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오늘 교중미사 중에 세례식이 있어서
서른 일곱명이나 되는 많은 새로운 형제,자매님들이
우리와 같은 주님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우선 그 분들의 세례를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축하하며
이 분들의 오늘,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위해
그 자리에 설 수 있게까지 불러주신 주님과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기꺼이 "예!"하고 응답하여 따르신 새 교우들과
그 분들의 교육을 위해 온갖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신부님과 수녀님,
선교분과의 분과장님과 봉사자 여러분들에게도 마음으로부터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영세를 받으신 분들 중에 제 대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래서 그 대자와 오늘 대부가 된 저의 얘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
대자와의 첫 만남이 아래의 글을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저로서는 무지 부끄럽고,아주 얼굴 화끈거리는 얘기라서
사실은 무덤 속까지 비밀로 간직하려던 얘기입니다만
오늘 세례식 후의 몇몇이 모인 뒷풀이 자리에서
'더 이상은 침묵하고 있을 수 없는,아주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였기에
본당 교우분들께 고해하는 심정으로 이실직고(以實直告)를 하고자 하며
그 상황이란 것에 대해서는 추후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대자와의 첫 대면을 한 그 사건(?)의 발생 일시 및 장소 등이 한참 전의 일이라
정확한 당시의 정황을 기억하지 못 할 것 같아서
그 당시,제가 빈번히 글을 올렸던 인터넷 성가방송국의
성가신청란에 올렸던 걸 다시 퍼다 밑에 옮깁니다.
제목:마땅하고 옳은,그러나 무지 부끄러운...(2007.2.10.)
일이 하나 있어서,성가방 여러 형제,자매님들께 삼가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불과 두어시간 전의 일인데,책상에 있는 컴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하길래
컴을 제대로 볼 것 같은 가브리엘형제님을 찾아갔습니다.
형제님이 제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 잉크충전방을 하거든요.
헌데 출장을 나갔는지,사무실 문이 잠겨 있어서
전화번호만 적어 그냥 돌아오려고 차를 뒤로 빼는데
순간,쿵~하는 큰 소리가 나더라구요.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원래 차라고 하는 게 살짝만 부딪혀도
무지 큰 소리가 납니다
아차! 싶어서 얼른 내려봤더니,
아뿔사~제 차 뒤에 멀쩡히 서 있던 차를 그만 들이받았지 뭡니까?
세상에나.그것도 아주 비싼 체어맨 신형에,
아직 비닐커버도 벗기지 않은 새 차를 말입니다.
순간,저는 갈등했습니다.
왜긴요? 우선 주변을 휘~둘러보니,
다행히(?)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주변 전봇대나 신호등 어디에도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냥 뺑소니를 칠까,아니면 차 주인을 찾아서 이 얘기를 해야하나 ...
잠시 망설이던 저는
부끄럽게도 차를 돌려 휭하니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그게 웬만한 차라면 수리비가 얼마 안 나올 것 같아
그런 갈등을 하고,말고 할 겨를이 없었겠지만
하필 그 차는 국산차 중에서 제일 비싼 축에 드는 거였고
앞에서도 얘기한대로 아주 새 차였거든요.
"그래,먹고 살만한 놈일테니,알아서 고쳐 타고 다니겠지" 싶더라는 거지요.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도망을 쳤으니까(이게 범죄자의 일반적인 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될 수 있으면 사건현장에서 멀리 벗어나야겠다 싶어서
한 10여분을 달려,가장동의 어느 낮으막한 야산 기슭에까지 한숨에 달려가
차에서 내려,차 뒷꽁무니를 보니 제 차는 끄떡이 없더라구요
- 원래 '단순무식한' 저는 그 때 검은색의 코란도 찝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그 차의 뒤에다가 달고다니던 스페어타이어 부분과 충돌을 했기 때문에
제 차에는 거의 보일듯 말듯한 흔적만 있더라는 거지요.
헌데'죄 짓고는 못 산다'더니,그 말이 딱 맞더라구요.
가뿐 숨을 몰아쉬며,앉은 자리에서 줄 담배를 몇대씩이나 연거푸 피워물어도,
가슴은 마구 떨리고 오금까지 저리며 양 다리가 후둘거리는데,
당췌 진정이 안 되더라구요.
얼굴을 울그락 불그락, 있는대로 화를 내가며
갖은 욕설로 제게 저주를 퍼붓고 있을 낯 모를 차주(車主)도 떠오르고
제 눈에는 안 띄었지만,혹시 현장 근처를 지나던 목격자라도 있어서
저나 제 차를 기억한다면.그건 또 어쩌나 싶은 겁니다.
-사실 제 '몽타쥬'가 좀 특이하지 않습니까? 나이에 걸맞지 않는 허연 머리등.
아님,그 현장에 제 눈에 안 띈 CCTV라도 설치되어 있어서
나중에라도 저의 범행전모가 백일하에 탄로난다면,
그건 또 무슨 망신이냐 하는 생각등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아무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이 작은 머릿 속에서
어쩜 그리도 많은 생각이 나던지요?
허나 고백하건대,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떠오르는 분이 계셨으니
(이런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하지만...)
그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아! 세상 사람은 다 몰라도 그 분만은 이걸 다 내려다보고 계실텐데...."하는 생각이 드니까,
머리털이 쭈뼛서며,무더운 여름 날 우물가에서 등목을 할 때처럼 등골까지 서늘해지는데
아무튼 그 자리에 그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는 더 이상 못 있겠다싶지 뭡니까?
게다가 마침 그 때,제 차 뒷유리에 늘 달고다니는 십자가가 그려진
빨간색의 천주교엠블럼까지 눈에 띄니,엄청 부끄러워지더라는 겁니다.
"당장 내일이 주일(主日)인데,무슨 낯으로 성당엘 가며
제대 위에 높이 걸린 십자가와 예수님,그리고 성모님은 어떻게 뵈나?"하는 생각과
혹시 나중에라도 들통이 나서,그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흉악무도한(?) 범인이
성당마크까지 떠억하니 차에 달고 다니며
선량한 이웃들한테 "같이 성당 나가실래요?"하고 입교권면을 하던 놈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 뒷감당을 어쩌란 말입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연달아 피우던 담배를 얼른 구둣발로 짓밟아 끄고는 차에 올랐습니다.
가서,받힌 차주에게 정중히 사과를 하고 그래도 보험은 들었으니까
그걸로 처리를 해주어야겠다고 말이지요.
보험료야 좀 오르겠지만,"암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싶었던 겁니다.
헌데,그 와중에도 재미있는 게 하나 있었으니
차를 돌려서 오는,그 경황 없는 중에도 피식~하고 웃음이 터지더라는 겁니다.글쎄...
왠지 아십니까?
이런 말 있쟎습니까?"범인은 반드시 범행현장에 다시온다"는 말과
"이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다"는 말,
그 말이 하필이면 그 때,그 절박한 순간에 떠오를 건 뭡니까?나,참!!
-아무래도 '수사반장'이나 '도망자'등, 범죄물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봅니다.
부끄럽지만,이왕에 고백을 하는 거니까 아주 다 까발리겠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또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미 20여분이나 지났는데,그 차가 아직 거기에 없으면 어떡하지?
에이,그렇다면 뭐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그래도 뒤늦게나마 이렇게 회개하고,차를 고쳐주려고 갔으니
내 할 바는 어느 정도 한 거 아냐?"
'
'제발 그랬으면 ~'까지는 절대 아니지만,
은근히 그랬으면, 즉 그 차가 범행현장에서 이미 떠나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했습니다.
*지금 막,성가방송에서 61번,"주 예수와 바꿀 수 없네"가 나오는데
제가 저지른 게 있어서 그런지,다른 때 듣는 것과 느낌이 다릅니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현장에 도착하니 다행스럽게도
그 차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더라구요.
트렁크 윗부분이 움푹 찌그러진 흉한 몰골로 말입니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수소문해서 차주인을 찾았더니
저보다는 몇살 아래로 뵈는 부동산 사장님이었는데
그때까지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구요.
순간, 괜히 왔나 싶기도 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 밖에요.
"제가 멀쩡하게 서 있는 사장님 차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도망을 쳤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이렇게 용서를 빈다.
보험으로 처리해 드리겠다"
그리고 아주 기어드는 목소리로
"제가 성당엘 나가는데,암만해도 이건 아닌 것 같더라.
평생을 이 편치않음 속에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다"
했더니,아주 뜻밖에 제 두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차 한 잔 잘 얻어마시고
보험회사에 연락해 깔끔한 뒷처리를 부탁하고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제목에서와 같이 "아주 마땅하고 옳은 일"을 한 건데도
지금도 역시 부끄럽고,앞으로도 두고두고 부끄러워 할 것 같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하소서!!"끝"
-여기까지가 그 때 제가 올린 글이고,
그 뺑소니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수년 뒤,법정(法廷)이 아닌,
대부와 대자가 되어,제대 앞에 나란히 서게 된
조금은 기막히기도 하고,놀라운 사연은 나중에 다시 올려보겠습니다.
서둘러 성당에 갈 일이 있어서....
첫댓글 안드레아 형제님의 용기의 감탄하였고 , 하느님의 자녀가 되신 레오 형제님은 주님께서 맺어주신 사랑의 끈인것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명하는 아버지와 아들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같아요
차안드레아 형제님 멋지네요! 하느님이 맺어주신 대자 대부 사이 아닌가요?
새롭게 태어난 대자 형제님 세례를 축하드리고, 대부 되시는 안드레아 형제님과 하느님 사랑을 또 다른 멋진 인연으로 전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섭리 이십니다 감사~~~
솔직한 글이 감동적임니다~~ 레오 형제님 세레를 축하드림니다~
안드레아 형제님의 용기, 저를 돌아보게 하네요. 억지로 낸 용기가 아닌 참 모습이라 더욱 아름답습니다. 주님이 형제님을 선교의 도구로 써 주셨군요. 명장 밑에 약졸 없듯이, 레오 형제님도 또한 충만한 영성생활 하실 줄로 믿습니다.
안드레아 형제님이 신앙생활을 하시지 않는분이라면 그렇게 진실된 용기가 났을까요 ~~~레오 형제님도 안드레아 형제님을 만나신것도 축복이겠지요 주님 은총 많이 받으실거에요~~~
정진상 요셉입니다 참교훈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이런 저런 일로 등업되어 처음 들어 왔습니다.
저 자신이 생각 해도 참 인연이란 묘 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위 댓글 다신 분들 말씀 처럼 주님의 섭리인지....
전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지 않았는데...제가 심적 부담을 많이 드렸나 봐요!
역시 사람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봐야 하는가 봅니다.
제가 아닌 3인칭 입장에서,한편의 수필을 보는듯 합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