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열린아동문학> 2014 여름, 61호 / 이 계절에 심은 동시 나무
<솟대> 시인 박예분
박예분, 그녀를 나는 ‘슈퍼우먼’이라 부른다 _ 윤이현
신작 동시: 꽃불 외 4편 _ 박예분
내가 쓰는 동시는… _ 박예분
이 계절에 심은 동시나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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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분, 그녀를 나는 ‘슈퍼우먼’이라 부른다
글. 윤이현
“예뿐아ㅡ, 예뿐아.”
박예분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던 것으로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거기서 얻어진 이름이 ‘예분’아니었을까 싶다. 흔치않은 이름이기에 쉽게 기억되고, 우리네 정서에 맞는 ‘정’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나는 박예분을 ‘슈퍼우먼’이라고 부른다. 그는 작품을 쓰는 일이나 생을 견디어 내는 모습이나 사회생활에서도 바르고 빠른 판단력을 지녔다. 뛰어난 추진력과 열정으로 그가 처한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도 강한 생활력을 보여 왔기에 더욱 그렇다. 그를 바탕으로 박예분의 문학 활동을 간추려 본다.
먼저 작품 얘기부터 풀어보자면, 그는 마흔이라는 불혹의 나이에 동시 「하늘의 별따기」와 「나는 알지요」로 아동문예문학상(2003년)을 받으며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어서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솟대」가 당선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최근까지 십여 년 사이에 그는 아동의 본질을 공부하기 위해 아동학을 전공하였고, 그에 그치지 않고 대학원에 입학하여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현재 졸업학기로써 석사 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군대를 다녀와서 전북대학교에 복학한 아들과 전주교육대학교에 다니는 딸, 대입준비를 하고 있는 고3 아들까지 뒷바라지 하며 주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낸 동시집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 『엄마의 지갑에는』, 동화 『이야기 할머니』 『삼족오를 타고 고구려로』 『두루미를 품은 청자』, 역사 논픽션 『뿔난 바다』, 그림책 『피아골 아기고래』 외 20여 권, 초등 글쓰기 교재 3권 등을 출간했으니, 그야말로 슈퍼우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뿐 아니다. 그는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당선 후, 일간지 「어린이동아」에서 ‘박예분 선생님의 글쓰기 교실’을 2년 6개월 동안 연재하였고, 전북일보 객원기자(007년~2009년)로 활동했으며, 최명희문학관 파견작가와 전주시민대학에서 ‘동시읽기 및 창작지도’와 ‘역사논술지도’를 해왔으며, 전주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2009년부터 현재까지 ‘박예분의 책 읽는 라디오’에 매주 새로운 동시집과 동시를 소개하고 있다. 올해부터 일간지 「어린이동아」에 문예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고, 교육현장에서 아동청소년 글쓰기 지도 및 어린이 시인교실과 문학 강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의 열정은 문학단체 활동에서도 바람소리가 휙휙 난다. ‘한국작가회의’ ‘전북작가회의’ ‘책날개 작가회’ ‘전북아동문학회(부회장)’, ‘동시읽는모임(전북지부장)’, ‘동심의 시’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가 2010년 여름에 전주시로부터 후원을 받아 <한국동시문학회> 문학기행 및 <동시읽는어머니모임> 전국대회를 전주한옥마을에서 1박 2일 동안 진행하였다. 그로 인해 전국의 동시인 및 동시읽는어머니들로부터 지금까지 찬사를 듣고 있다.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동시를 사랑하는 슈퍼우먼이다. 그가 「동시는 나의 밥그릇」 (전북아동문학 특집), 『작가의 눈』 18호)을 발표한 것처럼 ‘동시는 나의 밥그릇’이라고 당당하게 말한 것을 보고 무척 가슴에 와 닿았다. 그에게 동시는 IMF이후 어려워진 생활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틀 수 있게 해 주었고, 일상에 활력과 삶의 의미를 찾게 하여 문학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자기 색깔이 뚜렷한 동시인 ‘박예분’
슈퍼우먼인 박예분의 첫 동시집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청개구리, 2007)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이달의 우수문학’ 도서에 선정되었으며, 전북아동문학상을 수상한 동시집이다.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편들로 이루어졌다.
나는 나무오리예요.
다른 친구들처럼
물속을 헤엄치지 못하고
꽥꽥 소리내지도 못하지만
하늘 닿는
긴 장대 끝에 앉아
바람을 만나면
뱃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며
너무 세게 불지 말라 부탁하고
비를 만나면
농사짓는 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며
너무 많이 내리지 말라 부탁하고
별을 만나면
아이들 가슴에 반짝반짝
따뜻한 별 하나씩
품게 해 달라 꼭꼭 부탁해요.
- 「솟대」 전문
이준관 시인은 동시집 『햇덩이 달덩이 빵 한 덩이』를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박예분 시인의 시는 발상이나 표현이나 어디 한 군에 어려운 데가 없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게 썼습니다. 아이들 호흡에 맞게 시의 길이도 마침 맞고 표현도 평이하며, 내용도 동심에 어울리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박예분 시인의 시적 개성을 잘 보여주는 시가 바로 ‘솟대’라는 시입니다.」
박예분 시의 특징과 색깔을 잘 짚어내 준 말이다. 「솟대」의 ‘나무오리’처럼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또 한 편의 시는 「덩이」이다.
흙덩이, 복덩이, 햇덩이
달덩이, 돌덩이, 메주덩이
눈덩이, 얼음덩이, 불덩이
똥덩이, 소금덩이, 황금덩이
모두 작은 덩이로 이루어졌지만
하는 일은 다 다르다.
나는 총소리 울리는
저 바다 건너
배고픈 아이들 배를 불리는
빵 한 덩이 되고 싶다.
- 「덩이」 전문
봉숭아 꽃물 같은 사랑의 동시
박예분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 『엄마의 지갑에는』(신아출판사, 2010)은 동시 「종이상자집」외 19편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2009년)을 받아서 출간하였다. 이준관 시인의 해설을 덧붙인다.
「박예분 시인의 동시집 『엄마의 지갑에는』은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찬 시집입니다. 가족 같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동물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시를 읽으면 마음이 사랑의 빛깔로 물들여지고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박예분 시인의 동시는 여름이면 텃밭에 심은 봉숭아꽃잎을 따다가 엄마가 물들여주는 봉숭아꽃물처럼 우리의 마음을 봉숭아꽃빛 사랑으로 곱게 물들여줍니다. 손톱에 곱게 물든 봉숭아꽃물을 보면서 엄마의 사랑을 느꼈듯이 박예분 시인의 동시도 사랑의 마음을 담뿍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박예분 시인의 동시를 ‘엄마가 물들여주는 봉숭아꽃물 같은 사랑의 동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항상 두둑한 엄마 지갑
만날 돈 없다는 건 다 거짓말 같아.
엄마는 두꺼운 지갑을 열어 보며
혼자서 방긋 웃기도 하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나는 몹시 궁금해서 살짝 열어 봤지.
에계계,
달랑 천 원짜리 두 장뿐이었어.
대신 그 속에 어릴 적 내 사진이
활짝 웃고 있지 뭐야.
거기에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랑 누나 사진까지 들어 있지 뭐야.
- 「엄마의 지갑에는」 전문
은행 담벼락에
종이상자를 접착테이프로 이어 붙여
겨우 겨우 칼바람을 막은
조그만 집
참깨, 콩, 팥, 마늘, 생강 따위를
맨땅에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가
주인이다.
사 주는 사람도 없는데
종일 좁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
콜록콜록 기침하던 할머니.
오늘은 종이상자 집이 텅 비었다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일까
핼쑥한 할머니 얼굴 떠올라
자꾸자꾸만 뒤돌아보며 걷는다.
- 「종이상자집」 전문
생생한 생활 속의 소재 찾기와 재미성
최근에 발표한 그의 신작들을 살펴보면 실생활 속에서 얻은 소재들이 많다. 예로, 시골에 거주하는 친정부모님 댁에서 기르는 동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그는 자연의 이치와 깨달음을 많이 얻었다고 한다. 「우리 집 수탉」( 『아동문학평론』 2013, 겨울호)에 나오는 늙은 수탉은 그가 실제로 보았던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배추벌레를 잡아다 주면
늙은 수탉은 혼자 먹지 않는다
꼬오꼬꼬 꼬오꼬꼬꼬
암탉을 불러와 어서 먹으라 한다.
꼭 우리 할아버지 같다
옥수수 가루를 뿌려주면
젊은 수탉도 혼자 먹지 않는다
꼬오꼬꼬 꼬오꼬꼬꼬
어린 닭들을 어서 오라 부른다.
꼭 우리 아버지 같다.
- 「우리 집 수탉」 전문
신현득 선생은 『아동문학평론』(2014, 봄호)에서 「우리 집 수탉」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닭의 생활을 재미있게 작품으로 소천했다……중략……닭의 가족생활을 화합이 잘 되는 가정에 비유한 점이 좋다. 이 시는 투명하다. 할아버지 노릇하는 늙은 수탉, 아버지 노릇하는 젊은 수탉은 작품 안에 놓인 재미요, 알맹이다.」
박예분은 일상생활에서 얻은 소재들을 쉬운 말로 길어 올린 직설적인 표현으로 시의 재미를 더한다. 「내버려 둬」( 『오늘의 동시문학』), 2014, 봄 여름, 45호)에 등장하는 강아지도 그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라고 한다.
우리 집 강아지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목청 터져라 무섭게 짖어댄다.
숙제하던 내가
제발 조용히 좀 해! 소리치면
엄마가 거든다.
내 버려 둬!
저도 밥값 하는 거야.
- 「내버려 둬」 전문
그의 동시는 대체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직설적인 표현은 독자들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시어들이 우리의 일상 언어에 가까운 점도 더욱 친근감을 갖게 해 준다, 이는 곧 그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잘 전달된다는 이야기다.
박예분의 마음속 이야기
앞에서 살펴보았던 ‘동시는 나의 밥그릇’(『작가의 눈』, 2012년.18호)에 발표한 글에서 그는 좋은 동시를 쓰기 위해 늘 스스로 다짐한다.
「나는 늘 각오하듯 내게 타이른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련되고 정제된 동시를 쓰고, 무엇보다 삶의 진정성과 감동을 아동청소년들과 함께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다소 어설픈 내 글이 어딘가에 부딪혀 깨지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쓰고, 작가끼리 돌려 읽는 작품 말고 일반 독자들이 찾아 읽는 글을 쓰고, 새로운 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상상의 날개 밑에 실험의 알, 긍정의 알, 포용의 알을 쉼없이 품자고.」
박예분 시인의 이러한 다짐은 틀림없이 우리나라 동시단에 하나의 큰 획을 그을 만한 작품을 남길 것이라 믿고 그의 문운을 빈다.
글출처 : 2014년 <열린아동문학> 여름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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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
1941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1976년 월간 《아동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다.
동시집 『야옹이는 신 났다』 외 8권, 동화집 『다람쥐동산』외 4권 등을 펴냈으며,
한국아동문학작가상, 대한민국동요대상(노랫말부문), 전북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