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로서 다시 한 번 등장을 하고 싶은 욕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등장 욕심이 과했던지 그 출발부터 꼬이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한동안 죽고 못 살듯 친밀감을 보였던 트럼프를 걸고 넘어졌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변죽만 울렸을 뿐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쉬움이나 서운함을 넘어 완전히 등을 돌리기로 작정을 한 말처럼 느껴진다.
왜 느닷없이 이 시점에서 이런 말을 했을까. 내달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에 성과를 내고 싶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임기가 별로 남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기 중 한미정상회담은 내달 회담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 마지막 회담에서 뭔가 남북한의 답답한 물꼬를 트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 대통령 소망과 달리 미국은 쿼드 체제로 한국이 들어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며,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입장에서 접근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주문은 어느 것 하나 문 대통령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다. 전자는 중국 눈치를 봐야하는 문제고, 후자는 북한 눈치를 봐야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이러한 눈치 보기가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의 결과물이 되어버렸다.
바이든의 북한 문제 접근은 트럼프와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의 톱다운 방식은 그 후속대책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수차례나 했었다. 그러니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고 본다.
북한 역시 미국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은 미국이 자기들에게 무장해제를 강요하는 것이라 의심한다. 한 때, 한반도 운전자는 한때 회담장까지 차를 잘 몰고 갔지만 승객들은 회담장에서 차에서 내리고는 다시는 차를 부르지 않았다.
특히 김정은은 그 후로 문 대통령에게 이용을 당했다고 느끼는 듯하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북한에 대한 봉쇄 문제는 아무런 진전이 없고 결국 자기의 권위에 심각한 손상만 남기는 꼴이 되자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 대해 태도를 바꿨다.
그 후로 개성공단의 우리 시설물을 폭파하고, 시시때때로 듣기에도 민망한 막말과 비난을 퍼부어댔다. 그런데도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이 정권은 한 마디 대꾸는커녕 북한의 요구대로 대북전단 관련법까지 만드는 성의를 보이며 몸을 낮추었다.
사실, 문 대통령과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때까지만 해도 서로를 추켜올리기 바빴던 사이였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추켜세우면, 트럼프는 “내 친구 문 대통령 중재력은 A+”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2019년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문 대통령이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과 강력한 지도력 덕분“이라고 추켜세우자 트럼프는 그 화답으로 ”매우 유능하고 역량이 있다‘는 칭찬을 쏟아냈다.
그런데도 북미정상회담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런 아쉬운 속내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비난으로 나타난 것이다. 칼을 뺏으면 뭐라도 잘라야하지 않겠느냐는 질책일 것이다.
판을 깔아줬는데도 그걸 못하느냐는 비아냥거림이거나 질책일 수도 있다. 결국 이번 문 대통령의 인터뷰에 비춰 보면 그 동안의 트럼프에 대한 귀가 간지러울 정도의 찬사는 회담을 위한 나름의 립 서비스였던 셈이다.
그러니 트럼프로서는 이용당한 느낌을 가졌을 수 있다면, 발끈하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는 문 대통령에 대해 ’지도자로서 협상가로서 약했다‘고 평가 절하했다. 어떻든 두 전·현직 대통령의 낯 뜨거운 공방은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 대통령은 다시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2018년 6.12 미·북 싱가포르 합의를 폐기하는 것은 실수”라며 “트럼프 정부가 거둔 성과의 토대 위에서 더욱 진전시켜 나간다면 그 결실을 바이든 정부가 거둘 수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합의는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 정권의 정책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어떻든 이쯤 되면 한반도 운전자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장기판의 훈수꾼인 듯하다.
이렇듯 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에 집착하는 것은 북미정상회담의 파급력 때문이다. 회담이 성사되면 한반도 문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국내 문제도 모두 블랙홀처럼 빨려들 것이다. 레임덕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이런 기대는 현재로선 환상에 가깝다. 바이든은 대통령이나 김정은이 선호하는 톱다운 방식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으로 언제든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했다. 서부의 총잡이들을 결코 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상황은 한미정상회담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직 고위 외교관이 “이번 인터뷰는 동맹국 전직 대통령은 불쾌해하고, 현지기 대통령도 달가워하지 하지 않는 명백한 외교 실책”이라고 한 평가는 정확해 보인다. 기왕 뱉은 말이기는 하지만 이 경우 생각나는 사극 명대사 한 도막. “당장 그 입 다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