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죽이는 우역(牛疫)이라는 역병이 이즈음부터 돌기 시작했는데 황해도에서 7월 한달에만 역병으로 죽은 소가 897마리나 되었다. 경기도에선 137마리가 죽었다. 사람들 또한 역병으로 인해 505명이 감염되었고 26명이 죽었다.
8월이 되면서 냉우, 즉 차가운 비까지 더해졌다. 함경도 쪽은 더욱 상황이 나빠졌는데 냉우와 우박이 번갈아 내리며 물에 빠져 죽거나 우박에 맞아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논과 밭이 물에 잠기고 산삼 싹이 냉해로 말라죽었으며 도토리까지 열리지 않으니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만주 땅으로 들어가 산삼, 도토리 채취는 물론 담비까지 사냥했다. 물론 이것은 청나라와의 국경 분쟁을 야기했고 새로운 외교문제로 등장했다. 무릎을 꿇은 것도 헛되도다
8월 중순에 또다시 폭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익사자만 67명에 달했다. 8월 하순, 폭풍우가 또다시 한반도 남부를 강타했다. 어린이가 강풍에 날아가다가 추락해 죽고 수확기인 목화가 죄다 말라 죽는 등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전라도에선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내리 닷새동안 서리가 내렸고 8월 1일과 22일엔 냉우가 쏟아져 작물이 침수했다. 거기에 녹색풍(錄塞風) 내지 살곡풍(殺穀風)이라 불리는 동풍이 불어와 벼들이 말라죽었다.
황해도에선 우역이 크게 번져 8월 한달에만 죽은 소가 도합 1만 6천마리나 되었다.
9월 초, 강원도가 폭풍우에 휩쓸려 물난리가 났다. 황해도에선 우역의 피해가 지속되었고 9월 한달에 8418마리가 추가적으로 죽었다. 경기도에서도 우역으로 인해 3500마리가 죽었다.
10월 말에 폭풍우가 또 한차례 전국을 휩쓸었는데 경상도에선 이듬해 수확해야할 밀과 보리 씨가 말라버렸다. 경기도에선 우역으로 1800마리가 추가적으로 죽었다.
11월, 우역으로 2350마리가 죽음으로서 황해도에선 도합 22165마리의 소가 죽었다. 대략 전체 농가의 4%가 소를 잃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이 즈음 전염병의 기세는 수그러들기는 커녕 더욱 거세졌다.
여름에도 눈과 서리가 내릴 정도였던 이 해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고, 거리로 나선 유민들이 얼어죽은 사태가 빈번했다. 유민들은 얼어죽지 않기 위해 남의 옷을 빼앗거나 심지어 시신의 옷을 벗겨입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