선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위태로우면 군대를 파견해 지켜주기도 하지만(임진왜란때의 파병), 마지막 하나는 절대로 허용 안하는 것이 있지요. 다시 말해 빵문제, 옷문제는 해결해 줍니다. 그러나 민족의 정신을 찾는 것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정신을 기록한 모든 서적을 읽지 못하도록 바로 금서(禁書)라는 묵시적인 법이였습니다. 그렇게 이 민족의 정신을 찾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제해왔어요. 예나 지금이나 이것은 약소국을 지배하는 강대국의 기본정서입니다. 사도세자는 바로 천부경이라는 금서를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것입니다. 영조임금은 명나라의 보복이 두려워, 그리고 나름대로는 왕실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세자인 아들을 그렇게 처형한 것이다. 한 나라의 세자도 금서를 읽으면 이렇게 된다는 하나의 본보기로 ..... 그렇게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지켜오고 계승되어 온것이 바로 천부경입니다.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금서를 한번 읽었다고 곧바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위험하니까 읽지 말라, 읽지 말라고 경고를 했는데도 한번, 두번, 세번을 계속 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그 秘傳의 천부경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왕세자의 자리도 마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감수하면서 천부경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도세자는 과연 우리가 T.V. 사극드라마을 통해 아는대로 미친 사람정도로 받아들일까요? 마땅히 민족의 경전, 민족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것으로 새롭게 재평가 되어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도 조선조 말, 기독교 정신을 지키다가 처형당한 사람들을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그 정신을 기립니다. 하물며 우리 민족 고유의 신선도사상의 뿌리인, 민족의 경전 천부경을 읽고, 그 정신을 지키려다가 처참하게 처형된 사도세자를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미친 사람, 불운한 세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렇게 억울하게 불명예스럽게 돌아가신 사도세자는 마땅히 복권되어야 합니다. 우리역사는 신선도문화와 민족정신은 외래세력에 의해 그렇게 탄압받았고 상실되어저 온 역사입니다. 사도세자의 경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 입니다.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금서를 읽고 민족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목숨을 걸어야 했어요. 이러한 민족정신에 대한 박해는 일제시대가 시작되면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선도의 전통은 그리고 한민족의 정신은 한민족의 가슴속에서 차츰 사라져간 것 입니다. 우리민족 고유의 신선도정신과 문화를 계승하고 이땅에 부활해야 될 사명이 이제 그 분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있다고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