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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뛰어 넘읍시다(시 18:1-3, 28-29)
현재 제 12회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휴가 기간 중에 경기 장면을 보았습니다. 여자 높이 뛰기 예선이었습니다. 훌쩍 훌쩍 크로스바를 뛰어넘는 선수들을 보면서 참 부러웠습니다.
훌쩍 잘 뛰어넘는 선수도 있고, 간신히 뛰어넘는 선수도 있고, 크로스바에 걸려 뛰어넘지 못하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어떠한가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별로 크지 않은 한반도가 155마일 휴전선의 철조망과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서, 이제 지구상에서 한국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남북을 갈라놓은 휴전선 장벽은 지정학적인 단절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적 단절을 지어왔습니다.
분단 6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북한의 언어를 새로 배워야할 만큼, 남과 북의 이질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분단의 벽을 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적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오전 북한 조문단과 이명박 대통령이 만났다고 합니다. 이런 남과 북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평화통일의 날이 속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장벽이 다 사라지기를 소원합니다.
남과 북의 장벽, 여야의 장벽, 이러한 장벽은 세상 어느 곳에도 있습니다.
보이는 담이 있는가하면 보이지 아니하는 담이 있습니다.
미국같이 잘 사는 나라에는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없을 거라 생각합니가? 그러나 거기에도 넘지 못할 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철조망과 콘크리트 장벽은 없어도, 저들에게도 엄청난 고민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담은 흑백의 담입니다. 인종문제의 높은 담이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이고, 마약, 범죄 자살, 청소년 문제 등이 부자의 나라 미국도 넘지 못하는 높은 담입니다.
미국만 그렇겠습니까? 문제 없는 개인, 가정, 나라는 없습니다. 늘 문제의 연속입니다.
넘어야 할 담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장애물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요셉에게도 담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담이 존재하고 있고, 우리의 후손들도 이 담 앞에서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시대에서 또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담이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담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 담을 뛰어 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담들을 훌쩍 뛰어 넘을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8:35절 말씀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 앞을 가로 막을 수 없습니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m 위험, 칼, 셀 수 없는 많은 담들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8:37절에서 당당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면서 계속 고백하기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했습니다.
그러한 담들을 넉넉히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은 파란 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조금 더 내려가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나옵니다. “원수”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다윗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시편 18편은 높고 낮은 무수한 담장들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뛰어 넘고 승리한 다윗이 하나님께 바치는 승리의 찬가입니다.
어떻게 그는 승리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어떻게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한번 따라해 볼까요? “담을 뛰어 넘읍시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담을 뛰어 넘는 축복이 하늘로부터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담을 뛰어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야 넉넉히 담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담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아멘.
다윗은 모든 원수와 대적을 무찌르고 승리하게 하신 날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고 고백했습니다.
한번 따라해 볼까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다윗이 평생 동안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수없이 넘나들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만이 절대능력이요, 하나님만이 승리의 주관자요,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쟁터에서 승리했습니다. 골리앗 장군과 대결할 때의 그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사무엘상 17:45절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시편 118:6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든든한 빽으로 삼았던 다윗은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항상 담대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담들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끝난 것입니다. 영적인 전투에서 항상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위로부터 내리는 힘을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91:9-11절을 보면,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45:19-20절에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높은 담이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담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는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성 거리에는 소경거지 바디메오가 있었습니다.(마 20:29).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38년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요 5:2)
예루살렘 성전 미문 앞에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행 3:2)
가다라 지방의 공동묘지에는 귀신들린 광인이 있었습니다.(마 8:28).
여리고성에는 영혼이 고통 받는 세리장 삭개오가 있었습니다.(눅 19:2)
저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인생의 담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돈으로도, 지식으로도, 열심히도 안 됩니다. 무엇으로 됩니까? 오직 믿음으로 됩니다.
나 홀로 높이 뛰기를 해보세요. 몇 미터나 뛰겠습니까?
그러나 긴 장대를 의지하면 높은 크로스바를 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장대! 예수라는 장대를 의지하여 높은 담을 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저들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담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1:11절에서는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고 했습니다.
힘들고 어렵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말 못할 걱정거리, 고민거리, 염려와 근심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맡기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 앞에 내려 놓으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불황의 담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절망과 좌절의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질병과 실패의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91:9-1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문제, 형편, 염려와 걱정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능력으로 높은 담을 넘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담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아멘.
오늘날의 전쟁은 미사일이 적진을 파괴하고, 비행기가 폭탄을 퍼붓고, 탱크를 앞세우고 보병이 올라가서 깃대를 꽂는 것이 전쟁의 양태입니다.
그래서 칼과 활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싸우던 시절의 전투의 양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전쟁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요새”입니다.
적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진을 잘 살필 수 있는 곳, 효과적으로 적을 공격하고 효과적으로 적을 방어할 수 있는 곳에 견고한 요새를 확보하는 것은 전쟁의 필수 조건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수많은 전투를 통해서 터득한 것은, 전투는 말의 수에 있는 것도 아니요, 군사의 수에 있는 것도 아니요, 땅에 있는 어떠한 견고한 진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야 말로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위험이 닥쳐 올 때마다. 하나님의 요새를 의지함으로서 수많은 싸움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내 앞을 막고 있는 담장을 하나, 하나 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높은 담이 우리를 가로 막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길 함과 피할 지혜를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은혜를 체험한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의 뿔”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가 승리합니다. 담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28-2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아멘.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그들을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대적들에 둘러싸여 소망의 빛이 보이지 않을 때, 다윗은 자신이 흑암 중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캄캄한 어둠 가운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앞서 행하사 그들을 다 물리쳐 주시고 어둠의 절망 가운데 소망의 빛을 비춰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둠을 광명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변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 교회가 무엇 하는 곳입니까?
여러분이 넘지 못하는 담을 넘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가난의 벽을 넘어 부유하게 해 주는 곳입니다.
질병의 담을 넘어 건강하게 해 주는 곳입니다.
분쟁의 담을 넘어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하게 해 주는 곳입니다.
죄인 된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가 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높은 담을 뛰어 넘는 복된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순간, 천구에 다 들어가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장애물들, 담들은 훈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 형편, 문제, 염려와 근심거리, 고민과 갈등, 분쟁과 다툼, 분단의 아픔, 그러한 모든 것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기 전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문제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 믿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넉넉히 뛰어넘을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담들을 넉넉히 뛰어넘음으로 늘 승리의 깃발을 꽂고 승리의 노래를 힘차게 부를 수 있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직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봅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합니다.
오직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살아갑니다.
내 힘과 의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 가운데 살기를 원하오니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