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회사 31
(관동 대지진과 한국인 학살)
지금 올라는 글은 한국 교회의 역사이자
한국 역사이기에 지면을 할애해서라도
한국인이라면 알아야 하는 관동 대지진에
대해 쓰려한다.
비록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일본 정부가 한국인들을 얼마나 참혹하게
다루었는가를 잘 알려주는 사건이
관동 대지진때 '한국인 대 학살 사건'이다.
1923년 동경 요꼬하마와 간또 지방 일대에
유례없는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동경과 요꼬하마를 위시한 시가지에서
지진으로 도처에 화재가 발생했으며
그 화재는 5일간 계속되어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동경시내 63만 8백 60호 가운데
40만 7천 992호가 전소되고
사망한 사람만 9만 천명이었으며
그 중에 지진으로 인한 화재로
76000명이 사망했다.
지진으로 화재가 확산되면서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하는데
요꼬하마에서 일어난 큰 불이
한국인의 방화로 생긴 것이라는 소문과
한국인들이 부녀자들을 살해했다는 소문,
한국인들이 시내의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소문 등
온갖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나 각종 신문들은 유언비어를.
확인하지 않은채 그대로 신문에 실어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군인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했다.
여기에 짧은 기록을 적어본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방화, 우물에 독약 투입, 폭력 등의
죄명으로 살해되었다.
어떤 사람은 총으로, 어떤 사람은 일본도(칼)로,
혹은 죽창으로 살해되고 살해된 후에는
시체를 불에 태우고 필설로 표현할 수 조차 없는
잔혹한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
수백명을 일시에 총살한 일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전신주에 결박하고는
먼저 눈알을 뽑아내고 다음에는 코를 자르고...
그런 참혹한 광경을 충분히 구경시키고 나서
배를 찔러 죽이기도 했다.
기차안에서도 한국인을 찾아내어
달리는 기차 문 밖으로 던져 치어 죽게 하고
남녀 수십명을 전부 발가벗겨서
걸어가다 죽이기도 하고
몇시간 동안 춤을 추게 하여
찔러 죽이는 일도있었다.
사람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이며
재미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죽은 한국 사람이
일본 경시청 조사를 근거해도 6940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이,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관동 대지진 방화자로,
사회폭동자라는 터무니 없고 근거없는 이유로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마치 초대교회 로마의 대화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방화의 혐의를 씌워 무참히 살해했던
유사한 사건이 일본에서 발생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 이상협 편집국장이
일본 현지에 가서 조사를 하고
국내에 들어와 "일본인은 표면상으로는
일등국민으로 자처하고 입으로는 문화를 말하며
내선융화를 선전하지만 속마음으로는
한국인을 극도로 모욕하고 항상 한국인을 증오하나
한국인들을 두려워 하는 것은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일본의 잔인한 박해는
비인도적이어서 입으로는 감언이설로
사탕발림을 하면서 뱃속에는 독침을 품고 있어
일본인은 참으로 무섭고 결코 친근할 수 없는
민족이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분노를 삭이질 못했다고 한다.
신문을 통해 반일, 배일 감정이 확산되자
총독부는 동아, 조선 두 신문을 차압하고
그외 31종의 신문도 차압을 했으나
한국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럼에도 일본의 기독교인은 전혀 모르는채
침묵을 지켰고 한국 교회 역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구 하나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당시 총회장과 두명의
위문사절이 파견되기는 했으나
그건 예의상에 블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