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궤 위 속죄소(贖罪所)”(레위기16:11-15/참고 요8:3-11) 2012. 8. 5.
지난 주간 미국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로 일하던 친구장로와 함께 점심초대를 받아 시내에 나갔습니다. 장소가 서초동 법조단지여서인지 낮 12시에 이르자 여기저기에서 식사하러 직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남녀 불문하고 위는 흰색 아래는 검정색 계통의 옷을 입은 것이 특별히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여기가 대한민국의 법과 양심과 권력의 중심지가 맞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하면서 대화는 자연히 법과 신앙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만 사실 성경의 중요한 주제가 바로‘법과 신앙’ 즉‘율법과 믿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율법으로 정죄받아 심판과 멸망에 처하게 되었지만, 한편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얻게 하심이 바로 성경의 진리이고 복음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번은 예루살렘에서 어떤 재판문제에 본의 아니게 연루케 됩니다. 1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8장3절 이하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한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는 말씀으로 사건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예수님께서 무리를 가르치시고 있던 성전 마당은 법정으로 변하고 말았다고나 할까요? 이 법정의 원고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고, 피고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한 여자이며, 이 법정의 증인들은 많은 어른들과 젊은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에게‘선생이여’라고 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죄인을 재판하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 이 사건의 재판장이 되어 달라는 것이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기 위한 고도의 교묘한 정치적인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돌로 치는 일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간 안식일을 범하게 하는 자로 계속 당국의 의심을 자아낸 모든 일과 함께, 예수님을 율법을 범하게 하는 자로 확증해 주는 셈이 될 것이니 자동적으로 그를 이단으로 정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이 만일 돌로 치라는 강경한 판결을 내려준다면, 지금까지 그를 따르던 억눌리고 고통하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비롯한 세리와 죄인들이며 그 외 많은 평민들이 예수님에게서 배신감을 지닌채 돌아서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더구나 돌로 쳐 죽이라는 주장은 로마법으로 예수님을 옭아 넣을 수 있는 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 공회는 사형을 구형할 수는 있어도 그 집행에는 로마 총독의 허락이 필요했으므로, 이 건은 로마의 법에 고소할 수 있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을 딜레마에 처하게 한 아주 교활한 재판의뢰였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요한복음 본문8장6절 이하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난 무리들을 일단 진정케 하자, 저들이 더 이상 묻기를 마지 않는 것을 보시고는 몸을 일으키며 저들을 향하여“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돌로 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태5:17)고 말씀하신대로, 죄에 대한 율법의 준엄함을 보이신 선언인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을 붙이십니다.“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입니다. 신명기17:7절의“이런 자를 죽이기 위해서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는 율법에 근거한 책임있는 증인 노릇을 하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3절이하에서 예수님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잇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하신바 있습니다.‘밝히 볼 수 있는 눈’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기가 죄가 있고서는 남을 객관적으로 정확하며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정죄하는 바른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먼저 저들에게 죄를 범한 여자를 돌로 칠 증인으로서의 분명한 책임을 언급하시면서, 성난 저들 무리의 양심에 호소하신 것이며 동시에 양심으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려는 뜻에서 몸을 굽혀 뭔가를 땅에 쓰신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다 사라졌다는 사실은 결국 모든 인생은 하나없이 죄인임을 입증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사건의 추이를 보면서 우리는 골로새서2:3절의 말씀 즉“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고 하신대로, 예수님은 이상한 재판의 이상한 재판장이 되셨지만 그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의 놀라우신 지혜와 은혜를 본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은 이어집니다 10-11절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대답하되‘주여 없나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시니라”
고발하던 자들이 다 떠났으니 자동적으로 기소는 기각이 된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심은 그 여자가 무죄라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용서하실 뿐아니라,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시는 경계의 말씀을 통해서 위로와 격려를 더하신 것입니다. 일찍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한 시편 말씀에도 기록되기를,“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2)라고 한 대로 신약성경은 이 예언의 성취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3:17),또“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태9:12-13)라고 말입니다.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구약의 성소에 예표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별히 성소의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휘장 안 지성소에는 법궤라고도 하며 언약궤라고도 하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증거궤가 있는데 그 안에는 증거판 즉 하나님이 친히 쓰신 십계명 두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언약의 율법이지요. 또 이 증거궤 위에 시은좌(施恩座)라고도 불리는 속죄소(贖罪所)가 있어서 이 속죄소를 증거궤 위에 얹도록 하였습니다. 속죄소 양 끝에는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된 각각 두 날개를 편 두 구룹이 있는데 물론 이 모든 것은 황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백성의 속죄를 위한 제물의 피를 가지고서 휘장 안 속죄소 앞에 나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의 죄를 속하여 주시기에 속죄소라 일컫고 이것이 곧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시은좌라고 일컬었던 것입니다. 속죄라는 말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바칠 속(贖)’즉‘제물을 바쳐 죄를 면제받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증거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으로 정죄받은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화목케 되어 하나님 앞에 나오기 위해서는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에 속죄제물이며 화목제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위한 대속물이며 화목제물이라고 말입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10:45),또“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가14:24)고 하셨으며, 로마서 3장에서도 이 구속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3:23-25)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죄를 지은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하심은 단순한 위로 격려 차원이 아니며, 죄인 여자를 위하여 예수님 자신이 돌을 맞으러 오신 분으로서의 사죄의 권세를 지니신 주님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사죄의 권세는 우리의 사죄를 위한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하고 있는 권세와 권능인 줄 믿습니다.“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눅5:24)
이와 같이 옛날 구약시대의 성막과 성전은 그 실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오심으로 그 역할을 마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성전예배의 변화를 말씀하셨지요.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이 예수님께 묻기를,“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4:20)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시면서, 이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아버지는 찾으신다고 말씀하여 주심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막 성전제사에 관한 모든 말씀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참된 원형과 그 예배로 인도하시는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잘 알며 바로 믿을 수 있도록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현재 102세(1911-)이신 우리 교단의 원로이시며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방지일 목사님께서 얼마 전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앞으로 당신께서 더 연구하고 싶은 말씀은 레위기와 아가서인데, 이유는 레위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를 배울 수 있으며, 아가서를 통하여는 참된 가정의 의미를 바르게 정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통독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만 레위기 대목에 이르면 보통 지루해 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을 고쳐야 하겠다고 봅니다.
성전의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으나,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를 위한 자신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신 후에는 우리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히브리서는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4,16)고 하였으며, 또 히브리서 10:19-20절에는“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과 저의 마음 속에 지성소 안의“증거궤 위 속죄소”를 마음 속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율법 말씀인 십계명 언약의 두 돌판이 들어있는 증거궤와 그 위를 덮고 있어서 대속의 피가 뿌려지는 속죄소 말입니다. 이는 히브리서8:5절 말씀인“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와 같이, 영원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나타난 십자가에 대한 예표이며 그림자이며 거룩한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 말씀으로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를 정죄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증거궤 위 속죄소”의 의미와 더불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깊은 뜻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는“증거궤 위 속죄소”를 마음 깊이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오는 한 주간도 진리의 복음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며,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며 주님을 섬기며 사는 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