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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별칭, 다양한 이름들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우는 지리산은 그에 담긴 애환만큼이나 별칭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정식 명칭이 지리산(智異山)이며, 그 밖에 지리산(地利山), 문수산(文殊山), 두류산(頭流山), 방장산(方丈山), 남악산(南岳山)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름 중에 대원사는 하필이면 방장산을 끌어다 붙여놓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이름들의 유래와 의미를 죄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만 알면 대원사 일주문에 걸린 방장산대원사(方丈山大源寺)라는 문패의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두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가장 먼저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부터 그 유래를 알아보겠습니다.
1. 지리산(智異山), 지리산(地利山), 문수산(文殊山)이라는 이름의 유래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리산(智異山)과 지리산(地利山), 문수산(文殊山)은 그 유래가 같고 의미 또한 같습니다. 지리산의 명칭유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리산의 서편자락 구례군 마산면에 있는 화엄사(華嚴寺)로 가 보아야 합니다.
화엄사는 서기 544년 (백제 성왕 22년) 인도에서 건너 온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절입니다. 대원사를 창건한 그 연기조사가 맞습니다. 연기조사는 인도의 승려였는데 일찍이 문수보살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비구니였던 어머니와 함께 화엄경(華嚴經)을 지니고 우리나라로 왔다고 합니다.
신라의 황룡사에서 최초로 화엄경을 설법한 연기조사는 어느 날 꿈 속에서 인자한 모습의 여인과 그 손을 잡고 따라온 동자를 만났는데 그 동자가 이르기를
“원래 스님께서는 제 앞에서 원(願)을 세우기를 널리 화엄의 가르침을 펴겠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새 인연처를 찾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난 연기스님은 동자의 말대로 화엄을 선양할 인연처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지리산까지 들어왔습니다.
지리산에서 홀연히 바라본 산의 봉우리가 마치 꿈 속에 보았던 여인의 모습과 같았기에 그 봉우리 아래 처음으로 연기암(緣起庵)을 세웠답니다.
연기암은 이후에 창건하는 화엄사, 연곡사, 귀신사, 대원사 등 지리산 자락에 화엄경을 펼칠 사찰을 건립하기 위한 원찰(願刹)이었습니다. 원찰이란 원래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목적으로 지은 사찰을 이르는 말인데 이후에 왕릉이나 다른 큰 사찰을 관리하기 위한 이를테면 교두보 같은 절을 말하게 됩니다.
연기조사는 본래부터 성모산(聖母山)이라 불리는 이 산이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임을 알고 화엄경을 설법할 인연처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산의 이름을 지리산(智利山)이라 하였는데 이는 문수보살의 정식 명칭인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舍利菩薩)에서 지(智)와 리(利)를 따 와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 후 연기스님은 직접 친견했던 지리산 문수보살을 원불로 삼아 널리 화엄일승지도를 폈으니, 그 아래 삼천제자가 있어 또한 가르침을 이어나감으로써 지리산은 화엄의 꽃을 활짝 피운 문수보살의 연화장세계를 이룬 것입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따라서 지리산에 머물면 어리석은 사람도 문수보살의 가피을 입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의미에서 다를 ‘이(異)’자를 써서 지리산(智異山)으로 이름이 변하였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부르는 지리산의 정식명칭입니다. 쓰기는 ‘이(異)’로 쓰고 읽기는 ‘리’로 발음합니다. 지리산 원래의 명칭이 지리산(智利山)이었기 때문인 것이지요.
이런 유사한 경우가 또 하나 있는데 양산에 있는 영축산 통도사의 문패입니다.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에 불보사찰(佛寶寺刹)이며, 국지대찰(國之大刹) 불지종가(佛之宗家)인 통도사 일주문에는 영취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 써 놓았는데요 그러나 쓰기는 영취산(靈鷲山)이라 하였지만 읽을 때에는 ‘영축산’이라 발음합니다. 따라서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가 정식 명칭입니다.
영취(靈鷲)란 신령스러운 독수리라는 뜻인데 이는 풍수명칭입니다. 취서산(鷲棲山)이라고도 불리는 양산에 있는 이 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한 마리의 독수리가 하강하는 형국입니다.
취서(鷲棲)란 독수리가 산다는 뜻이지만 실제로 독수리가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산의 형상 그 자체가 한 마리 독수리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영축산(靈鷲山)이나 취서산(鷲棲山)이나 모두 독수리를 뜻하는 같은 풍수용어인 것입니다.
통도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신라의 대국통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자장율사는 입당수도승으로 귀국한 다음 부처님의 법을 설할 장소를 찾던 중 영취산에 이르러 산의 형상이 인도의 영축산과 같음을 발견하고 이 곳에 통도사를 지었습니다.
영축산이란 인도의 마가다국 왕사성 동쪽에 있는 산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곳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여 유명해진 곳입니다. 그런데 이 산은 수행자와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축산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자장율사는 이 산에 절을 짓고 절의 이름을
“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차산지형 통어인도영취산형 이 산의 형국이 인도의 영축산과 통하는 형상이다.”
라고 하여 통도사(通度寺)라 하였습니다. 지이산(智異山)이라 쓰고 지리산으로 읽는 것이나 영취산(靈鷲山)이라 쓰고 영축산이라 읽는 것이나 모두 같은 맥락인 것이랍니다.
암튼 그리하여 지리산(智利山)이고 지리산(智異山)이며 또 한편으로는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산이기에 문수산(文殊山)이라고도 부르니 이는 모두 불교식 명칭이 됩니다.
지리산 화엄사의 문패는 문수보살의 상주설법처(常住說法處)이기에 지리산이요, 화엄경을 설한 곳이기에 화엄사라 하였습니다.
2. 두류산(頭流山)이라는 별칭의 유래 두류산의 두(頭)자는 백두산을 뜻하고 흐를 류(流)자는 정기의 흐름을 뜻합니다. 즉 백두산의 정기가 흘러내린 산이라는 뜻입니다. 이 용어도 풍수용어입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旅庵 申景濬:1712~1781)은 산경표(山經表)에서 우리나라 전체의 산맥을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으로 분류하였는데 이 중에 가장 큰 줄기이며 국토의 척추뼈에 해당하는 1대간이 바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연결되는 백두대간 산줄기입니다.
[여암 신경준이 정리한 산경표에 따른 우리나라 1대간 13정맥}
한반도의 형상을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로 표현한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 백두대간은 바로 호랑이의 등뼈에 해당한다.
이에서 생겨난 지리산의 또 다른 명칭이 두류산입니다.
지리산을 사랑하여 산청군 시천면에 산천재를 짓고 날마다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낸 남명은 지리산을 두류산으로 자주 칭하였는데 그가 지은 시조 중에 두류산(頭流山)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여기서 양단수(兩端水)란 산청군 삼장면과 시천면에 흐르는 시천(矢川)과 덕천(德川)을 말합니다. 둘 다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시천면에서 합류함으로써 덕천강을 이루기에 양단수라 한 것입니다.
남명은 또 시천에 자리잡은 뒤 이런 시도 씁니다.
題德山溪亭柱 덕산 개울의 정자 기둥에 적다
請看千石鍾/청간천석종/천 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非大扣無聲/비대구무성/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오 爭似頭流山/쟁사두류산/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남명은 왜 지리산(智異山)이라 하지 않고 두류산(頭流山)이라 자주 불렀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조선은 유교국가이고 숭유배불책을 쓴 왕조입니다. 하여 조선의 유학자들이 불교를 탄압하여 괴롭힌 흔적은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철저한 유학자였던 남명 또한 아마도 불교식의 지리산이라는 명칭 쓰기를 꺼리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3. 남악산(南岳山)이라는 별칭의 유래
삼국시대에 지리산은 백제의 영토에 속하였습니다. 고구려에는 백두산이 있고, 백제에는 지리산이라는 명산이 있었으나, 좁은 국토에 마땅한 명산마저 없었던 신라는 지리산을 매우 부러워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는 삼산(三山)과 오악(五岳)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이전에 존재하던 서라벌 주변의 오악(五岳)을 전 국토로 확대하여 새롭게 정하고 신성시 하여 크고 작은 제사를 이 곳에서 지내니 이것이 대사삼산(大祀三山) 중사오악(中祀五岳)이라 하는 신라의 삼산오악(三山五岳)입니다.
먼저 삼산(三山)이라 함은 경주의 낭산과 청도의 오례산, 영천의 금강산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신라 최고의 호국성신(護國聖神)인 큰 제사를 올렸기에 대사삼산(大祀三山)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신라오악(新羅五岳)은 중사오악(中祀五岳)이라 하여 다섯 산을 정하여 제사를 올렸는데, 동악(東岳)은 구름과 안개를 삼키고 토한다는 토함산(吐含山), 서악(西岳)은 계룡산(鷄龍山), 남악(南岳)은 화엄사가 있는 문수보살의 산인 지리산(智異山), 북악(北岳)은 태백산(太白山), 중악(中岳)은 갓바위 부처로 유명한 팔공산(八公山) 등입니다.
지리산 화엄사 경내에는 특이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남악사(南岳祠)입니다.
바로 지리산의 별칭인 남악산의 산신을 모시는 사당인데 안으로 들어가 위패를 살펴보니 지리산지신 신위(智異山之神 神位)라 적혀 있습니다. 바로 지리산의 산신을 모신 위패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남악산(南岳山)이라는 지리산 또 하나의 별칭은 신라에서 비롯된 이름인 것입니다.
4. 방장산(方丈山)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의 논제가 되는 방장산(方丈山)의 명칭 유래에 대해 알아볼 차례입니다.
앞서 방장산은 도교에서 비롯된 명칭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우선 불교와 도교의 차이점부터 살 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불교(佛敎)는 잘 아시다시피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온 외래종교인데 ‘부처불(佛)’자를 써서 불교라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근본목적은 한 마디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면 부처가 되고 모든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고 이는 수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도교는 무엇일까요. 도교는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써 한 마디로 신선이 되기 위한 종교입니다. 이 역시 수행을 통하여 신선이 되면 불로장생(不老長生)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세속을 떠나 산중에서 생활하며 홀로 청정한 상태를 유지해야 신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두 개의 종교 모두 내용이 너무도 방대하기에 이 쯤으로 갈음하고 분명한 것은 불교와 도교는 그 목적도 방식도 교리까지도 확연히 다른 종교라는 것입니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파되었을 때 중국에 만연해 있는 도교와 타협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불교는 쉽게 중국인에게 스며들 수 있었는데 여기서 불교에 도교적인 요소가 많이 스며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와 도교가 하나로 합쳐진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직도 도교는 도교로써의 그 정통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불교 또한 원래의 근본교리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는 협상을 잘 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토속신앙인 무속과 결합하고 칠성신앙과도 합의를 하였습니다. 절에서 지내는 천도제라던지 또 절집에 지어 놓은 산신각 또는 칠성각, 용왕각 등이 대표적이 실례입니다. 그렇다고 불교가 우리의 전통신앙에 흡수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전통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집 안에 설치된 칠성각은 우리나라 고유의 신앙인 칠성신을 모신 전각이다.
이 점에서 불교는 불교대로 도교는 도교대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주장입니다.
이 쯤하고 방장산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중국의 오랜 고전인 산해경(山海經)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신선이 사는 나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발해(渤海)의 동쪽 아주 먼 곳에 귀허(歸墟)라는 거대한 계곡이 있고, 이곳에는 높이와 둘레가 각각 수 만리나 되는 대여(岱與)ㆍ원교(員嶠)ㆍ방장(方丈, 또는 방호/方壺)ㆍ영주(瀛洲)ㆍ봉래(蓬萊)의 다섯 신산(神山)이 있다.
각 섬마다 높이와 주위가 3만리나 되었고 꼭대기의 평지가 9,000리였으며 섬과 섬 사이는 마치 이웃집처럼 보였지만 그 거리는 자그마치 7만리나 되었다.
이들 산 위의 9천리 평원에는 백옥으로 난간을 두른 황금의 궁전이 있고, 진주와 보석이 열리는 나무가 들어 찬 정원에는 새와 짐승들이 살고 있었다.
이곳은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서 나무 열매인 진주와 보석을 먹어서 장생불사하는데 등에는 조그마한 날개가 있어서 새처럼 하늘과 바다 위를 날아 친구를 찾아다니는 등 극락 같은 세상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걱정이 있다면 오직 하나, 이 신선의 나라가 바다에 둥둥 떠 있어서 바람이 세차게 불면 심하게 흔들리고 산들이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것이 불안하다는 점이었다.
신선들은 이 불편을 해소시켜 달라고 천제에게 호소했다. 이에 천제는 북해 해신(海神) 우강(禺强)에게 이를 고쳐주도록 명했다.
우강은 즉시 열 다섯 마리의 거대한 자라(巨鼇)를 귀허로 보내어 산 하나에 세 마리의 자라가 6만년에 한 번씩 교대하여 등에 지고 흔들리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들 자라들은 간혹 임무를 게을리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옛날처럼 산이 출렁거리는 일은 없어져서 신선들은 안심하고 생활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곤륜산 북쪽 수 만리 밖에 있는 용백국(龍伯國)이라는 거인국 사람 하나가 어느 날 동방의 바다로 낚시질을 하러 가서 낚시에 미끼를 끼워 바다에 던졌는데 그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굶주렸던 자라 여섯 마리가 그 거인의 낚시에 걸려 잡혀가고 말았다.
그래서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 대여산과 원교산은 그만 북극으로 떠내려가 침몰하게 되었고 그곳에 살던 신선들은 간신히 몸을 빠져나와 남은 다른 산으로 돌아왔지만 이로써 오신산(五神山)은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만 남은 삼신산(三神山)이 된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거인국 사람들은 천제로부터 벌을 받아 수 천리나 되던 키와 수 천만리에 이르던 그들의 국토가 각각 수 십배로 줄어들었으며, 그 다음부터 남은 자라들은 그들의 임무를 철저히 지키게 되었다.』
위의 이야기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 삼신사상(三神思想)입니다. 특히 삼신사상의 지리적 배경이 되는 해동국(海東國)인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삼신과 연관지어 생각한 것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의 이름을 삼신산으로 지어 놓았습니다. 금강산을 봉래산(蓬萊山),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 한라산을 영주산(瀛洲山)이라 한 것인데 이로써 우리나라의 국토 전체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의 나라가 된 셈입니다.
다음으로는 집을 지을 때에도 그 안에 삼신산을 꾸며 신선세계를 연출 해 놓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경복궁에 가면 경회루가 있습니다. 경회루는 조선 태종 12년에 최초로 축조하였는데 사신의 접대와 궁중연회의 장소로 사용하던 곳입니다.
경회루 연못에는 두 개의 만세산이라 불리는 섬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회루 건물 자체도 연못에 떠 있는 섬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연못 속에는 모두 세 개의 섬이 놓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을 뜻하는 삼신산이 됩니다.
경회루는 2층 누각에서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 주며 왕위를 이양한 슬픔을 간직한 장소이며, 연산군의 흥청망청이란 말이 생겨난 곳이기도 합니다.
채홍사(採紅使),채청사(採靑使)를 전국에 파견하여 예쁜 처녀들을 선발하여 관리하게 하였는데 이에 선발된 기생처녀들을 운평(運平)이라 하였습니다. 운평이 궁에 들어가게 되면 흥청(興靑)으로 신분상승이 되는데, 연산군은 경회루에서 오색천으로 장막을 치고 수천명의 흥청들과 날이면 날마다 잔치를 벌이며 노니 이를 두고 "흥청과 놀다가는 나라가 망하고 말지"라는 뜻의 말인 흥청망청(興靑亡靑)이 생겨난 것이라 합니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문화재 풍수 한 가지를 공부 해 보겠습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는 우리나라 양택 명당으로는 제일로 치는 문화류씨(文化 柳氏) 종택(宗宅)인 운조루(雲鳥樓)가 있습니다.구름 속을 날으는 새라는 뜻으로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구절에서 따와 이름지은 운조루의 대문 앞에는 조그만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안에는 섬이 하나 있습니다. 섬에는 나무가 한 그루 심겨져 있지요.
이런 조형물은 운조루 뿐만 아니라 내노라 하는 사대부 집이면 거의 모두가 갖추고 있는 조형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연못은 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고 안에 있는 섬은 둥글게 조성하였습니다. 이것을 방지원도(方池圓島)라 하는데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이라는 뜻입니다.
음양의 원리 중 하나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게 표현합니다. 여기서 땅이 모나다는 말은 ‘모 방(方)’자를 직역하여 마치 땅이 네모나게 생긴 것처럼 쓰이는데 그게 아니라 땅에는 동서남북 사방의 방위(方位)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네모나게 표현한 것 뿐이지요.
반대로 하늘이 둥글다는 것은 하늘에는 방위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늘은 양(陽)이고 땅은 음(陰)이므로 둥근 모양은 양을 뜻하고 네모난 모양은 음을 뜻하는 상징이 됩니다.
그러므로 방지원도(方池圓島)란 연못은 땅을 상징하여 네모난 모양으로 꾸미고 섬은 하늘을 뜻하여 둥글게 조성하니 이것의 의미는 땅 위에 하늘의 기운을 담아 이 집은 하늘의 기운이 내려앉은 복지의 땅이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바로 도교의 신선사상에 기인하여 이곳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의 집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씩 변형된 모습도 보게 되는데요. 강원도 강릉에 있는 선교장의 경우가 좀 특별한 예가 됩니다. 이는 네모난 연못에 네모난 섬을 조성하였습니다. 이것은 네모난 땅 속에 또 땅을 얹었으니 땅 중의 땅이요 복지 중에 복지라는 뜻으로 지상낙원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도교의 신선사상은 우리나라 문화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데, 대개 사대부의 집에는 연못 속에 섬을 상징적으로 한 개만 조성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뜻으로 오직 한 그루의 나무만을 심어 놓습니다.
그러나 넉넉한 공간과 재원이 충분한 곳에는 원칙대로 세 개의 섬을 조성하는데 앞서 보았던 경회루가 그렇고 또 남원에 있는 광한루가 그렇습니다. 광한루 오작교 옆에 세 개의 섬이 조성된 것을 보셨는지요. 이 또한 삼신사상의 표현입니다.
영주섬에는 영주각이 설치되어 있고
방장섬에는 방장정이 있으며
봉래섬에는 신선세계를 상징하는 대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한켠에는 돌로 만든 자라 한 마리가 삼신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이로써 광한루는 완벽한 삼신산이 존재하는 신선의 나라를 완성하였다. 아마도 지금쯤 춘향과 이몽룡이 삼신산의 영원한 낙원에서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의 꿈을 이루고 있는지도.......(참고로 이놈을 거북이라고 말하는사람도 있는데 한마디로 삼신사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놈은 지금 다음 6만년의 근무교대를 위하여 휴식하고 있는 중이다.)
조형물 뿐만 아니라 삼신사상은 지명으로 표현된 곳이 있는데 부산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부산의 영도구에는 봉래산(蓬萊山)이 있고 그 아래 봉래동(蓬萊洞)이 있습니다. 부산시 중구에는 영주산(瀛洲山)의 이름을 딴 영주동(瀛洲洞)이 있고, 또한 동래구에는 동래(東萊)가 있습니다. 동래는 원래 봉래산의 동쪽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지명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도교의 신선사상은 삼신사상과 함께 이상향을 꿈꾸던 옛 사람들의 동경이 되어 있는 것이랍니다.
그러므로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이라 부르는 것은 엄연히 도교적인 명칭이며 불교적 명칭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불교식 명칭인 지리산이라는 존엄한 이름을 도교식으로 바꾸어 부르니 이야말로 부처님에 대한 불경(不敬)이요 불교의 근본을 도교로 이양하는 이단식 발상이 아닐런지요.
문수보살의 지혜로운 품속에 화엄의 가르침을 전법하는 불도량(佛道場) 지리산에서 도교식 지명으로 문패를 달아 놓은 방장산대원사(方丈山大源寺)를 보면 창건주 연기조사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런지.
그러므로 대원사는 잘못된 도교식 문패를 불교식 문패로 바꾸어야 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지리산의 다양한 이름 중에서 어떤 것이 대원사 문패에 가장 적합한 이름이라 보십니까?
문패 설명이 너무 길어져 버렸는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저기 자료를 언급하다보니 그리 되었나봅니다. 다음에는 가급적 짧게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원사 풍수 다음 편에는 풍수적인 현판을 달고 있는 대원사 현관문에 해당하는 봉상루(鳳翔樓)의 의미와 풍수를 살펴보겠습니다.
긴 글 지루해 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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