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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서기관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 |
◇ 문제제기 / 온전한 율법이란? ◇
온전한 율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제도가 아니라, 삶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정죄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군림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법조항이 아니라, 용서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제사장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교회 법이 아니라, 이웃사랑입니다.
온전한 율법은 교황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 본문연구 □
본문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 속에서 열쇠를 찾지 못하면 딴소리를 하게 됩니다.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를 통하여 밑바닥에 있는 것까지도 빠짐없이 얻어내야 합니다. |
율법을 평생 연구하는 서기관이 예수님께 무엇을 질문하였는가?
28절)
유대교에는 모두 613개 조항의 많은 율법들이 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계명을 무엇이라고 하셨는가?(30절)
두 번째의 계명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31절)
울법연구자인 서기관도 예수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는 어떤 말로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를 표하였는가?(33절)
서기관의 지혜 있는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34절)
□ 대 화 □
대화는 본문 연구에서 얻어진 깨우침들을 생활화 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는 한낱 지식 전달이나 과정으로서의 성경공부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를 통하여 말씀을 삶속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자. |
나는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가? 나는 율법적으로 의로운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부으신 것은 그의 율법적인 의로움 때문인가?
나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 의지하여 구원을 받았는가?
나는 구원받은 이후에 율법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율법을 넘어서 예수님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교회에 출석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벌받는 것이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인가?
□ 읽을 거리 □
무오(無誤)한 교황은 새로운 율법의 제작자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의 크리스웰(Criswell)목사는 다음과 같은 간증을 썼다.
“일전에 나는 뭰헨에서 쮜리히로 가는 한 열차에서 13년 동안을 로마에서 살았으나, 지금은 디트로이트 시로 옮기게 된 카톨릭 수사(修士)와 같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는 베네딕파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육신을 가진 상태로의 마리아 승천을 믿는 당신들의 증거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해서 그는 교황이 말했기 때문에 진리라는 말밖에 하였지 아무런 성서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다른 일반적인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마리아의 무죄성이나 요셉과의 결혼 또는 화체설(化體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그가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그들의 교회, 즉 무오한 교황이라고 부르는 자에 의하여 공포된 교리밖에는 다른 기초가 없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위 무오한 인간적인 제도는 진리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없다.
수도꼭지(율법)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국의 학자요, 군인이요, 또한 작가인 토마스 로렌스(Thomas Lawrence)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위대한 영웅 중의 한사람이요, 1919년에 열렸던 파리 평화 회의의 주역이었다.
파리 평화 회의가 개최될 무렵, 그는 아라비아 사막 지대에 사는 여러 부족들로 부터 대표가 파송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그리하여 몇 명의 아랍 지도자들이 회의를 위해 파리에 왔다. 그들은 호화 현대식 호텔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아랍인들은 호텔의 시설, 특히 욕실의 욕조 위에 있는 큰 수도 꼭지에 큰 감명을 받았다. 작렬하는 불볕의 사막에서 살아 온 그들에게 있어 많은 물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욕조시설은 최고의 호사품으로 여겨진 것이다.
회의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모든 사람들이 떠날 채비를 하는 동안, 로렌스는 그 아랍인들이 렌치(Wrench:볼트나 너트를 돌리는 배관 공구)를 가지고 욕조에 붙어있는 수도 꼭지를 떼어내려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달려가서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수도꼭지를 자기네들 사막으로 가져가서 거기서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로렌스는 수도꼭지만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급히 설명해야만 했다.
수도꼭지는 수도관에 연결되어야만 한다. 또한 수도관은 수도 본관에 연결되어야 하고 그 수도 본관은 다시 저수지에 연결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저수지는 샘이나 강, 혹은 우물로부터 물을 공급받아야만 한다. 수도 꼭지는 그 근원(Source)에 연결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축복도 마찬가지다. 축복의 근원에 연결되지 않는 한, 율법만을 가지고는 어느 누구도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구약적 율법이 복음의 주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될 때 비로소 끊임없이 쏟아지는 축복을 맛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예수 제자로서 삶의 구체적인 적용 □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님께서 나의 삶속에 적용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들은 무엇인가? 서로 돌아가며 고백하고 나눔으로 말씀이 나의 삶속에 살아있게 하자.
□ 겟세마네의 동산 □
함께 고백한 내용을 가지고 이 말씀이 내 삶속에 이루어지도록 힘을 다해 기도하자.
□ 예수 제자들의 도전 □
율법의 직무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신적 표준과 비교되는 인간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12.
용서의 개념을 바꾸라.
□ 오늘의 본문 / 마18:21-35 □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하시리라 |
◇ 문제제기 / 3종류의 용서 ◇
용서를 3종류로 나눈다면
율법적인 용서와 제자들의 용서 예수님의 용서로 분류할 수 있다.
율법적인 용서는 랍비들이 만들어 놓은 조항으로 타인의 죄는 세번까지 용서해 주는 것이다. 사실 세번까지 용서해 준다는 것도 일반적으로 드문 일이다.
제자들의 용서는 예수님을 좇아 다니며 은혜의 부스러기를 얻어먹었던 베드로의 용서로서 일곱 번까지 용서하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용서는 율법적인 용서와 제자들의 용서와는 비교될 수 없는 용서로서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시는 무한대의 용서를 말함이다.
나의 용서는 조건부 용서인가? 아니면 제한적인 용서인가?
율법적인 용서인가 아니면 무한대의 용서인가?
□ 본문연구 □
본문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 속에서 열쇠를 찾지 못하면 딴소리를 하게 됩니다.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를 통하여 밑바닥에 있는 것까지도 빠짐없이 얻어내야 합니다. |
유대의 랍비들은 타인의 죄를 3번까지 용서해주고 그 이상은 말라고 가르쳤다. 베드로는 몇 번까지 용서해 줄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하였는가?(21절)
예수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셨는가?(22절)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임금은 어떤 자의 빚을 탕감하여 주셨는가?
(24-27절)
그런데 임금에게 탕감을 받은 자는 자신에게 조금(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어떻게 하였는가?(28-30절)
예수님의 비유의 결론은 무엇인가?(35절)
□ 대 화 □
대화는 본문 연구에서 얻어진 깨우침 들을 생활화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는 한낱 지식 전달이나 과정으로서의 성경공부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를 통하여 말씀을 삶속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자. |
나는 형제들을 몇 번까지 용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형제를 용서하는 것은 나의 의(義)를 인함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의(義)를 인함인가?
만약 나에게 2억원을 빚진 자가 갚을 능력이 없다면 나는 그것을 탕감해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1억원을 나의 채권자가 탕감해주었을 때.. 나에게 300만원을 빚진 자가 있다면 나는 300만원을 받을 것인가 탕감해줄 것인가?
아직까지 용서해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아직까지도 용서해줄 수 없는 사건이 있다면 어떤 일인가?
도저히 용서해줄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용서해 준 일이 있는가?
□ 읽을 거리 / 위궤양의 원인 □
한 젊은 법관이 의사를 찾아 왔는데 그는 위궤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의사는 그를 치료하려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허사였습니다.
어느날 이 의사는 그에게 “나는 최선을 다해 당신의 병을 고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의 위궤양은 정신적인 문제에 연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크게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침묵을 지키면서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의 일입니다. 우리 집이 이웃의 부농과 바로 인접해 있었는데, 어느 날 토지의 문제로 큰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이웃의 부자가 저의 할아버지를 밀어 돌아가시게 했을 뿐 아니라, 토지까지 빼앗았습니다. 저는 그때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법관이 되어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왔습니다. 한 순간도 원수 갚는 일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 의사는 “위궤양의 원인은 그 원한 때문입니다. 그 원한이 당신의 위를 무섭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용서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의사는 다시 그에게 “당신은 원한을 풀기 전에 위궤양으로 먼저 죽고 말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해서 생긴 분노와 원한이 당신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명심해야 합니다.”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얼마 후 이 의사에게 그 사람이 다시 찾아 왔는데, 더 초췌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의사는 그와 무릎을 꿇고 용서에 대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그에게 평안이 다가갔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는 점점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하여 얼마 후에는 신앙 안에서 위궤양을 완전히 고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 예수 제자로서 삶의 구체적인 적용 □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님께서 나의 삶속에 적용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들은 무엇인가? 서로 돌아가며 고백하고 나눔으로 말씀이 나의 삶속에 살아있게 하자.
□ 겟세마네의 동산 □
함께 고백한 내용을 가지고 이 말씀이 내 삶속에 이루어지도록 힘을 다해 기도하자.
□ 예수 제자들의 도전 □
남의 잘못은 마땅히 용서하되 나의 잘못은 용서치 못하며 나의 곤궁은 마땅히 참되 남의 곤궁은 참지 말라.
13.
이웃의 개념을 바꾸라.
□ 오늘의 본문 / 눅10:29-37 □
“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하라 하시니라. ” |
◇ 문제제기 / 외형적인 이웃과 실제적인 이웃 ◇
우리가 말하는 이웃에는 가족, 친척, 친구, 직장동료, 같은 교회 성도, 집사, 장로, 목사 등이 있고, 가게 주인, 시장 사람들, 통장, 반장, 시장 등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외형적인 이웃과 실제적인 이웃이다.
외형적인 이웃은 혈연, 친분, 지역, 문화 등에 의하여 형성되는 이웃이고, 실제적인 이웃은 혈연, 친분, 지역, 문화를 초월해서 실제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푸는 이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형적인 이웃인가, 실제적인 이웃인가? 당신에게 있어서 외형적인 이웃은 어떤 사람들이고 당신에게 실제적인 이웃은 어떤 사람들인가?
□ 본문연구 □
본문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 속에서 열쇠를 찾지 못하면 딴소리를 하게 됩니다.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를 통하여 밑바닥에 있는 것까지도 빠짐없이 얻어내야 합니다. |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30절
예수님의 비유에서 진정한 이웃은 누구인가?(37절)
그렇다면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진정한 이웃은 누구인가?(33절)
그 이유는 무엇인가?(34-35절)
제사장과 레위인은 한평생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31-32절)
□ 대 화 □
대화는 본문 연구에서 얻어진 깨우침 들을 생활화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는 한낱 지식 전달이나 과정으로서의 성경공부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를 통하여 말씀을 삶속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자. |
내가 이웃이 되어주어야 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자살직전에 있는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고 있는가?
나는 이혼직전에 있는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고 있는가?
나는 신체장애자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고 있는가?
나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이웃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해를 받을지라도, 이웃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 읽을 거리 /할머니의 이웃은 누구인가? □
69세의 李모할머니가 서울 강서구 화곡동 상가건물 4층의 아들(44)집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을 놓고 주위에선 「노망기」니 「정신질환」이니 등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李씨의 손녀인 金모양(19,모대학1년)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金양이 보기에 할머니는 흔히 노인들이 그런 것처럼 정신이 혼미하거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사건 당일 金양은 오후 1시 20분쯤에 점심상을 할머니의 방에 들여놓았다. 벽을 보고 담배를 피우던 할머니는 아직 괜찮은데, 원녀석도라며 金양을 바라봤다.
부동산 임대 업을 하는 부모님은 아침 일찍 나갔고 고1짜리 남동생은 볼링연습을 가 집에는 할머니와 金양뿐이었다. 30분쯤 후 1층 가구점 아저씨가 숨차게 달려와 집앞에 왠 할머니가 떨어져 있다.고 알려줬고, 할머니 방에 가보니 점심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둘째 삼촌댁에서 1년여 지내시던 할머니를 모셔온 것은 사흘 전이었다. 삼촌내외가 얼마동안 제주도에 내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같이 생활하는 사흘동안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가끔 방과 마루 베란다사이를 혼자 걷는 시간외엔 할머니는 하루종일 방속에서 담배를 연신 피우거나 멍하니 누워 있었다.
4층방 창문으로 뛰어내리기 전날 할머니는 金양에게 답답하고 무료하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자기를 바깥으로 데려나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金양은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이 바빠서 그대로 외출했다.
金양은 그때 자기가 할머니를 모시고 근처 놀이터에 함께 다녀왔으면 할머니가 자살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 예수 제자로서 삶의 구체적인 적용 □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님께서 나의 삶속에 적용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들은 무엇인가? 서로 돌아가며 고백하고 나눔으로 말씀이 나의 삶속에 살아있게 하자.
□ 겟세마네의 동산 □
함께 고백한 내용을 가지고 이 말씀이 내 삶속에 이루어지도록 힘을 다해 기도하자.
□ 예수 제자들의 도전 □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14.
예배의 개념을 바꾸라.
□ 오늘의 본문 / 요4:20-26 □
“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 |
◇ 문제제기 /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
예배란 과연 무엇인가? 잘 알려진 정의(定義)는 예배는 자기보다 높은 존재에게 돌리는 존경심이다. 그것은 더 높은 존재에게 경의, 존경, 숭배, 찬양, 찬사, 또는 영광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예배」란 단어는 우상이나 물질적인 것들이나 참 하나님께 돌려진 존경심을 언급하는 데에 다같이 구별없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단어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단어는 자기보다 높은 존재에 드려진 경의를 나타낼 뿐이다.
신약성경(헬라어)에서 「예배란 말을 표기할 때 ~을 향하여 입맞추다. 손에 입맞추다. 절하여 숙이다. 엎드리다.」등을 의미하는 프로스큐네오(προσκυνέω)를 자주 사용한다.
예배의 개념은 상전 앞에서 존경과 경의, 경배, 숭앙의 뜻으로 엎드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기독교적 맥락에서 이 단어를 하나님께만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앞에서 절하며 존경과 숭앙의 뜻으로 그 분 앞에 엎드려 그 분의 절대적 속성에 합당한 영광을 돌린다.
그렇다면 예배란 본질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일에 함께 모이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이다. 우리는 설교자나 성가대에 앉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모인 것이다. 설교와 성가는 다만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하는 열망을 일으켜 주는 자극일 뿐이다. 따라서, 당신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예컨대 「축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간다면 그것은 동기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모였다면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에 맞추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려는 타는 듯한 열망이며, 그것은 우리 자신과 마음의 태도와 우리의 소유를 드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 본문연구 □
본문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 속에서 열쇠를 찾지 못하면 딴소리를 하게 됩니다.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를 통하여 밑바닥에 있는 것까지도 빠짐없이 얻어내야 합니다. |
유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웠다.(B.C400)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다. 유대 사람들은 어디서 예배를 드렸는가?(20절)
예수님은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느냐 보다도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느냐에 관심을 보이셨다. 우리는 누구에게 예배를 드려야 되는가?
(21절)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자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23절)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는가?(23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24절)
□ 대 화 □
대화는 본문 연구에서 얻어진 깨우침 들을 생활화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이 없이는 한낱 지식 전달이나 과정으로서의 성경공부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를 통하여 말씀을 삶속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자. |
나는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느냐는 문제를 중요시 여기는가 아니면 「누구에게 예배드리느냐」는 문제를 더 중요시 여기는가?
나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가?
나는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가 아니면 매번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참석하는가?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날마다의 삶을 예배드릴 때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 읽을 거리 / 아름다운 예배 □
아내와 5살짜리 아들 신후와 함께 셋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난 주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 주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웅장한 교회의 건물이 탐이 났습니다. 성가대의 인원수가 120명정도였고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했습니다. 팀파니의 웅장한 소리는 성도들을 압도했습니다. 그들의 찬양소리는 조용한 시냇물 소리가 아니라, 하늘이 열리는 소리였습니다.
목사님의 포옹해 주는 살교는 성도들을 편하게 해 주었으며 재기의 소망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수십만에 헤아리는 성도의 수, 수백명의 장로, 수백명의 교역자들, 예배를 기다리는 수많은 무리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수많은 무리들... 한마디로 인간 물결이었습니다. 엄청난 주차장에 정렬되어 있는 차량의 행렬, 완전히 기가 죽어버린 하루였지만 참으로 은혜스러운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가정의 예배는 성가대도, 장로님도, 오케스트라의 반주도 없습니다. 그러나 찬양하고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신후는 이사 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엄마 미술원 잘하게 해달라고 했으며, 아빠도 이사가게 교회짓고 설교 많이 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내의 기도도 욕심이 없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가난한 기도였습니다.
성경을 돌아가면서 읽었습니다. 막12;28-34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 제물보다 마음을 원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헌금을 드리고 제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목사가 되어가지고 교회도 없이 초라하게 식탁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신의 모습이 못내 죄스럽고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난한 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더 풍요한 생활이 온다고 할지라도 교만하지 말게 하시고, 이 시간의 낮아진 모습을 기억하게 하소서. 두렙돈의 헌금을 칭찬하셨던 하나님, 부족하고 연약한 그리고 초라한 예배지만, 예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헌금의 액수가 너무적어 우리 세명의 몸까지 모두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신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눈물섞인 기도를 드린 후에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자.....” 눈물을 삼키며 구속해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여 찬송을 드렸습니다.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쳤습니다.
예배는 끝났는데도 드릴 것을 다 못드린 사람처럼 예배후에도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1990. 4. 8. 고난주일 문래동에서
□ 예수 제자로서 삶의 구체적인 적용 □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님께서 나의 삶속에 적용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들은 무엇인가? 서로 돌아가며 고백하고 나눔으로 말씀이 나의 삶속에 살아있게 하자.
□ 겟세마네의 동산 □
함께 고백한 내용을 가지고 이 말씀이 내 삶속에 이루어지도록 힘을 다해 기도하자.
□ 예수 제자들의 도전 □
예배는 감사며, 바치는 것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교제다.
(헨리 슬로언 키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