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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沒雲臺) 숲에는 도깨비들이 산다
1
별빛도 달빛도 사그라진 흑야黑夜다.
빛만 없는 것이 아니다. 소리도 없다. 잡목들이 우거진 깊은 숲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바스락거림도 없다. 풀벌레들의 화음도 들리지 않는다. 무엇이든 빨아들일 것 같은 블랙홀의 세계. 극한의 살기를 방사한다. 태고太古 우주의 적막감인들 이다지 깊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깨비숲이다.
갑자기 정적을 깨고 나뭇가지들이 서걱거리는 소리,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 시퍼렇거나 노르스름한, 그리고 불그스레한 불들이 나타났다.
도깨비불이다.
도깨비불은 두 개가 하나의 쌍을 이루어 공중을 떠다니고 있다. 짙은 어둠으로 도깨비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고양잇과 동물들의 안광眼光처럼 그들의 눈에서 뿜어내는 섬뜩한 안광만이 살아 움직이는 불처럼 보인다.
‘휘리릭!’
‘스윽~!’
‘피리리리리…….’
비로소 제 세상을 만난 듯 숲속에 숨어있던 도깨비들이 하나 둘 빈터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서로를 용케 알아본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 숲에는 도깨비들이 모여 살았다. 단지 그들이 인간들의 눈에 띠지 않았을 뿐이다.
2
언제부턴가 다대포에 거주하고 있거나 다대포를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 도깨비를 직접 목격했다는 목격담이 떠돌았다. 또한 도깨비로 인해 겪게 되었다는 경험담도 떠돌기 시작했다.
인류는 제4차 산업혁명을 거쳐 과학문명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생체 복원의학의 발달로 수명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불로장생 시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화성 우주개척기지를 건설하여 상주할 이주민을 모집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듯 첨단과학문명 시대에 도깨비와 관련된 목격담이나 경험담은 옛날이야기들처럼 지어낸 이야기라든가 아님, 정신이 온건치 못한 사람들의 헛소리로 치부하기 예사였다.
7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다대포지역 유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최근 들어 도깨비들이 다대포해수욕장과 몰운대 주변에 자주 출몰한다는 소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모임이다.
몰운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이자 다대포 토박이 김관종은 실소부터 자아냈다.
“허허허……, 이 대명천지에 도깨비라니?”
다대 대우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장을 맡고 있는 조성태 역시 김 회장과 마찬가지로 도깨비 존재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다.
“귀신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도깨비는 좀 그렇다.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쏟아진다는 도깨비방망이도 그렇고, 또 염소나 소처럼 머리에 뿔이 돋아났다는 것도 그렇고…….”
몰운대 입구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사하구 요식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진종규 역시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도깨비의 존재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기 다, 얼라들을 위해 지어낸 야그여. 그리고 귀신 야그도 마찬가지여.”
그 자리에 모인 일곱 명의 유지들 가운데 다대동 구의회 의원인 옥복자만 유일하게 도깨비의 존재를 믿는 눈치였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사의의 세계도 있는기라요. 목격자가 한둘이 아닌 이상 그 진위를 조사해봐야 쓰것네요.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해수욕장 찾는 관광객이 없는 마당에 이거 흉흉한 도깨비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면 어찌 감당하시려고요.”
그날의 모임은 옥복자의‘조사단을 구성하여 소문의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도깨비 관련 소문을 헛소문으로 규정, 별다른 진전도 없이 밥만 먹고 헤어졌다.
3
8월로 접어들었다.
연일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다대포해수욕장은 좌측에 몰운대, 우측에 을숙도乙淑島를 지척에 둔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8차선 도로에 인접한 입구엔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대로 기네스북에 오른‘꿈의 낙조분수落照噴水’가 있다. 그리고, 해송으로 조성된 해변공원 너머로는 희고 부드러운 모래밭이 광활하게 펼쳐있다. 평소 패들보드나 카이트보딩, 서핑 등 다양한 레저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늘 활기가 넘쳐나던 곳이다.
그런데, 바캉스 피크를 맞이했음에도 다대포해수욕장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통제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경쾌한 음악의 선율에 맞춰 화려한 조명이 밤하늘에 수를 놓고 색색의 물줄기가 현란한 군무를 추던 꿈의 낙조분수 또한 통제된 공간으로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유물처럼 화석화되어 있다.
바야흐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의 창궐 이래, 인간들의 시간마저 흐름을 멈춘 채 송진 속의 박제된 모기처럼 단단하게 응고된 듯하다.
머리꼭지에 불을 지필 듯 작열하던 태양도 엉거주춤 물러나고 무더위가 한풀 누그러진 초저녁 무렵이다. 간편한 차림새에 슬리퍼를 신고 해수욕장을 찾은 가족 단위의 인근 주민들이 띄엄띄엄 눈에 띌 뿐,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라 여겨 질만한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질 않는다.
일몰까지는 아직 두어 시간 남아있는 터라 해수욕장 일대는 여전히 백광이 머물고 있어 마치 백야白夜 지대를 방불케 했다. 어떤 주민들은 백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자연이 주는 황홀경을 망연히 즐기고 있고, 또 어떤 주민들은 자녀들과 함께 모래성을 쌓거나 모래 속을 파고든 작은 게나 조개들을 캐내는데 열중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뒤 개펄을 질펀하게 드러낸 해안은 마냥 을씨년스럽다. 먼 바다에서 팔랑이는 파도들은 어둠을 이끌고 진군중이다.
키 큰 사내 하나가 몰운대에서 걸어 내려오고 있다. 그는 횟집들이 도열한 좁은 거리를 지나 다대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제법 긴 거리를 지나오는 동안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다.
거의 2미터에 이르는 큰 키에 홀쭉한 체구로 어찌 보면 바람 빠진 풍선간판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문어나 낙지 등 무척추동물을 연상케 한다.
그는 해송 숲을 지나 해수욕장 백사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었다. 걷는다기보다 스르르 미끄러져 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멀찍이서 그의 괴이쩍은 행동을 한동안 지켜보던 한 50대 여성이 사내에게 다가가 그의 표정부터 살폈다. 그녀의 얼굴에 일순 당혹감이 스쳤다. 그 사내의 얼굴은 인간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았다. 눈코입을 구분하는 윤곽이 선명치 않았고, 전체적인 모습도 풍선인형에 녹색 천 조각을 대충 둘러씌운 모습이었다.
사람이라기보다 사람의 형태를 갖춘 물체가 부력에 의해 둥둥 떠다니는 형국이었다. 밑에서 솟구치는 바람에 의한 부양이랄까. 그러나 그날따라 다대포해수욕장에 부는 바람이라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겨우 식혀줄 정도의 미풍에 불과했다.
사내로부터 전해오는 분위기는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그로인해 비몽사몽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용기를 낸 그녀는,
“아저씬, 누구세요?”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미미한 기척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윤곽 없는 얼굴의 입 부분,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작은 구멍에서‘쪼륵, 꼬르륵……’물 내려가는 소리,‘프르륵……’물거품이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였다. 굳이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공포나 두려움이 아닌, 일종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더 나아가 까닭모를 친근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함께 왔음직한 일행, 처음부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던 60대 초반의 배불뚝이 남자를 향해 다급히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 역시 예사롭지 않은 키 큰 사내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던 터라 신고 있던 슬리퍼까지 벗어던지고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뭔데?”
그녀는 턱을 들어 사내 쪽을 가리켰다.
“자기가 직접 봐봐.”
그도 사내의 얼굴을 살펴보곤 뭐라 할 말을 잊었다.
“……?”
키 큰 사내의 모습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단숨에 끌어 모았다. 한적하다 여겨졌던 해수욕장 그 어느 구석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숨어 있었을까. 사내 주위엔 얼추 오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로 혼잡을 이뤘다.
사람들은 그를 유심히 살피기 위해 눈의 초점을 끌어 모으려 안간힘을 썼다. 비록 저물어가는 시간대였으나 가까이서 눈코입을 살피는 데엔 큰 지장이 없을 만큼 주변은 여전히 밝았다. 그럼에도 사내의 모습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눈동자에 갑자기 백태白苔라도 낀 듯 눈앞이 흐릿해진 것이다.
눈에 이물질이라도 들어갔나 싶어 몇 번씩 눈을 비볐다가 다시 살펴보았으나 사내의 얼굴은 물론 그의 행색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니…….”
“이 양반, 사람이 맞아예?”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볼 때 키 큰 사내는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사물처럼 형체가 가물거렸으며 그로인해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유달리 호기심이 많은 30대 남자 하나가 딴엔 용기를 내어 그의 엉덩이 부위를 직접 만져보기까지 했다.
“아이고, 이게 뭐야?”
그는 사내의 몸에서 얼른 손을 떼며 자신의 손바닥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냈다. 뭔가 알 수 없는 찐득한, 송진 같은 것이 달라붙어 쉽사리 닦아낼 수 없었다.
“기분 나쁘게, 이게 뭐야?”
4
112는 물론, 다대1치안센터와 사하경찰서, 그리고 119소방대 등엔 주민들의 신고전화가 잇따라 걸려왔다.
“괴상한 사람이 다대포해수욕장 백사장엘 돌아다니고 있어요.”
112로 최초의 신고전화를 걸어온 사람의 얘기였다. 또 다른 신고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키가 엄청 큰데다 온통 시커멓기만 한 눈도 이상하고, 또 더 이상한 건 입이 아예 없어요.”
라 했고, 또 어떤 이는 비교적 상세하게 사내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옷차림도 이상해요. 초록색 천 쪼가리를 실로 대충 꿰맨 그런 옷차림이예요. 그렇다고 노숙자나 거지같아 보이진 않고요. 신발도 안 신었는데……. 그러고 보니 발도 이상하게 생겼네요. 타조 발처럼 세 발가락만 있고, 길쭉하고 뭉툭한 것이…….”
“그리고, 또 이상한 점이 있던가요?”
“키도 크고 깡말랐는데, 드러난 팔다리가 문어다리처럼 흐느적거리고……, 몸 전체가 무슨 푸른 이끼가 낀 것같이 외계인처럼 생긴 남자예요. 사람이 아닌 게 분명해요. 혹…… 도깨비인가?”
신고하는 사람마다 사내에 대한 인상착의가 조금씩 엇갈리기도 했다. 신고전화로 경황이 없는 마당에 장난전화도 심심찮게 걸려왔다. 그때까지의 신고내용만으로 그 사내를 체포할만한 구실이 없었기에 112상황실은 긴급출동을 자제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고전화가 다급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 사내가 다대포해수욕장을 벗어나 몰운대를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내 뒤를 바짝 따라붙었고, 몇몇은 휴대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빨리 오세요. 그 사람, 지금 몰운대 쪽으로 올라가네요.”
“앗! 눈 깜짝할 순간에 사라졌어요. 나무숲속으로 사라진 것 같아요.”
신고한 사람들이 들려준 그 사내에 대한 인상착의를 정리해보면,
키는 190센티 이상이고 휘청거릴 듯 깡마른 몸집에 누더기 같은 녹색 천 쪼가리를 둘렀다. 걷는 게 아니라 미끄러지듯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다. 흰자위 없는 검은 눈동자가 섬뜩해 보인다. 입이 있어야 할 자리가 밋밋하다거나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자그마한 구멍만 있다. 온몸이 녹색 이끼로 덮여있고, 찐득한 체액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고한 이들 대부분이 그 사내를 ‘도깨비’라는 것이다.
“도깨비?”
그렇다. 얼핏 보면 겉모습은 사람 같은데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존재, 그렇다고 귀신이라 할 수 없으니 도깨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거의 동시에 여러 팀의 경찰들과 소방대원들이 몰운대로 출동했다. 그러나 예의 그 사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으며 일대의 숲을 샅샅이 뒤졌으나 끝내 그의 신원은 확보할 수가 없었다.
이후 그 사내는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았다.
SNS를 통해 당시 촬영된 사진이나 동영상이 떠돌긴 했다. 하지만 화질이 선명치 않은데다 영상이 서로 겹쳐있거나 뒤틀려있어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은 도깨비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영상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내의 존재는 사람들 뇌리에서 쉽게 잊혀졌다.
5
몰운대 중턱엔 임진왜란 당시 다대포진 첨사였다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윤흥신尹興信 장군을 기리는 윤공단尹公壇이 있다. 또 다대포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 500여 척의 왜선을 상대로 싸우다가 전사한 정운鄭運 장군을 기리기 위한 사당도 있다. 사하구청과 지역 유지들은 매년 그들의 향사봉행을 거행해왔다. 그만큼 몰운대는 역사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몰운대란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여 붙게 된 이름이다. 원래는 작은 섬이었으나 낙동강물에 실려 온 토사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 육지가 되었다.
해발 78m에 불과한 얕은 산세임에도 해송군락은 더할 나위 없이 울창하다. 남단 기슭은 오랜 세월 침식에 의해 깎아지른 단애와 층암절벽을 이루고 곳곳의 기암괴석은 춤을 추듯 출렁이는 창파와 잘 어울린다. 몰운대의 절경은 그 자체로도 장관을 이루지만 다대포해수욕장의 드넓은 황금빛 모래밭과 어우러졌을 때 더욱 벅찬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정상에 서서 서북쪽으로 바라보면 장자도가 아련히 보이고 남쪽으로는 남형제도 북형제도 목도가 보이며 주위로는 동이섬 쥐섬 모자섬 고리섬 자섬 동섬 팔보섬과 그 외에도 이름 없는 크고 작은 숱한 섬들이 다투어 신비경을 드러낸다.
도깨비들이 모여든 곳은 빈터라 하기엔 여간 비좁은 곳이 아니다.
어른들 열댓 명이 겨우 비집고 들어설 그런 터무니없는 공간이요, 그것도 썩은 나뭇등걸과 제멋대로인 돌무더기로 앉아있기조차 불편한 공간이다. 그러나 인근엔 그만한 공간도 없이 잡목만이 빽빽하여 그 빈터가 그나마 도깨비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먼저 도착한 도깨비들 차지로 빈터엔 더 이상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어 보이지만 뒤늦게 도착한 도깨비들은 막무가내로 비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섰다. 그때마다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포개진 도깨비들의 몸이 한꺼번에 균형을 잃고 위태하게 이리 쏠리거나 저리 기우뚱거렸으나 특유의 균형감각 때문인지 금방 안정세를 유지했다.
도깨비들은 그 누구 하나 빈터의 공간이 협소한 것에 대해 불편하다고 불평을 늘어놓거나 탓하지 않았다. 도깨비들이 마음만 먹으면 보다 넓은 공터를 손쉽게 마련 못할 것도 아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러한 생각을 갖지 않았다. 도깨비들 특유의 천성이 워낙 게으르고 낙천적이라 그 정도의 불편함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다.
도깨비들에겐 암컷이 없다. 그럼에도 태생적으로 중성이 아닌 모두 수컷들뿐이다. 그러니 인간이나 뭇짐승처럼 암수 교접에 의해 새끼 도깨비가 태어날 리 없는 것이다. 도깨비들은 원생동물처럼 스스로 분열하거나 자기복제를 하지 못할뿐더러 그렇다고 무성생식을 통해 증식할 수도 없다. 그들 도깨비들은 도깨비왕국 허주국虛主國에서 쫓겨났거나 아니면 도망 나온 도깨비들이다.
도깨비들 또한 엄연히 신적 영험靈驗을 지닌 잡신이기에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귀기鬼氣는 여간 살벌한 것이 아니다. 귀신이나 망령은 물론 짐승들이나 벌레들까지 가급적 그런 도깨비들의 영역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 수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깨비들이 무리지어 머물고 있는 몰운대 숲도 지하수가 거꾸로 흐를 정도로 도깨비 기운이 유난히 강성할뿐더러, 그 기운이 하늘 까마득한 곳까지 뻗혀있어 죽은 짐승의 사체도 쉬 썩지를 못하고 날짐승도 그 숲을 통과하려고 기를 쓰다보면 몇 번의 곤두박질로 날개가 쉬 부러지곤 한다.
뿐이랴. 몰운대 숲 어디쯤엔 허주국으로 통하는 여러 관문 중의 하나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
그렇다고 도깨비들이 임의대로 인간세상과 허주국을 오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세상으로 쫓겨나거나 도망쳐 나온 도깨비들은 여간해서는 허주국으로 되돌아 갈 수가 없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도깨비들과 인간들 사이엔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서로를 탐색하려는 술래잡기가 암암리에 지속되어 왔다.
도깨비들은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하면서도 인간들이 사는 주변을 기웃거리길 좋아했다. 도깨비숲과는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인간 세상에는 온갖 흥밋거리와 즐길 거리들이 지천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숲의 도깨비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일몰 후면 늘 겪어온 일상처럼 어두워진 인간세상으로 나아갔다.
언뜻 보기엔 도깨비가 인간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하나 막상 도깨비를 발견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비명부터 질러대고 혼비백산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도깨비들은 몸을 숨기고 어둠을 틈 타 인간세상을 염탐해보는 도리밖엔 없다.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우악스러워 뵈는 도깨비들이 생쥐조차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무성한 잡목 속으로 바람 스며들듯 스며들어 몸을 감추는 날렵한 모습들 또한 요술이나 다를 바 없다.
위장술 또한 뛰어나 몸을 감춘 도깨비들을 찾아내기란 광활한 백사장에서 잃어버린 바늘 찾기와 다름없다.
주변의 풍경을 거울처럼 자신의 몸에 투영시켜 주변 사물과 분간을 못하게 하는 위장술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이들로 하여금 자신을 직접 볼 수 없게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다차원적으로 크게 휘어 왜곡시키는 경우도 있고, 몇몇 도깨비들에겐 다른 사물로 직접 변하거나 스스로의 모습을 사라지게 하는 신통력을 지녔다.
도깨비 세상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렇지만 인간들의 세상은 도깨비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달라졌다. 수천 년 동안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던 인간세상이 불과 일백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소달구지로 화물을 실어 나르던 것이 어느새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로 화물과 인간들을 실어 나르게 되었으며, 박 넝쿨이 우거졌던 초가지붕들은 간데없고 논과 밭이 뭉개지고 산과 숲이 뭉텅 파헤쳐지면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십 층짜리 아파트들이 마치 하늘을 찌를 듯 겁나게 들어섰다.
라디오가 등장했는가 싶더니 어느 새 텔레비전이 등장했고, 이제는 집집마다 컴퓨터나 승용차가 없는 집이 없으며, 어른이든 아이든 휴대폰을 지니지 않은 인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창이나 칼, 또는 활이 주 무기였던 일백년 전과 비교해도 탱크니 핵미사일이니 초음속 전투기니 따위의 최신예무기들은 도깨비들로선 상상조차 못했던 무기들이다.
무엇보다도 도깨비들의 수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인간들의 수효는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것에 대해 도깨비들은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6
도깨비들이 모두 도깨비숲을 빠져나가자 빈터엔 붉은외뿔만이 덩그마니 남겨졌다.
아무리 뱃장 좋은 도깨비일지라도 아무도 없는 적적한 곳에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서글픈 노릇이고, 마음 또한 심란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젊은 도깨비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할 바엔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더 속 편하다 여겼다.
붉은외뿔은 인간 나이로 치면 곧 천수를 바라보는 구백예순세 살이다. 아직까지 도깨비로 살아가기에 버거울 만큼 기운이 크게 쇠한 것은 아니나, 장구한 세월을 살아온 탓에 푸른 빛깔을 띤 그의 피부는 쭈글쭈글한데다 거뭇한 검버섯까지 잔뜩 끼어있어 마치 오랜 풍상에 시달려온 이끼 낀 고목의 외피와 아주 흡사해보였다.
게다가 펑퍼짐한 몸통에 작달막한 키로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굳어버릴 것 같으면 밑둥치만 남은 고목과 거의 분간할 수 없으리만큼 그는 고목을 무척 닮아있었다.
그렇듯 우스꽝스런 그가 나름의 카리스마를 유지해가며 이 숲의 도깨비들에게 어른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연장자라는 이유 외에도 큼직한 두상과 그 위에 얹혀 진 붉은 빛깔의 거대한 외뿔 때문이다.
도깨비는 생긴 모습에 따라 수명이 제각각이다. 몇 천 년 이상 살 수 있다는 사물도깨비들과는 달리 인간형상을 하고 있는 도깨비들의 수명은 대략 육백년에서 길어야 팔백년 남짓이다. 물론 천년을 넘어 이천년이나 삼천년까지 살았다는 도깨비도 있었다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에 그도 그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에효! 나도 엔간히 살만큼 살았지…….”
근래 들어 붉은외뿔로 하여금 늘 자신감을 잃게 하는 것은 그의 노쇠한 육체가 아니라 지레짐작케 하는 그의 마음이다.
그가 늘 즐겨 앉아왔던, 그래서 도깨비들 사이에‘붉은외뿔자리’라 불리는 나무 그루터기를 찾아 걸터앉은 붉은외뿔은 7개월 전 제 수명을 다하고 마침내 하나의 검정색 차돌로 변해버린 막역한 친구‘왕손이’를 떠올렸다.
비록 친구라지만 왕손이는 붉은외뿔보다 무려 일백사십팔 년이나 뒤늦게 태어났으니 붉은외뿔에게 있어 그는 코흘리개에 불과했고, 그러한 나이 차이는 도깨비 서열 간에도 무시할 수 없는 연륜으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그 일백사십팔 년이란 긴 세월의 터울도 둘이서 단짝이 되어 사백년 가까이 어울려 지내다보니 별 의미는 없었다.
“그래. 누가 뭐라 해도 내게는 왕손이 밖엔 없지.”
왕손이에 대한 그리움이 너울대는 파도처럼 그의 가슴 속으로 밀려들었다. 붉은외뿔은 품안에 고이 간직한 낡은 가죽주머니 속에서 유난히 반질거리는 작고 둥근 차돌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바로 왕손이가 화한 차돌인 것이다.
붉은외뿔은 범어梵語로 된 주문을 나직하게 읊조리며 차돌을 그의 손바닥 안에서 연신 굴려댔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높고 위대하신 이여, 지극히 높으신 이여, 원하옵건대 그 뜻을 이루게 하소서…….”
잠시 후 하얀 연기가 그의 움켜쥔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스멀거리며 새어나왔다.
붉은외뿔이 읊어대는 주문의 템포가 점점 빨라지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자 그의 손바닥에 움켜쥔 차돌이 점차 붉게 변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붉은외뿔은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차돌을 슬그머니 허공에 내려놓았다.
차돌은 허공에 떠있는 상태에서 한동안 휘황한 광채를 눈부시게 쏟아내더니 이윽고 그 광채 속에서 온 몸이 붉은 빛을 띤 건장한 도깨비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외뿔 형님!”
“왕손이!”
“어쩐 일로 또 나를 불러내셨소?”
“어쩐 일은? 보고 싶어서 불러냈지.”
왕손이는 그 이름 왕손이답게 과연 오른쪽 주먹이 웬만한 어른 머리통보다 더 컸다. 뿐만 아니라 주먹 관절마다 굳은살이 박혀있길 그 굳은살들이 마치 도깨비 뿔처럼 우악스럽게 보였다.
“오늘도 형님은 출타를 않고 숲에서만 머무시는구려.”
“나가봐야 별 흥도 없고…….”
“아가들이 안 끼워주려는 건 아니고?”
“아가들이야 오히려 나를 못 끼워서 안달이지.”
“그럼, 왜 혼자 우두커니 숲속에 남아있는 거요?”
“예전 같지가 않네.”
“기력이 쇠한 건 아니고?”
“뗏끼, 이 도깨비야! 나 이래봬도 아직까진 젊은 놈 못잖게 멀쩡해.”
붉은외뿔 눈앞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왕손이는 물론 실제의 왕손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차돌 속에 박혀있던 왕손이의 영혼을 불러낸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붉은외뿔의 신묘한 주문에 의해 실제의 모습처럼 왕손이의 환영을 잠시 불러냈을 뿐이다.
붉은외뿔은 매일 밤마다 빈터에 홀로 남아 왕손이의 환영을 불러내었다.
그로써 그는 잠시 동안이지만 꺼져가는 자신의 불씨에 대한 두려움을 접어두고 적잖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질리도록 장구한 세월을 살았다 한들 막상 코앞으로 다가온 죽음에 대한 부담감에 있어 붉은외뿔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7
몰운대 도깨비숲의 빈터에 한 소년이 찾아들었다. 물론 스스로 찾아든 것은 아니다. 저녁 무렵 몇몇 친구들과 더위를 피해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몰운대로 장소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어둠에 갇혀 친구들을 잃고 헤매다 제풀에 빈터로 들어선 것이다.
사람들은 도깨비숲의 존재를 까마득히 모른다. 설혹 안다 하여도 잡목이 우거져 길도 없는 음침한 곳을 부득불 찾아들 까닭이 없다. 무엇보다 도깨비숲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도깨비들한테만 열려있어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붉은외뿔은 허주국에서 추방된 이래 도깨비숲에 자리 잡고 어언 육백삼십 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지만, 여태껏 도깨비숲에 발을 디딘 인간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 소년이 빈터에 나타난 것이다.
소년은 도무지 겁이 없다. 어두컴컴한 도깨비숲의 음산한 기운이나 황량함에도 아무런 동요가 없을뿐더러 붉은외뿔을 발견하고도 그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질문을 마구 퍼대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붉은외뿔이었다.
“아저씬, 도깨비인가요?”
“……, 그런 넌 누구냐?”
“난, 다대초등학교 6학년 김석찬인데요.”
“여긴 사람이 들어올 데가 아닌데, 어찌 알고 들어왔는고?”
“오다보니 오게 됐는데요. 근데 아저씬 도깨비처럼 참 무섭게 생겼네요. 머리에 큼직한 뿔도 있고…….”
“도깨비니까 무섭게 생겼지.”
“다대포에 도깨비들이 나타난다 카던데, 아저씨가 바로 그 도깨비인가요?”
“도깨비를 봤다는 사람들이 있던가?”
도깨비들도 인간들만큼이나 생긴 모습들이 다양하고 성격 또한 천양지차이다. 비교적 곱상하게 생긴 도깨비가 있는가 하면, 지옥 염라대왕 못잖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도깨비들도 있다. 대체적으로 기괴하고 우악스럽게 생긴 이유는 그들을 만든 옥황상제의 뜻에 의한 것이다.
악독한 인간들의 사후를 관리하는 곳이 지옥이다.
살생의 죄를 지은 인간은 등활等活지옥에 갇히고, 살생과 도둑질을 일삼아온 인간은 흑승黑繩지옥에 갇힌다. 요사스럽고 음탕하기까지 한 인간은 중합衆合지옥에 갇히고, 살생과 도둑질은 물론 요사스러운데다 음탕하고 더 나아가 술주정을 심하게 부린 죄까지 지은 인간은 규환叫喚지옥에 갇힌다.
뿐만 아니라 대규환大叫喚지옥이라 하여 위의 네 가지 죄에 더하여 망언과 거짓말을 일삼아온 인간이 갇히는 지옥이 있으며, 초열焦熱지옥은 위의 다섯 가지 죄에 더하여 선악과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는 옳지 못한 견해를 지닌 인간을 가두는 지옥이다.
그리고 대초열大焦熱지옥이라고 위의 여섯 가지 죄와 순결을 지켜야 할 여승 등 여성 성직자를 강제로 범한 음탕한 인간을 가둬두는 지옥도 있다.
그 외에도 부모를 죽였거나 부처를 손상시킨 죄, 불법을 비난하는 죄를 지었을 땐 아비阿鼻지옥에 갇혀야 한다.
이와 같이 여덟 개의 지옥을 팔대 지옥이라고 하며, 각 지옥마다 다시 열여섯 가지의 지옥이 있어, 팔대 지옥에 작은 지옥까지 모두 합하면 무려 백서른여섯 가지의 지옥이 있는 셈이다.
그 밖에 팔대 지옥 옆에는 악독한 인간들로 하여금 온몸이 얼어붙어 쩍쩍 갈라지게 하고 지독스런 추위로 생각마저 얼어붙게 하는 팔한지옥八寒地獄도 있다. 그렇듯 인간들이 생전에 지은 죄질에 따라 그들을 가둬두는 지옥도 제각각이며, 그러한 지옥들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 태어난 것들이 도깨비들인지라 대부분 생긴 모습들 또한 그리 험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머잖아 동이 틀 시각이다. 붉은외뿔은 소년을 서둘러 도깨비숲에서 내보내려 했다.
“쫌 있으면 놀러나갔던 도깨비들이 들이닥칠 텐데, 그리고 너를 보면 가만두지 않을 텐데…….”
“와! 신난다. 나 도깨비들 다 만나고 갈래요.”
육백삼십 년을 도깨비숲에 거주하며 인간세상을 염탐해온 붉은외뿔로서는 도깨비와 인간이 서로를 알아봐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가기 싫다며 버둥대는 소년을 붉은외뿔은 간단한 주문을 외고 입김을 불어 다대포해수욕장 백사장으로 쫓아냈다.
멀리서부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세상으로 나들이 갔던 도깨비들이 동틀 무렵에 즈음하여 무리지어 숲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밤중에 무슨 좋은 일들이 그리 많았던지 도깨비들마다 신이 나서 한껏 떠들어댔다.
도깨비들이 모두 숲으로 되돌아오자 오싹한 적요만 떠돌던 음습한 숲도 한때나마 활기로 넘쳐났다. 빈터는 다시 비집기 경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나중에 도착한 도깨비들로 동요가 일었고, 그때마다 까치발을 하고 선 도깨비 무리는 좌우로 또는 앞뒤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기우뚱거렸다.
붉은외뿔은 쫓아낸 소년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이젠 이 도깨비숲도 도깨비들에겐 안전지대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이 도깨비숲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