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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광장 (재악산 載岳山 載嶽山 ...)
 
 
 
카페 게시글
점필재 김종직 선생 점필재 김종직과 광주 안씨
dabotab 추천 0 조회 123 08.12.25 12:48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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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2.25 17:58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점필재 선생은 유학자로서 시인이며, 지리학자입니다, 유학자로만 밀양에서 홍보하는 것은 선생의 공을 낮추는 무지라 봅니다, 선생은 2000여수의 시를 지었고, 중국의 고승들과도 교류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감수했습니다

  • 08.12.25 18:00

    밀양시의 예산을 지원 받아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하는 어떤 책에 보시면 <이준록>을 <이존록>으로 오기 하고 있습니다,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밀양문화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도 답이 없군요

  • 작성자 09.03.18 07:59

    이준록 이든 이존록이든 현재사람들이 해석함에 틀리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바로잡기도 힘듭니다. 한가지 참고사항은 박한주공이 사화로 희생되자 그 부인인 광주안씨가 문중에 읍소하여 그 시신을 광주안씨 총본산이 있는 함안 선왕동 봉산재 선산의 아래에 묘를 모십니다. 그리하여 그후로 매년 향사에 이분도 모십니다. 안씨부인은 너무나 슬픔에 젖먹이를 두고서도 이듬해에 세상을 떠나시니 두분의 금슬이 어떠 하였을까.....

  • 작성자 09.03.20 06:04

    그러나 사화이후에 묘를 쓴 것이 발각되면 연좌죄로 당할까 봐 족보의 기록에도 이상하게 표현하였더군요. 박한주공보다 약 백년전에 돌아가신 분의 묘소를 박공의 묘소 후록에 있다라고 표현하였더군요. 그렇게 해서 오래된 무덤으로 인식하게 하였지요. 우리 광주안씨 족보에는 그렇게 비틀어서 암시하여 후손들에게 통분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알린 경우가 더러 보입니다. 충절을 지키면서도 멸문지화를 안 당하려 애쓰신 선조님들의 지혜였습니다.

  • 작성자 09.03.18 00:25

    시간이 나면 그 묘소의 항공사진과 족보의 기록을 올리겠습니다. 우리가 한 시대를 살아가듯이 당시의 살얼음판 생애를 살아가시면서도 올곧게 충의와 효와 부덕으로 슬픈 일생을 살아가신 분들의 뜻과 한을 짚어보면서 후손은 가슴이 아픕니다. 시대에 영합하여 잘 살아간 성씨 문중들은 오늘날에도 조상의 후광으로 역사의 비틀림을 계속 승계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문제삼으면 소송사태와 청년무뢰배들의 습격도 서슴치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경우도 더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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