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에 대한 풍성한 기록은 1611년 허균이 조선8도 식품과 명산지에관해 쓴 도문대작(屠門大皭)에는 검은엿과 흰엿이 처음 기록되어 있고, 그 후의 문헌에도 계속 기록된다.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의 검은엿 만들기 재료는 쌀 소두 1말, 엿기름 1되 3홉, 더운물 1동이 반이다. “쌀을 잘 씻어서 물에 충분히 불려서 시루에 안쳐서 쪄놓고, 더운 아랫목에 항아리를 놓고 항아리 속에 엿기름가루 2줌을 놓고 뜨거운 지에밥을 그 위에 넣고, 손담그기에 알맞는 정도의 더운물을 붓고 엿기름가루 남은 것은 축축하게 물을 뿌려놓았다가 밥 위에 방망이로 잘 저어서 덮어 두었다가, 7~8시간 후에 보면 맑은 물이 떠오를 것이니, 주머니에 퍼담아 주물러 쪄서 식기 전에 솥에 붓고 끓이라”고 씌어 있다. 이렇게 만든 검은엿을 잡아 늘여서 공기가 들어가서 흰색으로 된 것이 흰엿이다.
엿의 원료는 찹쌀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그 밖에 멥쌀·옥수수·조·고구마녹말이 많이 쓰인다. 각 지방에 따라 유명한 엿은 전라도의 고구마엿, 충청도의 무엿, 강원도·경상도의 황골엿은 일명 옥수수엿, 강냉이엿 제주도에는 꿩엿, 닭엿, 돼지고기엿, 하늘애기엿, 호박엿 등이 있다. 엿은 우리의 생활 중에 ‘엿을 먹으면 시험에 붙는다.’고 하여 시험을 치르러 가는 사람에게 꼭 합격하라고 선물하기도 하고 당일 아침에 엿을 입에 물고 가기도 하며, 혼례 때에는 엿을 보내면 시집살이가 덜 심하다고도 하며 시집식구들이 엿을 입에 물고 먹는 동안 새 며느리 흉을 잡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한다는 등의 풍습이 아직도 통속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고려시대 이규보의〈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한과류 중 엿이 제일 먼저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엿의 단맛 때문에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서의 이용가치뿐만 아니라,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저장 특성 때문이었다.
또 특산물을 이용한 저장식이었다는 점에서,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엿이 만들어져 특색을 띠었다.
조선시대는 엿은 식사대용의 비상식량으로 쓰였다. 공문서를 전달하는 역원들의 경우하루평균 주행거리가 80-100리에 이르는데, 이들은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손바닥만한 갱엿을 배낭 속에 넣고 다녔다는 것이다.
특히 엿은 임신한 여성에게 권장식품이었다고 한다. 임신한 여성에게는 물론 ,뱃속의 아이가 단계에 맞춰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엿은 머리를 많이 쓰는 경우에도 애용됐다. 양반가문의 부녀자들이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에게 간식거리 이였고, 할머니들이 금지옥엽 (金枝玉葉) 같은 손자들에게 조청을 먹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두뇌를 많이 쓰는 경우 정맥 속의 혈당이 많아 소모되는 데 엿은 혈당을 보충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이라고 하니 가히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