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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콕스 지음, 유강은 옮김, 『신이 된 시장』, 문예출판사, 2018.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 왕은 부인이 많았고(1000명이라는 설은 과장일 것이다) 신전에 많은 ‘이방’ 신과 여신을 두었다. 예언자들은 이렇게 혼합된 상황에서 어느 역사학자들이 말한 ‘오직 야훼’ 신학을 창조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일신론이 아니다. 예언자들은 이방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인이 이방이 신을 숭배하거나 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런 사고는 십계명 1조에서 솔직한 방식으로 표명된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실제로 예언자들은 종종 바알을 비롯한 당대의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을 비난했지만,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바알 숭배가 아니라 바알 숭배로 빠져드는 이스라엘인이었다. 이번에도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도, 유대인 등 종교 다원주의의 행성에 살면서 자신을 ‘일신론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중요한 통찰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다른 신앙의 가치를 반박하거나 무가치하게 볼 필요는 없다.(195~196)
선견자는 종종 황홀경이나 변성의식상태에 빠졌는데, 이런 일은 성지에서 열성적인 집회가 열릴 때 자주 벌어졌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선견자는 자신이 신을 만났으며,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시장’ 신자 사이에도 이처럼 지나치게 흥분된 상태나 그에 따른 열광적인 어조에 상응하는 사례가 있을까? 내 생각에는 존재한다. 리모컨을 손에 쥐고 이 채널 저 채널 돌리는 많은 시청자는 복음 전도사와 다이어트 보조제나 주장 용품을 홍보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어조, 열띤 표정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을 눈치챌 것이다. 둘 다 다급하고 절박한 목소리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둘 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은 헌금을 보내거나 화면에 뜬 번호로 전화할지 여부를 조용히 생각해보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빌리 그레이엄Bylly Graham은 자신의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에 <결단의 시간>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화장품 판매자는 할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준다. 당신은 하마터면 영원한 생명이나 기미 없는 피부를 얻을 기회를 놓칠 뻔했다.(196∽197)
여러 세기 동안 종교인이 춤추면서 열광에 빠지거나 단식을 통해 변성의식상태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그런 단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순절 교회의 천막 부흥회나 찬양 집회에 참석하거나 주식 시장 현장을 담은 화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흥분의 정도가 비슷하다는 점을 알 것이다. 이번에도 구원이나 부의 측면에서 많은 것이 걸렸다. 흥분한 상태가 의사 결정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흥회에서 허공에 팔을 휘두르는 것은 기도와 기원을 하는 몸짓이다. 주식시장에서 팔을 휘두르는 것은 초 단위로 가치가 변동하는 증권을 매입하려는 행위다. 두 경우 모두, 오늘의 축복이 선포되거나 증권거래소의 종이 울린다고 고양의 시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부흥 기간은 몇 달 동안 계속 되며,…(197쪽)
12. 은행가, 철학자, 트릭스터, 작가
사회적 상상은 …사회 세계의 창의적이고 상징적 차원, 즉 인간이 함께 사는 방식과 공동체적 삶을 표현하는 방식을 창조하는 바탕이 되는 차원이다.
-존 톰슨
지난 몇 세기에 ‘시장’은 사회의 정점이자 중심축으로 부상하면서 결코 자신을 ‘경제’ 영역에 국한하지 않았다. ‘시장’의 언어와 이미지, 가치와 가정은 문화 전체에 침투하면서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스며들었다. ‘시장’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모습을 바꿨다.(205쪽)
존슨은 이제 말은 모든 중요한 점에서 돈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말(즉 단어)에는 본래적인 가치나 의미가 없으며, 관습과 일상적인 용법에 따라 가치와 의미가 할당될 뿐이다. 애그뉴가 존슨의 견해를 특징짓듯이, “말은 거울과 비슷하다. 그 자체는 텅 비었지만 그 앞에 놓는 사물만큼 잠재적인 의미가 많은 사회적 관습이다.”
존슨이 이런 전제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데는 한 발짝만 내딛으면 된다. 첫째, 언어는 그렇게 허깨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이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말에 의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둘째, 말은 실질적인 의미가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매혹하고, 설득하고 심지어 우쭐하게 치켜세우기 위해 말을 사용할 수 있다. 말은 쓰라고 있는 것이다.(209쪽)
지금 와서 보면, 존슨은 미국 철학사에서 반짝 성공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존슨이 세상을 떠나고 오래지 않아 때로 미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간주되는 윌리엄 제임스가 ‘실용주의’라는 지속적인 공헌을 고안했다. 실용주의란 간단히 말해 관념은 유용한 한에서 참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제 관한 많은 저술에서 제임스는 일반 독자에게 이 개념을 명료하게 밝히기 위해 종종 ‘현금 가치’라는 은유를 사용한다. 제임스는 이런 거친 어조를 철학적 사유에 끼워 넣었다는 이유로 당대 사상가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209∽210쪽)
13. 하느님의 숨결과 시장의 정신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요한복음> 3장 8절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한 설교, <사도행전> 2장 17절
기독교에서 ‘성령Holy Spirit’이라는 용어는 신이 우리 안에(테니슨의 시구처럼 “그대의 숨결보다 가까이, 손이나 발보다도 가까운 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와 숲과 산 그리고 일부 신학에서는 모든 유정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이것은 기독교만의 독특한 개념이 아니다. 이렇게 신성이 내재한다는 관념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217쪽)
성령은 ‘하느님의 영the Spirit of God’이나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 혼은 간단하게 ‘영the Spirit’ 등 어떤 식으로 표현되든 성서 전체에서 언급된다. 히브리 성서에는 ‘ruach’, 즉 하느님의 숨결로 표현된다. <창세기> 천지창조 이야기에는 태초에 물 위를 움직이는 영이다. 우리는 여러 사건에 관한 설명에서 성령이 여호수아와 사울, 다윗 같은 핵심 인물에게 ‘임했다’고 배운다. 예수는 마리아에게 수태될 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묘사된다. 요단강에서 예수가 요한에게 세계를 받을 때 성령은 비둘기의 형태로 내려온다. 이 때문에 비둘기는 여러 세기 동안 성령을 나타내는 주요한 예술적 상징이 된다. 성령은 예수를 광야로 이끌고, 예수는 거기서 권세와 영광의 유혹과 싸운다. 예수는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난 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령을 보낼 것이라고 약속한다.(219쪽)
성 바울은 아네네의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군중에게 연설하며 성스러운 영이 거의 우주 전체에 존재한다는 널리 공유되는 생각에 호소한다.(<사도행전> 17장 15∽34절)…… “하느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느님 안에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사도행전> 17장 27∽28절)
<참고> 오순절: 부활절 이후 50일이 지난 때.
성서는 내재하는 신과 외재하는 신의 관계의 정확신 성격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한다. 때로는 인간이 ‘하느님 안에’ 있다고 묘사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에 관해 말한다. 성 바울은 이 관계를 아주 내밀한 것으로 만든다. 바울은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라디아서> 2장 20절)라고 말한다. 모든 종교 전통에서는 신비적인 통로가 내면의 길에 집중된다. 예를 들어 이슬람 수피즘은 의무적인 성지 순례haj를 완성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지상의 메카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내면의 메카’를 향해 끈기 있는 여행을 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신비주의자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Ávila는 하느님의 존재에 다가가는 것을 ‘내부의 성’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묘사했다.(221∽222)
성탄절: 예수, 산타, 꼬맹이 팀, 루돌프
예수가 태어난 날짜나 연도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초기 기독교도는 어느 정도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지 않았고, 훨씬 더 중요한 축일이라고 생각한 부활절에 집중했다. 예수 탄생일을 정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은 여전히 로마 당국의 의심을 받았고, 때때로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현명하게도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 기리는 이교도의 떠들썩한 축제 사투르날리아Saturnalia가 열리는 날을 예수 탄생일로 선택했다. 사람들이 축제로 흥청거리는 가운데 기독교도의 수수한 축하 행사는 당국의 이목을 끌지 않을 테니까. 기독교 역사의 초기 몇 세기 동안 부활절은 대표적인 축일이었다.(255쪽)
마르틴 루터는 숲속에서 상록수를 끌고 와 촛불로 장식한 일화로 유명하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칼뱅주의 성향이 강한 청교도는 성탄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성탄절은 이교적이고 천주교적이었다. 어쨌든 크리스마스에는 ‘미사mass’란 단어가 들었고, 소나무는 이교를 연상시키는 요정과 숲의 정령의 냄새를 풍긴다.(255쪽)
많은 이들이 성탄절의 상업화와 심지어 몰락에 대해 목소리 높여 개탄해왔다. 초기 기독교는 성탄절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로 생각했는데, 산타클로스와 꼬맹이 팀, 루돌프가 무대 전면을 차지하면서 종종 원래의 중심점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이(서구에서) 12월 마지막 2주 동안 고조되는 지나친 음주와 화려한 물질주의,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개탄하는 가운데 사투르날리아를 슬쩍 흡수한 과거를 상기해도 좋을 것이다. 사투르날리아는 음주와 흥청거림으로 유명했다.(254∽255쪽)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면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
16. 모든 소원을 아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소원을 아시며,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사오니,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우리 마음의 온갖 생각을 정결케 하시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공경하여 찬송케 하소서.
-성공회 기도서
우리는 유달리 고백을 좋아하는 사회가 되었다. 고백의 효력은 폭넓게 확산되었다. -미셀 푸코
우리는 가톨릭교회가 고해성사를 제도화한 것이 사람들이 자기 양심을 탐색하고 용서받는 데 따르는 위안을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사람들을 자신의 영적 권력 아래 더 확실하게 묶어두려는 목적도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더 많은 욕망은 더 많은 죄를 의미하고, 더 많은 죄는 더 많은 고백을 의미하며, 더 많은 고백은 교회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심화하고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274쪽)
종교와 시장이 호혜적인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예수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마가목음>2장 27절)아로 말했다. 이 말에 안식일 대신에 ‘경제’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 양자는 서로 정보르 주고 강화할 수 있다.(381쪽)
1.신이 된 ‘시장’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냈다. 고대 금송아지 숭배(<출애굽기>32장 참조)가 …
… 돈에 대한 맹목적 숭배로 돌아왔다. …… 이런 체제에서는 ……하ᅟᅩᆫ경같이 허약한 것은 무엇이든지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 (11쪽)
제국이 쇠퇴하면서 권력과 영향력이 커진 가톨릭교회는 4섹기 무렵부터 많은 이에게 합리적인 해법으로 보이는 조치를 내놓았다. 대수도원장과 주교는 말했다. “우리에게 재산을 내놓아라. 우리는 정당하게 임명된 그리스도의 후계자이므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 재산을 맡아놓고 신중하게 분배할 것이다.” 이란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현생과 다음 생에서 여러분과 그 가족을 위해 계속 기도와 대리 기도를 드릴 것이다.” 이는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으로, 이후 여러 세기 동안 교회가 수도원과 교구를 통해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기관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교회가 관리하게 기부한 재산은 ‘가난한 사람의 세습재산’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므로 교회에 기부나 유산 증여를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훔치는 용서할 수 없는 죄였다. (130쪽)
이후 여러 세기 동안 가난한 사람의 세습재산이라는 이상은 교회가 영향력을 키우고, 주교들이 부를 통해 정치적·사회적 권력을 강화하는 주된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이 고위 성직자들은 현세의 왕들과 달리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지 않았으며(몇몇은 전장에 나갔다). 자기 이름으로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들의 막대한 권력은 적어도 처음에는 자신들이 기독교 세계의 가장 가난한 농민과 성민bűrger의 대표자이며, 하느님 나라의 통일을 수호한다는 주장에서 유래했다.(131쪽)
간단히 말해 상류층 교회 지도자와 심지어 하층이 일부 지도자조차 가난한 사람의 세습재산에 노골적으로 의지해서 사치에 가까운 생활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주교는 궁전 같은 저택으로 이사했다. 수도자는 직접 하던 노동을 대부분 평신도에게 떠넘겼고, 수도원 바깥에서 먹을 것이 귀한 때도 수사는 베불리 먹었다. 로빈 후드의 동료인 터크 수사의 퉁퉁한 이미지는 단순한 캐리커쳐가 아니다. 당대의 반교권주의 풍자화에서 이따금 수사는 잔뜩 차린 식탁에 앉아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는 반면, 가난한 사람은 수사의 발밑에 웅크리고 굶주린 눈으로 지켜보는 모습을 묘사했다.
미국과 세계경제의 금융 부문처럼, 엘리트 성직자의 권력 증대 역시 항상 확고한 것은 아니었다. 권력은 고점과 저점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고점은 더 높고 사치스럽고 무절제해졌다. 특히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때는 교황이 거의 100년 동안 아비뇽에 머무른 시기인데, 16세기 초까지 르네상스 시대 교황도 왁자지껄한 파티를 즐겼다. 악명 높은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황 레오 10세는 동생에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우리한테 교홍 자리를 주셨다. 이제 그 자리를 즐기자.”
이 추잡한 이야기의 출발은 순결했다. 1305년에 프랑스 고위 성직자 다수가 장악한 추기경단은 프랑스인 교황을 선출했고, 신임 교황 클레멘스 5세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교황은 로마에 가지 못했다. 영원의 도시 로마에서 벌어지는 소요는 들끓는 반反 프랑스 정서에 겁먹은 교황은 프로방스의 론강 어귀에 있는 아비뇽에 멈춰 섰다. 기민한 선택이었다. 이 도시는 분명 프랑스의 영향력과 세력권에 있지만, 엄밀히 말해 프랑스 땅은 아니었다.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영이었기 때문이다. 클레멘스 5세 성하는 그곳에 교황의 문장紋章를 내려놓았고, 이후 프랑스인 교황 다섯 명이 아비뇽에 남아 가톨릭 세계를 통치했다.
1378년까지 지속된 아비뇽 교황청은 소란스러운 역사를 거치면서 분열과 추문을 낳았는데, 이런 분열과 추문은 208년 뒤에 벌어진 종교개혁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 독특한 시기는 다른 많은 원인과 더불어 얀 후스, 츠빙글리 등이 제기한 항의에 일조한 합선의 생생한 사례를 보여준다. 아비뇽은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간 종교 상품을 생산하는 국제 카르텔 중심지가 되었다. 이런 영적인 교회 상품은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판매 대상인 중세 후기 고객에게는 필수적이었다. 주요 제품은 교회 직책으로 유급 직책이나 ‘고위 성직’, 당시 교회의 거대한 위계질서에서 부른 말은 ‘성직록을 받는 성직’이다. 이런 직책은 절대 부족한 일이 없었다. 당시 주교가 700명, 그 아래 정직자가 수천 명이었다. 성직자도 때가 되면 죽었기 때문에 채울 자리가 계속 생겼다. 이런 성직은 대개 직무가 거의 혹은 전혀 없는 한직이고, 때로는 피임명자가 자리를 지킬 필요도 없었다. 많은 이들이 자리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었으며, 아무 부끄럼 없이 공공연하게 직책이 매매되었다. 마술사 시몬 마구스Simon Magus의 이름을 따서 ‘시모니Simoni(성직 매매)’라고 불린 관행이다. 마술사 시몬은 영적인 힘을 사도들에게 돈을 주고 사려고 한 인물이다.(<사도행전>8장 9~24절).
하지만 성직 임명은 시작에 불과했고, 피임명자는 종종 첫해 연봉의 절반을 교황청에 내야 했다. 주교나 대수도원장이 사망하면 개인 재산은 교황에게 환수되었다. 교황은 이혼 특별 허가에도 대가를 요구했다. 부유한 귀족은 십자군에 참여해서 성지까지 고생스럽게 가는 불편과 불안을 피하려고 후한 기부금을 냈다. 교황은 받아낼 돈을 징수하는 나름의 효과적인 기법이 있었다. 파문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큰돈을 기부하면 사생아도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많은 사생아가 사제의 자식이었다). 사촌끼리 결혼하는 허락를 받는 데도 대가가 필요했다. 역사학자 바버라 터크먼 Barbara Tuchman이 말한 것처럼, “추기경 직위부터 순례자의 유품까지 모든 것이 판매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남부의 한 도시에서, 나중에 한동안 로마에서 ‘시장’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의 감독 아래 전성기를 구가했다.
아비뇽에는 두카트, 플로린, 길터 등 각종 금화가 넘쳐났다. 교황과 그 종자들이 살던 거대한 궁전은 오늘날에도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도시는 금세 유럽의 종교 중심지이자 라스베이거스가 되었다. 떠들썩한 연회가 날마다 밤하늘을 밝혔다. 호화스러운 잔치가 하루가 멀다고 열렸다. 지방 교구에서 온 손님은 고급 포도주와 멋진 과자, 최상급 사슴 고기와 쇠고기, 값비싼 푸딩과 브랜디를 기대할 수 있었다. 갖가지 여흥이 제공되었고, 언제라도 매춘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내부의 부패가 교회의 토대를 갉아먹었다. 이비뇽의 무절제한 방종이 뒷날 비텐베르크와 제네바, 기독교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기여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거대한 합선이었다.
경제와 종교에서 벌어진 합선의 역사를 관찰하면 이 현상이 불가피해 보일 수가 있다. 모름지기 권력은 기업 권력이든, 종교 권력이든 부패하기 쉽다. 절대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부패도 심해진다. 마치 운명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비뇽과 르네상스 교회의 끝없는 부패는 결국 종말을 고했다. 오늘날 종교가 모든 부패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현 교황은 작은 아파트에 살며 다른 손님들과 함께 소박한 식사를 한다. 그렇다 대불황은 가라앉기 일보 직전인 금융 산업의 뱃머리 위로 경고사격을 했다. 앞에서 말한 제너럴일렉트릭에 관한 뉴스가 어떤 의미라도 있다면, 금융의 중앙 제단에서 신을 섬기는 고위 사제들은 내키지 않을지언정 그 교훈을 배울 것이다. (132~135쪽)
마태복음(7장 산상수훈) :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초대형 교회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와 지구 곳곳에서 등장한다. 실제로 세계 10대 교회 중 5개가 한국에 있다. 전 세계에서 기독교 단일 교회 중 가장 큰 것은 서울의 여의도순복음교회다. 80만명이 넘는 신도를 거느린 이 교회는 거대한 건물에서 일요일 예배를 여섯 번에 나눠 진행한다.(141쪽)
희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략) 마음에 들지 않는 가족이나 마을에서 ㅂ서어나기 위해, 바람을 피우다가 들켜서 남편의 분노를 피해 순례에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에 나오듯이,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순례에 나섰다. 하지만 ‘무조건 용서해준다’는 교황의 약속이 많은 이에게 가장 주된 동기였다. 이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로, 수많은 사람이 1299년 성탄절을 앞두고 로마에 모여들었다.(108쪽)
교황은 1400년을 자기 치세의 2차 성년으로 선포했다. 군주부터 거지까지 온갖 부류 사람들이 순례를 했다. 그중에는 교황과 전혀 친하지 않은 단테도 있었다. 단테는 《신곡》 <천국 편> 31곡 행사에서 이 행사에 관해 이야기한다.(109쪽)
희년 :처음 50년...그러다가 예수님 나이 33세에 맞춰 33년마다..그러다가...시간이 흐르면서 33년 주기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