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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이 물방울 모양 광배(光背) 안에 서 있어 ‘물광울 관음’이라 불리는 일본 센소지소장 ‘수월관음도’. [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
화면 오른쪽에 `해동 승려 혜허가 그렸다`(海東癡衲慧虛筆)는 명문이 남아있다.
다음은 도록을 찍은 것인데 --
버들가지를 든 관음보살(세부) |
- 정병은 왼손에 있는 듯.
- 모든 불화가 그렇듯, 수월관음도 역시 경전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화엄경의 선재동자이다.
700년을 이어준 눈물
한 폭의 불화(佛畵) 앞에서 정말이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불자도 아니고 대단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가로·세로 크기가61.5cm와 142cm에 불과한 그다지 크지 않은 그림 앞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불화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혜허(慧虛)’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을 그린 승려화가의 법명이리라.
말뜻 그대로 ‘빈 지혜, 혹은 지혜의 비움, 앎의 허허로움’이라고나 할까.
그 법명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700여 년 전 한 승려화가의 말없는 부름에 나 역시
말을 삼킨 채 마음으로 끝없는 얘기를 건네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700년 만의 해후’란 부제가 붙은
‘고려불화대전’을 보러 갔을 때 일이다. 여러 개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중
으뜸으로 치는 속칭 ‘물방울관음’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의 모습을 누군가 옆에서
봤다면 넋 나갔다고 했을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관음보살이 버들가지로 정병의 물을 찍어 공중에 흩뿌리자
이것이 버들잎 끝에서 튕겨 떨어져 녹청색의 물방울을 이루고 이 속에 다시
관음보살이 현현하는 놀라운 상상력의 표현이 내 눈 앞에서 7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선 녹청색의 물방울 자체가 관음의 구제력을 상징하는 버들잎의 형상과
같고 그 녹청색 물방울 혹은 버들잎 모양이 광배(光背)로 인식되기도 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물방울 관음’이란 별칭을 지닌 이 작품은 고려 불화 중 최고 걸작
으로 꼽힌다.
그 작품 앞에 선 나 스스로가 물방울 모양의 광배 안에 담겨진 느낌이었다.
아니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히 ‘진품의 위력’이었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