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6시간을 기다려 오른 에어 타히티 누이(Air Tahiti Nui) 점보기 안에는 일본인 신혼여행객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배낭 하나 메고 홀가분히 출발한 내 형색이 초라한 탓은 아닐텐데, 이게 바로 국가 경제력의 차이인가... 5박6일에 3백만원이 훨씬 넘는 타히티 여행이 우리에겐 아직 낯설기만 한데, 이들은 11시간 반 비행이 벌써 지루하다는 듯 두툼한 만화책을 꺼내 펴들고 있다. 누구는 타히티가 어렸을 적부터 마음속의 '이어도'같은 곳이라서 꼭 가봐야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최후의 순간까지 어렴풋이 닿을 듯 말 듯한 지상 최후의 ‘낙원’으로 남겨두고 싶기도 하다는데... 하긴 유럽, 미국인들에게도 타히티는 평생 한번 방문하는 곳이라더구만, 특별한 부자 아닌 담에야...
좌석에 여유가 있어 차지한 창가 자리에 하얀 꽃 한 송이가 놓여 있다. 아, 이게 그 꽃인가. 영화 ‘남태평양’에서 해피 토크(Happy Talk)를 부르던 타히티 소녀 리아(Liat)의 머리에 꽂혀 있던 그 꽃. 아직도 프랑스의 해외영토로 정식 국가는 아니지만 타히티의 국화 ‘티아레(Tiare)’는 그렇게 일곱 개의 흰 꽃잎이 수줍은 듯 서로를 감싼 채 만개 직전의 촉촉함과 풋풋함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의 무모함에 얼떨떨하기만 한 나의 손끝에 전해주고 있었다. 그래, 난 지금 대학시절 한 학기 수업을 공쳐가며 남산 드라마센타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영어연극 남태평양의 현장을 답사하러 가는 거야. 발리 하이(Bali Hai)도 봐야 되고, 고갱과 쟈크 브렐의 흔적도 찾아 봐야지. 30년전 영화 티코(Tico)에 나왔던 그 상어는 아직 있으려나...
25일 저녁에 출발한 비행기가 날짜변경선을 지나 같은 날 아침 타히티 파아(Faa'a) 공항에 내렸으니 반나절쯤 젊어진 셈인가. 트랩에 나서자 남색 짙은 하늘 아래 더운 공기가 폐부를 가득 메우고, 공항청사 앞에는 전통 민속복장을 한 3명의 남자가 지루한 듯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프랑스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기까지 한시간 가량, 일본인 단체여행 특유의 조용한 웅성거림을 관망하면서 진한 엑스프레소 커피로 기내 피로를 달래고, 수도인 파페테 외곽의 저렴한 숙소를 찾아 전화예약을 한 후, 햇볕에 달구어진 주차장 아스팔트를 씩씩하게 건너 맞은편 언덕 위의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로 가는 트뤽(truck)을 탔다. 일반 트럭에 지붕을 얹고 목제 의자를 양옆으로 길게 마주 배치한 이 어설픈 대중교통 수단은 프랑스의 세계 제4위 경제력도 머나먼 해외영토에서는 이토록 제3세계적인 모습으로 표출되기 마련임을 실감하게 하지만, 마주앉은 타히티 청년 팔뚝의 문신과 손에 든 조그만 수제 기타(guitar)가 연출하는 그 목가적인 분위기는 아프리카를 전공하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여행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단지, 우리 돈으로 1300원(130 Fcpf, 퍼시픽 프랑)이나 하는 요금이 국내의 특급좌석 냉방버스를 떠올리게 하면서 이곳의 물가가 국내 어느 여행사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바와 같이 가히 '살인적'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허름한 숙소에 짐을 풀고 파페테 항구와 시내를 둘러보러 나섰다. 식민시대의 고풍스런 건물이 있는가 하면 현대식 건물 뒷골목에는 낡은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한국산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자동차들이 열대 가로수 그늘에 길게 늘어져 있는 거리풍경이 아프리카의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아 마치 고향(?)에 온 듯한 감을 받으면서도, 항구에 정박해 있는 난생 처음 보는 초대형 호화유람선의 위용에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임을 알 수 있었다. 재래시장에 들러 갖가지 토산 수공예품들의 예술성을 고갱의 이미지에 견주어 보다가 저윽이 실망한 채, 곳곳에 산재한 흑진주 상점의 진열장에 눈길을 흩뿌리며 잘 정비된 부두 중앙의 관광안내소에 가서 각종 관광안내자료를 한웅큼 뽑아들고 식당을 찾았다. 식사와 음료를 함께 파는 프랑스식 노천 까페에 자리를 잡고 현지산 히나노(Hinano) 맥주 2병과 감자튀김을 얹은 비프스텍 한 접시에 3만원, 나의 조촐한 배낭여행이 어쩌면 ‘호화판’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쿡쿡 웃음이 나왔다. 적도가 가까운 탓으로 오후 6시반경에 벌써 어둠이 내리고, 나는 어젯밤 비행기에서 놓친 월드컵 한국-독일전 재방송을 보기 위해 온 시내의 까페들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관광객들이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양계 주민들과 어우러져 즐겁게 담소하는 모습은 내 스스로가 동양인이면서도 이방인임을 자인하게 했고, “나는 고독이라는 친구가 있어 결코 외롭지 않다”는 무스타키(G. Moustaki)의 차분한 노래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흑인이나 아랍인을 혹 만나면 친구가 되어볼까... 가는 곳마다 한국 축구는 제1의 화두였다. 비록 이기진 못했어도...
다음날 아침, 타히티섬을 4시간에 걸쳐 일주하는 승합차에는 프랑스와 영국인 중년부부 2쌍, 일본인 신혼부부와 할머니 둘이 동승했다. 운전을 하면서 영어와 불어로 신들린 듯 떠들어대는 50대 초반의 백인혼혈 가이드는 자연 나의 말벗이 되어, 섬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18홀 골프장에는 일본인들이 하루 5만원의 비용으로 주요 고객이며, 어느 진주가게에 가면 손님에게 15% 할인, 그리고 자신에게도 그 만큼의 커미션이 주어진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입구를 죠스(Jaws) 상어 아가리로 장식한 바다밑 수족관에 들러 내가 남태평양에 와 있음을 비로소 실감하고, 깨끗한 해변에 너른 잔디정원을 갖춘 고갱박물관에서는 기복 많은 후기 인상파 거장의 생애와, 서구문명의 침투로 인한 타히티 경관의 훼손을 혐오하여 오지로 오지로 쫓기듯 옮겨다닌 그의 적극적, 자연지상주의적 문명관을 차근차근 읽어가며 음미해 볼 수 있었다. 각종 열대식물이 그득한 산길로 접어들어 100m 높이는 족히 될 듯한 가는 흰색 물줄기를 쏟아 떨어뜨리는 폭포의 절경을 구경하고, 검은 화산암벽 밑 동굴에 고인 맑은 물웅덩이에서 고갱이 수영을 했다는 안내인의 설명에 프랑스인 부부와 함께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하면서 섬을 한바퀴 돌아 출발장소에 다시 내린 게 오후 2시, 다음 행선지인 보라보라(Bora Bora)섬으로 가는 배편을 잡기 위해 전화를 하니까 5시에 출발하는 화물선 겸 여객선에 두 자리밖에 안 남았으니 당장 와서 표를 사랜다. 먼저 오는 사람이 임자라나...,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허겁지겁 꽤 먼 항구의 맨 끝 부두로 트뤽을 잡아타고 달려갔다. 바로 여기가 한국 원양어선들이 늘상 정박하는 곳이고, ‘코리아 트레이드 센터’라는 간판을 달고 현지인 한국명예영사가 근무하는 곳이기도 한데, 마침 토요일인데다 더위와 배고픔에 지쳐, 우리 교민이 하나도 없는 이 섬에 유일한 한국관련 인사를 찾아볼 엄두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부두 한켠의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허름한 식당은 마치 옆집 학생들처럼 친근한 애띤 모습의 중국계 자매 둘이 지키고 있었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다 방학을 보내러 왔다는 동생은 한국인 친구가 둘이나 있다며, 나보고 북한사람 같다 한다, 허허... 파리가 점점이 붙어있는 벽에는 국산 타이어 광고포스터가 두 장, 검은 옷을 입은 저 여자모델이 도대체 누구지...? 옆 테이블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캔맥주 두 개를 사서 허리춤에 감추고 배에 올랐다.
하룻밤 새 275km를 꼬박 항해해 도착한 보라보라섬은 ‘태평양의 진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섬들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이다. 중앙에 위치한 해발 727m의 뾰족한 바위산 오테마누(Otemanu)의 고고한 자태가 섬 둘레의 옅고 짙은 쪽빛 산호초호(lagoon)와 신비스럽게 어울리면서 진정 ‘지상최후의 낙원’으로 손색이 없는 곳...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이 섬의 원시적인 자연과 주민들의 반짝이는 눈, 환한 웃음, 티없는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들의 순수함과 열정에 쉽게 동화되어 버린다는데... 영화 남태평양에서 케이블 중위가 리아를 만난 곳이 바로 여기이리라 믿으면서 주변환경이 쾌적한 숙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정하고자 중심도회지인 바이타페(Vaitape)에서 자전거를 빌려 32km에 불과한 섬 일주에 나섰다.
청록색의 투명한 라군 곳곳에 가득한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길가에 널려있는 임자 없는 야자열매를 발로 툭툭 건드려 보기도 하고, 도로주변 흙바닥에 수없이 뚫린 구멍으로 쏜살같이 숨는 게들을 쫓으면서 달리기를 얼마,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는 뮤지컬 남태평양의 익숙한 노래제목이 간판으로 걸린 미국계 레스토랑 겸 바에서 칵테일로 목을 축이는데, 입구에는 숀 펜, 라쿠엘 웰치, 마이클 잭슨 등 내가 아는 이름들이 수십 개의 명패 속에 섞여 있다. 섬의 명성이 이곳을 찾는 유명인사들 덕택에 한껏 높아진다는데, 영화 ‘바운티호의 반란’으로 타히티와 인연이 깊은 말론 브란도는 왜 없지. 리즈 테일러, 더스틴 호프만, 빌 게이츠 등이 이곳에서의 휴가를 즐긴다더니 다들 어디 갔노... 부질없는 생각들... 난 지금 값싸고 호젓한 잠자리를 찾아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는 외로운 방랑자 아니던가...
섬의 남쪽 끝 마티라 해변의 산호초가 부서져 쌓인 백색 모래사장은 일껏 멋내어 가꾼 듯한 야자수들과 어울려 국내 바캉스용품 광고의 배경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천하일품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의 펜션(pension)들은 그야말로 초만원이었고, 침대 옆 탁자 바닥을 유리로 깔아 야간조명과 함께 훌륭한 열대어수족관을 갖춘 수상 방갈로는 하룻밤에 50만원이나 하는 바람에 그냥 한번 들어가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10만원 안팎으로 숙식이 가능한 클럽메드는 낡은 시설로 실망스럽기만 했고, 결국 쉬엄쉬엄 섬을 한바퀴 돌아 노을이 붉게 물든 서쪽 바닷가에 서너 채의 ‘지상(地上)’ 방갈로를 가진 아담한 캠핑장에 도착해서야 6인용 큰방에 합숙을 정할 수 있었다. 내가 보라보라에서 숙소찾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지, 이 인구 5천의 조그만 섬에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데...
다음날, 샤크 피딩(shark feeding)하는 카누를 타고 나가 난생처음으로 바다에서 스노클링하면서 반나절을 보냈다. 저 멀리 보호막처럼 섬을 에워싼 산호초에 태평양의 거센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고, 그 안쪽 잔잔한 라군의 옥색 맑은 물결은 장소를 옮겨가며 열대어군과 상어떼, 커다란 가오리들이 코앞에서 노니는 광경을 잠수하여 즐기기에 최적격이었다. 중간에 사진에서만 보던 그 멋진 산호섬에 올라 타히티의 전통음식을 뷔페로 제공받기까지 했으니, 7만5천원하는 이 투어비용은 전혀 비싼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연이어 며칠간 내내 같은 놀이를 되풀이하기엔 좀 지겨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뿐, 바로 이런 생활이 ‘신선놀음’이고, 나중에 넓은 정원 딸린 집 한 채만 이곳에 마련하면 평소 좋아하는 음악, 미술, 문학에 탐닉하면서 여생을 즐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한국관광객 안내를 맡으면 고국소식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저녁엔 바이타페에서 벌어지는 ‘헤이바(Heiva)’ 축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7-8월 관광시즌에 즈음하여 연중 최대규모로 치러지는 이 전통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당연 민속춤 경연대회. 몇몇 마을의 대표단이 번갈아 춤사위를 선보이는데, 한때 아프리카 시골마을 축제에 정식초대 받던 경험이 있는 나는 태연스럽게 단상 귀빈석 한편에 자리를 잡고 하와이의 훌라춤보다 더 선정적이라는 타히시안(tahitian) 여성댄스 '타무레'를 편안히 앉아 감상할 수 있었다. 각종 전통 타악기의 힘있는 연주에 맞춰 1분에 200회 이상 탄력적으로 흔들어 댄다는 그 대단한 허리놀림도 인상적이지만, 그보다는 서정적인 기타 반주에 맞춰 슬픈 듯 울려 퍼지는 단조 합창곡에 따라 두 손이 부드럽게 엇갈리는 동작이 ‘해피 토크’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애처로워 보이는 한 원주민 소녀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가는 듯했다. 축제가 끝나고 모든 관광객들이 그녀에게 몰려가 사진을 찍고 북새통을 이룬다. 난리가 아니군, 어디가나 미인은 저렇다니까... 밤 10시, 축제 공연마당 뒷편에 설치된 간이 디스코텍의 개장을 기다리다가 할아버지가 중국계였다는 청년 하나가 말을 걸어와 같이 입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의 남녀 친구들이 하나씩 주변에 모여드는데, 바로 그녀가 나타나 내게 악수를 청해오는 게 아닌가. 디스코텍이 문을 닫는 새벽 3시까지 마을의 ‘댄싱 퀸(Dancing Queen)’이 보여주는 현란한 ‘현대’ 춤에 모두들 한없이 즐거웠고, 뺨에 쪽쪽 세 번의 프랑스식 비쥬로 인사를 한 후 다시 자전거로 숙소에 돌아오는 밤길에도 전혀 피곤함이 없다. 이래서 나도 오늘밤 케이블 중위의 흉내를 반쯤은 낸 셈이다. 흐뭇하게시리...
파페테로 돌아오는 1시간 남짓 중형 항공기 편에는 제법 낯이 익은 일본인들이 그득했다. 장거리 왕복일정이 같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눈인사조차 건네지 않은 건 서로가 마찬가지, 일본과 한국 사이가 그렇지 뭐 신경쓸 거 있나. 어쨌든 나의 타히티 여행이 그들의 것보다 더 알차고 값짐을 확신하면서 공항근처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대학 캠퍼스에 들러 필요한 자료를 입수한 후, 처음 묵었던 숙소에 다시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오니, 항구에 면한 포마레 거리는 역시 헤이바 축제 퍼레이드로 인산인해이다. 브라질의 삼바축제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멋을 낸 분장과 자동차 장식이 요란한데, 태권도장 팀이 여럿 행진하기에 뛰어들어 붙잡고 물어봐도 한국인사범은 없다한다. 역시 타히티의 첫 한국교포는 태권도사범이 되어야겠구만... 낮에는 각종 카누경기, 바윗돌 들어올리기, 15m의 높다란 막대기 끝에 야자열매를 꽂아 놓고 창으로 맞추기, 불 위를 걷는 종교의식, 야자껍질 까기 등의 다양한 민속행사가 펼쳐지고, 밤에는 늦게까지 타히시안 댄스 및 노래 자랑, 록 콘서트, 패션쇼, 미스 타히티 선발대회 등의 현대적인 행사가 진행되면서 파페테는 도시전체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다음날 오후, 배편으로 30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모레아(Moorea)섬에 건너가 자동차를 빌려 둘레 60km의 섬을 한바퀴 돌았다. 1767년 이곳에 처음으로 정박했던 쿡(Cook)선장의 이름을 딴 아름다운 만을 휘돌아, 자그마치 해발 1,207m나 되는 섬 중앙의 봉우리 토히에아(Tohiea)의 장관을 보기 위해 산중턱의 전망대 벨베데르(Belvedère)에 올랐다. 바로 여기가 영화 남태평양의 무대였다지... 그토록 동경해온 타히티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클럽 발리하이에 앉아 그때 그 연극을 같이 했던 친구들을 회상하면서 나의 이 오랜 방랑벽, 고독한 역마살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 혼자하는 여행은 그만 해야지. 호젓함이 지나쳐 쓸쓸함에 자꾸 담배만 피워대니 가슴만 갑갑하고...
태어나서 걷기도 전에 춤을 먼저 배운다고 할만큼 춤과 노래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타히티에서 사람들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들의 생활철학이 “아이타 페아 페아(Aita pea pea : 걱정하지마)”라던가. 캠핑장 입구 건물 기둥마다 바나나 다발을 매달아 놓고 아무나 따먹도록 하는 그 풍요함이 이들을 그렇게 낙천적으로 만들었으리라. 아프리카의 기근과 비교하면 괜시리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하지만, 지금도 부모가 운전하는 픽업트럭의 화물간 뒷벽에 천연덕스럽게 기대앉아 해맑은 눈을 반짝이는 예쁜 타히티 꼬마들이 그립다. 언제 다시 찾아갈 기회가 있겠지. 그땐 누군가하고 같이...
첫댓글 한편의 소설과도 같은 여행기를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음..정말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