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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을 요구한 자기개발서와 대중소설이 점령한 2000년-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8월 15일에는 남북이산가족 200명이 반세기 만에 서울에서 첫 혈육상봉을 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며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현대와 대우 사태 등 각종 경제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제2의 IMF’에 대한 위기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출판시장의 분위기는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2년간 사라졌던 밀리언셀러가 네 종이나 등장했는데, 컴퓨터게임에 중독된 전 세계 어린이들을 책벌레로 만든 ‘해리포터’ 시리즈(300만 부), 영어공부 패러다임을 크게 뒤바꿔 놓은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130만 부), 눈물겨운 부성애를 다룬 [가시고기](105만 부), 돈과 부자라는 말을 공론화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100만 부) 등이 2000년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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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시고기는 알을 낳은 후에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지만 아빠 가시고기는 혼자 남아서 알을 먹으려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 소설 [가시고기]에서 엄마는 이혼 후 다른 남자와 공부하러 외국에 나가지만 아빠는 모든 것을 다 바쳐 아이를 살리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빠는 콩팥을 팔기로 결심하지만 검진 과정에서 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결국 아빠는 각막을 팔아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고 그토록 바라던 아이의 소생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얼마나 더 아파야 죽게 되나요?”라는 아들의 물음이 소생의 기쁨으로 다가온 것에 안도하며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대중소설로는 이례적으로 MBC <뉴스데스크>, <느낌표>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 크게 소개되었다. 특히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가 쓴 “독자는 소설을 읽기가 고통스러울 것이다. 눈물 콧물 같은 것이 쉼 없이 흐르고, 옆 동료가 흘끔거릴지도 모른다. 차라리 화장실로 책을 들고 갈까. 삶의 곡진함을 품고 있는 통속적인 것들은 이토록 진정(眞情)한 것일까”(2000년 1월 21일자)라는 기사의 효과는 컸다. 간암 환자의 각막은 이식될 수 없다는 사실이 웅변하듯 “최루성 눈물을 자아내는 비현실적 내용”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재미, 감동, 대중 교양이라는 대중소설의 3대 요건을 잘 갖춘 데다 흡인력 있는 문장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이뤄진 텍스트의 힘으로 170만 부나 팔렸다.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베트남 등의 나라에서 출간되어 소설의 한류 열풍에 일조했다.
머글과 마법사, 현실과 마법의 세계라는 대립하면서도 공존하는 흥미진진한 세계를 만들어낸 독특한 판타지소설 [해리포터] 시리즈 7권이 64개 언어로 번역되어 4억 부가 팔려나갔다.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7편의 영화는 모두 50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올린 매출액은 우리 돈으로 308조 원(소설, 영화, 관련 캐릭터 판매액 포함)으로 같은 기간 한국의 반도체 수출 총액 231조 원의 1.3배 이상이어서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출발은 미미했다. 중고 타자기로 [해리포터]의 최종원고를 타이핑한 조앤 롤링은 원고를 복사할 돈이 없어 한 번 더 타이핑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그녀가 2003년 한 해에 벌어들인 수입은 ‘정보 부자’ 빌 게이츠의 수입(보유 주식의 연간 배당금 기준)보다 2.2배나 많았지만 이혼녀로 딸과 함께 지내던 1993년 12월의 그녀는 사회보장국으로부터 주당 140달러가 안 되는 주거 및 수입보조금을 받고 있었다. 이 책의 원고는 영국의 12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끝에 블룸스베리 출판사에서 출간하였고, 1997년 6월 26일 첫 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초판 500부로 출발했다. 책이 출간된 직후 런던의 한 서점에서 조앤이 직접 참여한 첫 낭송회에는 단 2명의 독자만이 참여했다. 1997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출간할 원고를 찾고 있던 미국의 스콜라스틱 출판사 편집 이사 아서 레빈은 이 책을 발견한 다음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읽고는 이 책의 판권을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첫 권이 발매된 지 불과 3일 후에 블룸스베리는 이 책의 미국 내 판권을 입찰에 붙였는데 레빈은 전례 없이 높은 가격인 10만 5천 달러에 판권을 확보했다. 스콜라스틱이 원제인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바꿔서 1998년 8월 초판 5만 부를 발행한 이후 마법에 걸린 책으로 거듭났다. 이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한국의 출판사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권의 권당 선인세가 1만 5천 달러나 돼 총 1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한꺼번에 지불해야 하는 위험부담 때문에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어린이책을 펴낸 경험이 전혀 없는 문학수첩이 판권을 확보했다. 문학수첩은 1999년 11월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초판 3천질을 발행했는데 이때부터 2천 만부의 해리포터 신화가 시작되었다.
저자의 친아버지인 ‘가난한 아빠’는 저명한 교육자로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라 가르쳤다. 하지만 그 길을 열심히 달린 그는 평생을 카드와 주택 융자금에 시달리고, 직장에서 해고되기도 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친구의 아버지인 ‘부자 아빠’는 9살의 아이들에게 돈과 투자와 경제의 기본 원리를 알지 못하면 평생을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가르쳤다. 결론적으로 가난한 아빠는 돈에 얽매이는 것이, 부자 아빠는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가르쳤다. 저자는 ‘현금 흐름 사분면’을 통해 수입과 지출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돈 벌기가 곧 교양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주입시키려 한다. 오늘의 현실에서 개인은 경제 주체로서 능력을 갖추고 게임을 하듯 자본주의를 ‘플레이’해야 한다는 것이 부자 아빠의 메시지다. 돈보다는 일을 통해 얻어지는 가치를 중요시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적 책임감을 중시하던 우리 사회의 기존 가치관과는 대립되는 이 책은 돈이 없으면 국가도 망할 수 있다는 뼈저린 경험을 한 대중에게 바로 먹혀들었다. 2월 초에 출간된 책은 첫 달에만 5만 부를 넘기며 단권으로는 13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리고 시리즈의 후속권들도 모두 합해 100만 부 이상 팔렸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밀리언셀러가 됐지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은 그 많은 사람 중에 부자가 된 사람은 단지 저자뿐이라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저자는 2009년에 출간된 [부자 오빠 부자 동생]에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에 대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잘못된 결혼으로 23세에 싱글맘이 된 다음 평생 가난한 수도자의 길을 걸어온 여동생 에미가 목숨을 바쳐도 좋을 정도로 가치 있는 자신의 일, 즉 돈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명을 발견해 살아왔기에 진정한 부자라고 말한다. 결국 그도 돈보다 일의 가치를 중시하던 동양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셈이다.
열정적인 연하남 승우의 지순한 헌신을 받던 미주가 자신이 위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자 뱃속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건강한 딸을 낳고 죽어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불륜의 사랑을 다룬 소설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지고지순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한 부부의 삶과 죽음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을 파고든 순수의 향기, 아직도 이런 사랑이 있다니…”라는 광고카피에서 우리는 최루성, 신파성, 통속성이라는 대중문학의 부정적 기호들을 읽어낼 수 있다. 출판사는 이런 기호들을 서정성, 감각성, 감동이라는 정서의 정화 경험으로 바꿔 포장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KBS 9시 뉴스에서 순결한 사랑에 대한 이 시대 독자들의 갈증을 반영했다고 보도되고, 드라마 [가을동화]가 [국화꽃 향기]의 몇 가지 모티브를 차용하는 등 치밀한 복합 마케팅 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출판사는 가제본 상태의 책을 방송국, 영화사, 작가, 기자 등에게 배포하고, 텔레비전 드라마에 일부 스토리와 이미지를 제공했다. 방송사는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뉴스 시간에 간접 홍보를 하고, 드라마 속에서 포스터를 PPL로 홍보했다. 책이 10만 부쯤 판매됐을 때 ‘사랑의 체험수기’ 공모를 통해 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써졌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
스콜라스틱(미국의 대형 출판사)는 1999년에 2권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과 3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발행했는데, 영국에서 먼저 책이 나오는 바람에 미국에서는 불리한 상황에서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4권 [해리포터와 불의 잔]은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2000년 7월 8일 자정에 전국으로 책을 실은 트럭이 동시에 출발했다. 출판사상 최초로 수십만 부의 사전 주문을 온라인으로 받은 스콜라스틱은 4권의 초판을 380만부나 발행했는데 이중 300만 부가 첫 주에 팔려나갔다. 이때부터 책의 내용을 사전에 유출하지 않고 궁금하게 만드는 티저 마케팅 기법이 도입돼 발매 직전에 책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했다. 2000년에 전 세계에 ‘해리포터’ 열풍이 불면서 국내에서도 해리포터의 인기가 치솟았다. 국내에 3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출간된 것은 2000년 2월이었고, 4권 [해리포터와 불의 잔]이 출간된 것은 2000년 10월이었다. 글로벌 마케팅에 힘입어 4권의 초판은 40만 부를 발행했다. ‘해리포터’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갖는 상상력의 힘과 그런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부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실제 사례분석을 통해 입증한 [스토리 노믹스](원제 ‘HARRY POTTER : The Story of a Global Business Phenomenon’)의 저자 수잔 기넬리우스는 [해리포터]의 성공요인으로 뛰어난 작품, 소비자의 감정이입, 입소문 마케팅과 온라인 버즈, 티저 및 지속적 마케팅, 브랜드 일관성과 확산의 자제 등 5가지 요소를 꼽았다. 완벽하지 못한 어린 영웅의 성장기와 선과 악의 대립을 다룬 고전적 이야기에 마법과 서스펜스 요소를 가미, 독자들과 소설 속 주인공들을 감정적으로 연결한 내용이 1차적 성공요인이라고 보았다.
내용이 단순하면서 원고의 양도 많지 않아 30분이면 독파가 가능한 우화형 자기계발서다. 생쥐 스니프와 스커리, 꼬마인간 헴과 허는 그동안 흔하디흔했던 치즈가 갑자기 사라지는 위기상황에 처한다. 이때 생쥐들은 재빨리 새 치즈를 찾아 미로로 나서지만 꼬마인간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불평하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 헴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예전에 먹던 치즈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만 굶주림을 참지 못한 허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 치즈를 찾아 나선다. 이 책에서 미로는 우리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머무르는 장소를 뜻하는데,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지역사회, 또는 우리 삶에 등장하는 어떤 관계를 지칭한다. 간단하게 말해 우리의 인생이다. 치즈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얻고자 하는 직업, 인간관계, 재물, 근사한 저택, 자유, 건강, 명예, 영적인 평화 그리고 조깅이나 골프 같은 취미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인간의 모든 욕망 혹은 목적을 말한다. 이 책은 “암웨이 5만, 포스코 3만, 삼성 2만, 현대 2만, SK 1만, LG 1만, 검찰청 3천 등 국내외 유수한 기업들이 선택한 신입사원 필독서”라는 홍보문구가 적혀 있을 정도로 기업들의 대량구매가 초기 판매를 선도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유연화를 기대한 기업 경영자들이 책을 대량 구매해 직원들에게 강제로 읽히는 바람에 출간 2주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200만 부 이상 팔렸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동시에 밀리언셀러에 오른 책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첫 페이지에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는 파스칼의 말이 적혀 있다. 이 말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 저자는 현기증 나도록 빨리·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느리게 살 필요가 있다고 외친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는 한가로이 거닐며 빈둥거리기, 다른 이의 진정한 충고를 듣기, 고급스러운 권태에 빠지기, 꿈꾸기, 내 마음의 고향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기, 글쓰기, 포도주 한잔이 안겨주는 ‘지혜의 학교’에 잠기기, 절제가 아닌 절도를 가질 것 등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세계화로 말미암아 경쟁이 더욱 격화된 세상에서 “경쟁을 아예 포기하고 천천히 느리게 살”라는 저자의 제언은 바쁘게 살면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게 만든다. 무한경쟁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도 때로는 세상사를 초월한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에 침잠하고자 하는 법이다. 이 책은 ‘빠름’을 추구하는 적극적 리더십과 ‘느림’도 괜찮다는 소극적 리더십이 사실상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 비교의 차원이 아니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소중한 지혜를 깨닫게 만들었다. 느림의 트렌드를 반영한 가치 지향의 제목이 갖는 힘이 크게 작용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출판사는 신문기사를 모아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4페이지의 북 캐스트를 만들었다. 그 홍보물의 머리기사 제목은 ‘무한경쟁 시대의 배반적 화두 ‘느림’’이었다. 느리게 살고 싶은 사람은 생활에 지친 직장인이나 지식인이지 주부들이 아니라고 판단한 출판사는 이 홍보물을 신문의 간지로 활용해 강남과 시내 4대문 안과 대형 서점 근처 등 상업지역과 사무실 밀집 지역에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걷고 얘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며 만행(萬行)이다.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 - 이것이 바로 만행이다.” 1964년 미국 뉴저지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한 현각은 하버드 대학원 재학 중에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한다. [만행]은 현각이 출가하기 전의 드라마틱한 삶(1권)과 숭산을 만나 출가하게 된 사연과 외국 수행자로서 느끼는 불교와 한국에 대한 이야기(2권)를 담았다. 현각은 대학에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니체, 하이데거 등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과 생애를 공부하고 독일에서 1년 동안 쇼펜하우어를 탐독했지만 그 모두가 완전한 베리타스(Veritas, 진리)가 아니었고 살아있는 베리타스는 숭산 큰스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만행]은 1998년 KBS에서 일요스페셜 다큐멘터리 <만행>이 방영된 것을 계기로 기획된 책이다. 만행의 집필에는 현각과 숭산의 [선의 나침반] 한글작업을 같이 하는 등 한국과 미국 사회 그리고 종교와 정치, 삶과 문화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바 있어 도반(道伴)이나 다름없는 <동아일보>의 허문명 기자가 참여했다. 사진 작업에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진작가 김홍희가 참여했다. 서양에서 동양의 종교와 선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던 무렵에 등장한 현각은 스타와 다름없었다. 10대는 ‘멋있는 스타’로, 20대는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매개체로, 30대는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 40대는 불교의 가르침을 잘 이행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등 구도자로서만이 아니라 인생을 아우르는 진지한 메신저로서 현각을 받아들였다. [만행]은 출간 3주 만에 9만 부, 모두 50만 부가 판매됐다.
법정은 송광사 불임암에 암자를 지어 20년을 산 뒤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겼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그곳에서 법정은 손수 만든 땔감으로 불을 지피고, 그 불로 물을 끓여 차를 달였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편지를 썼다. 그렇게 쓴 편지 50통을 모은 것이 [오두막 편지]다. 오두막에서의 서정적인 일상이 잘 드러나는 맑은 문체의 편지에는 세상에 대한 법정 특유의 예리한 질타가 잘 녹아들어있다. 법정은 ‘오두막 편지’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수행자의 집에는 전기를 끌어들일 생각을 말아라, 수도를 끌어들이지 마라, 수행자의 집에는 여성들의 출입을 금해야 한다, 수행자의 집에 거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새벽 세 시에 일어나고 밤 열 시 이전에는 눕지 마라 등의 당부의 말을 내놓았다. 전기가 들어가면 가전제품이 따라 들어가고 수도가 들어가면 먹고 마시는 일이 따라 들어가 자연히 사람이 모여들어 수행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2000년에는 [오두막 편지]뿐만 아니라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등 법정의 책 세 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카스트로와 함께 1959년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체 게바라는 1960년대 저항과 혁명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일컫는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를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검은 베레모,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칼, 텁수룩한 수염, 우수에 젖은듯하면서도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등 한 눈에 알아볼 수 그의 캐릭터는 많은 이들에게 지난 시절의 ‘잃어버린 향수’를 자극했다.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은 1981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체 게바라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온 저자의 공력 덕에 그의 생애와 사상을 집대성해놓은 결정판이라는 평가를 받은 책이다. 이념과 거대담론이 모두 사라진 시대에 한때 혁명을 꿈꾸었던 ‘386세대’가 아닌 대학생들이 이 책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책은 출간 2개월 만에 2만 부를 훌쩍 넘겼고, 인문 베스트셀러 1위와 종합 10위권에 진입했다. 홍대 앞에는 체(Che)의 이름을 딴 카페가 성업 중이었고 출판사에서 한정 제작했던 수천 장의 티셔츠와 배지는 곧바로 동이 날 정도였다. 서점에 붙여놓은 대형 브로마이드는 붙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체는 젊은이들에게 마스코트, 일종의 ‘이미지 영웅’처럼 작용했다. 이런 열풍이 ‘9시 뉴스’에 소개되고 나서도 ‘게바라 열풍’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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