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하우스에 대한 불편한 시선
우리집의 에너지 / 체이체이 체인지
집이 직접 만들어/ 체이체이 체인지
태양열, 지열, 바람/ 연료비 제로로 / 체이체이 체인지
집이 에너지를 만드는 70가지 첨단기술
제로 에너지 하우스 / 대우건설 옙!
'체이체이 체인지'라는 중독성 강한 후크송때문에 나 자신도 모르게 자동기억 된 대우건설의 패시브하우스 광고다. 대우건설의 임직원으로 구성된 '정대우 밴드'가 광고 음악을 맡았고, 건설회사 최초의 에니메이션 광고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광고다. 한때 나는 광고회사의 전략기획 담당 이사로도 일한 적 있고, 패션회사의 마케팅사업본부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귀농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직업적 습관때문일까. 이런 기발한 광고를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고 나름 광고의 전략적 판단이나 의미를 가늠해보곤 한다.
이 광고에서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3 가지다.
우선 중독성 강한 '체이체이 체인지'.
에너지 이용면에서 주택은 일종의 시스템이다. 주택 난방의 역사를 살펴보면 20세기 말까지 '집'은 화목난방과 분리해서 만들어질 수 없었다. 서양은 벽난로를, 우리는 구들을 건축의 중요한 구조로 통합시킨 집을 지었다. 요즘 주택들은 기본적으로 '석유 보일러'나 '가스 보일러'를 이용한 바닥 난방과 '전기' 시스템이 결합된 구조물이다. 이제 이 광고는 말한다. '체이체이 체인지(Change)' 에너지 이용 시스템으로서 주택은 이제 바뀐다. 이제는 태양열, 지열, 바람을 이용하는 시스템으로 바뀐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에너지 위기 시대 주택 시스템은 '제로 에너지 하우스(패시브 하우스)'이다. 대형건설 회사는 바로 이러한 주택 시스템의 변화를 앞서 읽고 이렇게 광고하며 '패시브 하우스' 수요를 만들고 그 시장을 선점하려고 한다.
'집이 에너지를 만드는 70가지 첨단기술'.
1973년 1차 오일쇼크때 건축가 A.바웬이 최초로 소개한 패시브하우스 개념은 결코 첨단기술이 아니였다. 자연의 에너지를 말 그대로 수동적으로 이용하는 소박하고 기술적으로 적용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건축 방식이었다. 요즘 대형건설회사들이 주장하는 패시브하우스(Passice House)는 수동적(Passive)이 아닌 복잡한 시스템을 결합한 능동적(Active)인 주택이다. 그리고 아무나 지을 수 없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70가지 첨단기술'로 만들어진 집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대부분의 패시브 기술들은 개인들이 시도한 기술들이고 이것이 이후 산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 광고는 일반인이나 어설픈 중소 건설회사, 동네목수들은 감히 지을 수 없는 집이 '패시브하우스'다라 말한다. '대우건설' 같은 큰 건설회사가 아니면 지을 수 없다는 진입장벽을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세겨놓는다.
'연료비 제로로.... 제로 에너지 하우스'
앞으로 고유가 시대 에너지 비용이 이슈가 된다. 그러나 더 이상 연료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왜? '제로(0) 에너지 하우스'니까. 그러나 이 광고가 말하지 않는 비용이 있다. 연료비 절감을 상쇄할 정도로 증가하는 패시브하우스 건축비용이다. 당연히 분양가 역시 올라간다. 왜 '70가지 첨단 기술'이 들어갔으니까.
'광고'의 변주가 된 '토론회'
지난 8월30일 여의도 국회에서 환경운동연합, 국회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 주최로 '패시브하우스 도전, 경험과 교훈'이라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나보다. 프레시안 2012년 8월31일 허환주 기자의 기사 "전력난 시대의 대안 '패시브 하우스', 막상 지어보니…정보 부족, 늘어만 가는 추가비용…'정부의 지원' 필요"는 토론회 패널들의 주요 주장을 전하고 있다. 잠깐 기사에 소개된 패널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건축비 20~30% 증가
직접 패시브하우스를 지으며 고생했다는 이병우씨는 "100평 내외 다가구 주택을 짓는데 공사비로 4억 원가량을 예상했다. 하지만 통상 100평 규모 패시브 하우스의 공사비는 일반적인 비용에 비해 20~30% 상승할 수밖에 없다."
패시브하우스 현재 30~40채 불과
장석진 건축가는 "패시브 하우스는 설계부터 시공단계까지 정밀한 에너지 해석을 통한 설계와 시공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그에따른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인지 국내에 등록한 패시브 하우스는 2012년 현재 30~40채에 불과하다. 패시브 하우스를 확장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상승비용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선진국 패시브하우스 다양한 정책지원 제공
이태구 세명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은 기금조성 및 정부 예산지원을 통해 저에너지 건축물에 무이자, 저리 융자 및 보조금 형식으로 지원한다"며 "우리도 이런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국민주택기금 및 전력기반기금 등에서 펀드 조성해 저에너지 건축 지원, 외벽 단열, 지붕 단열, 창호교체 등의 설치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패시브하우스 의무화로 시장 형성해야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장은 "우선 앞으로 지어지는 구청사 및 시청사 등 공공건물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처럼 패시브 하우스로 짓도록 의무화하는 게 필요하다.그 이후엔 기존 공공건물 및 어린이집 등을 패시브 하우스로 전환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현재 패시브 하우스가 대중화되지 못하는 건, 수요가 없어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등에서 수요자가 된다면 자연히 시장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규격화된 메뉴얼도 만들어지면서 점차 대중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시브 하우스' 수요창출과 시장 형성이라는 메시지
여기저기 '패시브 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등록된 패시브하우스는 30~40채뿐이라니. 왜 일까. '정밀한 에너지 해석과 설계 시공'때문에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란다. 20~30% 건축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상승비용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단다. 선진국은 패시브하우스에 기금, 예산지원, 융자, 보조금 지원 등 각종 지원을 한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공건물부터 패시브하우스 건축을 의무화해서 수요와 시장을 만들자고 말한다. 아 그렇다. '패시브 하우스' 건설 붐을 위한 수요와 시장을 만들자. 이 토론의 핵심 주장은 대우건설의 '광고'가 목적하는 '패시브 하우스' 수요와 시장의 창출이라는 마케팅 메시지의 변주처럼 들린다.
신규주택 건설 3%에 초점이 맞춰진 패시브하우스
국가 주택통계를 살펴보았다. 2010년 현재 주택수는 1천467만7천400 호이다. 이중에 아파트가 818만5천 호로 전체 주택수의 59%. 단독 및 다세대 주택 등은 649만2천400 호로 41%를 차지한다. 2010년 아파트 신규공급물량은 25만2천317 호였다. 최근 아파트 신규 공급물량은 매년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규 비 아파트 주택 공급물량을 20만 호 정도라고 할 때 2010년 신규주택 공급량은 전체 주택의 3% 수준이라 볼 수 있다. '광고'가 만들고자 하는 수요와 시장은 3%도 않되는 신규주택건설 수요 가운데 '패시브 하우스'다. 이 시장이 확장될 수 있도록 상승비용을 각종 정부지원으로 상쇄한다하더라도 과연 건축주 입장에서 건축비용이 절감될 수 있을까? 글쎄 지금까지의 경향으로 보면 아파트건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건설사만 덕을 보지 않을까. 최근엔 아파트 중심의 부동산 붕괴 여파로 단독주택 시장까지 건설사들이 진출하고 있는 실정이니 '패시브하우스'에 대한 지원의 혜택은 건설사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시장의 확대로 인한 이익도 대형 건설사들이 가져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주택과 아파트의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이 더 시급
에너지위기 시대 '주택에너지' 절감이 목표고 '패시브하우스'는 그 수단 중 하나일뿐이다. '패시브하우스'는 매년 3% 정도 신규주택공급 과정에서 일부 건축물들을 '체이체이 체인지'해나가는 아주 장기적인 수단일뿐이다. 진정 '주택에너지 절감'이 시급하다고 느낀다면 이미 지어져 있는 818만5천 호 아파트와 649만2천400 호 단독, 다세대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데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집중되어야 한다. 이미 지어져 있는 주택들이 구 세대의 에너지(석유, 가스) 이용을 전제한 시스템이기에 한계는 분명하다.지난 8월 서울 동작구 성대골에 '주택 에너지 효율'에 대한 강의와 토론이 있었다. 성대골은 대부분 다세대와 단독주택 중심인 속칭 미개발 구거주지인데 주택에너지효율 개선의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비용, 기술, 정보의 제약때문에 주민들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자포자기한 상태라 한다. 최고 효율의 '패시브 하우스'로 바꾸지 못할지라도 기존 아파트와 주택의 '에너지효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고 시급하다. 새로 짓는 것보다 새로 고치는 일이 더 어렵다. 더 어려운 일에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낮은 낡은 아파트와 주택일수록 경제적 약자들이 살고 있다. 약자일수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에너지 복지' 차원에서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개인들의 자발성을 자극하고 보조하는 정보와 지원 필요'
물론 정부의 지원에 기대어 기존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다는 것 역시 난망한 일이다. 문제는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시키는 데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건축기술과 적정기술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고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이다. 양이원영씨 말대로 '시장을 형성하면 자연스럽게 규격화된 메뉴얼이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안이하다. 메뉴얼(정보)을 먼저 만들어야 시장이 형성된다. 아니 시장과 상관없어도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 '주택 에너지 효율화 메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 북미와 서구유럽의 정부나 주정부는 누구나 참조할 수 있는 '주택에너지효율 개선'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인터넷으로 공개하고 있다. 너무도 풍부해서 놀랄뿐이다. 도대체 우리 정부와 지자체들에서 그러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해외 환경단체들도 다양한 주택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환경기술과 직접 자가시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우리 나라의 환경단체들은 그러한 컨텐츠를 갖추고 있는 곳이 있을까. '정책'으로 세상을 바꾸려하지 말고 현실에 닿아 있는 '컨텐츠'를 제공해서 세상을 '개인'들이 바꾸도록 도와야 한다. 해외 사례들에서 제공되는 내용들은 결코 첨단기술만이 아니다. 동네 목수, 지역의 소규모 건설사나 건축가, 자기 집을 스스로 고치거나 지으려하는 건축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패시브하우스 건축에 관한 기술정보들을 뭐 그리 대단한 것인양 '첨단기술'이니 '정밀한 해석'이니 이야기하는 것이 도무지 마땅치 않다.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난이도 낮은 '주택에너지 효율화 기술'들과 '적정기술'들을 공개하고 대중적으로 교육해서 주택에너지 측면에서 자발적인 주택개량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들은 '에너지 위기'를 절감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거나 위기 의식을 느끼면 '창조적으로 움직인다. 알아서 고치고 해결해나간다. 개인들의 그러한 힘을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환경단체들은, '패시브하우스'에 대해 좀 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은 대중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자극하고 협력하고 적절한 정보와 기술을 제공하며 도와야 한다. '패시브하우스'란 새로운 건설상품과 '광고'에 홀리지말아야겠다. 너무도 중독성이 강한 후크송이 귀에 맴맴돈다. 요점은 '주택에너지절감, 주택에너지 효율화'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매년 새로운 3%가 아니라 기존의 1천467만7천400호에 눈을 돌리는 것이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