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법지에 올렸던 글입니다... 횡격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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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마음이란?
서정록
우리 말에는 ‘마음’이 들어간 말이 참 많다. 몇 개만 보자.
마음이 통하다/안통하다.
마음이 내키다/안내키다.
마음에 두다/내려놓다.
마음이 있다/없다.
마음이 차다/따뜻하다.
마음이 늙었다/마음이 젊다.
마음을 사다/잃다.
마음을 삭이다/썩이다.
마음을 풀다/마음에 맺히다.
마음이 가볍다/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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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우리말, 마음에는 참으로 오묘한 뜻이 담겨있다. 마음을 흔히 영어로 mind로 번역하는데, mind는 오히려 우리말의 정신에 가깝다. 정신과 마음은 다르다. 그렇다고 마음은 지식도 아니다. 지성도 아니다. 오히려 두뇌를 사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감정도 아니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일까?
영어에 falling in love란 말이 있다. fall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뜻이니, falling in love는 사랑에 빠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호수나 바닷물에 뛰어드는 다이빙과 비슷한 은유를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서양에서는 횡격막을 중심으로 위와 아래를 구분하는 전통이 있다. 횡격막은 돔으로 된 집의 천장처럼 위로 둥글게 부풀어 있는데, 아마도 이런 횡격막이 건축물의 지붕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횡격막 위는 형이상학의 부위요, 횡격막 아래는 형이하학의 부위로 구분한다.
따라서 횡경막 위부분은 빛과 밝음의 세계요, 정신의 세계인 반면, 횡경막 아랫부분은 그늘과 어둠의 세계요, 감정의 세계이다. 횡경막 위에는 머리와 가슴이 있고, 횡격막 아래에는 배가 있다. 우리는 머리와 배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현대의 뇌과학자들은 우리 몸에 두 개의 뇌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머리의 두뇌요, 다른 하나는 배이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면 배에 탈이 나기 쉽고, 배가 탈이 나면 머리가 혼미해지기 쉽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하등동물은 배가 두뇌의 역할을 하고, 고등동물은 머리가 두뇌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본래는 배가 두뇌의 역할을 하다가 점점 진화해서 두뇌로 올라오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배의 두뇌는 완전히 퇴화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비록 계산하고, 말하고 하는 논리적인 것은 머리의 두뇌에게 넘겨주었지만,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배가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에서 보듯이, 감정이 뒤틀리면 배에 탈이 나게 된다. ‘단장(斷腸)의 아픔’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원숭이 새끼를 잡아가자, 그 어미 원숭이가 애가 타서 따라오다가 죽었는데, 배를 갈라보니 장이 뒤엉켜 끊어져 있었다는 일화에서 나온 이 말은 배가 감정의 중심임을 말해준다.
배는 흔히 대지, 또는 바다에 비유된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배는 어둠의 세계이다. 땅속이나 바닷속이 그러하듯이. 그와 동시에 삶과 죽음의 과정과 관계된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
따라서 falling in love란 말은 횡격막 위에서 횡격막 아래로 다이빙하듯이 뛰어내리는 것을 말한다. 계산적인 머리를 내려놓고, 사랑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뛰어드는 것, 그것이 바로 falling in love이다. 그렇게 횡격막 아래로 다이빙해서 뛰어내릴 때, 그는 자신의 에고를 죽이고, 우주의 근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존재의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때 그는 사랑 속에서 지고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려워하면서도 몹시 타고 싶어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롤러코스터를 타면 위로 올라갈 때는 별로 흥분을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내려올 때는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의식은 사라지고, 온 몸이 긴장한 채 뭔가 모를 짜릿한 기쁨과 두려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겁을 내면서도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어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래로 떨어지는 행위, 또는 몸을 던져 물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 속에는 뭔가 모를 대담하고,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 자신을 뛰어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자부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영웅으로 만든다.
falling in love란 그런 것이다. 오직 사랑하나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내던질 때, 사랑은 열매를 맺고 그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간다. 사랑을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진중하게 뭔가를 해야 할 때면, 곧잘 의식을 단전에 두라고 말씀하신다. 단전은 배꼽 아래 안쪽에 있는 곳이다. 우리는 복식호흡을 할 때 아랫배가 빵빵해지는 것을 느끼는데, 그 빵빵해지는 배의 중심이 바로 단전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온 의식과 몸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아무 생각도 없다. 그저 멍멍한 가운데, 나의 몸이 우주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 모를 힘이 솟아난다.
명상을 해본 이들은 안다. 깊이 명상 속에 침잠하게 되면 출렁이던 의식은 고요하게 가라앉고,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렇게 의식과 감정과 육신의 구별이 사라지고, 나의 존재가 끝없이 확장된다는 것을. 그리하며 종내는 나와 외부세계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말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횡격막 위의 의식의 센터와 횡격막 아래의 감정의 센터가 하나 되었을 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머리의 두뇌와 배의 두뇌가 하나가 되었을 때의 상태 말이다. 그래서 의식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다. 그렇다고 멍한 것도 아니다. 틱낫한 스님이 명상할 때 자주 쓰는 말이 있다. mindfull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애매한 말이다. 마치 의식을 마냥 확장하라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falling in belly라고 하면 알아듣기 쉬울지도 모른다. mindfull이란 실상은 의식을 내려놓고 단전 속으로 고요히 침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횡격막 아래 단전으로 다이빙해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난다.
따라서 우리말 마음의 의미는 명백하다. 계산하지 말고, 이익을 탐하지 말고, 남을 이기려하지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온 정성을 다해 하라는 말이다. 또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마음은 지식보다도 크고, 지성보다도 크다.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 근본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사람이 경박해지고, 이해타산을 따지게 된다. 그리고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악을 쓰고 덤벼든다.
우리말 마음은 그처럼 신비롭다. 그것은 늘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반듯하게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이란 말을 통해 이땅의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나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땅의 선조들처럼, 우리 역시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의로운 일에 기꺼이 마음을 낼 일이다.
첫댓글 마음을 잘 써야 겠습니다
올려주시는 글마다 참 고맙습니다^^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