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의중을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공연과 연습을 통해 함께 한 시간이 많았던 멤버들이지만, 어디까지나 음반 작업은 이들이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였다. 특히 주변의 조언을 얻기 어려운 지방이라는 환경은 더욱 더 밴드의 발목을 잡아끌었음이 분명하다. 사실 락음악이 그다지 큰 저변을 가지고 있지 못한 국내에서 서울출신 밴드니 지방출신 밴드니 하며 선긋기를 하는 것도 그다지 모양새가 좋지는 않지만, 어찌 본다면 그 저변이 없기 때문에 서울의 락씬과 지방의 그것과는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 역시도 묵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에서는 비교적 많은 밴드가 활동하고 있고, 그만큼 밴드간의 교류도 많고 그 가운데서 경쟁과 보완을 통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한 지방에서는 한정된 몇몇 밴드가 자신이 추구하는 그 음악 씬을 묵묵하고 외롭게 지켜 나간다. 물론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밴드들은 낙오하여 음악을 포기한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환경을 딛고 살아남은 밴드들은 언뜻 서울에 비해 무척 불리하게 보이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주변 밴드들과의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교류에 등 떠밀리듯 억지로 동참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일시적인 트렌드에서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보다 넓은 자신만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쳐보일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을 부여받는다. 설명이 길었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길로틴의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면 누구나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섞일 것 같지 않은 근접 장르의 음악들이 계속해서 나열되지만, 그러한 혼돈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능수능란함은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정형화된 멜로딕메틀 사운드와 어느 정도의 간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나 거부감을 전혀 주지 않는다. 오히려 곡이 진행됨에 따라 청자가 머릿속으로 다음 파트를 연상하는 섣부른 선입견을 용납하지 않는 과감한 어프로치로, 앞서 이야기했던 지방 밴드들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특권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밴드는 신디사이저의 비중을 높이고, 각 악기들이 자신만의 멜로디를 연주하고 그것을 하나로 표현하는 점에 이번 음반의 가장 커다란 주안점을 두었다고 이야기한다. 곡을 듣다보면 멜로디들이 서로 매치되지 않는 것 처럼 들리는 것 역시 이러한 이유이며, 바로 이러한 점이 길로틴만의 독특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밴드의 지향점은 구차한 이야기보다 우선 음반의 머릿곡 ‘Never Surrender’를 들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차분한 피아노 연주에 이어지는 테이프의 역회전 음을 듣는 듯한 효과는 날카로운 보컬과 함께 업비트의 메틀 넘버로 발전되어가고, 보컬을 뒤를 받쳐준다고 하기보다는 보컬과 함께 진행된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한 각 악기들의 개성적인 연주에는 신인 밴드의 데뷔앨범 오프닝 트랙이라는 패기와 안정된 연주력이 공존한다. 수미 쌍관식으로 구성되어 도입부의 피아노 연주가 재현되며 긴 여운을 남기는 ‘Never Surrender’에 이어지는 곡은 ‘Over the Fear’. 전형적인 메틀릭 사운드를 들려주는 날이 선 보컬과는 대조적으로 전개되는 유려한 멜로디의 트윈기타 라인은 극단적인 헤비메틀 사운드에서 청자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서정성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부조화 속의 조화는 앞서 언급했던 길로틴만의 독특한 특징과 다름 아니다.
이러한 서정성은 ‘Out Sider’처럼 속도감 있게 질주하는 전형적인 스피드메틀 성향의 넘버에서도 어김없이 사운드의 중심을 잡아주는 데 중요한 요소로 함께하고 있으며, 이색적인 트랙 ‘고독과 함께(With Lonely)’ 역시 마찬가지다. 다소 복잡한 진행을 보여주는 ‘빛을향해 꿈을향해(At the Light of the Dream)’은 프로그레시브메틀을 향한 길로틴 스타일의 접근이다. 그리고 그 접근은 이러한 장르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현학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듣다보면 멜로디를 콧노래로 따라할 만큼 친근함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3연음의 파워메틀 스타일과 장중한 스케일의 심포닉한 키보드 연주가 어우러지는 ‘Run’, 감성적 락발라드 넘버 ‘Rocker’, 또 밴드를 결성하고 처음 만든 해학적인 그룹송 ‘Guillotine’ 과 전쟁을 노래한 “Ask Me..."등 한 장의 음반임에도 불고하고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으려는 밴드의 욕심이 그대로 반영된 다채로움이 수록되었다. 이러한 다채로움은 마지막 트랙 ‘Oath’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데, 길로틴 멤버 이외에 부산과 경남을 대표하는 메틀 뮤지션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기타에는 묵혼의 김종대, 보컬에는 바크하우스의 정홍일과 문사출의 김산, 셔플의 권재민, 묵혼의 임덕명, 사립밴드의 김성준, 드럼세션으로 이영주가 참여한 곡으로, 많은 멤버가 참여한 만큼 질주하는 곡의 진행 안에서 섬세한 자신만의 위치를 확실하게 잡아, 짧지만 확실하고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넘버다.
이제 음반이 발매되었으니, 음악의 주인은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밴드에서 음반을 사서 감상하는 청자에게로 넘어갔다. 음악에 대한 평가 역시도 이제는 청자들의 몫이다. 밴드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려 했던 의도가 청자에게는 진부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복잡한 솔로 악기들과 보컬이 함께 만들어가는 라인은 자칫 무의미한 나열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이들이 해 놓은 업적을 그대로 따라하는 맹목적 종속 안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음악, 아니 이미 발표된 음악보다도 못한 음악만이 있는 세상이 되리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이 한 장의 앨범이 부족하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모이고 또, 미비한 부분들을 조금씩 갖춰 나갈 때 정말 세상을 놀라게 할 새로운 음악의 장르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데뷔앨범이기 때문에 그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감이 남기는 하지만, 분명 획일화된 틀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순수한 멤버들의 마음이 투영된 투명한 결정과도 같은 시작점이다. 이제 음악판에 본격적으로 첫 발을 들여놓은 이들의 앞날이 충분히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글 송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