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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의 영적 의미와 적용
<마6:1~4>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 성경이 말하는 구제의 의미
본래 구제는 이웃에 대한 긍휼한 마음에서 우러나와 은밀히 도와주어야 받는 사람도 편하고, 베푸는 사람도 어떤 칭찬이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재물을 심부름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해야만 자만이나 은근한 과시 등의 내색이 생기지 않아서, 순수한 사랑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어야한다.
그래서 본문 말씀의 은밀한 구제에 대한 이해하기를, 통상 이러한 일반적인 관점에 따라서 남들이 알지 않게 몰래 하라는 것으로, 더 나아가서 자신 스스로도 자긍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취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해석도 사람의 생각일 뿐으로서, 주님은 땅의 일들을 빗대어 더 깊은 하늘의 일들을 말씀하시고자 한 것이다.
다음의 성경을 보면 주께서 말씀하시는 구제가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눅11:37~41>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유대인들은 장로의 유전을 따라 구제, 기도, 금식을 유대교의 3대 의무로 실행해 왔다. 그 중에서 구제는 구원을 이루는 하나의 ‘공적’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게다가 구제는 나머지 의무인 기도와 금식의 응답의 약효까지 있을 것으로 착각하여 부지런히 실행하였지만, 이렇게 목적에서 빗나간데다 오랜 장로의 전통에 따른 형식과 매너리즘으로 자랑과 자긍심을 드러내는 방편으로 변질 되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사상을 가진 한 바리새인이 주님을 초청하여 접대함으로서 구제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했는데, 주님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시고 이 바리새인에게 뿐 아니라, 이시대의 믿는 자들 모두에게 참된 구제에 대해 영적 이치를 설명하시는 장면이다.
이 바리새인은 종교적 구제를 어차피 이행할 바에야 당시 유명인사이였지만 행세가 변변치 않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여 음식 한번 접대하면 종교의무도 이행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도 받을 수 있다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노렸던 같다. (통상 귀한 손님을 맞게 되면 손발을 씻을 물을 종들을 시켜 시중들게 하지만 오늘은 이것을 생략한 것은, 그의 눈에는 예수님이 그저 천재성을 가진 갈릴리 출신의 젊은 청년 정도로만 여겨졌기에 구석에 있는 돌 항아리까지 예수님이 직접 가서 씻으라는 홀대를 처음부터 한 것이다.) (추정...)
그러나 주님은 절차를 무시하고 상에 가셔서 거리낌 없이 음식을 드셨기에, 손을 왜 씻지 않고 먹느냐고 따지는 바리새인에게 구제의 비유를 풀어 설명할 기회를 만드신 것이다.
말씀하시기를 식물에는 영적 식물과 물질적 식물의 두 가지가 있고, 이것을 담는 그릇도 영적 그릇과 육적 그릇이라는 두 가지가 있는데, 육의 몸속에 들어가는 음식을 깨끗이 먹기 위해 손을 씻듯이, 심령 속으로 들어가는 영의 음식을 깨끗이 먹기 위해서는 마음을 먼저 청소해야 마땅하거늘, 너희 바리새인들은 육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손과 그릇을 열심히 닦으나, 너희 속의 가득한 탐욕(강탈, 약탈)과 악독은 오히려 방치하는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그릇에는 겉과 안이 있듯이 사람도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으니,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적인 면에만 온갖 치장을 하는 종교의 특성을 안다면 미련 없이 버리건만 어리석은 인생은 대부분 허례의식에 잡혀서, 자신 내면의 악성과 독성과 죄성을 처리하지 못하여 관념에 빠진 헛된 구원만 추구하다 음부에 들어간다. 이렇게 실제가 없이 바람으로 배만 가득 불린 자들은 헛된 구원으로 속고있는 자들이다.
주님을 초청했으면 오랜 장로의 전통과 유전으로 바싹 말라비틀어진 자신의 심령에,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영과 생명의 말씀을 가득 담아(먹고) 살아나야 하거늘, 영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종교적 관행에 젖어 여전히 사망 속에 있다. 바리새인 자신이야말로 어둠과 사망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빛의 말씀으로 구제 받아야 하는데, 알량한 물질로 사람을 구제하겠다고 설치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일인가?
구약 성전에서는 잔과 대접, 놋그릇이 있어서 제사장들은 때와 절기마다, 이 그릇들을 잘 닦고, 그 안에 제물을 담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이 모든 것은 비유로서 깨어지고 낮아져 겸비해진 심령 안에 주님의 영의 말씀을 담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열납(기뻐하심)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금 이 바리새인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실제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자신 앞에 계신 것을 모르는 당달봉사이니, 영적소경이 어찌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여 섬기겠는가?
그들이 아는 하나님은 우주 어딘가의 삼층 천 금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 계신 줄 착각하고 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을 알아보고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영 안에서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건만, 외식하는 자들은 허공에다 그림 그리듯이 영원히 참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요4:23참조).
참된 예배를 통해 주님의 생명의 가르침을 심령 가득히 담아, 오랜 세월 은혜로 발효된 자를 일컬어 의의 말씀을 경험한 자라 한다(히4: ). 이들은 단단한 식물을 통해 장성한 자가 되었으니 분별하는 지각으로 선악을 판단하며, 어두움에 잡혀있는 자들을 밝은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복음의 제사장들이다. 영혼을 구제하는 주님의 사자들이다.
구제, 즉 영혼을 살리는 일은 주님의 것으로만 가능하다. 주님이 먹여주시고 주님이 은혜를 주셔서, 말씀이 실제화 된 내면의 생명력으로 영혼을 살리는 것이 ‘오직 안에 있는 것으로 하는 구제’인 것이다.
2. 오른손 구제와 왼손 구제
위에서 구제란 복음을 통해 죽은자를 살리는 생명 사역이라고 정의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일까? 복음을 은밀히 전하라는 말인가?
복음 전하는 것을 나팔 부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진리대로 부는 나팔을 오른손 구제요, 비진리로 부는 나팔은 왼손 구제인 것이다.
오른손 나팔을 부는 자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여 모든 진리 가운데 있는 자이기에 비진리를 분별하나, 바리새인의 누룩으로 오염된 자는 하나님의 경륜인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이상을 깨닫지 못해서 종교의식을 가미해서 가르친다. 즉, 창세로부터 비밀에 감추인 하나님의 의사성을 깨닫지 못하고 천연적이고 본성으로 아는 지식으로 나팔을 불기에, 열심은 특심이나 오히려 진리를 거역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왼손 나팔수들의 특징은 세상 복을 빌어주는 발람의 교훈과,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교훈으로 교회를 피라밋 조직화 해서 기득권자들이 판치는 니골라당의 소굴로 전락시키며, 소위 신학교를 곳곳에 세워 바알과 앗세라의 성직자를 양산하는 이세벨의 교훈으로 치장한 무리들이다. 이들은 사도들의 순교 이후부터 교회를 급격히 점령하여 교회사 대대로 진리를 핍박하며, 거룩을 위장한 멸망의 가증한 증표가 되어왔다.
구약의 왕조시대에서도 제사장, 선지자, 왕족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맡기신 백성들을 잘 양육하고 살찌워서 하나님의 드실 수 있는 제물로 키워내는 일, 즉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게 하여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만드는 일은 도위시 한채, 양들을 자신들의 이익의 소재로 삼아 왔기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떼어 먹었다고 호통 치셨는데, 신약에서도 이 일은 반복되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각종 율례를 만들어 성도들에게 무거운 짐을 부과하고, 잔치의 상석에 앉기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며, 경문을 넓게 차고 다니면서 자신이 목회자인 것을 자랑하고 다닌다. 성경을 자기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목회자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거머쥔 전능자처럼 행세하면서 교인들을 협박과 회유로 홀딱 벗겨먹는 일을 마치 사역으로 호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여의도 순복음 교회 당회장 목사는 오랜 세월 성도들이 낸 헌금으로 각종 사업을 일으켜서, 온 가족들이 하나 둘씩 꿰어 차고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음에도 누구하나 이상히 여기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자 없으니, 온 사회가 이것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종이 하는 일이니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오히려 두둔과 맞장구를 치고 있다고나 할까?
생수가 변질되어 쑥물이 된 기복신학과 성공신학의 우상을, 다른 모든 크고 작은 교회들이 부러워하고 목표 삼아 부흥을 추구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작태들인가? 각 대형 교회는 흘러넘치는 돈을 거두어 주체하지 못하니까 노숙자들에게 밥 퍼주는 교회, 양로원 운영, 신학교 설립, 화려한 제2 제3성전 건축,... 게다가 해외 선교까지... 무엇을 선교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성경은 이들의 장본인을 눅16장에서 부자로 비유했다.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 했다고 한다. 얼마나 정확한 지적인가? 왕이 입는 자색 옷, 구원의 상징인 고운 세마포를 입고 강대상에서 연일 말씀(거짓 나팔) 잔치를 벌이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보겠다고 몰려드는 자들을 온갖 프로그램이 동원된 저인망 어선으로 다 남획하여, 모세의 수건으로 교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먹이감으로 삼아 자기 창고에 적치했다.
이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십자가가 무엇인지, 부활이 무엇인지, 승천이 무엇인지, 재림이 무엇인지, 천국은 어디인지, 천사와 나팔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다. 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는지, 사람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자신은 누구인지, 고난이 왜 오는지, 아들이 누구인지, 사생자가 누구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예수그리스도는 누구시며, 성령은 또 누구신지 전혀 모르고도 회당과 큰 길 어귀에서 구제의 나팔을 분다고 설치는 자들이다.
이 자들을 일컬어 왼손이 하는 구제라 한다.
이 부자들은 자기 대문 앞에 누워 자기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겨우 연명하는 나사로의 존재는 꿈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부자의 상으로 표현된 큰 성 바벨론의 모든 체계가 다름 아닌 마귀의 손이요, 각종 가증한 새들의 감옥임을 알아차리고 도망쳐 나온 소수를, 기쁘게 맡아 누룩이 섞이지 않은 진리만을 전하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나사로다.
그래서 나사로의 상에는 사람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보리밥에 냉수 한 그릇이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진수성찬이다. 깨어진 자신의 심령에 예수그리스도의 신성한 인격을 담아서 드리는 제물을 만드는 최고의 요리사가 나사로였다. 집안에 있는 염소를 잡아 이삭에게 드렸던 그림자가 실현되는 참된 별미, 이 진미야말로 하나님이 바라시던 전제로 부어드린 십일조요, 요제요, 거제 제물이다. 이것을 오른손 구제라 한다. 나사로의 구제의 나팔 소리에 에스겔 골자기 마른 뼈였던 자가, 성령의 생기로 살아나서 하나님의 사자로 탈바꿈 된다.
이러한 영적인 오른손 구제를 왼손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