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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 문화 탐방
가주초등학교 6학년
김 연 미
첫 째날
드디어 고구려 역사 문화 탐방을 하는 날!!! 그동안 우리 남한에 있는 백제나 신라의 유적은 가 보았지만, 고구려의 유적은 많이 가보지는 못하였다. 그 이유는 고구려가 북쪽에 있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남한에는 많은 유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의가 북한이나 중국에 있다. 그래서 고구려 유적을 보기 위해서는 중국으로 가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너무 졸리고 아침을 안 먹어서 배가 고팠지만 꾹 참았다. 오랫동안 기다린 후, 드디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비행기는 비교적 큰 비행기를 탔지만, 창가에 앉지 못해서 아쉬웠다.
기내 식사를 했는데, 별로 맛이 없었다. 기내 식사를 하고 나니 심양에 도착했다. 심양은 비교적 큰 도시였지만, 서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거의가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신호등이 있었지만 지키지 않았다. 차들은 별로 없었고, 버스는 시루 통이었다.
공항 뒤에 있는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 말이 안통해서 조금 어려웠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이만 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음식은 왜 그리 맛이 없는지... 죽을 뻔했다. 그러나 이것도 체험이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기차가 안 와서 기다렸는데, 사람들이 우릴 원숭이 보듯이 했다.(우리는 그때 전원 모두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역을 둘러보니까 서울역보다 훨씬 구렸다. 우리는 기차 도착시간 같은 건 컴퓨터가 알아서 해 주었는데, 그곳에서는 직접 손으로 썼다.
이윽고 기차에 탔다. 기차도 구렸다. 의자는 어찌나 뻣뻣하던지... 그런 의자를 타고 몇 시간을 여행하는데 질려 버렸다.
오랜 시간을 여행, 드디어 단동에 도착했다. 역시 구린 음식을 먹고 숙소로 갔다. 조금 좁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고, 좋았다. 역시 단동 최고급 호텔이었다. 그런데 키가 카드 키였다. 정말로 신기했다. 내 룸메이트는 혜람이였다.
일기를 쓰고 몸도 씻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둘 째날
약간 나은 아침식사를 한 뒤, 압록강을 보러 갔다. 압록강에서 배를 탔는데, 신의주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중국 쪽 물은 기름이 둥둥 떠 있어서 더러워 보였다. 그런데, 북한쪽 물은 정말 깨끗했다.
아주 가까이 가서 북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북한아이들 중 내 나이 또래의 한 소녀가 우리에게 "안녕!" 이라고 인사해 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 애에게 "안녕!" 이라고 인사했다.
조금 더 옆으로 가니까, 북한 해군들이 있었다. 배가 고장났는지, 배를 고치고 있었다. 배 뒤로 보이는 북한 마을은 중국에 비해 초라해 보였다. 예전에는 신의주가 더 잘살았는데, 지금은 중국이 더 잘산다고 한다. 담벼락에는 '김정일 수령 만세' 라든지 뭐 그런 이야기 밖에 쓰여있지 않았다. 역시 공산당이었다.
북한 해군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에서 이야기가 통하니까 얼마나 기쁘던지... 북한 해군 아저씨들과 나눈 이야기를 약간 써 보면,
아저씨 : 어디서 왔나?
우리들 : 남한에서요.
아저씨 : 아, 남조선!!
중국사람이나, 연변 사람들이나 우리 남한을 남조선이라고 했다. 그리고 북한은 북조선이라고 했다.
그 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아저씨는 낚시를 하고 계셨는데, 우리가 고기 많이 잡으세요! 하고 외치자 그 아저씨는 웃음을 지으셨다.
그 때 마침 찌가 움직였다. 우리는 그 아저씨와 직접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 민족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 어떤 나무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시큰둥했었다. 우리가 들을 수 있게 "안녕하세요!" "통일합시다!" 라고 소리치자 그제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강물이 깨끗하니까 아이들은 다 발가벗고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물이 얼마나 깨끗하면 그럴까? 어른들은 어릴 때 시골하고 똑같다며 웃었다.
그 다음에 강에 있던 다리를 보았다. 다리는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끊어져 있었고, 하나는 북한과 이어져 있었다. 끊어진 다리는 6.25 때 끊어진 다리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하나를 만들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북한 땅은 아름다워 보였다. 통일이 되는 날이 빨리 와서 저 땅을 밟고 중국으로 건너 와 보고 싶다.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엄마께서 부채를 사 주셨다.
오후에 단동에서 환인으로 이동을 했다. 버스로 오랜 시간을 이동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그렇지만, 중간에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놀았다.
저녁쯤에 환인에 도착했다. 환인에서 어떤 호텔에 갔는데, 진짜 꾸린 호텔이었다. 그리고 조금 무서웠다. 화장실에 이상한 여자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그곳에는 이상한 자전거 택시(?)가 있어서 탔는데 바가지 먹었다. 모든 사람들(나는 제외)은 다 배탈이 났다. 밤에 일아 언니(혜람이의 언니)방에서 라면을 먹고, 우리 방에서 카드게임도하고 공기도 하고 놀다가, 일아 언니네 방에 와서 잤다. 우리 방이 아주 넓어서 우리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는 정말 다산 다난한 하루였다.
셋 째날
오늘은 비가 내렸다. 오녀산성에 갔는데, 옷을 다 버렸다. 신발도 흙탕물 천지가 되었다. 기분이 조금 더러웠다.
오녀산성은 졸본 성이라고 한다. 그곳에 장대가 있었는데 제일 높은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멋있었다.
내려오며 절벽을 탔는데 꽤 재미있었다. 경주에서 했던 거보다 100배, 1000배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떤 애가 벌집을 건드려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 벌에 쏘였다. 나는 안 쏘였다.^^
역시 이동하는데 시간을 빼앗겼다. 이번엔 국내 성이었다는 집안으로 갔다. 이번 호텔은 취원호텔이라는 곳인데, 꽤 좋았다. 이번 호텔은 고구려 왕궁 터라고 한다.
이번 호텔은 음식도 우리 입맛에 맞았고, 친절했다. 정말 좋았다.^^
그런데 고급반 아이들은 물론 여러 아이들을 오들오들 떨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허유진이 여느 때처럼 그냥 들어와서
"언니, 긴급 정보를 입수했어."
하고 신중하게 무슨 첩보원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무엇인지 물어 보니까, 오덕만 선생님께서 허유진에게 전화해서 고급반 아이들에게 자료집과 필기도구를 가지고 320호로 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 준비하고, 320호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320호가 없던 것이었다!!! 우리는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었고, 숙소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그저 로비에서만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사람들에게 말해 주었다. (거기 가게 아줌마나 손님들이 거의 다 조선족이어서 말하기가 편했다.) 그런데 한 아저씨가 찾아 주겠다며 우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320호가 있긴 있었다. 통로가 막혀 있어서 우리가 찾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숙소로 올라와 보니까, 이정환과 김희우가 오덕만 선생님께서 일기를 검사하시러 방마다 돌아다니신다고 해서 급하게 일기를 썼다.
오늘 밤은 정말 재미있었다.^^
넷 째날
왕궁 터에서 잔 기분은 짱이었다. 피곤해서 그냥 잤다.
오늘은 간 곳이 많았다. 처음에 집안 박물관으로 갔다. 나는 집안 박물관장 자리가 높다는 말을 듣고는 굉장히 멋있는 곳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허름한 집이 박물관이었다. 창문에는 아주 커다란(웬만한 나뭇잎보다 더 컸다. 난 처음에 나뭇잎인줄 알았는데, 막 날아서 나방인줄 알았다.) 나방 몇 십 마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전시물은 별로 없고, 사진들만 있었다. 별로 볼 것 도 없는 것이 박물관이라니 정말 웃겼다. 역시 우리나라가 짱이야!!
그 다음에는 오회분 오호묘에 갔다. 오회분 중에서는 이것만 개방이 된다고 했다. 안에는 정말로 시원했다. 무덤이라서 그런가?
안의 벽화는 정말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없어졌을 법도 한데,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정말로 신기했다. 4신(주작, 청룡, 백호, 현무)이 그려져 있었고, 해의 신, 달의 신, 농사의 신 등 많은 신들의 그림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장군총에 갔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장군총을 실제로 보니까 정말 웅장하고 위엄이 느껴졌다. 단지, 돌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조금씩 비틀어지는 것이 흠이라고나 할까...
장군총 안에는 시상이 2개가 있었다. 시상이란, 관을 놓는 상이다.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았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라고 한다.
장군총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장군총에 기대고 있었다. 없어진 것까지 합하면 모두 12개이다. 그 바위들을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궁금할 정도일 만큼 커다란 바위이다. 그런데, 그 돌들이 있는 자리는 장군총에 쓰여진 돌들이 반듯하게 잘 견디고 있는 반면, 바위가 없는 곳은 삐뚤빼뚤 엉망진창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어긋나 있었다. 여기를 두고 학설이 나누어진다. 바위가 12지신을 나타낸다와 바위가 돌들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준다. 나의 생각은 둘 다 합친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것에 의미와 과학, 아름다움을 모두 집어넣는다. 한옥만 해도 그렇다. 그러니까 고구려 사람들이 돌들이 무너지는 것도 방지되고, 12지신도 나타낼 겸 그렇게 한 것 같다. 꿩 먹고 알 먹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 다음에 광개토대왕비를 보러 갔다. 광개토대왕비는 중원 고구려비보다 훨씬 컸다. 정말 멋있었다.
내 생각에는 광개토대왕비나 중원 고구려비가 없었더라면, 삼국시대 역시 선사시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는 고려시대에 쓰여진 책들이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8개 조항 중 3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사시대로 분류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선사시대랑 역사시대는 기록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비록 3조항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다가 고려시대에 글로 옮겨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비에는 삼국시대의 역사가 자세하게 쓰여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문제가 생긴다. 한자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삼국사기에 '경애 왕이 포석정에 갔다'가 '경애 왕이 포석정에서 놀았다'라는 뜻으로 완전히 180。 바뀌는 것이다. 일본 놈들이 그것을 가지고 역사 왜곡을 하는 것이다.(빌어먹을!!!)
점심을 먹고 보트를 탔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2번이나 탔다. 나도 타고 싶은데...
그 다음에 중국과 북한을 연결해 주는 철교로 갔다. 저번에 갔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이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쪽 철교를 몇 발짝 밟을 수 있었다. 나는 5발짝 밟았다. 결국 우리 모두 북한 땅을 밟은 셈이다.
그 다음에 국내 성이라고 하는 환도 산성과 고구려 무덤 떼들을 보러 갔다. 환도 산성은 갈 수 없었다. 법이라나 뭐라나... 감시원이 우리를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무덤 위에 올라갔다.(이 무덤만 올라갈 수 있고, 다른 데는 어림도 없고, 사진은 물론 안 된다고 했다. 원래는 우리 건데, 왜 지들 맘대로냐고!!!)
사방으로 밭 사이에 볼록 볼록 솟아 있는 무덤 떼들이 보였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다 도굴 됐다고 한다. ㅠ.ㅠ
자유시간을 가지고 취원호텔로 모였다. 그곳에서 나는 팔찌를 샀다.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3명의 제일 높은 오빠들이 어디론가 사라져서 하마터면 기차를 노칠 뻔했다. 모두들 안간힘을 쓰고 기차에 가까스로 골인을 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잠은 기차에서 잔다. 내일은 백두산을 볼 수 있다.
다섯 째날
백두산에 가는 날!!! 드디어 천지를 볼 수 있다니... ㅠ.ㅠ(감격)
아침 일찍(새벽이라고나 할까?) 이도백하 역에 도착해서 어기적어기적 식당에 갔다. 정말 추웠다. 북쪽이라서 그런가? 아님 새벽이라서?
이번 식당은 조선족 식당이어서 우리 입맛에 맞았지만, 추워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커다란 버스였다.) 조금 올라가니까, 커다란 문이 있고, 그 문에는 한자로 장백산(長白山)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백두산을 이곳에서는 장백산이라고 한다고 한다.
백두산 천지는 기상 이변이 심해서 잘해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침에 백두산에 비가 오고 있어서 장백폭포(비룡폭포)를 보러 갔다. 천지 물이 떨어지는 장백폭포는 넘넘 멋있었다. 물소리가 아주 시원했다. 해가 나오니까 더워서 껴입었던 옷을 하나 하나 벗어 나갔다.
거기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계단을 통해서 천지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죽어도 계단으로 천지를 가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는 온천이 많았다. 장백폭포로 가는 길에 바위가 많았는데, 온천 때문에 바위 색깔이 노란색 아님 빨간색이고, 그 부분에는 뜨거운 물이 흘러 내렸다. 연기가 장난 아니게 심했다.
내려오면서 엄마께서 달걀을 사 주셨다. 이 온천물에서 삶은 거라는데, 겉에는 안 익어서 물러 터졌는데, 안에는 노릇노릇 잘 익었던 것이다!!! 정말로 신기했다. 보통 달걀은 안부터 익지 않나?
장백폭포에서 내려 와서 온천에 갔다. 거기서 샤워를 하고 미지근한 탕 속에서 논 다음에(거기에는 탕이 3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엄청나게 차갑고, 하나는 미지근했고, 하나는 삶은 고기가 될 정도로 뜨거웠다.)
그 다음에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백두산 천지를 보러 갔다!!! 6인 1조가 되어서 갔는데, 지프차를 타고 갔다. 갔는데, 안개에 가려서 천지가 보이지 않았다. 30분 정도를 기다려도 보이지 않자,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 때였다!!! 안개가 걷혀서 천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5초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중요한 말!!!) 그 뒤로 2번 정도 걷혔다. 나는 천지에서 내려 와서 지프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내려온 다음에 완전히 걷혔다가 다시 가려졌다고 한다. 조금 아쉬웠다.
내려와서 아침을 먹은 곳에서 다시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는 다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배가 아주 많이 불렀다.
선생님께서 옆에 차 시음 회가 있으니까 가보라고 했다. 가서 4종류의 차를 시음해 보았는데, 그 이름을 까먹었는데, 한 차가 유난히 맛이 좋았다. (4글자였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는 사 주시지 않으셨다. ㅠ.ㅠ 차 물이 잘 데워 졌는지 판가름하는 인형이 있었는데, 찰흙으로 빚은 인형이었다. 남자인형이었는데, 물을 붓자 그 인형 X에서 물이 쭈룩 하고 나와서 꼭 볼일 보는 거 같았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 다음에 미인송 호텔에 갔다. 미인송이란, 아름다운 소나무라는 뜻으로 백두산 지역에만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미인송들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가서 샤워를 하려다가 우리가 아까 샤워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일기를 쓰고, 놀았다. 저녁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 이유는 된장국이 나왔던 것이었다!! 정말 맛있었다.
밤에 일아 언니네 방에서 일아 언니, 현미 언니, 나, 혜람이, 박성준, 박태준 오빠, 최현호 오빠, 그리고 어떤 5학년 짜리 남자애랑 에이비씨를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오늘은 중국에서 지낸 날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재미있던 하루였다. 다만, 저녁때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난 거만 빼면... 내가 한국에서 5일째 되는 날 탈날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 되었다.
여섯 째날
...오늘은 별로 내 생애에 도움이 안 되는 날 이었다.
오늘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구경하는 날 이었다.(용정, 도문, 연길) 아침은 미인송 호텔에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용정으로 이동을 해서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었다.(아침을 새벽에 먹어서...) 점심도 꽤 맛있었다. 밑에 기념품 판매점이 있었는데, 팔찌를 이쁜거 하나 사고 싶었다. 그런데, 못 샀다.
그 다음에 해란 강에 갔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다리에서 내가 뛰다가 허여진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허여진이 다시 발로 차서 얼굴을 다쳤다. 무릎도 엄청 크게 다치고... 정말 운이 없는 날이었다.
그 다음에 용정 중학교에 갔다. 가서 윤동주 시인 기념관을 보았는데, 그저 그랬다. 난 아파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이 중학교는 6개의 학교가 합쳐진 거라는 것과 100% 조선족이고, 공부를 무척 잘한다는 것 외엔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 다음에 두만강에 갔다. 압록강 하류부터 시작해서 두만강 하류까지 쭈욱 온 것이다. 약 1주일동안.... 두만강에서 사진을 찍고 연길로 이동을 했다. 여기서 기차를 14시간동안 타고 심양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서서히 고구려 역사 문화 탐방도 막을 내려갔다....
기차에서의 원래 룸메이트는 혜람이, 일아 언니, 현미 언니였는데, 자리가 없어서 미희 언니, 주희, 양희, 지수, 상지와 같이 쓰게 되었다.(여기는 6인 1실과 4인 1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6인 1실로 갔었다.) 수다도 떨고, 밥도 먹었는데, 도시락이었다. 반찬은 맛이 없어서 선생님 드렸고, 밥에다가 고추장 비벼서 먹었다.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우리를 갈라 놓으셨다. 주희와 상지는 어떻게 됬는지 모르고, 양희와 지수는 혜람이랑 같이 4인 1실로 갔다. 나와 미희언니는 두 아주머니께서 있던 방에서 자게 되었다. 밤을 세자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그냥 일찌감치 자 버렸다.
오늘은 별로 운이 좋지 않은 날 이었다...
마지막 날
드디어 중국생활 마지막날!!! 밤새동안 기차를 타고 심양에 도착했다. 여기서 첫날 만났던 심양의 가이드와 다시 만났다. 오빠들은 가이드 선생님과 즐겁게 놀았다. 이승환은 아예 매달리기까지 했다.
또 다시 꾸진 아침을 먹고, 한 능에 갔다. 설명을 잘 못 들었지만, 우리나라와 그곳의 다른 점을 많이 발견했다. 정자 각이 있는데, 지붕은 황금을 덮었고, 우리나라처럼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있었다. 그런데, 계단이며 기단부등 많은 곳들에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들이 어찌나 섬세하던지....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뒀다.
그 뒤로 가니까 성벽들이 있고, 성을 올라가니까 청나라의 첫 번째 황제 누르하치의 능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꽤 작았고, 시멘트로 떡칠 을 해 뒀다.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야!!!
그 다음에 심양 고궁에 갔다. 심양 고궁은 너무 넓어서 다 흩어지고 말았다. 오덕만 선생님을 따라 몇 명만 심양 고궁을 관람했고, 나머지는 끊겨서 가이드 선생님과 함께 우리를 기다렸다. 나는 심양 고궁을 조목조목 보았다. 정말 멋있는 곳이었지만, 좀 딱딱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왕비의 궁 뒤에 있는 조그만 정원이 있었는데, 역시 우리나라의 아미산이라 불리는 조그만 정원 비슷한 거였다. 그런데 여기는 인공 연못에 온갖 바위를 가져다 놓고, 정원이라 부른다.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 다음에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불고기를 먹었다. 말이 통해서 편했고, 점원들이 한복을 입고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식당에서 나와 거기에 있는 게시판을 보았는데, 조선족들이 보는 신문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드디어 심양 공항이다. 그곳에서 나는 친구들 선물을 샀다. 조금 있다가 공항 버스를 타고 우리가 탈 비행기로 이동을 했다. 이번에는 조금 작은 비행기였다. 나는 여태까지 작은 비행기는 탄 적이 없어서 조금 그랬다. 그런데 창가에 앉아서 좋았다. 내 옆에는 미희 언니가 앉았다.
드디어 비행기 이륙!!! 드디어 한국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역시 예상대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창문을 닫고, 기내 식사를 했다. 이번에는 샌드위치였는데, 꽤 맛이 좋았다. 맛있게 먹었다.
얼마뒤, 드디어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너무나 반가웠다. 드디어 중국 여행을 끝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
선생님께선 김범석이라는 애가 여행을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김범석은 중국 음식도 맛있게 먹고 물건값도 손짓 발짓으로 많이 깎은 아이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리무진 안에서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았다.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그 땅은 우리 땅일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일주일동안의 중국생활.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재미있는 일주일이었다. 또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보람찬 나날들이었다.
고구려 역사 문화 탐방 후기
나는 답사는 우리나라 내에서만 했다. 그래서 백제, 신라, 조선에 대한 답사와 공부는 거의 다 끝마쳐 가고 있는데, 북쪽에 수도가 있었던 발해, 고구려, 고려에 대한 답사는 한번도 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고구려 역사 문화 탐방을 통해서 나는 고구려에 대한 것들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고구려의 수도는 졸본 → 국내성 → 평양 이렇게 세 수도가 있었는데, 평양만 빼고 나머지는 중국에 있었다. 그래서 고구려가 번성했을 시기의 여러 가지 유적들을 볼 수가 있어서 좋았다.
중국은 우리나라 바로 옆 나라이면서도 많이 달랐다. 중국, 한국, 일본은 서로 이웃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한 줄은 정말 몰랐었다. 중국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배탈이 나고 물도 맛이 없었다. 날씨도, 기후도 달랐다. 우리나라와 가까이 있고 우리와 같은 민족인 조선족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너무나도 달랐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억울한 것이 몇 번 있었다. 우리의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진도 못 찍고,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그냥 먼 곳에서 보기만 하고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으면 그 땅은 우리의 것일텐데... 신라가 '나당 연합군'으로 통일을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했으면 그 땅은 우리의 것일텐데... 정말 아쉽고, 분했다.
또 분한 일은 우리의 문화재들이 다 망가지고 있는 사실이다. 아무데나 버려져 있고, 도굴 당하고 무관심 속에서 간간이 숨을 이어가고 있는 문화재들을 보았다. 예로 들자면 장군총이 있다. 장군총을 받치고 있던 바위들을 중국 사람들이 집을 짓고 뭐하고 뭐하고 하느라고 다 가져가 버려 장군총이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돌들은 위의 돌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갈라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완전한 독립국가였다. 조선시대 전까지는... 고조선도 중국과 싸웠고, 고구려 역시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를 지켜냈다. 발해도 당나라의 땅을 차지했다. 신라도 비록 당나라의 힘을 빌렸지만, 나중에 당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백제 역시 중국과 교류하긴 했어도 속국이 되지는 않았다. 고려는 황제의 나라로 궁도 황제의 궁으로 짓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원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끝까지 저항하던 삼별초가 있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위화도회군을 했고 우리나라가 사실상 명나라의 속국이 되도록 했다. 나라 이름까지 중국에게 물어서 지었다.
지금 경의선 철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경의선 철도가 중국, 러시아까지 이어지도록 일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조선족과 힘을 합치면 우리나라는 더욱 부강해 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