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 산책(20210419)
직박구리 시끄럽게 지저귀니 팥배나무 꽃을 피우다
오후에 아내가 대모산에 오르자고 한다. 나처럼 길게 걸어서 정상에 오르지 말고 아주 짧은 과정을 걸어 정상에 오르자고 제안한다. 어제 두타산 산행으로 무릎이 시큰거리지만, 요즘 불면증으로 수면안정제를 복용하는 아내의 청을 거절할 수 없다. 간단한 복장으로 최단거리로 오르는 산길을 올라서 대모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첫 눈에 들어온 것은 매화말발도리 하얀 꽃들. 새하얀 눈이 날리듯 꽃들이 맑은 웃음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매화말발도리 꽃을 만났다.
정상에서 직박구리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지저귄다. 사랑을 잃었는지 홀로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다가 앉아서 한참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한다. 무슨 사연일까? 짝짓기를 끝내고 사랑을 잃은 것은 아닐까? 외로운 직박구리 새가 가엾어 보인다. 헬기장 전망대에서 조망하지만 미세먼지와 황사가 부옇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만 한강 건너 풍경은 모두가 먼지와 황사에 가려 실루엣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차근차근 돌면서 대모산의 식물들을 살피며 28년 전 1993년 봄 '나의 자리'라고 명명한 곳에 오랜만에 가보았다. 그 자리의 바위 2개와 팥배나무들이 예전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단한 생활에 얽매어 마음 붙들 곳을 찾지 못할 때면 언제나 이곳에 와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오늘은 '나의 자리'에 처음으로 아내를 안내하였다. 팥배나무 꽃망울들이 주렁주렁 맺혀서 바람에 흔들린다. 지난 시절의 아픔이 추억처럼 솟아오른다. "천사아내여, 악마남편을 만나서 함께 살아준 당신에게 감사하오. 앞으로 죽는 날까지 생활의 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대모산을 내려가는 도중 하얀 꽃물결이 출렁거린다. 무엇이지? 가까이 가서 보니, 오! 팥배나무가 벌써 꽃을 피워냈다. 정상 부근에는 꽃망울들이 부풀어오르기만 했는데 대모산 기슭 가까운 곳에서는 팥배나무 몇 그루들이 벌써 꽃을 피워 흔들흔들 꽃웃음을 보낸다. 팥배나무 흰 꽃그늘 아래서 막걸리를 마시던 그때가 그립구나.
1.매화말발도리 꽃
2.대모산 정상
3.직박구리 새
4.뽕나무 꽃
5.각시붓꽃
6.덜꿩나무 꽃망울
7.때죽나무 꽃망울
8.팥배나무 꽃망울
9.나의 자리
10. 팥배나무 꽃
정상의 팥배나무는 꽃망울만 맺었는데, 대모산 기슭의 팥배나무 몇 그루는 벌써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