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라면왕
혹시 ‘노르웨이 라면왕’을 아십니까? 바로 이철호씨입니다. 그가 만든 라면 브랜드가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을 때 '미스터 리 조국의 대통령'으로 소개할 정도로 그는 유명 인사였습니다. 미스터리는 20년 동안이나 노르웨이 라면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해 왔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이 라면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37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일 때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 난리 중에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전쟁고아가 된 것입니다.
이후 그는 미군부대에 있게 되었는데 전쟁 중에 중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열 일곱이었습니다. 상처가 제법 컸던지 의사들은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치료도 중단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노르웨이 의료진이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에 그를 노르웨이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노르웨이에 남기로 하였습니다. 노르웨이 한국인 1호가 된 것입니다. 곧 낯선 외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그의 삶이 순탄했을 리 없습니다. 말도 안통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국 땅에서의 삶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언어를 배워야 했고, 낮에는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호텔 식당의 청소까지 해야 했습니다. 고단한 하루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끈기와 성실함을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호텔 요리사들에게 인정을 받은 그는 요리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르웨이에서도 한국식 라면이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특유의 끈기와 성실을 앞세워 열심히 라면을 개발했습니다. 우선 현지인의 입맛에 맞아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1989년 드디어 ‘미스터리’라는 라면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품화 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낯선 이방인의 라면을 대뜸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문전박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거절 받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거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일어나면 거절 받고 거절 받기 위해 밥 먹고 후에는 또 거절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절 받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미스터리'가 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절 당할 때마다 항상 90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거절 당하기를 수십 번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겨우 임시 판매대 한 귀퉁이에 라면을 진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의 이런 노력이 금방 결실을 거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3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자 상점들이 그의 라면을 찾기 시작했고 정식으로 주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스터리 라면'은 그의 확신대로 곧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었고, 그 유명세로 그의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노르웨이의 라면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미스터리'는 라면의 대명사처럼 되어 여전히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철호씨는 전쟁고아로서 전쟁 중에 거의 죽을뻔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돕는 손길들이 있어 극적으로 소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생면부지의 외국에서 많은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역시 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직은 살만한 곳입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끈기를 가지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면 그에 합당한 기회들이 주어집니다. 세상은 절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렇게 살고자 힘쓰다보면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참고: 연합뉴스 2011.05.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