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자동차(대우버스)
1955년 김창원․김재원 형제가 ‘신진공업사’를 설립하여 재생 부품으로 국내 최초로
국산 택시를 조립․제작하다 1960년 UNKRA(국제연합 한국재건단)에서 지원받은
자금 20만 불을 투입하여 전포동 188-9번지에서 신진공업(주)를 창립하였다.
1962년에 ‘신진마이크로버스’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63년 이후 주로 중․대형
버스와 지프 등을 만들어냈으며 최초의 국산 승용차인 ‘신성호’ 생산에 성공했다.
1965년에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여 국산화율 20%의 ‘코로나’ 승용차를 본격
생산했고 1966년 신진자동차공업(주)로 명칭을 바꾸어 1968년 ‘퍼브리카’
자동차를 생산했다.
1972년 미국 GM사와 합작, ‘GM KOREA’로 상호를 바꾸어 버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였으며 1976년 새한자동차(주), 1983년 대우자동자(주), 1994년 대우중공업(주),
1999년 대우자동차(주), 그리고 2002년부터 대우버스(주)로 바뀐 이후 지금까지 국내
굴지의 버스 생산업체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신진공업에서 대우버스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세월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을
변천사를 한눈에 읽어낼 수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국내최초 ‘신성호’ 승용차, 1963년] [1966년 생산, 신진코로나 자동차]
[사진 : 부산상의 120년사 책자 97페이지]
☞ 국산 최초의 시내버스 모델
국산 시내버스 최초의 모델은 신진자동차가 개발한 ‘FB100LK’였다. 1967년 출시된
이 모델은 1970년대까지 시내버스로 각광받았다. 차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185cm로 키가 큰 사람은 몸을 구부려 서 있어야 했고 좌석은 지하철처럼 창문을
따라 길게 배열돼 있었다. 전체 길이는 요즘 버스보다 1~2m 정도 작은 9m 정도였지만
이러한 구조 탓에 ‘콩나물시루’가 되기 일쑤였다.
당시의 시내버스는 ‘프런트 엔진’ 방식으로 엔진룸이 운전석 옆에 유선형으로 튀어
나와 있었다. 엔진룸은 보통 때엔 짐을 얹는 짐칸이 되었고 겨울에는 옹기종기
엉덩이를 들이대고 앉아서 따스한 엔진의 열을 느낄 수 있는 ‘난로’가 됐다.
1970년대 후반 들어 버스의 문은 두개로 늘었다. 이전엔 문이 차체 가운데에 하나만
있는 게 보통이었다. 1970년대에 개발된 대우의 BF101과 현대의 HD170은 주요
차종으로 채택돼 1980년대 중반까지 인기를 누렸다.
[신진자동차가 개발한 ‘FB100LK’ 모델]
첫댓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대우자동차 자리에 자동차 역사관 또는 자동차 박물관이 들어섰으면 좋을 것 같네요
대우버스의 옛이름이 신진자동차였군요..
1963년 1월 소형승용차‘신성호’제작 성공을 축하하는 하객과 임직원들. 1950년대 전포동에서 출발한 신진자동차
공업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소형 승용차인‘신성호’양산에 성공하였다. 부산진구는 재계 3대 그룹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 LG그룹의 럭키화학, 대우그룹의 신진자동차(대우자동차)은 60~80년대의 중·
화학산업을 이바지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당시 신진자동차에서 최초로 생산한 대중용 버스
1950년대 말 신진자동차 전경
신진자동차 전경(연대 잘 모름)
국민학교 다닐적 도시락에 달걀 후라이 싸오는 애들은 대부분 신진자동차 다니는 직원 자녀들이 많았죠.
그땐 많이 먹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