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여자
"자고로 여자는 자신을 꾸밀 줄 알아야 하는데 바느질 할 때하고 음식 만들 때만 여자이고 몸치장 하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못하니 너는 아무래도 반쪽여자인기라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
결혼식에 가기 위해 새벽부터 어머니는 손거울을 보며 곱게 화장을 하신 후 이 옷 저 옷을 입어 보시며 어느 것이 어울리는지 물어 보신다. 같이 나들이를 할 때면 주문처럼 화장하라는 잔소리 때문에 번번이 소란스럽다.
화장을 하려고 해도 무슨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순서를 몰라서도 할 수가 없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면서 로션이나 스킨을 바르고 입술을 바르면 화장은 끝난다.
먹고 싶은 욕구와,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하여 자손을 낳고 싶어 하는 욕구가 본능이듯이,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 역시 본능이다. 태고 적부터 인간은 신체의 아름다운 부분은 돋보이도록 하고 일부의 약점이나 추한 부분을 수정 혹은 위장하고자 노력해 왔다.
곱게 화장을 한 모습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러워서 한참을 바라본다. 가끔씩 차안에서 열심히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기 까지 하다. 달리는 차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화장을 하는 여성들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 며칠 전 시내버스에서 예순이 넘은 할머니가 자리에 앉자마자 거울을 보며 분첩으로 얼굴을 매만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엄숙한 표정으로 눈썹도 손질 하시고 입술도 매만지며 분첩으로 볼을 톡 톡 치며 마무리 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사회 초년생 무더웠던 여름 만원버스에서 사람들의 체온과 땀으로 뒤 섞인 화장품 냄새로 두 시간을 시달리다가 결국은 중도에서 내렸다. 역겨운 냄새로 한동안 두통으로 고생을 하였다. 그 후로 화장품을 가까이 할 수 없었다. 화장은 취미가 아니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도 화장품만 보면 입술화장품만 눈이 갈뿐 다른 것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화장이 여자의 전유물이었든 시대는 지나갔다. 화장하는 남자가 많아진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런 잔소리까지 듣는다.
“ 요즈음은 남자들도 화장을 하는데 네 눈에는 보이도 안하나.”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생물은 수컷이 더 아름답다. 닭이나 꿩, 공작새, 원앙만 보더라도 수컷이 훨씬 화려하고 다양한 무늬의 외양을 자랑한다.
예전에는 통치자나 용맹스러운 사람 등 상류사회인들이 화려하고 요란하게 멋을 내었지만 현실은 취업을 앞둔 청년들이 면접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잘못된 피부 관리로 생긴 울긋불긋한 여드름 흉터와 주근깨 등을 가려 말쑥한 모습을 보이려고 화장을 한다고 한다. 중년 남성들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는 경쟁과 변화 속에서 경제활동 연령이 점점 낮아지자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한다. ‘화장하는 남자’라는 재미난 풍경 뒤에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는 남성들의 숨 가쁜 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재미난 분장을 한 피에로의 슬픔이 묻어난다.
남성을 상징하는 ‘♂’표시는 전쟁 무기인 창에서 따왔고 남성을 평가하는 기준인 용맹성은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너는 여자가 아이다. 화장을 하기 전에는 온전한 여자가 아닌 기라.”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아침에 곱게 화장을 하시고 하루 일과를 시작 하시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또 시작된다. 어머니의 민얼굴을 본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어머니의 여성에 대한 자부심과 부지런함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여성의 상징인 ‘♀’은 손거울의 모양에서 따왔다. 여성의 기준은 미(美)를 가꾸는 능력과 관심이라는 뜻이다. 화장에 관심을 가지려고 나름대로는 노력을 해 보지만 관심이 무관심인 것을 보면 반쪽여자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맞는 말씀이고 반박할 구실을 찾지도 못한다. 지천명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창피하지만 화장법도 모르고 있다.
어려서부터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사전을 며칠씩 찾아서라도 답을 얻어야 했고 사용하는 기계는 기능까지 알고 있어야 했다. 화장은 색체미술이며 한번 빠지면 재미있고 행복하고 점점 자신의 색체를 만들어가는 예술이라며 친구들은 이야기 하지만 나에게는 풀지 못할 수수께끼이다.
화장을 하여야만 온전한 여자일까. 화장을 하지 않고도 남 앞에 설 수 있는 자신감이 얼마나 당당하고 보기 좋으냐며 화장을 제외하고는 다른 일에는 자기 할일에 최선을 다하고 알뜰살뜰 살아가는 것이 더 온전하지 않느냐고 자문해 보기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아도 민얼굴은 보기가 흔치않다. 동생들도 성격은 비슷하지만 화장을 한 듯 안 한 듯 자신들만의 화장법으로 자신을 가꾼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얼굴을 매 만지는 모습을 곁눈질 하면서 감탄을 한다. 아무래도 나는 유전적으로 한 가지가 부족한 반쪽여자가 맞는 것 같다. 무화장도 개성이라며 이야기해도 화장은 여자에게 필수이고 의무이며 특권이라고 생각하시는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나는 영원한 반쪽여자이다.
첫댓글 화장? 색채 미술 맞아요.ㅎㅎㅎ 제가 잘 안하는거 매니큐어, 맛사지,손톱소제, 등등 많은데 게을러서인지 성격상인지 모르겠지만 반쪽여자란 생각은 안 해 봤어요. ㅎㅎㅎ
삐삐님 잘 지내시지요. 이제는 어쩔수 없이 한살을 보태야겠지요. 한살을 보테는 만큼 마음의 무게는 한칸 내려 가는 것 같습니다.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