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글판 2022년 가을편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매년 3월, 6월, 9월, 12월이 시작되기 전날이면 광화문글판이 계절의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어떤 문구와 디자인이 광화문글판을 장식할까 궁금해 한다. 올해도 9월이 찾아왔다. 늦었지만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을 찾아갔다.
교보생명빌딩 광화문글판의 올해 ‘가을편’을 만났다. 글판의 문안은 강은교 시인의 시 ‘빗방울 하나가 5’에서 발췌하였는데,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능동적인 주체로서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열망이 있음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글판의 디자인은 광화문글판 대학생 디자인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타오루이쩡(성균관대·21세) 작품으로 창 밖 희망의 별을 바라보는 인류와 두드림의 의미를 참신하게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 글판을 지난번 여름 글판과 바꾸어 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김춘수의 시 '능금'은 가을에, 강은교의 시 ‘빗방울 하나가’는 여름 계절에 잘 들어맞을 것 같다. 그렇지만 각각의 의미를 찾으며 각자가 음미하면 계절이 새로운 빛을 낼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빗방울 하나가 5 - 강은교(1945~)
무엇인가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륵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 시집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문학동네, 1999)
강은교 시인은 1968년 등단하여 수많은 시집과 산문집을 펴내며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 문학계를 이끌어가는 대표 시인 중 한 명이다.
강은교 :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및 동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68년 <사상계>로 등단. 시집 『허무집』(70년대동인회, 1971), 『풀잎』(시선집, 민음사, 1974), 『빈자 일기』(민음사, 1977), 『포에지』(문학동네, 1996), 『소리집』(창비, 1982), 『우리가 물이 되어』(문학사상사, 1986), 『바람 노래』(문학사상사, 1987),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실천문학사, 1989), 『그대는 깊디깊은 강』(시선집, 미래사, 1991), 『벽 속의 편지』(창비, 1992) 『어느 별에서의 하루』(창비, 1996), 『사랑비늘』(좋은날, 1998),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문학동네, 1999),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문학사상사, 2002), 『초록 거미의 사랑』(창비, 2006) 『네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서정시학, 2011), 『바리연가집』(실천문학사, 2014),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창비, 2020)가 있다.
화자가 두드리고 싶은 것은 '창'과 '어둠' 또는 '별'이다.
두드리고 싶은 것은 그 대상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의식의 표현이며, 내면적, 원초적 동일성을 이루고자 하는 상징적 욕망을 담고 있다. 여기서 화자는 물방울 하나가 창문에 서 있다가 떨어져 내리는 현상을 보고 내면적 자아의 동일성을 이루려는 의식지향을 느끼고 있다. 그 동일성의 대상이 '창'이든 '어둠'이든 '별'이든 그 우주적 질서 속에 있는 대상과의 일체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창/어둠/별'의 대상들은 화자의 존재의식을 형성하는 상징적 표상들로서 작동한다.
창을 두드리는 것은 자아의 투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존재 행위이며, 어둠을 두드리는 것은 세상의 어둠과도, 아니 깊은 상처의 어둠과도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삶의 태도이며, 별을 두드리는 것은 우주적 눈을 열고 자아의 이상을 대상화하는 존재 행위의 상징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강은교의 「빗방울 하나가 5」는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통해 우주적 귀를 열고 세상의 어둠과 우주적 삶의 질서와의 동일성을 이루려는 존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김수복 시인ㆍ문학평론가
정면에 세종대왕 좌상, 그 뒤에 광화문과 청화대 그리고 북악산이 보인다. 왼쪽에 세종문화회관이 있다.
왼쪽에 세종문화회관, 중앙 정면에 세종대왕 좌상, 그 뒤에 광화문과 청화대 그리고 북악산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