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치민까지는 그 때도 국적기 직항이 있었지만, 수도인 하노이에는 아직 국적기 직항이 없었다(지금은 직항이 있음). 베트남 항공은 직항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했다(홍콩 경유). 역시 여행사 통해 발권하면 베트남 항공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보다 저렴하다. 베트남은 아직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하노이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뭔가 경직되고 갑갑한 듯한 분위기를 느꼈었다. 아마 사회주의 국가라는 선입견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입국심사대에 앉은 사람은 군복 비슷한 걸 착용하고 제모를 심사대 위에 반듯이 올려놓고서 딱딱한 표정으로 입국심사를 하고 있었는데 다소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입국심사대만 통과하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짐을 알았다.
하노이 공항은 하노이 시에서 자동차로 한두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하노이는 호치민 시보다 위도상 훨씬 북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기후는 호치민보다 무덥고 습한데, 하노이가 지리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자동차로 하노이 시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부닥치는 어려움이 복잡한 시내 교통이다. 자동차가 붐비는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가 그야말로 차선 구분도 없이 빽빽히 뒤섞여 달리고 있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다닐 수 있는게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차선을 잘 지키지 않아 가끔 시장바닥 처럼 붐비는 혼잡한 교통흐름속에서 불쑥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오는 경우가 있어 깜짝깜짝 놀래곤 했었다. 자동차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운전면허도 있고 운전도 한국에서 10년 넘게 한 능숙한 운전자도 현지 운전기사를 고용하고 있는데, 이유는 외국인이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 현지인을 다치게 하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엄청난 치료비를 당장 물어내라며 협박하는 사례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운전을 아무리 잘해도 그런 혼란 속에서 곡예 운전을 한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현지고용인 기사는 전혀 위험을 못느끼는 듯 무엇에 쫓기는 듯, 무엇을 쫓는 듯 과속을 하며 험하게 차를 몰았다.
시내 중심에 외국계 호텔이 여러 개 있었고 우리 일행은 대우호텔에 투숙하게 되었다. 그 때도 시즌이 아니어서 호텔은 거의 텅 비어 있었고 숙박료도 조금 할인 받았던 기억이 난다. 가끔 마주치는 투숙객들은 모두 외국인들이었고 현지인은 고용인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15층쯤에 있는 호텔방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햇살 일렁이는 푸른 수영장이 보이고 조금 너머로 넓은 호수공원이 보인다. 아침마다 6시에 일어나 죠깅을 하곤 했었는데 여름이라 해가 일찍 떠 이미 새벽부터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있는 현지인들이 많이 보였다. 5일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았지만 내가 본 현지인들 중에는 뚱뚱하거나 다소라도 비만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운동을 부지런히 해서이거나 날씨가 무더워 몸이 무겁고 살이 두꺼우면 견딜 수 없어 기본 체형이 그렇게 형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체구는 우리 일행들과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작은 편이었고 몸매도 날씬해서 특히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모두 예뻐보였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시내 여러 곳을 관광하다 보면 전혀 사회주의적 분위기는 느낄 수 없고 완전한 시장경제가 자리를 굳힌 듯 보인다. 베트남에 특히 유명한 것 하나가 자수인데 체구가 작아 손도 작고 섬세하여 아마 그런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공예품 가게에서 판매되는 것들은 모두 하나하나가 뛰어난 작품들이었고 그 중 예술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들은 만든이의 싸인도 들어있고 $700 까지 호가하는 것도 있었다. 대부분은 $30 내지 $120 정도인데 현지인들 한달 평균 봉급이 50불 내지 80불인 점을 감안하면 현지에선 꽤 고가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내 관광 중 북한 대사관 앞을 지날 때 '서울에서 오신 분들은 항상 여기를 들른다'는 가이드의 말이 기억난다. 대사관 건물은 한국대사관이 건물의 한층을 빌려 사용하고 있는데 비하면 꽤나 큰 편이었다.
호치민 공원에 가면 호치민을 볼 수 있다. 물론 돌아가신 분이지만 그냥 깊은 잠에 빠져있는 사람처럼 얼굴 때깔이 고왔다. 100 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긴 줄에 서서 일렬로 지하 냉장 묘소로 줄줄이 입장하여 윗층 난간을 돌며 행렬을 따라 밑층 관속에 누워있는 호치민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지나가게 된다. 밖에 날씨가 너무 무더워 시원한 묘소 안에 좀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열차처럼 계속 이동해야하는 행렬속에 있는지라 억지로 다시 끌려나올 수 밖어 없었다. 무장군인이 부동자세로 지키고 섰고 구경온 사람들도 모두 엄숙한 표정이라 감히 분위기를 흐트릴 상황이 아니었다. 바깥 날씨는 가히 죽음이라 할만하다. 아무리 그늘에 들어가 있어도 등에 땀이 항상 주루룩 흘러내린다. 호텔방 창밖에는 항상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져 있다. 이른 새벽과 한밤중에 잠깐 숨쉴만 하고 그 외는 거의 혼수상태로 끌려다녔던 것 같다. 묘소 주위로 공원이 형성되어 있어 한바퀴 빙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뭘 보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여튼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많이 붐볐었던 건 기억이 나는 듯. 가이드를 맡은 한국 유학생이 호치민의 유언에 대해 뭔가 얘기했었던 것 같다. 호치민은 원래 유언으로 죽고나면 꼭 화장을 하라고 지시를 하였는데 후계자들이 그 유언을 어기고 호치민을 미라로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죽고나서도 여전히 대중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듯이 그의 후계자들도 호치민의 후광을 계속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베트남의 정치부패와 부조리가 시작되었다.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하노이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제일 유명한 해안 관광지가 '하룽베이' 아래하에 용룡, 그리고 영어의 bay(만)이 합쳐진 이름이다. '용이 내려온 만'이란 뜻이다.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걸렸지만 현지인 기사가 차를 얼마나 험하게 운전하는가를 생각하면 아마 보통 사람들은 좀더 걸리지 않을까 싶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작은 지방도로 그리고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에서는 차들이 많았다. 특히 대우자동차가 제일 많이 보였다.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은 최고였다. 과거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에 대해서도 미제국주의의 강요에 의해 그런 결정을 내린 박통 정권을 비난할 뿐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선 아무런 유감이 없다는 나름대로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한 교묘한 이론을 만들어 가지고 있었다.
하룽베이가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은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볼 수 있는 진기한 해상경관 때문이다. 부두에서 30인승 정도 돼 보이는 발동선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요리사까지 딸린 배지만 물가가 워낙 싼 곳이라 모두 포함하여 $100 밖에 들지 않았다. 해상공원까지 가는 동안 여러척의 작은 고기잡이 통통배들이 접근해오더니 달리고 있는 배에 나란히 달리다 밧줄을 이용해 우리 일행이 탄 큰배에 고정시키고 엔진을 꺼버렸다. 처음엔 '이것들이 혹시.. 헉, 해상강도들이 아닌가..' 불안했었지만 관광객 상대로 금방 바다에서 건진 다양한 종류의 횟감들을 거래하는 어부들임을 알게 됐다. 물고기를 그물에 떠 보여주면 손님이 보고서 물이 좋아 보이면 '얼마'하고 흥정을 붙인다. 몇번 실랑이 끝에 한 보따리 횟감을 사도 고작 몇십불 정도.. 요리사에게 건네주면 회를 떠주기도 하고 베트남 전통식으로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회에는 역시 반주가 빠질 수 없는 법. 베트남에는 유명한 전통주가 있다. '넵모이'이라는 쌀로 빚은 술인데, 알콜 40도의 맑고 투명한 색의 누룽지 맛이 나는 정말 구수하고 맛있는 술이다. 현지에선 우리나라의 소주처럼 제일 흔한 술이라 사람들이 별로 그 술의 진가를 모르고 있는 듯 했다. 현지인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포도주 같은 것을 고급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넵모이의 진미를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들이라고.. 베트남은 1년 2모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쌀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다. 베트남 제일의 수출품이 쌀이다. 다음이 아마 커피인가.. ? 그래서 쌀로 만든 전통식품들이 만은 것 같았다.
해상공원에 도착하면 수상가옥들이 둥둥 떠 있고 그 위에 그물을 양쪽 기둥에 매어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는 남자들이 간혹 보인다. 여자들은 다들 뭔가 부지런히 일에 열중하고 있다. 이리저리 이동할 수 있어 폭풍이 몰아치면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도 있는 듯. 그런 수상가옥에는 한 두척 작은 나룻배 같이 생긴 동력선이 묶여있다. 대부분 고기잡이가 주업이지만 그런 나룻배로 관광객을 태우고 여기저기 안내하며 부수입도 벌고 있는게 보통. 우리 일행을 태운 동력 나룻배를 몰고 온 사람은 두 명의 어린아이들이었다. 나룻배 운전을 맡은 작은 남자애는 10살 정도 돼보였고 앞쪽에 앉은 여자애는 14살 정도 돼보였다. 여기 애들은 아무리 어려도 무슨일이든 생계를 돕기위해 뭔가를 하고 있는게 보통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가장인 남자는 빈둥빈둥 놀고 있는 듯해 보여 부럽기도 하고 애들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애들은 밝고 명랑하고 전혀 어두운 기색은 볼 수 없었다. 어느정도 해상공원에 접근하기 시작하면 저멀리서 부터 기다란 병풍을 둘러 놓은 듯, 깎은 듯한 절벽들이 벽을 이루고 막아서 있다. 어떤 곳은 절벽이 둥글게 성처럼 형성되어 자연히 터진 한 쪽 좁은 입구로 물이 들어와 가운데 빈곳을 채우고 있었다. 성 안쪽에는 물이 두 길 정도로 많이 깊지 않았는데 폭풍이 칠 때 작은 고깃배들은 그 곳으로 피신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 밖에 비슷한 재질로 형성된, 동굴을 품은 작은 섬이 있었는데 말굽처럼 바다를 감싸고 있는 안전한 지형이라 안쪽에 수상가옥들이 몇 채 더 있고 따가운 햇살 아래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있는 풍경이 너무 평화롭고 한가해 보여 돌아돌아 보며 쉽게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하노이와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하노이에서 서양인 여자 배낭여행객을 거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마 혼자 다니는 걸로 봐서 베트남어를 조금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어를 하는 현지인의 안내가 없으면 관광을 다니는데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치안은 아직 사회주의 국가라 처벌이 엄해서 인지 어떤지 상당히 안전한 편이며 실제로 일행 중 한명과 둘이서 밤늦게 하노이의 빈민굴처럼 보이는(우리 기준에) 거리에 있는 노래방에 간적이 있었는데 신변의 위험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동행이 베트남에 몇년간 계속 체류하고 있던 사람이라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지만 강도보단 바가지 쓰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U.A.E / 쿠웨이트 / 테란]
아랍에미리트는 페르시아만에 인접한 비교적 조그만 나라이다. 처음 한국 주재 UAE 대사관에 비자 신청하러 갔을 때 건물이 허름하고 후진 분위기여서 이 나라는 아주 가난한 나라겠구나 하는 선입견을 가졌었다. 특히 쿠웨이트 대사관의 깨끗하고 단정한 이미지와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Emirate가 부족을 의미하듯이 여러개의 부족국이 하나로 통합되어 이루어진 국가이며, 그 중 하나인 아부다비가 현재 수도로 되어있다. 또 하나의 부족국이었던 두바이는 수도는 아니지만 이 나라 경제의 중심지 기능을 맡고 있는 중요한 도시이며 국제적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 - 두바이 간 국적기 직항이 취항하고 있으며 주 2회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두바이를 여행하려면 유럽으로 연결편이 많으므로 유럽에 배낭여행을 갈 때 귀국길에 한번쯤 들렀다 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일부러 비싼 항공료 들여 중동지역만 다녀오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지만 굳이 가보고자 한다면 겨울철이 좋을 것이다. 두바이의 면모는 처음의 선입견과는 판이하게 정원처럼 단정하게 꾸며진 훌륭한 도시였다. 오히려 쿠웨이트와 비교하면 쿠웨이트가 후줄구레한 낡은 도시 같다는 인상이 드는 반면 두바이는 금방 지어진 새 건물들이 즐비한 신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한겨울철인 12,1,2월 삼개월 정도는 지상 낙원이라 할 만큼 기후가 온화하고 여러가지 관광거리도 많아 관광객들이 몰리는 계절이라 한다. 그 나머지 기간 동안은 무덥고 습기가 많으며 모래바람이 날리는지라 건물 밖에서는 단 몇십분을 견디기 힘들 정도이다. UAE는 특히 50도를 오락가락하는 무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높아 거의 건물 밖에 나돌아다닌다는 건 불가능한 듯 하였다. 호텔 창밖으로는 물방울이 맺히다 못해 물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였고 한낮에 밖에 나가면 덥다기 보단 현기증으로 금새라도 쓰러질 것 같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 쿠웨이트는 한여름에 세계 최고기온을 나타내는 지역으로 보통 60도까지는 쉽게 올라가는 지역이지만 공기가 건조하여 땀이 흘러내리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이 UAE와 대조적이었다.
UAE는 중동국가들 중 비교적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두바이는 상업의 중심지로서 다른 도시들과 달리 돈이면 거의 모든 것이 자유로운 도시인듯 했다. 술도 마시지 못할 뿐 아니라 여자는 외출시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다니게 하는 회교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두바이에서는 매춘이 성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다른 지역을 여행하며 여러번 들었던 것 같다. UAE나 쿠웨이트 같은 곳은 배낭여행과 같이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물가가 너무 비싸 여행하기 어려운 지역이 아닌가 싶다. 중동지역의 뜨거운 맛, 외부 세계와 다른 분위기 등을 한번 경험해본다는 것 외에는 별달리 관광객을 끌만한 요소가 없는 듯 하다. 다른 지역을 여행하다 경유하여 그냥 한번 들러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바이에서는 호텔에서 주선한 사막투어 외에는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사막투어는 급경사의 모래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곡예운전을 펼치는 짚차관광에 해거름하여 마당이 넓은 유목민 전통숙소에서 밸리댄스를 감상하며 양고기 바베큐 등 부페식을 먹을 수 있는 코스이다. 수도인 아부다비 역시 상당히 크고 깨끗한 도시였다. 아부다비 최고층 빌딩 옥상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시 전경은 페르시아만의 푸른빛과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와 보였다. 쿠웨이트는 페르시아만의 안쪽 연안에 접하고 있는 작은 도시국이다. 창밖으로 내다본 연한 연두색 바다빛이 너무 끌려 카메라 들고 30분 정도 걸어나갔다 미세하고 건조한 모래바람에 뜨거운 햇볕을 맞고 쓰러질 뻔 했던 기억이 난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중동 회교국들 중 통제와 규율이 가장 엄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UAE와 쿠웨이트에서는 한국인 식당 등에서 커튼치고 몰래 술을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란에서는 식당 등 공공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완전 금지되어 있었다. 차에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동승할 수 없고 버스도 남자 칸 여자 칸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여자는 외출시 반드시 차도르를 쓰야하고 남자도 이른 아침시간 외에는 밖에서 짧은 바지를 입을 수 없다고 했다. 종교 경찰이 거리를 순찰다니다 적발되면 바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외국인인 경우 여자는 머리카락을 내놓고 다니는 정도는 허용을 한다고 하고 거리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처음 이란에 입국했을 때 들은 주의사항들이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사는 곳은 여기나 저기나 크게 다른게 없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어 있지만 그로 인해 집집마다 밀주를 만들어 먹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돼버렸고 아파트에 사는 경우 저녁에 누군가 벨을 눌러 나가보면 밀주 판매하는 사람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남자 여자 분리정책을 펴고 있지만 자연의 섭리를 어찌 막으랴, 남녀 데이트 장소로 알려진 카페가 시내 군데군데 성업 중이고 이제 막 결혼해 부임해온 무역관 젊은 직원의 말에 의하면 시내 어떤 거리에 나가면 '야타족'까지 설치고 다닌다고 한다.
이란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심한 통제사회는 아닌 듯 보였다. 오히려 몇가지 종교적인 규율만 잘 지킨다면 치안에 대한 걱정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테란이 아닌가 싶다. 8월 한여름이었지만 지중해 여러 지역에서와 같이 공기가 약간 건조하면서 덥지 않고 한낮에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생활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후였다. 가지가지 종류의 당도 높은 과일도 풍성하고 물가 또한 엄청 싸며 사람들도 호의적이고 친절한 편이었다. 외국인에 대해 이중가격제도를 적용하고 있어 가끔 호텔이나 관광지 입장료 등이 현지인보다 7 ~ 8 배나 비싼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기준으로는 저렴한 편이라고 하니 물가가 얼마나 낮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주식인 빵은 굶주리는 자를 없게 한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거의 휴지 값만큼이나 싼 것이 특징이다. 너무 싸고 흔하다 보니 사람들이 빵 알기를 정말 휴지처럼 여기고 있어 낭비가 심한 듯 보였다. 바게뜨 빵을 먹을 때 항상 속의 부드러운 부분을 다 긁어내고 딱딱한 껍데기만 먹는게 정말 이해가 안되는 습관이었다. 바게뜨 빵을 몇개 먹고나면 식탁옆에 바게뜨 빵 속살이 수북이 쌓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이었다.
테란 시내에서는 보석 박물관이 볼 만하고 시내 가까운데 있어 구경을 갔었고 계획에 없던 이스탄불 관광을 위해 테란에서의 일정을 줄이기로 했다. 철갑상어알인 캐비어가 나는 내륙해 카스피해에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을 조정하는 바람에 그만 접어야 했다. 기후 때문인지 여러가지 과일 때문인지 미인들이 많은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란의 정부구조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이 있고 그 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종교지도자가 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국무총리 정도의 권한을 행사하고 종교지도자가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한다.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 개방 정책이 종교세력에 의해 번번히 좌절되어 온 것도 이런 권력구조 때문인 듯.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아시아나 직항이 있지만 역시 터키 항공 등 외국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저렴할 것이다. 실제 그런 일을 겪지는 않았지만 터키항공은 예약 confirm을 하고 나서도 갑작스레 취소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자주 확인하거나 공항에 출발시간 보다 많이 여유있게 도착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리고 화물 수속시 직원에 따라 초과 중량에 대해 추가 charge하는 사람이 있고 어느정도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짐이 많이 초과되지 않는 경우는 한 직원이 규정대로 요금을 추가징수하려고 하면 다른 줄에 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도 안돼면 계속 매달려 사정을 해보면 통하는 수가 있으니 쉽게 포기하지 말기를.. 이 경우 절대 직원에게 허용 중량이 정확히 얼마냐? 라든가, 규정을 보여달라 등등 따지는 것은 절대 금물, 해당 직원을 스스로 더 규정에 옭아매는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삼가기 바란다. 그래도 안봐주는 경우, 가방을 열어서 허용치 중량이 될 때까지 짐을 천천히 꺼집어낸다. 이 경우에도 절대 화난 표정을 하거나 직원에게 반항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천천히 짐을 꺼집어내다 보면 왠만큼 지독한 인간이 아니면 그냥 통과시켜주는 경우가 많다. 짐을 꺼내고 허용중량이 되면 그냥 꺼집어낸 거 도로 넣어서 통과시키면 안돼겠냐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해본다. 뒤에 기다리고 있는 승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과가 커진다. 그래도 안돼면 작은 짐 통과시키고 큰 짐을 그냥 끌고서 탑승구로 들어가면 승무원이 '이건 너무 짐이 부피가 크니 화물칸에 싣는게 좋겠다'며 자기들이 알아서 실어준다고 하니(선배에게 들은 비법) 짐 가방이 많은 경우 한번 시도해 보기 바란다.
이스탄불은 아시아쪽 이스탄불과 유럽쪽 이스탄불이 보스포러스 해협에 의해 나눠져 있고 몇개의 구름다리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해협은 그렇게 폭이 넓지는 않지만 깊이가 깊어 대형 유조선 등 선박의 왕래가 많은 편이다. 해협 양안으로 가파른 언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해협의 깊이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고 폭이 제일 좁은 곳에 축조된 성곽에서 화살을 날리면 해협을 건너는 적 함대에 큰 위협이 됐었다는 얘기로부터 해협의 폭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양편 언덕을 타고 그림같은 집들과 고 사원들이 한폭의 풍경화처럼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행이 묵었던 호텔은 탁심 도린트 호텔로 $100 정도로 비싸지도 않으면서 내부시설이나 서비스는 여느 별이 빛나는 호텔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스탄불에서는 호텔 직원이나 관광 가이드, 관광객 외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상인과 관광객은 서로 눈빛만으로도 의사전달이 가능한 듯하니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을 듯.
호텔에 문의하여 보스포르스 해협 투어에 나섰다. 50인승 정도의 2층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 열두어 곳되는 선청가에 한번씩 들리며 한바퀴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투어였다. 해협에는 이 정도 크기의 유람선부터 작은 고기잡이 보트, 꽤 큰 화물선, 대형 유조선까지 다양한 종류의 배들이 서로 스치며 가로지르며 떠다니고 있었다. 해협투어를 끝내고 여러 곳을 다녔는데 통역없이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호텔에서 얻어온 이스탄불 관광명소 약도를 가지고 한 곳 한 곳 걷거나 택시를 타고서 찾아다녔는데 너무나 많은 곳을 돌아다녀 모두 기억을 할 수는 없지만 어느 한 곳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소피아 성당(규모가 작지만 유사품이 시내 곳곳에 많이 늘려있음), 블루모스크, 그랜드바자, 로마시대 지하저수지, 박물관, 고성 등 등 볼거리가 넘치는 도시였다. 소피아 성당은 멀리서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오랜 세월 풍파와 지진을 견뎌오며 스러져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공갈빵 처럼 텅빈 내부에는 보수공사를 위해 받혀놓은 대형 철구조물이 보기가 흉하고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를 많이 감하고 있는 듯 했다. 소피아 성당과 같은 규모, 거의 같은 외양을 가진 블루모스크는 상당히 깨끗하게 보존되고 관리되고 있었다. 소피아 성당과 달리 입장료를 받지 않지만 입장할 때 약간의 복장에 대한 제한이 있다. 예술적 측면에서도 소피아 성당보단 블루모스크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시내 여기저기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풍경과 기후로인해 지루해지지가 않는다. 시내에는 한칸짜리 전철이 도로위로 운행되고 있는데 차도와 철로가 따로 구분되지 않고 다른 차들과 섞여달리고 있는 것이 다른 도시와는 색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박물관이 들어있는 언덕 높은 곳 어느 고성 한쪽편에 해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노천 카페 라운지가 있다. 푸른언덕 저 밑으로 높이 걸쳐진 구름다리, 그 아래 검푸른 해협 파도를 가르며 지중해를 향해 조금씩 서서히 전진해가는 대형 컨테이너선이 유난히 멋있어 보여 멀리 작은 점으로 사려져 갈 때까지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신혼여행지로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