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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룽꺄뿟따 경 (S35:95) 2. Mālukyaputtasuttaṃ
95. Atha kho āyasmā mālukyaputto [māluṅkyaputto (sī.)]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pe…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mālukya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2. 그때 말룽꺄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말룽꺄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sādhu me, bhante, bhagavā saṃkhittena dhammaṃ desetu,
yamahaṃ bhagavato dhammaṃ sutvā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eyya’’nti.
3.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세존으로부터 법을 들은 뒤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내고자 합니다."
‘‘Ettha dāni, mālukyaputta, kiṃ dahare bhikkhū vakkhāma!
Yatra hi nāma tvaṃ, bhikkhu, jiṇṇo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saṃkhittena ovādaṃ yācasī’’ti.
‘‘Kiñcāpāhaṃ, bhante, jiṇṇo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4. "말룽꺄뿟따여, 이미 늙어서 나이 들고 노쇠하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그대가 이제서야
여래에게 법을 간략하게 설해줄 것을 요청하니, 참으로 내가 젊은 비구들에게는 무엇을 설하겠는가?"
Desetu me, bhante, bhagavā saṃkhittena dhammaṃ, desetu sugato saṃkhittena dhammaṃ,
appeva nāmāhaṃ bhagavato bhāsitassa atthaṃ ājāneyyaṃ.
Appeva nāmāhaṃ bhagavato bhāsitassa dāyādo assa’’nti.
5. "선서시여, 저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쇠하고 연로하여 삶의 완숙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소서. 참으로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참으로 저는 세존께서 해 주신 말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Taṃ kiṃ maññasi, mālukyaputta,
ye te cakkhuviññeyyā rūpā adiṭṭhā adiṭṭhapubbā, na ca passasi, na ca te hoti passeyyanti?
Atthi t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ṃ vā’’ti?
‘‘No hetaṃ, bhante’’.
"What do you think, Malunkyaputta: the forms cognizable via the eye that are unseen by you —
that you have never before seen, that you don't see, and that are not to be seen by you:
Do you have any desire or passion or love there?"
"No, lord."[1] <http://www.accesstoinsight.org/tipitaka/sn/sn35/sn35.095.than.html
Notes
1. It is possible, of course, to have desire for a sight that one has not seen.
Strictly speaking, however, the desire is not "there" at the unseen sight.
Rather, it's there at the present idea of the unseen sight.
This distinction is important for the purpose of the practice.>
6. "말룽꺄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보지 못했고 전에도 본 적이 없으며 지금 보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눈으로 알아야 하는 형색들이 있다면 그대는 그것들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Ye te sotaviññeyyā saddā assutā assutapubbā, na ca suṇāsi, na ca te hoti suṇeyyanti?
Atthi t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ṃ vā’’ti? ‘‘No hetaṃ, bhante’’.
‘‘Ye te ghānaviññeyyā gandhā aghāyitā aghāyitapubbā, na ca ghāyasi, na ca te hoti ghāyeyyanti?
Atthi t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ṃ vā’’ti? ‘‘No hetaṃ, bhante’’.
‘‘Ye te jivhāviññeyyā rasā asāyitā asāyitapubbā, na ca sāyasi, na ca te hoti sāyeyyanti?
Atthi t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ṃ vā’’ti? ‘‘No hetaṃ, bhante’’.
‘‘Ye te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asamphuṭṭhā asamphuṭṭhapubbā, na ca phusasi,
na ca te hoti phuseyyanti? Atthi t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ṃ vā’’ti? ‘‘No hetaṃ, bhante’’.
7. "그대가 듣지 못했고 전에도 본 적이 없으며 지금 듣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듣지 못할,
귀로 알아야 하는 소리들이 있다면 그대는 그것들에 대한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8. "그대가 맡지 못했고 전에도 맡은 적이 없으며 지금도 맡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맡지 못할,
코로 알아야 하는 냄새들이 있다면 그대는 그것들에 대한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9. "그대가 맛보지 못했고 전에도 맛본 적이 없으며 지금 맛보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맛보질 못할,
혀로 알아야 하는 맛들이 있다면 그대는 그것들에 대한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0. "그대가 닿지 못했고 전에도 닿은 적이 없으며 지금 닿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닿지 못할,
몸으로 알아야 하는 감촉들이 있다면 그대는 그것들에 대한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Ye te manoviññeyyā dhammā aviññātā aviññātapubbā, na ca vijānāsi, na ca te hoti vijāneyyanti?
Atthi t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ṃ vā’’ti? ‘‘No hetaṃ, bhante’’.
11. "그대가 알지 못했고 전에도 안 적이 없으며 지금도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마노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다면 그대는 그것들에 대한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Ettha ca te, mālukyaputta,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diṭṭhe diṭṭhamattaṃ bhavissati, sute sutamattaṃ bhavissati,
mute mutamattaṃ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ṃ bhavissati.
12. "말룽꺄뿟따여, 그대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알아야 하는 법들에 대해서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고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있을 것이고
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있을 것이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다."
Yato kho te, mālukyaputta,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diṭṭhe diṭṭhamattaṃ bhavissati, sute sutamattaṃ bhavissati,
mute mutamattaṃ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ṃ bhavissati;
tato tvaṃ, mālukyaputta, na tena.
13. "말룽꺄뿟따여, 그대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알아야 하는 법들에 대해서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고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있을 것이고
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있을 것이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면
그대에게는 '그것에 의함'이란 것이 있지 않다.
Yato tvaṃ, mālukyaputta, na tena; tato tvaṃ, mālukyaputta, na tattha.
말룽꺄뿟따여, '그것에 의함'이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거기에'라는 것이 있지 않다.
Yato tvaṃ, mālukyaputta, na tattha; tato tvaṃ, mālukyaputta, nevidha, na huraṃ, na ubhayamantarena.
Esevanto dukkhassā’’ti.
말룽꺄뿟따여, 그대에게 '거기에'가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여기 [이 세상]도 없고 저기 [저 세상도] 없고 이 둘 가운데도 없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Imassa khvāhaṃ, bhante, bhagavatā saṃkhittena bhāsitassa vitthārena atthaṃ ājānāmi –
14.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뜻을 이렇게 자세하게 압니다.
‘‘Rūpaṃ dis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형색을 보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ajjhosāya (sī.)] tiṭṭhati.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rūp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형색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느낌들은 그에게서 증장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심과 불쾌함도 그러하나니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이처럼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은 아주 멀다고 말합니다.
*2014.06.12 부기
[Seeing a form — mindfulness lapsed —
attending to the theme of 'endearing,'
impassioned in mind, one feels and remains fastened there.
One's feelings, born of the form, grow numerous,
Greed & annoyance injure one's mind.
Thus amassing stress, one is said to be far from Unbinding.]
‘‘Saddaṃ su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sadd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소리를 듣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
소리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느낌들은 그에게서 증장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심과 불쾌함도 그러하나니
이처럼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은 아주 멀다고 말합니다.
‘‘Gandhaṃ gha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gandh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냄새를 맡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
‘‘Rasaṃ bho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ras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맛을 보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
‘‘Phassaṃ phussa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phass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감촉을 닿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조리하는 자는 …
‘‘Dhammaṃ ña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dhamm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법을 알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
‘‘Na so rajjati rūpesu, rūpaṃ dis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마음챙기면서 형색을 보고 형색에 물들지 않는 자는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Yathāssa passato rūp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그는 형색을 보고 아울러 느낌도 감수하지만
[괴로움은] 소멸하고 쌓이지 않나니
그는 이처럼 마음챙기며 유행합니다.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나이다.
‘‘Na so rajjati saddesu, saddaṃ sut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Yathāssa suṇato sadd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마음챙기면서 소리를 듣고 소리에 물들지 않는 자는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는 형색을 보고 아울러 느낌도 감수하지만
[괴로움은] 소멸하고 쌓이지 않나니
그는 이처럼 마음챙기며 유행합니다.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나이다.
‘‘Na so rajjati gandhesu, gandhaṃ ghat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Yathāssa ghāyato gandh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마음챙기면서 냄새를 맡고 냄새에 물들지 않는 자는 …
‘‘Na so rajjati rasesu, rasaṃ bhot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Yathāssa sāyato ras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마음챙기면서 맛을 보고 맛에 물들지 않는 자는 …
‘‘Na so rajjati phassesu, phassaṃ phussa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Yathāssa phusato phass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마음챙기면서 감촉에 닿고 감촉에 물들지 않는 자는 …
‘‘Na so rajjati dhammesu, dhammaṃ ñat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Yathāssa jānato dhamm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ī’’ti.
마음챙기면서 법을 알고 그것에 물들지 않는 자는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는 법을 알고 아울러 느낌도 감수하지만
[괴로움은] 소멸하고 쌓이지 않나니
그는 이처럼 마음챙기며 유행합니다.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나이다.
[*부기 Not impassioned with ideas — knowing an idea with mindfulness firm — dispassioned in mind,
one knows and doesn't remain fastened there.
While one is knowing an idea — and even experiencing feeling — it falls away and doesn't accumulate.
Thus one fares mindfully. Thus not amassing stress, one is said to be in the presence of Unbinding. ]
‘‘Imassa khvāhaṃ, bhante, bhagavatā saṃkhittena bhāsitassa evaṃ vitthārena atthaṃ ājānāmī’’ti.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뜻을 이와 같이 자세하게 압니다."
‘‘Sādhu sādhu, mālukyaputta!
Sādhu kho tvaṃ, mālukyaputta, mayā saṃkhittena bhāsitassa vitthārena atthaṃ ājānāsi –
15. "장하고 장하구나, 말룽꺄뿟따여.
그대는 내가 간략하게 말한 뜻을 자세하게 알았으니 참으로 장하구나.
‘‘Rūpaṃ dis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rūp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pe….
형색을 보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도다.
형색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느낌들은 그에게서 증장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심과 불쾌함도 그러하나니
이처럼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은 아주 멀다고 말하리.
소리를 듣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
냄새를 맡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
맛을 보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
감촉에 닿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
법을 알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
마음챙기면서 형색을 보고 형색에 물들지 않는 자는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도다.
그는 형색을 보고 아울러 느낌도 감수하지만
[괴로움은] 소멸하고 쌓이지 않나니
그는 이처럼 마음챙기며 유행하도다.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리.
… …
‘‘Na so rajjati dhammesu, dhammaṃ ñat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Yathāssa vijānato dhamm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ī’’ti.
마음챙기면서 법을 알고 그것에 물들지 않는 자는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도다.
그는 법을 알고 아울러 느낌도 감수하지만
[괴로움은] 소멸하고 쌓이지 않나니
그는 이처럼 마음챙기며 유행하도다.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리.
‘‘Imassa kho, mālukyaputta, mayā saṃkhittena bhāsitassa evaṃ vitthārena attho daṭṭhabbo’’ti.
말룽꺄뿟따여, 그대는 내가 간략하게 말한 뜻을 이와 같이 자세하게 알아야 한다."
Atha kho āyasmā mālukyaputt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16. 그때 말룽꺄뿟따 존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났다.
Atha kho āyasmā mālukyaputt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 –
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
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17. 그때 말룽꺄뿟따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알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Aññataro ca panāyasmā mālukyaputto arahataṃ ahosīti.
18. 말룽꺄뿟따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Dutiyaṃ.
*각묵스님 역 상윳따 니까야 4권 214쪽- 寫經
** sati의 의미를 모색하면서 다양한 소설을 쓴적이 있던 경입니다.
아직도 본 경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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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개인적으로 '5부 니까야'에서 가장 난해한 경전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경전의 의미가 만만치 않은 이유는 위 경이 <혜해탈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보통은 <7식주2처>가 혜해탈의 대표적이라고 여겨지는데요, 디가 니까야에서 <7식주2처>를 설하는 경문을 유심히 보시면서 '7식주'가 무엇인가를 잘 살펴보시면요.............. 앞에 '욕계천'이 언급되고 '색계천'이 나오다가 '무색계천'이 나옵니다.[삼계의 천을 알고 있거나 찾아 보아야 함]..........결국 <3계가 '식의 주처(=식이 머물러 자라는 곳)'>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7식주2처>입니다. 위 경문과 관련이 있는 교설입니다. 특히 사띠와................. 3계의 다른 이름이 '명색'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쓴 '명색과 사띠'라는 글은 '봄봄'님을 위하여 쓴 글입니다. 왜 칠각지(=깨달음의 계기나 인연이나 고리)에서는 '법에 대한 사띠'와 '법에 대한 반야'와 '법에 대한 평정'만 언급되고 '다른 그 무엇에 대한 사띠, 반야, 평정'은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