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려서 오늘 답사는 복 받았다 했는데 아니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숲속의 상황은 끈적끈적하고 습하고 거기에 더불어 벌레들의 향연까지…….몇 차례 답사를 다니면서 거의 쾌적하게 다녔던 게 몇 번이나 될까?
이제 몸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하여 입안은 온통 헐어 너덜너덜 해지기 까지 했으니 그래도 할껀 한다하고 답사를 시작하였다.
아침에 것도 9시 30분에 비오는 날 무덤 것도 남의 무덤 오는 사람 있음 손들어봐...하면서 서오릉에 도착
서오릉은 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으로 되어있다.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인 경릉,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인 창릉,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인 명릉 영조의 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인 홍릉의 5릉과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의 순창원,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수경원, 희빈장씨의 묘인 대빈묘까지 2원 1묘로 이루어진 곳이다.
명릉

왼쪽으로 보이는 능이 인원왕후 능







경릉에 모셔진 덕종은 세조의 큰아들로 일찍 요절하고 후에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추존되는 분이고, 소혜왕후는 그 유명한 인수대비이다. 경릉에 덕종릉은 세자의 무덤이라 간소한 반면 소혜왕후릉은 왕릉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창릉에 모셔진 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이고 안순왕후는 두 번째 왕비다.
첫째왕비는 공순영릉의 공릉에 모셔진 한명회의 딸인 장순왕후 한씨고, 익릉에 모셔진 인경왕후는 숙종의 정비로 일찍 요절했으며 서오릉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 올린 사진의 명릉은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를 모신 곳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뭐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특이한 점은 명릉은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과 그 뒤에 제3계비 인원왕후의 릉이 한곳에 몰려있다.
홍릉은 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의 능으로 재미있는 점은 한쪽으로 봉분이 쏠려있는 점이다. 당초에는 영조와 함께 쌍릉으로 하려 했으나 영조가 동구릉의 원릉으로 모셔지면서 그자리가 비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 힘이 막강했던 계비 정순왕후 의 계략(?). 동구릉의 원릉에는 영조와 함께 정순왕후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2원중에 하나인 순창원은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와 부인인 공회빈의 묘소이다. 수경원은 영조의 후궁인 선희궁 영빈이씨의 묘소로 정성왕후 사후 정순왕후가 영조의 노년에 왕비로 책봉되기까지 왕비로써의 직무를 대신 수행한 분이다. 처음에는 연세대학교 의대 후편에 있었으나 1970년 서오릉으로 이장되었다.
희빈장씨의 묘인 대빈묘는 숙종의 후궁 희빈장씨의 묘로,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970년에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숙종의 명릉과 동쪽끝-서쪽끝으로 가장 멀리 있다는 것이다.

서삼릉은 희릉, 효릉, 예릉과 의령원, 효창원, 소경원으로 되어 있다.
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
중종의 1계비 장경왕후 윤씨는 정비 단경왕후 신씨가 7일 만에 왕비에서 쫓겨나자 그 뒤로 왕비에 올라 8년간 있다가 25세에 세자(인종)을 낳고는 7일 만에 산후병으로 승하하였다. 장경왕후가 죽자 (국상을 당해도 왕은 흰 상복을 입지 않는데) 중종은 특별히 흰 상복을 입고 애통해하였으며 장경왕후릉 옆에 자신의 수릉지를 정하고 쌍릉으로 조성 될것을 원하여 헌릉(3대 태종)이 있는 대모산 아래 왕비릉을 조성하고 희릉이라 했다.



희릉 천장사건
그런데 중종의 사돈인 이조판서 김안로(효혜공주가 며느리)가 권력을 남용하다 유배 당한 후 복귀하여 정적들을 제거하려고 세자(인종)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옥사를 일으키는데 그중 하나가 희릉 천장사건이다.
김안로는 정적인 정광필, 남곤등에게 중죄를 주려고 희릉 밑에 큰 돌이 깔려 있는데 그대로 공사를 감행했다고 주장하면서 공사당시 총호사였던 정광필과 지관, 공사를 담당했던 관리들을 대역 죄인으로 몰아 결국 신분을 박탈하고 자손까지 처벌하였다.
이렇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희릉은 대모산자락에 조성된 지 22년후인 1537년(중종 32) 현재 위치인 서삼릉으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경빈 박씨와 소생 복성군을 '작서의 변'을 일으켜 쫓아내고 사사한 사건 등이 모두 김안로가 꾸며낸 일들이었다.
율곡선생과 신사임당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 율곡선생 유적지






자운서원은 조선 광해군 7년에 조선 중기의 율곡 이이(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들로 인하여 창건되었다고 한다. 율곡 이이는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능력을 해설사님께서 말씀 하신것처럼 자신의 입신양명에 쓴게 아니라 백성과 함께 잘 살아 보겠다는 실천적 개혁가였기에 지금의 우리에게 존경받는 것이다.









몰라몰라 자운서원 설명을 어느샘이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태어나서부터 율곡선생님이 어떻게 크고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너무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는데, 기념관 영상물을 보니 샘이 한말이 그대로...해서 반복한습을 한 번 더 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설사님께서 하신 말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이고 행해질 때 진정한 선구자가 되는 것이라고....


자운서원을 뒤로하고 간 곳은 율곡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고 자연을 즐기던 곳이라는 화석정이다.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져 89년간 터만 남아 있는 것을 현종14년에 율곡선생의 증손 이후지,이후방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에 겹처마에 초익공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화석정’현판도 있었다..
앞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도로에서 들리는 차소음은 문화답사장소라 생각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황희선생 유적지








반구정에 답사가 기전 예습을 하겠다고 인터넷에서 반구정을 검색하니 헐~~ 장어집만 수두룩하게 나온다. 하긴 나도 불과 몇 해 전 파주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자운서원, 화석정, 반구정 옆을 그토록 지나 다녔어도 제대로 한번 들어가본적이 없으니...누굴 탓하랴...
어김없이 여기서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우리는 명희샘의 인솔로 방촌기념관과 영당, 경모제도 둘러보고 앙지대와 반구정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원래 지금의 앙지대 자리가 반구정이 있던 곳이란다. 앙지대에 둘러 앉아 마지막 은희샘의 황희선생님의 생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고려시대 때 태어나 조선초기의 네 임금을 모신, 평생을 청렴하게 사신 분이라고 한다.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 메모해 놓은 것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시간이 지나며 답사기 완전성의 없어지지만, 어떡해……. 써야만 되는 의무에 이래서 바로바로 해놔야지 미루면 이런 일이 생긴다는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