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원화평은 홍콩액션이 지금 같은 파워를 가지게 된 까닭을 묻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매트릭스>를 향한 찬사와 함께 자신이 안무한 액션을 뿌듯해하는 장인의 자존심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오우삼과 서극, 임영동, 우인태가 할리우드에 나섰지만, 그중 어떤 감독도 카메라 뒤에 묻힌 한 무술감독이 했던 것처럼 동양의 정서와 영혼을 살려내진 못했다. 원화평은 세계 대부분 육지를 지배한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전제 자체를 뒤집었다. 사스(SARS)가 첫 번째 절정에 달한 홍콩, “괴질이 두렵긴 하지만, 예의를 차리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인터뷰 장소에 나온 원화평을 만나 <필름메이커>로부터 “영화적이고 초현실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꿈의 단계라고 말해야 할” 액션을 창조했다는 찬사를 받은 무술감독의 목소리를 들었다. 새로운 세기의 액션영화는 원화평과 그 동료들이 변방에서 지켜온 홍콩 액션영화와 함께 막 숨쉬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 편집자
2001년 <철마류>가 미국에서 개봉할 때 쿠엔틴 타란티노는 홍콩에 있던 원화평을 대신해 극장에 섰다. “나는 홍콩 쿵후영화를 매우 좋아하는데, 원화평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소개를 시작한 타란티노는 “벌써 6년 전 미라맥스에 원화평을 추천했다. 이연걸과 견자단을 캐스팅하고 원화평에게 연출을 맡기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트릭스> <와호장룡>은 할리우드에 무술감독으로만 알려졌던 원화평이 스스로 연출한 영화까지 극장에서 개봉하도록 만들었다. 중력에 붙들리지 않고 허공에 선을 긋는 원화평의 액션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허물었고, <철마류>는 비영어권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박스오피스 6위로 데뷔했다. 한때 리뷰 뒤에 붙는 크레딧에서 무술감독이 누구인지조차 밝히지 않았던 많은 해외언론은 이제 그의 이름 앞에 명인(Master), 전설적인(Legendary)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경의를 바치고 있다.
“나는 배우를 가리지 않는다”
어느 홍콩 영화인은 “촬영현장에서 서극과 대등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무술감독은 원화평뿐이다”라고 말했다. 서극과 원화평은 <황비홍>으로 배우의 육체가 특수효과보다 경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중국 신화와 무협을 결정처럼 응고시킨 <촉산전>을 위해 힘을 모았던 파트너다. 감독이 무술감독에게 일방적으로 주문만 떨어뜨리는 홍콩에서, 무협을 좋아하는 여섯살 차이 동년배의 두 남자는 쿵후가 그려내는 영상 앞에 시선을 일치시켜왔다. 그러나 그 상대가 원화평이 아니었다면, 서극이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 무술감독과 의논할 까닭이 있었을까? <와호장룡>의 리안 감독마저 지루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당신 뜻대로 하세요, 마스터”라고 고개를 숙였다는 원화평은, 무술감독이 머물러야 할 영역을 지키면서도 그 좁은 마당을 훌쩍 뛰어넘어 액션을 안무하는 장인이다. 그가 토대를 다지고 구조를 쌓아올린 액션은 검게 팬 <정무문>의 독묻은 손바닥 자국처럼, 영화에 원화평이라는 이름을 또렷이 새긴다.
옛이야기를 할 때마다 버릇처럼 “삼십년도 전에…”라고 운을 떼는 원화평은 이소룡이 할리우드를 침범했던 1970년대 초반 엔드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홍콩 최초의 무술감독이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아버지 원소전은 10남매의 맏아들이었던 원화평과 그 남동생들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쿵후를 가르쳤고, 아이들이 십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일하는 영화현장마다 무조건” 데리고 다녔다. 스턴트맨과 엑스트라 등을 거친 원화평은 신인감독이었던 오사원의 1971년작 <풍광살수>에 액션 디렉터로 참여해 독자적인 경력에 머릿돌을 놓았다. 그는 몇년 동안 오사원과 <탕구탄> <아호강룡> <맹호하산> 등을 함께하는 틈틈이 <석파천경> 등에선 동생 원상인과 공동으로 액션을 만들기도 했다. 원화평은 “예전에 나는 내 영화가 관객과 제작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영화가 성공하리란 확신만 있다면, 제작자한테 내 재산 마지막 한푼까지 담보로 잡힐 마음도 먹었겠지만, 이 산업은 매우 불투명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제작했으면 좋았을 영화가 1978년 직접 연출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취권>이었다.
<취권>은 원화평과 그 가족, 친구들이 사이좋게 만든 영화였다. 돈독한 파트너 오사원이 제작과 각본을 맡았고, 아버지 원소전은 젊은 황비홍에게 취권을 가르치는 사부로 출연했다. 동생 원신의와 원진위, 원화평 그 자신이 무술감독으로 팀을 짜서 베이징오페라로 단련된, 이소룡의 후계자가 되고 싶어했던 성룡에게 코미디와 쿵후가 결합된 독특한 액션을 구사하도록 했다. 골격이 예리한 이소룡보다 부담없게 생긴 성룡은 무뚝뚝한 무협영화 대신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르를 찾았고, 주변 사물을 이용한 발차기로 날아오르면서 두 번째 용(龍)으로 떠올랐다. “영화는 한편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무술감독은 캐릭터와 스토리와 장면에 맞는 액션을 생각해야 한다. 좀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원화평은 배우에 따라서 다른 힘을 실은 다른 동작을 창조하곤 한다. 오우삼이 주윤발과 니콜라스 케이지를 1초당 각각 다른 프레임 수로 잡아내는 것처럼, 원화평은 성룡에겐 장르를 무시한 코믹 쿵후를, 파워있는 로렌스 피시번에겐 강한 주먹을,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캐리 앤 모스에겐 여섯달 동안 배워야했던 빠른 ‘스콜피온 킥’을 부여한다. 원화평이 “나는 배우를 가리지 않는다. 쿵후를 전혀 모르는 배우라도 훈련만 하면 액션배우가 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데는 이런 유연성이 뒤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원화평은 <매트릭스> 촬영 시작 전 받은 척추수술 후유증 때문에 무리한 발차기를 할 수 없었던 키아누 리브스를 위해 손동작 위주지만 남들보다 몸사리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 가라테 도장장면을 지휘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영역엔 겸손하게, 자신의 영역엔 고집있게
원화평은 1980년대에 무술감독보다 감독으로 더 많은 영화를 찍었다. 그런 그에게 “동작을 짜는 것 외에 촬영이나 편집을 연구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아니, 오직 동작만 생각한다”고 짧게 대답했다. 원화평이 서극과 함께 <황비홍>을 만들어 홍콩영화를 한 고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까닭은, 조화를 깨지 않는 창조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원화평이 액션안무만을 맡은 <황비홍>은 그와 인연이 깊은 영화였다. 청조말의 혼란기, 중국인들 마음의 영웅으로 남아 있는 황비홍은 수십년에 걸쳐 영화 속에 등장해왔다. 원소전은 1960년대 <황비홍> 시리즈의 무술감독이었고, 원화평 역시 <취권>과 <철마류>의 이야기 속으로 황비홍을 데려왔다. 서극이 감독한 1991년작 <황비홍>은 이연걸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만나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고 기품있는 영웅으로 태어났지만, 원화평이 정교하게 짜맞춘 액션이 없었더라면, 이연걸은 평범한 단신의 액션전문 배우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웬만한 2층 건물 높이에 맞먹는 사다리가 공간을 가로지르고, 벽에 기대섰다가 다시 다리처럼 아래로 떨어져 서로 교차하는 <황비홍>의 유명한 장면은 과연 원화평이 영화적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매트릭스>도 <와호장룡>도, 다른 영화들도, 모두 감독의 요구에 맞춰갈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화평이 들려주는 <와호장룡>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리안 감독은 액션영화를 잘 몰랐다. 그가 찍을 수 있다고 믿는 장면은 너무 어려워서 가능한 한계 아래로 낮춰야 했다. 반면 그가 정말 스펙터클하다고 생각하면서 난감해한 장면은 사실 이 업계에선 흔한 거라고 말해줘야 할 때도 있었다.” <와호장룡>의 주연 주윤발은 “이건 리안의 영화니까 내 식대로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리안 감독이 액션에서만큼은 판정패했다고 증언했다.
<매트릭스>에 얽힌 일화는 원화평이 얻어낸 승리들이 강요보단 상대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는 인내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매트릭스> 이전에는 할리우드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던 원화평은 와이어를 당길 때 스탭들이 직접 하는 대신 기계를 사용하라는 할리우드 스탭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촬영 도중 사고가 일어나 와이어 담당 스탭 한명이 크게 다쳤고, 와이어 작업은 다시 원화평의 방식대로 돌아갔다. 할리우드 스탭들은 기술을 추종하지만 원화평은 사람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차가운 기술보다 유효하다. 원화평은 언뜻 단순해 보이는 와이어 작업이 배우의 움직임과 기량에 따라 달라져야 하고,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람 손에 느껴지는 감각에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원화평이 데리고 다니는 무술팀은 홍콩 시절부터 거느리고 다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적당한 교육기관이 없어서 현장을 구르며 일을 배웠다. 하지만 하는 일은 모두 다르다. 와이어에 능숙한 사람들은 배우들에게 와이어 액션을 가르치고, 쿵후를 잘하는 사람들은 쿵후 훈련을 맡는다. 무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은 무기 쓰는 법을 가르친다.” 원화평과 그의 팀은 다른 사람의 영역엔 겸손하게, 자신의 영역엔 고집있게 일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그것은 액션에 특수효과가 끼어들 때도 마찬가지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엔 네오가 100명으로 자가복제한 스미스 요원들과 싸우는 장면이 있다. 이중 진짜 사람은 단지 몇명뿐이었지만, 원화평은 완성된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 신경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쇼스키 형제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격투장면이 어때야 할지 이야기해줬고, 마음에 들면 그 장면을 들고 특수효과를 입히러 갔다”는 것이다. 그는 “와이어 액션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끼면 컴퓨터를 사용해 더 흥미롭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컴퓨터와 액션이 합쳐지면 매우 흥미로운 무언가가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 개방적인 무술감독이다.
“과거를 반복해선 안 된다”
원화평의 이런 태도는 종종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무술감독 룬셩은 “원화평이 할리우드에서 한 작업은 홍콩 시절에 못 미친다. 이전에 그는 흥미롭고 환상적인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특수효과가 중심인 영화에 동양적인 풍취를 더할 뿐”이라고 말했다. 리안 역시 “<매트릭스>의 액션은 원화평의 평균 수준에 못 미친다. 그의 상상력이 특수효과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원화평을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었지만, <영웅> <철마류>의 배우 견자단이 밝힌 포부도 원화평과 비교가 된다. 본토에서 쿵후를 배운 견자단은 와이어가 눈속임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와이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난 진정한 무술인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무술의 경지에 한도를 둔다면 그 정수를 놓치는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원화평은 “과거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말로 자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성공을 기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는 그는 많은 일을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카피하는 영화들을 싫어한 것과 달리, 원화평은 “모방의 대상이 된다는 건 어쨌든 행복한 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동양적인 색채를 가미할 뿐이라는 비판 역시 원화평에게 이르면 당연한 진리가 된다. “나는 어설픈 퓨전액션을 시도할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매트릭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동양과 서양을 뒤섞는 대신, 동양적인 요소를 군데군데 더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화평이 무조건 타협만 하는 것은 아니다. 원화평은 “내 목적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같은 이야기를 대사가 거의 없이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이연걸이 표창처럼 공중을 꿰뚫는 <흑협>이나 주윤발과 장쯔이가 물결처럼 내려앉는 나뭇가지 위에서 부딪치며 수많은 상념을 주고받는 <와호장룡>, 끝을 모르고 휘어지다 뻗어가는 금속비늘 위에 수천년 신화의 무게가 실리는 <촉산전>은 그 꿈을 짐작하게 하는 표본들이다. <필름메이커>는 포스트프로덕션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원화평의 액션을 두고 “원화평은 비현실적인 액션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고 평했다.
이런 찬사와 영광의 한가운데 있지만, 원화평은 이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그는 “만사는 새옹지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 홍콩 액션영화도 죽어가는 장르가 될 테고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육십을 눈앞에 둔 원화평에겐 아직 더 가야만 할 어딘가가 있을 것 같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제작자 조엘 실버는 “원화평은 워쇼스키 형제의 철학과 이야기를 액션에 녹여낸다”고 평가했다. 원화평 자신은 “난 꿈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조엘 실버가 말한 경지에, 꿈이 없는 사람이 다다를 수 있었을까. 원화평이 온화하게 풀어놓은 말들 속엔 성급하게 사라져선 안 될 장인의 꿈이 태극권처럼 느릿하나 힘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낙관과 관용 지닌 대륙인 촬영현장의 원화평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보드리야르와 성경에 짓눌려 있던 <매트릭스> 제작진은 현장을 놀이터처럼 대하는 홍콩 스탭들이 격언처럼 전한 문장을 기억하고 있다. 낙천적이고 소박한, 초서처럼 자유로운 흘림으로 육체를 통제하는 그들은 고된 훈련과정도 대륙의 넉넉한 웃음을 가지고 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로 원화평과 고락을 함께해온 무술팀이었다. 학교 선생님처럼 마음 좋아 보이는 원화평은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여백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매트릭스> 촬영과정을 담은 DVD <매트릭스 리비지티드>는 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지나치게 어려운 액션을 요구할 때 원화평이 대처하는 방식을 기록했다. “안 돼요. 와이어 당길 사람이 부족해”라고 원화평이 말하자, 통역을 통해 전해들은 형제 감독은 “그런가요? 그러면 우리가 당기지, 뭐”라고 대답한다. 그 다음 순간은 카메라 뒤로 사라지지만, 완성된 <매트릭스>의 어느 장면이 감독과 무술감독 모두에게 만족스러울 거라는 사실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원화평은 이처럼 대륙의 기질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무술인이다. 그는 지나친 낙관을 경계하면서도 그 낙관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을 준비한다. 리안이 그에게 <와호장룡>을 제안했던 1997년, 그는 <매트릭스>를 촬영하고 있었다. “내 눈으로 <와호장룡>이 제작될 거라는 사실을 확인만 하면 그 영화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던 그는 길어야 6개월 전에 영화촬영 준비를 시작하는 홍콩영화 시스템에 익숙해 있었다. 그는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가 그처럼 일찍 촬영을 한다는 사실조차 경이로웠다. 3년이나 먼저 액션을 고려하고 있던 리안에게 믿음이 갈 리 없었지만, <와호장룡>은 소년 시절 읽었던 무협지만 염두에 두고 있던 리안 혼자였다면 결코 가능할 리 없었던, 공기처럼 가벼운 무협영화로 완성됐다. 원화평은 사마귀처럼 잔인하고 새처럼 땅을 박차오르며 비단에도 강철 같은 힘을 싣는 쿵후를 연마한 장인이다. 그는 자신이 연마한 무술에 수많은 사람의 협공이 필요한 영화를 도입했다. “무예의 영혼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그 정신을 요구할 순 없다”고 관용을 보이는 그는 쿵후와 영화 양쪽 모두의 달인일 것이다. 원화평은 누구보다 현실적이면서도 남루한 현실을 가뿐히 뛰어넘는 대륙인이다.
홍콩 현지에서 만난 원화평 인터뷰
“<매트릭스>는 할리우드 액션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다”
<매트릭스> 모자를 쓰고 들어선 원화평은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몸집 작은 동양인들 사이에 있어도 쉽게 묻힐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매트릭스> <와호장룡>으로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태풍을 일으킨 무술감독이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접 선택했다는 원화평. 그는 영화사 스탭들과 에이전트가 둘러싸고 있는 화려한 사무실에서도 한여름 골목길에 바람이나 쐬러 나온 것처럼 편안하게 처신했다. 수십년을 쿵후와 영화로 살아온 그는 대인(大人)이라고 부를 만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매트릭스> 시리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가.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가 내 영화들을 보고 의견을 냈다. 그들은 다른 할리우드 감독들과 달리 액션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매트릭스>는 내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였지만, 워쇼스키 형제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매트릭스>는 스토리보드와 완성된 영화장면이 대부분 일치한다. 스토리보드가 거의 없는 홍콩과는 작업방식이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워쇼스키 형제는 원하는 것이 분명해서, 그들이 말로 설명하면 내가 동작을 만들어 보여주고 다시 토론하는 식이었다. 그들이 마음에 들어하면 그대로 촬영에 들어갔다. 즉흥적인 홍콩과는 달랐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홍콩 스타일과 비슷하게 일을 했다. 할리우드에선 보통 여러 대의 카메라로 액션장면을 촬영한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가장 적절한 앵글을 선택해서 홍콩 감독들처럼 카메라 한대로 찍곤 했다.
서극을 비롯한 몇몇 홍콩 영화인들은 할리우드 스탭들이 쿵후를 제대로 찍을 줄 모른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카메라가 배우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신도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나.
나는 서극과는 다르다. 촬영하기 전에 철저한 훈련을 거치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어려움을 겪진 않는다. 물론 의견충돌은 있을 수 있다. 만일 좋지 않은 앵글로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고, 그들은 내 의견을 수용하고 검토했다.
<매트릭스>에 출연한 배우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홍콩에선 배우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별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작업했는가.
홍콩 배우들은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기본기는 되어 있다. 배우가 직접 하기에 지나치게 어렵거나 위험하면 스턴트맨을 쓰면 된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와 키아누 리브스는 스턴트맨을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략 석달 동안,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기본동작을 가르쳤다. <와호장룡>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촬영 전엔 기본기를 다지도록 하고, 촬영에 들어가서야 구체적인 액션동작을 가르친다. 그편이 경제적이다. 배우들도 힘이 덜 들고 다칠 위험이 적어진다.
당신이 홍콩에서 만든 영화들은 와이어나 특수효과보다 배우들의 신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반면 <와호장룡>은 유장한 와이어 액션이 눈길을 끌었고, <매트릭스>도 와이어와 특수효과가 대거 동원됐다. 당신 스스로 이런 변화를 택했는가.
내가 <취권>을 찍었던 1970년대와는 관객도 영화도 많이 달라졌다. <취권> 시절엔 배우들이 직접 맞붙어 싸웠고, 관객은 그런 걸 좋아했다. 다른 시도를 하고 싶어도 기술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금 관객은 기대치가 높아졌다. 기술도 발전했다. <매트릭스> 1편에는 키아누 리브스가 공중에서 3단차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장면은 훨씬 힘이 있고 액션을 두드러지게 만들어주지만, 예전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1편보다도 와이어와 특수효과를 많이 사용했다.
<매트릭스2>에서 가장 좋았던 액션장면은.
<매트릭스>의 액션장면은 다 좋아한다. 내가 만들었으니까. (웃음) 키아누 리브스가 비를 맞으며 결투를 벌이는 장면을 가장 내세우고 싶다.
홍콩 액션영화는 역사가 깊다. 하지만 1970년대 이소룡이 인기를 얻었던 이후 한동안 잊혀졌다가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홍콩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은 사실적이다. 주먹과 발차기가 직접 오가는 빠른 동작은 할리우드에선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매트릭스> 탓이 크다. <매트릭스>가 나온 이후 할리우드영화들은 이 영화를 흉내내기 시작했고, 그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당신은 <취권> <철마류> 등을 직접 감독했다. 무술영화이긴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일일 것 같다. 당신은 어떻게 영화 만드는 일을 배웠는가.
내 아버지 원소전은 홍콩 무술감독들에겐 선구자와도 같은 분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스턴트맨으로 일했고, 자연스럽게 무술감독과 감독이 됐다. 사실 쿵후를 한다는 것과 쿵후 동작을 영화에 도입한다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내가 배운 무술은 정해진 틀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항상 달라져야 하고, 많은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쿵후를 배웠지만, 그들이 모두 훌륭한 무술감독이 되진 못한다. 당신이 최고의 무술감독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매트릭스>는 기법이나 동작, 개념에 뉴테크닉을 도입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쿵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머리를 써서 쿵후가 신선하게 보이도록 한다.
모든 것은 <매트릭스>(1999)에서 시작되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사이버 펑크의 세계에 홍콩 무술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오버랩했을 때,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다른 세계로 도약했다. 그리고 <와호장룡>이 북미대륙에서 외국어영화로는 처음 흥행수익 1억달러를 넘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홍콩과 아시아영화에 대한 장벽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무술감독 원화평이 이끄는 홍콩 무술은 이후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풍경을 바꾸어놓고 있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가장 큰 공헌은, 주인공이 20m를 날아가 발차기하는 모습을 북미의 관객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한쪽 발을 눈높이로 쭉 뻗은 모습은 영락없이 이연걸이 연기한 황비홍의 모습이다. 워쇼스키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영화의 열혈팬이었고, 원화평을 초빙하여 <매트릭스>의 무술장면을 디자인했다. 홍콩 액션스타일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매트릭스> 이후. <미녀 삼총사> <무서운 영화> 심지어 <슈렉>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매트릭스풍’의 무술장면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콘의 뮤직비디오 에서도 홍콩영화의 흔적이 보이고, 손기술 위주이던 스티븐 시걸까지도 와이어를 달고 공중 발차기를 해야만 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타란티노, “홍콩 무술이 할리우드 사로잡을 것”
하지만 <매트릭스>가 어느 날 갑자기 저 세상에서 반짝,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다. 홍콩영화 붐은 이미 오래 전부터 꾸준하게 일고 있었다. 아시아영화를 할리우드에 소개한 일등공신 쿠엔틴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쓴 <트루 로맨스>에는 만화가게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차이나타운에 가서 소니 치바가 나오는 일본 액션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70년대부터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의 영화들이 차이나타운을 통하여 소개되었고, 흑인들은 일찌감치 아시아의 무술에 열광했다. 성룡이 크리스 터커와 짝을 이루어 <러시 아워>로 할리우드에 데뷔했고, 이연걸이 <로미오 머스트 다이>와 <크레이들 2 그레이브>에서 연이어 흑인과 팀을 이루는 이유는 그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소수 열광팬이 지지했던 홍콩 무술영화는 마침내 할리우드의 주류로 성장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추천으로 홍콩 영화인들이 속속 할리우드로 향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중반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오우삼은 1993년 <하드 타겟>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장 클로드 반담이 쌍권총을 들고 허공을 나르기는 하지만, <하드 타겟>은 조금 특이한 할리우드영화일 뿐이었다. 이어서 임영동의 <맥시멈 리스크>가 96년. 서극의 <더블 팀>이 97년에 나왔다. 모두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이었다. 홍콩 스타일의 액션은 별로 돋보이지 않았고, 아직 상품가치가 남아 있었던 장 클로드 반담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었다. 그러나 <브로큰 애로우>가 성공을 거두면서 오우삼에게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마침내 <페이스 오프>로 할리우드와 홍콩의 행복한 결혼이 이루어졌다. 80년대에 이어 재도전을 한 성룡의 <러시 아워>(1998)도 성공을 거둔다.
그 모든 험난한 여정을 거친 뒤, 마침내 <매트릭스>가 등장한 것이다. 홍콩 무술이 할리우드를 사로잡을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은 바로 ‘떠벌이’ 쿠엔틴 타란티노다. 오우삼과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액션영화들은 할리우드 액션-어드벤처의 레벨을 바꿔놓았다”며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이 나오기 전부터 원화평 감독에 이연걸과 견자단을 기용하면 최고의 영화가 나온다고 미라맥스에 말해왔다”고 타란티노는 자랑스레 말한다. <철마류>의 북미 개봉을 제안한 것도 타란티노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홍콩 스타일의 액션영화들은 서구인들 위한 영화이다. 아이들도 즐길 수 있을 만큼, 폭력의 강도도 세지 않다. 익살스럽게 안무된 성룡의 액션은 하나의 유쾌한 오락이다. 홍콩 배우들이 등장한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 중국의 신화와 역사를 알 필요는 없고, 마찬가지로 중국 무술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도 않는다. 워쇼스키 형제나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마니아’가 아니라면, 보통의 감독들은 홍콩 액션을 그저 순간의 볼거리로만 차용하는 것이다. 홍콩 감독들이 장 클로드 반담을 기용하여 만든 영화는 여전히 ‘반담 영화’였고, 이연걸이 출연해도 <리쎌 웨폰4>는 여전히 시리즈물의 관행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게 여전히 남아 있는 할리우드의 한계다. 그래서 이연걸의 할리우드영화는 점점 싱거워지고, 그저 무술장면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되고 있다.
홍콩-할리우드, 액션을 소화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것은 액션에 대한 할리우드와 홍콩의 개념 차이에서 비롯된다. 할리우드영화에서 액션장면은 종종 스토리라인을 멈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홍콩영화에서는 액션이 스토리라인 그 자체를 이루고 있다. 경극에 기반한 홍콩영화의 액션은, 액션 자체가 역할을 설명하고 상황을 끌어간다. 홍콩영화에서는 액션장면에서 드라마틱한 긴장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성룡이 출연했던 <사형도수>나 <취권>을 떠올려보면 잘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액션은 단지 싸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상황이 바뀌고, 해결되는 과정에 액션이 필수불가결하게 개입된다. 또한 홍콩영화는 액션을 끊이지 않고 보여주기 위해서 설계된다. 마치 영화 속에서 춤을 보여주듯이. 무용을 배운 오우삼이 춤의 안무처럼 액션장면을 설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술감독들은 계속하여 새로운 액션장면을 개발하여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성룡이 그랬고, 서극이 그랬듯이.
일반적으로 할리우드영화는 액션장면에서 배우가 아니라 시각효과가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빠른 편집, 쉴새없는 카메라의 움직임, 드라마틱한 배경음악과 음향효과가 흥분을 끌어낸다. 또한 할리우드영화는 무술장면을 어떻게 이야기와 접합시키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은 로버트 클라우스 감독이 20년 전 <용쟁호투>를 찍었을 때도 보여준 문제점이다. 지금 <더 원>이나 <크레이들 2 그레이브>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거듭한다. 이연걸의 무술 연기는 계속 편집에 의해 끊어진다. 상황의 관계를 보여주지 않고, 단지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데이비드 보드웰은 “할리우드영화는 액션장면이 빠르게 진행되지만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보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활기찬 홍콩 액션은 시각적으로 대단히 확연하고 풍부하다. 액션의 표현방법도 다양하고, 그것을 확대해서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 차이는 서극이 ‘할리우드는 이연걸의 무술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춤과 노래에 문외한인 감독이 뮤지컬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극이 홍콩에서 찍은 <순류역류>의 아파트 액션장면은 결코 할리우드가 만들어낼 수 없는 명장면이다. 거기에는 배우의 문제도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해도,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배우들은 홍콩의 배우들처럼 모든 액션을 할 수가 없다. 홍콩 배우들은 조금만 영화를 찍어봤다면, 어떤 액션장면이라도 바로 찍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와이어를 메고 액션장면을 찍기 위한 배우의 훈련만도 적어도 3개월이 필요하다. <매트릭스>는 그 과정을 거쳤다.
<매트릭스>의 성공 비결
그렇다면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은 홍콩 무술이 들어간 할리우드영화의 일반적인 오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단 하나다. 무술감독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랜드 마스터’를 신뢰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설마? 주윤발은 리안과 원화평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리안은 쿵후장면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이디어를 원화평에게 말했다. 계속해서 두 사람은 다퉜다. 원화평은 리안의 아이디어가 실현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화평이 고안한 장면을 들은 리안은 마찬가지로 거부했다. 이건 자신의 영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될 수 없음을 알게 된 리안은 타협을 했다. 마침내 원화평에게 당신의 방식으로 가자고 말한 것이다.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낸 것은 원화평의 몫이다. 즉 리안이 위대한 무술영화 감독이 된 것이 아니라, 위대한 무술감독과 위대한 액션영화를 함께 만든 것이다.” 홍콩의 무술감독들은 <와호장룡>의 액션은 이미 오래 전에 홍콩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많은 제작비와 기술의 발전으로 다르게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성공으로, 홍콩 액션은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주입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단순한 조합에 불과하다. 여전히 할리우드는 자신의 방식으로 홍콩 액션을 소화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을 깰 수만 있다면, 즉 기본에 충실하면서 홍콩 스타일 안무를 하면 더욱 뛰어난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매트릭스>는 단지 돌연변이가 아니라,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 창조자로 추앙받지 않을까?
보험을 받아주지 않는다 홍콩 무술스탭들의 현실
홍콩 무술스탭들은 보험을 들지 못한다. 다치는 일이 너무 많아 보험회사가 수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액션프로듀서를 맡은 레이먼드 펑은 “홍콩 스턴트맨들은 부산 광안리의 30m 높이의 절벽에서도 뛰어내릴 수 있다”면서 그처럼 위험한 장면도 “그날그날 교섭에 따라 스턴트가 가능한지 여부와 적당한 일당을 정한다”고 전했다. 위험도가 낮은 일반액션의 경우 스턴트맨이 받는 액수는 1400홍콩달러(22만원 정도)지만, 특수액션은 뛰어내리는 건물 높이가 10m인지 30m인지, 협상하는 무술감독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레이먼드 펑은 광안리에서 낙하한 스턴트맨은 1만홍콩달러(160만원 정도)를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처럼 힘들고 고된 직업이지만 무술스탭이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은 짐작보다 많은 편이다. <매트릭스> 이후 해외에서 들어오는 일감이 많아진데다 본토 무술학교 졸업생들이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 스턴트맨과 무술감독을 비롯한 무술스탭들은 주로 베이징오페라학교 출신들이었다. 오페라를 하기 위해선 춤과 노래, 무술을 두루 익혀야 하고 어린아이들은 가혹한 훈련을 거쳐야 졸업할 수 있다. 홍금보와 성룡이 그 대표적인 경우. 이들이 꾸린 팀은 지금도 ‘홍금보팀’, ‘성룡팀’이라고 불리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본토 무술학교 출신들이 새로운 무술스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정통무술을 익혔지만, 남에게 선보이는 시연을 염두에 둔 무술이라 스타일이 화려하고 동작이 다양하다.
스턴트맨이나 와이어 담당 등을 거친 젊은이들은 대부분 무술감독을 꿈꾼다. 인력이 풍부한 홍콩의 감독들은 단순한 액션장면을 촬영할 때는 아예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리 통보하는 것은 시나리오와 장소 정도. 홍콩은 길이 좁고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에, 무술감독들은 장소에 맞춰 시나리오를 고쳐가면서 촬영을 진행한다. 그러나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다. 감독이 스턴트맨 대신 배우 쓰기를 고집한다면 설사 액션이 불가능한 배우일지라도 될 때까지 훈련과 촬영을 거듭해야 한다. 양자경처럼 운동신경이 뛰어난 배우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연걸처럼 그 자신이 쿵후를 익힌 배우라면 스스로 자신의 액션을 안무하기도 한다.
레이먼드 펑은 홍콩 무술스탭들은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한다”고 말했다. 감독이 마음 내키는 대로 이미 일을 마치고 돌아간 무술감독을 현장으로 불러들일 만큼, 경력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홍콩영화가 침체에 빠진 요즘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 연을 맺지 못하면 일감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홍콩 무술스탭들이 자부심을 잃지 않는 것은 그들이 누구도 대체하지 못할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와이어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외국 스턴트맨들이 그들처럼 민첩하고 우아한 동작을 선보이기란 쉽지 않은 일. 한번 다진 인연을 끝까지 끌고가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은 끊임없이 일자리를 물려주며 수십년 쌓아온 쿵후를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