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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 J의 클래식 바스켓볼 중공을 이기고 따낸 금메달 기적의 주인공 - 신산(神算)
Doctor J 추천 6 조회 2,844 23.01.12 17:01 댓글 3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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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1.12 17:31

    첫댓글 왜 저런 위대한 농구인들이 현대에 와서 후배들 앞길을 망치기만 하는지 ㅠㅠ

  • 23.01.12 17:51

    농구만 잘하지 인성은 바닥이니까요...

  • 23.01.13 00:34

    와... 정말 훌륭한 칼럼입니다!!! 박사님의 모든 칼럼이 그렇지만 이 글은 정말 우리 회원들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네요.
    인기 게시물로 올라가서 다음 메인에 걸려 있어야할 퀄러티네요. 농구대잔치 원년부터 현대빠인 제게는 <응답하라 1982> 같은 느낌입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23.01.12 20:52

  • 23.01.14 11:52

    @Doctor J 어렸을 때 성씨와 운동 종목간에 관계가 있구나 하고 믿었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그런 편향을 만든게 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김씨 타선과 배구의 "강만수/강두태" 농구의 "신동파 / 신선우 / 신동찬" 선수들이었습니다(신동파 선수 플레이는 직접 보진 못했지만요). 그런데 신선우 선수가 이렇게 대단한 선수였는지는 몰랐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23.01.12 20:48

    센터가 감독을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은데 신선우 감독은 센터였군요? 박사님 덕분에 또 새로운 사실 배워 갑니다~

  • 작성자 23.01.12 20:52

    네, 분명히 포지션은 센터였는데 소프트웨어는 포인트가드였습니다.

  • 23.01.12 20:50

    이 경기 라이브로 본거 같은데. 남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때는 정말이지 기뻤었죠. 마지막에 박수교였나 신선우였든가 공을 확 뿌리던 기억이 나네요
    잘 봤습니다 박사님

  • 작성자 23.01.12 21:25

    저 당시 방송사 측에선 이 결승전을 한국이 이길 것으로 보질 않았기 때문에 라디오로만 중계해줬고 경기 이긴 다음에 밤 11시던가... 밤중에야 녹화 방송을 해줬습니다. 약간 편집된 방송분이었는데 경기 자체를 편집한 것 같진 않았고, 작전타임이나 중간중간 경기가 멈췄을 경우만 잘라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공 뿌린게 박수교, 그리고 그 공을 쳐낸 선수가 이민현 선수죠.

  • 23.01.12 20:56

    @Doctor J 그랬군요
    기억이 엉망진창이네요
    역시 남농구는 관심이 별로 없었나봐요 ㅜㅜ

  • 23.01.12 21:00

    신산이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23.01.12 21:38

    저도 이 경기는 기억납니다. 남농 금메달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죠. 조동우가 빠진 골밑을 189센치의 시선우가 지켜야 했던, 다행이 중국의 골밑이 무티에츄 은퇴 후 2m에서 2m5정도로 비교적 스몰라인업(?)이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신선우는 천하의 허재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올라운드플레이어의 원조였던 선수입니다. 조동우 혼자서 외롭게 지키던 그나마 조동우도 부상때문에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짧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23.01.12 21:45

    사진으로 얼굴보니 반갑네요 왼쪽부터 방열 감독님 옆에 (뒷줄)이민현, 신동찬 박수교 박종찬 안준호 임정명
    아랫줄 신선우 이장수 박인규 이충희 이영근... 조명수선수는 안보이는 듯

  • 작성자 23.01.12 21:52

    조명수 선수가 사진을 찍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 작성자 23.01.12 21:53

    박종천 (O)

  • 23.01.12 21:57

    @Doctor J 박종천이죠^^. 조동우와의 영원한 게임 시작 점프볼 라이벌

  • 작성자 23.01.13 13:07

    @리오타 이경재 감독의 인터뷰 중 : "무티에추 2m35, 일본의 오까야마 2m25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국내선수가 조동우였네. 몸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말이지. 맨발이 197cm였어. 거기다 윙스팬이 2m5...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서 영양 상태가 좋아 신체 밸런스가 특별했지. 또 100미터를 12초에 달리는 런닝 능력도 매력적이었고. 점프력도 뛰어나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덩크가 그 친구의 전매특허였지."

    너무나 원시적인 당시 선수관리 때문에 신선우, 조동우, 이런 선수들이 롱런하지 못한 게 참 안타깝습니다.

  • 23.01.19 07:23

    @Doctor J 조동우 선수와는 동농에서 몇차례 함께 농구했었는데 그때도 엄청나셨습니다

  • 작성자 23.01.19 14:10

    @이사장 👍👍

  • 23.01.12 21:54

    위 선수들을 신생팀인 현대와 삼성이 각각 반띵해갔고 이민현만 양보해서 기업은행으로

  • 23.01.12 21:56

    저 시대에도 일단 몸이 잘 만들어져 있네요

  • 작성자 23.01.12 22:00

    웨이트 트레이닝이 전혀 체계적이지 않은 아마추어 수준이었는데도, 오히려 70~80년대 선수들의 피지컬이 엄청 좋았습니다. 정말 무식하게(?) 운동하고 몸 만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조동우, 임정명, 신선우, 박인규, 박수교, 김동광, 이민현, 조명수, 다들 몸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 23.01.12 22:05

    @Doctor J 예 글과 댓글 감사합니다

  • 23.01.13 10:31

    저한테는 그냥 현대 걸리버스 감독님이셨는데 굉장히 특별한 유형의 언더사이즈 센터셨군요. 결정적 플레이 짤에서 선수들의 기쁨이 느껴집니다.

  • 23.01.13 11:17

    키만 작았지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엄청났네요.

  • 23.01.13 14:25

    와. 영상감사합니다.
    이런 선수인줄 알고 감독일때 봤으면 좋았을텐데@@

  • 23.01.13 14:40

    단신센터였는데 슛은 없었나요?

  • 작성자 23.01.13 14:44

    미드레인지 점프슛이요? 그건 별로였습니다. 저 당시는 센터가 외곽슛을 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 23.01.13 14:52

    @Doctor J 그것까지 앞서나가진 못했군요ㅎㅎ 잘봤습니다.

  • 23.01.14 12:42

    신산 신선우..
    그의 플레이에서 강한 허슬이 느껴집니다.

  • 23.01.20 22:46

    와...센터였다니 ㄷㄷㄷ 당연히 가드 아니면 스포정도(?)라고 생각했는데

  • 작성자 23.01.20 23:09

    중고교 시절부터 은퇴하는 순간까지 올라운더 센터였습니다. 부상 전엔 점프력과 힘이 엄청 좋아서 단신이었어도 빅맨 역할을 하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고요.

    허재가 가장 닯고 싶어했던 우상이었습니다. 허재가 왜 그토록 리바운드와 패스에 신경을 많이 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 23.01.20 23:23

    @Doctor J 닥터 제이님께 또 배워갑니다

  • 23.01.30 20:50

    저랬던 신산이 감독으로 이상민-추승균-조성원-맥도웰-재키존스를 만났으니 얼마나 신났을지.. 그시즌 끝나고 재키존스를 SK에 보내지만 않았어도 3연속 우승 가능했을텐데.. 그래도 감독으로도 대단했지만.. 그때의 이조추맥키 라인업이 진짜 쉴세없이 몰아치는 파도같았는데 두고두고 아쉽네요 물론 저는 대우팬이어서 뼈속깊이 그때의 현대걸리버의 막강전력을 기억하고 있지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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