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왕보살(藥王菩薩) / 보고 싶은 불. 보살
약왕보살(藥王菩薩, 약상(藥上菩薩)
소신공양과 월정사의 공양 보살상을 떠 올리는 약왕보살은 누구인가?
중생은 병들어 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에 중생이다.
이렇게 중생이 병들어 아파하고 있기 때문에
유마(維摩) 거사는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병들어 신음하노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 아파하지 않으면
그 병의 뿌리를 잘라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병의 뿌리를 잘라내어 중생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결국에는 성불의 길로 인도하고자 원을 세우신 분이 약왕보살(藥王菩薩)이다.
이 분의 산스크리트 명은 바이사쟈 라자(Bhaisajya-raja)이다.
바이샤자란 양약을 일컫는 말이며 라자는 왕이라는 뜻이니
바로 약왕인 것이다.
일러 병 고치는 약을 제공하는 데서 으뜸가는 보살로,
일광 또는 월광보살이 모든 재난을 제거하는 보살이라면
이 분은 그 외연이 좀더 좁혀진 병에 대한 처방이 으뜸가는 보살이다.
뿐이랴.
약왕보살은 자신의 몸을 남김없이 태워서 부처님께 바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의 정신을 치열하게 보여준 분이었던 것이다.
약왕보살의 전신 희견(喜見)보살 이야기
이 약왕보살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이다.
본사란 본생담(本生譚) 또는 본생(本生)과 같은 말로
전생의 인생살이를 일컫는 얘기이므로,
이 품은 바로 약왕보살의 전생이야기랄 수 있다.
별자리를 통하여 신통력을 발휘하는 수왕화(宿王華)보살이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약왕보살은
그렇게 자재롭게 중생을 구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얘기는 전개된다.
옛날 일월정명덕여래(日月淨明德如來)가 계실 때의 일.
일체중생 희견보살(一切衆生憙見菩薩)은
그 여래의 설법을 듣고 감복한 나머지 1만2천년 동안 수행한 결과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알맞게 몸을 나투고
그에 적합한 가르침을 펴는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온 몸을 불살라
부처님께 공양할 것을 맹세한다.
그러고는 오랜 세월 동안 향기가 나는
향목(香木), 향초(香草) 등을 먹고,
또한 향기나는 향유(香由)만을 마시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이는 썩어문들어질 색신(色身)을 버리고
향기나는 몸인 향신(香身)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희견보살은 자신의 몸을 천의(天衣)로 감싼 채
다시 그 위에 향유를 바르고는 이른바 소신 공양을 거행한다.
그러나 죽음은 또 하나의 삶으로 이어지는 법.
그는 환생하여 일월정명덕 여래 앞에 다시 나타나 재회의 감격을 맛본다.
그러나 만남의 기쁨도 잠시뿐,
부처님은 이제 이승을 떠나겠노라고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잘 와주었도다. 나는 오늘밤 열반에 들터이므로
나의 법을 그대에게 맡기노니 널리 세간에 펼칠지니라'
희견보살은 슬픔에 잠겨 울먹이면서 부처님의 몸을 화장한 후
8만4천 개의 탑을 세워 거기에 사리를 봉안한다.
그것만으로 부족한지 다시 양 팔을 태워 사리에 공양하자
여러 사람들이 그가 불구의 몸이 된 것을 걱정하며 슬퍼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나는 비록 두 팔을 버렸지만,
그 대신 이제 금색의 영원 불멸한 붓다의 몸을 얻을 것이다.
만일 이런 일이 참되고 헛되지 아니하면
이 없어진 나의 두 팔이 다시 원래 대로 회복될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의 몸은 곧바로 회복되었다.
바로 썩어 없어져 버릴 육체를 단연코 포기할 결과
영원한 불신(佛身)을 얻었던 것이다.
전 후생에 걸쳐 거듭 자신의 몸을 불태워 공양하는 분연한 결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마당에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을 회상해 본다.
아니 그것은 소설이기에 실제로 분단된 조국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가부좌를 튼 채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사른
베트남 스님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은채 화염 속으로 빠져드는 그 모습을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보면서 전율을 넘어선 숭고한 종교미를
느꼈다면 그것은 나의 지나친 감
상일까.
그것은 오직 자유, 해탈, 해방을 위한 공양이기에
깨달음보다 더한 실존이며 가장 소중한 공양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희견보살이 약왕보살의 전신이라고
세존이 숙왕화보살에게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짐해 두었던가.
'만일 뜻을 세워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자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손가락, 발가락 하나라도 좋으니
그것을 등불로 밝혀 부처님 탑에 공양해야 하나니라.
그것이 가장 귀중한 공양이나니라.'
그러나 『법화경』에서는 별로 치병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만 '만일 마음의 병이 걸린 사람이 이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면,
그 병은 즉시에 소멸하여 영원한 생명을 깨달은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약왕보살과 약상보살의 원
밀교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약왕보살은 약상(藥上)보살과 더불어
그 이름에 걸 맞는 치병의 기능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약상보살도 약을 처방하여 병을 치유하는 데서는 최고(上)라 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畺良耶舍 譯出 )에서는
치병과 관련되어 그들의 전생 얘기를 소개한다.
『법화경』에서도 약왕과 더불어 약상보살이 함께 거론되는 것을 보면
이 경전과 『법화경』의 친연성을 엿볼 수 있다.
다만 『법화경』에서는 소신 공양을,
이 경전에서는 중생과 비구에 대한 약 공양을 강조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아주 오랜 옛날, 일장(日藏)이라는 총명하고 어진 비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받들어 펴고 있었다.
중생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대승의 위없는 가르침을 말이다.
어느 마을에 성수광(星宿王)이라는 장자(長者)와
그의 아우 전광명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성수광은 일장 비구가 설하는 대승의 큰 지혜의 말씀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확 열리는 듯 한 기쁨에 몸을 떨었다.
칠 흙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밝은 빛을 본
장자는 오로지 진리의 길에 매진하겠노라고 결심한다.
나아가 그러한 가르침을 베풀어준 일장비구에게 히말라야에서
나는 양약을 공양하고서는, 다음과 같은 원을 세운다.
'원컨대 나의 이 두 손에 모든 약을 담아서
중생들의 병을 어루만지고 모든 병을 낫게 해 주소서.
만약 어떤 중생이 나의 이름을 듣거나 외우면 모두 깊고
미묘한 다라니의 가이 없는 진리의 법약(法藥)을 복용케 할 것이며,
즉시 이들로 하여금 현재의 몸에 남아 있는 모든 악을 소멸하여
어떤 소원이든 모두 이루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성불하였을 때
원컨대 모든 중생이 대승의 가르침을 향하게 하소서.'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 병고침이라는 것이
단순한 육체적 병의 쾌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정신의 병, 정신의 병에서 더 나아가
결국에는 법의 약으로 중생들을 모든 번뇌에서 해탈케 하는
성불로 이끌고 간다는데 대승불교 특유의 병에 대한
관점과 그 치유가 드러난다.
그의 아우 전광명도 형과 마찬가지로 일장 비구의 설법을 듣고
용약 환희한 나머지 그에게 양약을 공양하고 원을 세워 성불하게 된다.
이러한 인연으로 형 성수광을 약왕(藥王)이라 하고
그의 아우 전광명을 약상(藥上)이라 불리었으며, 마침내 성불하게 된다.
약왕보살과 월정사의 공양 보살상
어느 때곤 늘 푸른 수다한 아름드리 나무가 하나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오른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에는
상긋한 바람 소리가 번뇌를 떨구 듯 귀전을 스치는데,
그 번뇌 다하여 사라져버린 청정한 공간 월정 도량(月精道場)에는
이채로운 팔각구층탑이 우뚝 서 있어 낯선 이의 발걸음을 붙들어 맨다.
그런데 바로 그 구층탑 앞에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을
공양 보살상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머리에는 묘보관을 쓰고 감발은 귀 밑으로 드리워졌으며
몸은 아침햇살 처럼 눈부시다.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쪽 무릎을 곧추 세운 채
그 위에 손을 얹어 뭔가를 공양하는 모습이다.
그 보살상은「약왕보살본사품」에서 약왕보살의 전신인
희견보살이 부처님의 사리탑 앞에서 자신의 양 팔을 공양하는 듯 한
인상을 주기에 약왕보살로 추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릉 지방의 신복사(神福寺)와 한송사(寒松寺)에
이와 비슷한 보살상이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일대가 약왕보살 신앙과 관련이 깊던 터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속리산 법주사에는 봉발 석상(奉鉢石像)이 있는데,
이 석상을 가리켜 희견보살이라고도 일컫는다.
두 손으로 향로〔발우〕를 바쳐들어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으로,
그 형상이 마치 머리에 향로를 얹고 소신 공양을 올린
희견보살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주사의 희견보살상은 전신을 태워 공양하는 입상(立像)이고,
월정사의 보살상은 뒷날 그가 사리탑 앞에서 양 손을 태워
공양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 좌상(坐像)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자신의 살을 태우는 고통으로 얼굴은 비참하게 일그러지고
몸은 이리저리 뒤틀릴 법한데
월정사 약왕보살은 곧은 자세로 탑을 우러를뿐더러
얼굴에는 살폿한 미소가 주르륵 흐른다.
(참고문헌 : 김현해, 법화경요품강의, p. 332.)
[출처] 블로그 목야뜨락 | 작성자 목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