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된 동원호에는 한국인 선원 8명을 비롯해 중국인 3명, 인도네시아 9명, 베트남 인 5명, 총 25명의 선원들이 타고 있었다. 정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그들이 건강에 이상이 없고 생각보다 덜 위협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직접’ 소말리아로 가서 확인한 이는 없었다. 김영미 PD는 그들을 처음 본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같이 말라있었고 처참한 몰골이었다.” 현재 소말리아의 오비아 항 인근에 정박 중인 동원호에서 생활하고 있는 선원들. 그들은 다만 ‘생존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위협하는 건 총을 든 해적들과 24시간 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제 어느 때 그 총부리가 자신에게 겨눠질지 모르는 상황. 지난 4월 미군과 해적단과의 대치상황에서 갑판 위 로 끌어올려져 인질로 세워졌던 경험은 그들에게 극한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지금은 회복됐지만 한 때 말라리아 등의 풍토병으로 고생한 흔적이 지금도 역력했다. 취재기간 중 그들이 보인 히스테릭한 반응은 그들이 현재 얼마나 극한 절망과 자포 자기의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어차피 죽을 몸, 차라리 바다에서 죽겠다 며 뛰어들려 하던 선원도 있었고,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차라 리 해적들과 한판 붙어나 보자며 뛰쳐나가려 하기도 했다. 김영미 PD는 부질없는 죽 음을 선택하려는 그들을 붙잡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달라며 밤새 애원했다고 한 다.
< ‘우리 곁에 조국은 없다!’ - 선원들의 절규 >
우리 정부는 뭘 하고 있는가. 선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선원들이 처한 극한 절망의 근원에는 바로 ‘조 국의 무관심’이 있었다. 김영미 PD가 머무르던 중에도 배 위에선 협상금액이 적힌 팩스만이 오고 갔다. 그러나 그 뿐,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직접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협상의 주체도 선주 회사인 동원수산이었을 뿐, 정부의 입김은 느껴 지지 않았다. 그들을 더 분노하게 했던 건 한국의 누구도 소말리아 안으로 들어오지 조차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가까이 있는 ‘조국’은 인접국가인 케냐의 나이로비 도 아닌, ‘안전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였다. “왜 우리 정부는 우리들 곁으로 오지 않는가? 왜 그렇게 멀리 있는가?” 선원들의 절규는 지금 우리 정부의 ‘협상’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지, 있기나 한 건지 의심하게 했다.
< ‘합리적인 협상’ 먼저, 선원들의 안전은 나중? >
외교통상부의 안이한 대처가 그들을 방치해두고 있다.
사건 직후 정부는 소말리아를 관할하는 케냐 한국대사관에 현장 대책본부를 세웠 을 뿐, 정부 대책반을 현지에 파견하지 않았다. 이라크 등 중동지역에서의 한국인 납 치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돈을 노린 범죄라는 이유였다. 정부의 협상원칙은 처음 부터 정해져있었다. 해적행위를 자행한 납치세력과 직접 교섭할 수 없으며, 돈을 지 불하는 것도 협상 테이블 전면에 나서는 것도 회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소말 리아 과도 정부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납치세력을 압박하고 있다며 홍보했지만 실권 도 발언권도 없는 과도정부만 믿은 채 시간만 낭비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소 말리아의 여러 복잡한 국내 정황을 파악하지 못한, 정보력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 도 있다. “어차피 이런 협상은 시간이 걸리게 돼 있다.”라는, 브리핑 때마다 반복되 던 정부의 코멘트는 안이한 시각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납치세력 내부 이견으로 합리적 협상 조건이 제시되지 않고 있 는 게 협상 타결의 최대 장애”라며 ‘저쪽 탓’을 해왔다. 부르는 몸값도 턱없이 높은 수준이라 제대로 된 협상이 진행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직접 해적들을 만나고 협상과정을 지켜본 김영미 PD는 말한다. “해적들이 원하는 게 무슨 엄청난 거액도 아니고 10억 내외다. 나 혼자 찾아가서도 협상할 정도의 수준 인 해적이었다. 정부는 한마디로 답답하다 못해 한심하기까지 했다.” 7월 초만 해도 “90% 협상, 이제 10% 남았다”는 말을 되풀이했던 정부. 그러나 정부 가 믿고 있던 과도정부는 반군 세력에 전복됐고, 시간은 어느 새 넉 달이 지났다.
< 소용돌이치는 소말리아의 정국. 그들을 더 위협하고 있다! >
김영미 PD가 머무르고 있던 7월 초,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엔 대규모 총격전이 있었다. 1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그 전투를 끝으로 이슬람 반군이 소말리아의 거의 전 지역을 장악했다. 지방 군벌 휘하에 있는 해적들 사이에서도 언제든 전투가 발생 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김영미 PD가 어렵게 만난 반군의 지도자는 한국인 선 원 석방을 위해 애쓰겠다고 공언했고 다음날 라디오를 통해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선원들을 석방하면 지금이라도 용서해주겠지만, 계속될 시엔 용서하지 않겠다는, 해 적들을 향한 ‘엄포’였다. 자칫 반군과 해적들의 대결상황으로 이어질 경우 누구도 선 원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소용돌이치는 정국이 선원들을 더 큰 불안으로 몰아 가고 있었다.
< 국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
한국의 가족들은 넉달 넘도록 속앓이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회사와 정부에서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협상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회사 측의 전화는 한결같 이 ‘협상이 다 돼 간다, 막바지다, 곧 돌아올 것이다’ 라는 말이 전부였다. 가족 중 한 명은 ‘앵무새’라는 표현을 쓰며 분통을 터뜨렸다. 언론엔 해적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 쪽 동향을 파악할 수 있으니 삼가달라고 했다. 그러나 직접 가 본 해적본부는 인터넷 은커녕 기본적인 통신수단마저 미비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해적들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나 한 것인가. 혹은 알면서도 우선 ‘입막기’에 급급한 것인가. 지금까지 정부는 25명의 생명을 일개 수산회사에 맡겨둔 재 방관하고 있었다. 그러 나 선원들을 무사히 귀환시켜야 할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는 것이 바로 국민의 ‘상식’ 이다. 더 이상 안전지역인 인근 케냐에 머물며 ‘간접협상’만 한 게 아니라 소말리아 현지로 들어가 좀 더 적극적인 석방노력을 해야 한다. 올해에만 한국인 피랍사건 3 건.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란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야 한다.
우리에겐 불과 2년 전의 ‘김선일씨 피살 사건’이라는 뼈아픈 상처가 있다. 정부가 가지라던 ‘인내심’은 선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미 그 한계치를 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