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데이비드슨
M.C.
에셔
르네
마그리뜨
앤디
워홀
빈센트
반 고흐
살바도르
달리
필립
할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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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경우 그것은 내면의 대화였지 외부의 대화가
아니였다.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무엇때문에
끝없는 시야에서 이러한 진화론적 여정이 발생하며..
왜 내가 스스로를 정의 내려야만 했기 때문에
그렇게 흥분해야만 하는가? 이다. 많은 사진가들은
그들이 찍는 사진뿐만 아니라 그들 삶과 감정까지
표면적인 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바라본다.
사진가들은
항상 일관된 상황만 찍는다 그들을 결코 그
상황의 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안는다. 일단
당신은 그 상자를 연다면 그것은 상자속에
다른 상자가 들어있어 좀처럼 끝을 볼수 없는
중국의 마술상자 같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내용물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촬영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는지...
나는 나무와 자동차와 사람들이 그 자체의 현실로
출현하는데 혼란을 가졌고 이러한 출현의 사진은
그것의 사진이어야 한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실패이다. 나는 거울안에 반영된
다른 반사물을 사진촬영으로 다시 반영하고
있었다. 진실을 찍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찍지
않는 것이다." - 듀안 마이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인가? 쉬르-리얼리즘인가?
내가
듀안 마이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이 홈피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열고 얼마 후의 일이었다.
한 친구가 사진 분야에 '듀안 마이클'도 다루느냐고 해서
잘 모른다고 하니까,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타박과
함께 알려줘서 그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친구의 소개로 듀안 마이클의 사진집을 보면서
내내 '그렇지, 너는 이 작가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령 소설 창작 실습
수업의 과제물로 낸 그의 소설 습작을 보더라도 그는 "잠자고
있는 주인공이 잠을 뒤척이다 이상한 기분을 느껴 눈을
떠보니 머리 위에서 귀신이 가만히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더라"는
풍의 것이었고,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치렁치렁하게
기르고 다녀서 MT라도 가게 되면 선배들이 꼭 그
머리카락을 앞으로 내려서 귀신 흉내를 내보라는 식의 권유를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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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
해프닝
(happening)
주
로 예술용어로서 쓰인다. 현대
예술의 각 분야에서 볼 수 있는 시도로서, 예기치 않았던
불의의 ‘우연히 생긴 일’이나 극히 일상적인 현상을 이상하게
느껴지도록 처리함으로써 야기되는 예술체험을 중시한다.
그 발상은 오랜 것으로는 미래주의의 연극이나 다다이즘,
쉬르레알리슴 회화, 바우하우스의 예술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으며, 이는 또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에 걸쳐 성행한 팝 아트 ·누보리얼리즘 ·플럭서스
등으로 부르는 행동적인 예술을 총칭하여 쓰기도 한다.
1958
년 A. 카프로가 뉴욕에서 ‘여섯
파트로 된 열여덟의 해프닝’이라고 명명한 리사이틀을
개최하였는데, 이로부터 해프닝이라는 명칭이 이러한 운동
전반을 가리키게 되었다. 정확히 규정할 수는 없으나 독일의
W.포스텔은 “해프닝은 활기 있는 팝아트이다”라고 정의하고,
예술을 감상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예술적 사건 속에
끌어들인다는 성격을 강조하였다. 충격적인 언동, 어이없는
행동, 과격한 행위, 파괴행위, 지나치게 일상적인 행위
등을 해프닝을 일으키는 수단으로 보며, 현대 소비사회의
모순이나 물상화 현상을 현재화(顯在化)하는 의미를
갖는
수도 있다.
<
두산
백과 사전>

추락한
천사
-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여인이 잠든
방 안으로 날개단 천사가 들어온다. 여인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던 천사는 슬며시 그녀에게
다가가고 잠에서 깨어난 여인과 천사는 입맞춤을
나누고 섹스를 한다. 섹스를 한 뒤의 천사는
더 이상 천사가 아닌 남자가 되었고, 그의
몸에서 날개가 떨어져 나간다. 날개 잃은 천사는
괴로워하다가 인간의 옷을 입고 방에서 뛰쳐
나간다. 여인은 잠든 채 그대로 누워있다.
불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천사의 파계(破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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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닮게 되는 건지, 자신과 닮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건지아니면
좋아하려고 닮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진집을 보는 내내
듀안 마이클의 사진들이 상당히 심리적인 부분들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중 한 가지 코드는 분명히
공포였다. 이곳 포토 갤러리에는 그 사진을 구할 수가 없어서
전시할 수가 없었지만 듀안 마이클의 사진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허수아비> - '옷걸이에 걸려 있던 코트와 중절모가
내려와서 창가에 앉아 있던 어린 여자 아이를 납치하는
연속 사진'이
었다. 정말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진이었는데
마치 어렸을 적 TV의 외화 프로그램 <환상특급>을
연상케 할 만큼 전율을 느끼게 했다.
분신의
그림자 - 두 명의 듀안
듀안
마이클은 1932년 2월 18일 펜실베니아주의 맥키스포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Andy
Warhol)과 마찬가지로 체코 출신의 미국인이었다. 그의
부모는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성(性)을
미할(Mihal)에서 마이클로 바꿨고, 듀안 마이클의 어머니는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듀안'이란 이름은
원래 그녀가 일하던 집의 아들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원래의 '듀안'
때문에 어린 듀안 마이클은 난처한 일들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름을 빌어온 듀안은 그 이름의 원래
주인이었던 '듀안'이란 청년이 막 시작한 대학 생활 첫
해에 자살을 해 버리는 바람에 실제로는 원래의 '듀안'이란
이름을 쓰던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예술사를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선례들이 적지 않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에도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을 따서 그대로 지었기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무덤을 보면서 자라야 했다. 우리들도
간혹 인터넷상으로 자신과 같은 아이디나 이름을 사용하고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자신의 부모가 정해 준 이름이 먼저 죽어
버린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이 느끼게
될 감정이 어떤 것이었을 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름에
얽힌 이런 에피소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그가 평생 펼쳐나갈
예술 세계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나보다 더 정당한 듀안이 존재했던
세계에 남겨진 '사라진 듀안'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안함 말이다. 듀안 마이클은 그의 작품 <사후
영혼의 여행>에서 거울 앞에 선 영혼으로 하여금 이렇게
묻도록 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듀안
마이클의 작업은 평생동안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의혹을
풀고, 자신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연한
기회로 사진 작가가 된 듀안 마이클
듀안
마이클은 원래
디자이너로서 출발했다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사진 작가가 되었다. 1958년 「타임」지 재직시 러시아 여행길에 오른 마이클은 당시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만 가지고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여행길에 찍은 마이클의
사진은 기념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보통이상의 사진으로 평가받았다. 이 시점을 계기로
마이클은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사진가로 전업하게된 것이다. 사진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마이클의 초기 사진작업은「쇼」지의 전속 사진가로 입사하면서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사진가의 길을 선택한
마이클의 첫 개인전은 1963년부터 65년에 이르는 사이에 뉴욕의 자하화랑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소재는 미용실이나 지하철역, 또는 극장 대합실등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를
대상으로 촬영에 들어갔지만 실상 내부는 텅 빈 상태를 유지하는 표현을 위주로
하였다. 이후 유명한 전시회는 66년에는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가 개최한 『사회적
풍경을 향해서』라는 5인전을 통해서 알려졌다. 개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 브루스 데이비드슨(Bruce Davidson), 대니 라이온(Danny Lyon)과 함께
듀안 마이클이 합류하여 5인이 참여한 「사회적 풍경을 향해서」전시회는 1960년대의 새로운 사진계 판도를 집약적으로 정리하려는
기획전으로써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걸친 현대사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
전시회를 통해서 듀안 마이클은 가장 스포트라이터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마이클의 표현방식이 매우 특이했으며 그의 사진속에 내재된 소재나 주제면에서 추상적인
것을 추구했다는데에 관람자로 하여금 깊은 인상으로 주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전시회는
현대사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이한 형식과 초현실적 내용을 담아
관람객과 비평가들의 이목을 끈 사진 작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듀안 마이클이었다. 현대사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여 자기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듀안 마이클은
연속사진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이자 그 중심
인물이 되었다.
초기에는 유명인사들을 대상으로 인물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마이클은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슬며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58년 화가인 르네 마그리뜨(Rene Magritte)를 대상으로
하나의 사진집으로 펴낸 것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할스만이
초현실주의 대표적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를 집중적으로
찍은 것처럼 마그리뜨에게 집중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 그의 사진형식은 전통적인 형식의
낱장사진이었고, 그의
사진이 연속사진이란 형태를 띄기 시작한 것은 1969년부터였다. 그는 "지금까지 사진가들이 모두 외적 대상에 대한 관찰자나 기록자들이었지만,
나는 내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는 것을
심화시켜 시각적으로 영상화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듀안
마이클 = 연속 사진 = 시간의 사진
연
속사진(sequence photo)이란 공간상으로는
카메라의
거리나 방향, 각도 등은 그대로 유지시킨 상태에서 카메라를 정지시켜 놓고 잠시 잠깐의 시간의 흐름대로 연속적으로
찍는 사진을 말하는데 이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낱장으로 분석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듀안
마이클의 이 기법을 그냥 연속사진이란 말로 정리하고 있지만
원래 '시퀀스'란 영화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영화에서 '씬(Scene)'이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는 영화적 단위라면 시퀀스는 이야기의 단락에 따라 정해지는,
좀 더 큰 단위를
지칭한다. 즉 장소, 시간, 액션의의 연속성을 통해 하나의 에피소드가 시작되고 끝나는 독립된 구성단위를 시퀀스라 한다.
그런데 듀안 마이클의 연속사진을 우리는 '공간상으로는 카메라를 정지시켜 놓고
시간의 변화만 부여하고 찍은 사진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이러한 연속사진은 하나의 짧막한 이야기처럼 표현되는데 따라서 반드시 도입부와
마지막 결말은 맺어주어야 한다. 초기 연속사진은 5∼6장으로 구성되는 짧막한 내용을
담았는데 후기에는 26장 짜리의 연속사진도 촬영하였다.)
그렇다면 듀안 마이클의 사진은 시퀀스가 아니라 '씬(Scene
Photo)사진'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듀안 마이클의 사진을 시퀀스 포토라고
일컫는 이유는 그의 연속사진이 하나의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이란 작품을 살펴보자. 지하철 역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머리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점점
더 환하게 밝아지더니 우주의 한 성운(星雲)이
된다. 이때 카메라는 제 위치를 지켰는지 몰라도(물론 그럴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배경은 같은 공간이 아니다. 즉,
듀안 마이클의 연속사진을 시퀀스 포토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의 사진이 공간이나 시간적 배경에 의해 제약당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진이란 뜻이 된다. 때로 그의 작품은 씬이라는 정의에
어울리는 것들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좀더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이야기(Fiction 혹은 Episode)이다.
'듀안 마이클 = 연속사진가'라고
할 만큼 연속사진 분야에 대해서 듀안 마이클은 선구자이자 중심인물이다. 역시 그의 사진세계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시 여겨지는 부분이 바로 연속사진이라 할 수 있다. 기승전결이란
이야기의 흐름이 있고, 연속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연속 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의 사진'이기도 하다.
듀안 마이클은 새로운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이전에 관행처럼
여겨졌던 낱장사진에서 탈피하는 사진의 새로운 길을 펼쳐놓았다.

우연한
만남 (1970)
|
|
이
작품 <우연한 만남>은 작품 자체의 의미도
의미겠지만 듀안 마이클이 집착하고 있는 또
하나의 화두 '우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내가
브로드웨이를 걷고 있을 때 그 남자가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와 나는 '내가 왜 저 사람을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한
블록을 지나서야 그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는 나의 군대 동료였다. 내가 돌아봤지만,
그는 지나가 버렸다. 나는 모든 것을 이러한
관찰에 기초를 둔다."
|
우연을 가장한
일상의 초월
듀
안 마이클은
평범한 정의의 사진 작가를 넘어서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를 일컬어 '초현실주의 사진가'라기 보다는 '개념미술가'
혹은 '아티스트'로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일견 맞는
말이다. 콘스트럭티드 포토(constructed
photo)
작가인 신디 셔먼의 경우에도 스스로를 사진작가이기 보다는
'아티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작업들에서는
해프닝적인 요소들이 많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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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
안
마이클 연보
1932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태생 1953년 덴버대학에서
예술 학사학위 수여 받음 1956년 뉴욕의
파슨즈 디자인 스쿨에서 디자인 공부 1957년「댄스 Dance」지의
아트디랙터의 조수로 활동 1958년「타임 Time」지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입사 1960년「쇼 Show」지의
전속사진가로 입사 1963년 뉴욕
지하화랑에서 첫 개인전 시작됨 1966년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가 개최한 『사회적 풍경을 향해서』사진전 참가 1969년
연속사진(Sequence
Photo)의 시작 1979년 사진과
회화를 결합시킨 최초의 작품을 선보인다. 1980년 정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함. "다수의 도덕적 무자비함"을
폭로하고자 함.
|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듀안
마이클 - 열화당 사진문고9』 / 강운구·권오룡 옮김/ 열화당/ 1986년 -
듀안 마이클의 사진에 대해서 출판된 국내 거의 유일한
서적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는
국제 저작권 협약의 발효 이후 국내에서는 더 이상 판매될
수 없다.(절판)
『카메라
루시다』/ 롤랑 바르트/ 조광희·한정식
옮김/ 열화당
미술선서56<개정판>/ 1998년 -
롤랑 바르트의 사진론은 수잔 손탁의 사진론과는 다른 의미에서
중요하다. 어떤 점이 그러냐 하면 직접 읽어보시는 편이
빠르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진예술개론』-열화당
미술신서52<개정판>/ 한정식 지음/ 열화당/ 1997년 -
한정식 선생이 작심하고서 만든 책답게 사진예술에 대한
개론서로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다. 물론 사진 실기에 관한
책은 아니다.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도 참고삼아 한
번 정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진의
거장
-
사진에 관심이 있으시다구요. 그럼, 당연히 이 사이트를
알아야 합니다. 이 사이트를 모르고는 최소한 인터넷상으로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죠. 반드시
알아두시고 그러면 공부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사이트입니다.
<마스터스 오브 포토그래피> 사진작가들에 대한 명예의
전당 같은 곳입니다. 강력추천(영문)
정수에
홈페이지
-
실제 듀안 마이클 페이지를 제작할 때 참고한 페이지는
아니지만 듀안 마이클을 주요 컨텐츠로 삼고 있어서 추천해
올린다. 생각외로 듀안 마이클의 팬이 우리나라에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한글)
포토인사이더의
듀안 마이클
-
제임스 A. 코터가 쓴 듀안 마이클의 사진에 대한 아티클과
함께 몇 가지 사진이 있다.(영문)
photo
district news -
pdn이란 photo district news의 약자로 세계 사진계의 새로운
조류를 살려볼 수 있는 사이트이기도 하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 자료도 넉넉하다.(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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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한
알 드시고 후지산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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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주 더운 여름 날이었다.
책도 재미가 없고 따분하기만 했다. 2. 누군가가 문틈으로 봉투를
밀어넣었다. 3. 봉투 위에는 뭔가 이상한
말이 적혀 있었다. 4. 봉투 안에는 초록색 알약이
들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약 한 알을 삼켰다. 5. 그는 마치 바람이 새어나가는
풍선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순간 적으로 그의 키는 엄지 손가락 여섯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6.문이 삐걱리며 열리더니,
그가 이제껏 본 어떤 여자보다 큰 여인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7. 가까이 올수록 그 여자는
더욱 커졌다. 이내 그녀는 그의 위에 와서 섰다. 8.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키에 넋이 빠져 버렸다. 9. 그러나 그녀가 자기 위로
앉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그의 흥분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10. 엄청나게 큰 엉덩이가 그의
위로 덮쳐 내리는 사이에 그는 도망치려 허둥댔지만 도무지 힘이 나질 않았다. 그의
연약한 다리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11.그는 흥분에 휩싸였다. 어마어마한
음부는 점점 더 가까이 덮쳐내려왔다. 12. 그녀가 그위로 걸터앉았다. 13.14.15. 놀랍게도 그 어둠
속에서 눈덮힌 후지산의 정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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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만남>, <인간의 조건>을 비롯해서 <약을 한
알 드시고 후지산을 보십시오>라는 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듀안 마이클의 작품 세계를 공간적 배경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적인 공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우리들의
실제 삶이 벌어지는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생활의 현장을 주요 무대로 삼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고,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방향으로 연출된다. 그는
낯익고 평범한 공간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해프닝을 연출하고
있다. 문학에서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용어로 이런 기법을
'낯설게 하기' 혹은 '소격 효과'라고 하는데 그런 해프닝이
벌어지는 공간이 낯익고 평범하면 할수록 우리들은 듀안
마이클이 연출해내는 해프닝에 더욱 놀라게 된다.
그는 사진에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이 즐겨 쓰는 우연성의 요소를
도입했다. 그는 현대미술이 그러햇던 것처럼 우연성을 도입함으로써
합리와 논리의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우리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보이고
있다. 그가 작품에서 연출하는 해프닝이 비합리적이면 할수록
우리들의 일상적 생활 공간은 환상과 무의식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화해 간다. 듀안 마이클은 때로 자기 자신을 모델로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실제 해프닝을
실연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가 작품에서 벌이는 기상천외한 해프닝은 일상의 공간을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형이상학적 공간으로 질적인
비약을 성취시키는 매개가 된다.
무의식의
세계를 사진을 통해 탐구한 정신여행의 안내자
듀안 마이클이 연속사진만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중 노출이나 몽타즈 수법
등을 이용해 때로는 M.C.에셔의 드로잉 작품의 착시 현상을 연상케 하는 낱장의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듀안 마이클을 가장 그 답게 드러내는
방법은 역시 그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운
정체성의 혼미,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져 심화된 그 무언가를 영상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노력의 방법으로 채택한 연속사진의 형식에 있었다.
연속사진을 통해 그가
추구한 것은 불가사의한 마음의 세계였고, 우리 안에 내재된
우주였다. 그가
바라 본 세상은 거시적이고 우주적인 것이었으며 대상을 그
자체로 파악하지 않고, 우주적 전체성이라는 대전제 아래 종속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세상을
들여다보면 모든것을
포괄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떤 대상을 단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멀찍이 뒤로 물러서서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조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상의 모든 현상들은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상과 자신을 일대일의 상대적 입장에서
밖에는 바라볼
줄 모른다. 그러나 마이클은 이러한 인식관계에서 벗어나 이른바 소설작법에서 말하는 창조자의 관점에서 대상을 조망하기 때문에, 모든
현상들이
거시적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듀안 마이클이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연속사진의 형식이 이야기 내용과 하나로 만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그는 언제나 현실의 시간 밖으로 물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과정을 통틀어서 바라볼 수 있는 근원적인 위치에 서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속사진에서 그가 부각시키고 있는 시간은 순간적인 시간이다. 짧은 한순간에 나타난 시간보다는 이것을 초월적인 차원에서 포괄하고
있는 대전제로서의
영원이라는 시간이 더욱 암시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즉 현실적인 대전제로서의 영원이라는 시간이 더욱 암시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즉
현실적인
한순간이 전체로서의 시간과 합류하여 영원성을 암시하고 있다.
듀안 마이클이 다루는 사진의 주제는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비밀의 세계이다. 때로
그의 사진에서는 M.C. 에셔의 그림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백일몽이나 죽음 또는 기적과 같은 특이한
세계를 소재로 삼는다.
그의 사진은 신비가나 심령과학자들이 불가사의한 초능력의 세계에 탐닉하듯이, 일관되게 비일상적인 심령적 비밀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사진집을
펼치면 마치 신비학이나 심령과학을 다룬 책자를 넘기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또한 동화책을 보는 것과 같은 기이한 환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는
완전히 불가사의한 세계에 몰입해서 상상력이 펼치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포착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찍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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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전 읽었던 ...다시한번 일어보앗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