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캐릭터가 모두 살아있네
뜬금없이 홍길동이라니 제목이 왠지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홍길동이 누구인가.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양반에 대한 원망으로 한 맺힌 세월을 살아가다 도둑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조선시대 소설 속 인물이 아닌가. 이 도둑의 특이점은 나쁜 양반의 돈을 훔쳐다 불쌍한 평민들을 도와주는 의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의적을 21세기에 다시 불러들인 영화가 나타났다. 바로 2009년 백주대낮에 홍길동의 18대손이라고 자처하는 인물을 그린 <홍길동의 후예>이다.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허균의 소설<홍길동전>의 인물이 실존인물이고, 그 후손들이 현재에도 선조의 뜻을 받들어 사회의 약자를 돕는 의적 활동을 한다는 상상력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액션과 코믹의 적절한 배합으로 웃음과 유쾌함을 선물한다. 홍길동 후손들의 일화를 그린 <홍길동의 후예>의 최고 장점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각축장으로 그들과 만나는 재미로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최신식 기술로 남의 집 금고를 털고 다니는 21세기 홍길동의 후예는 선조와는 달리 가족이 조를 짜서 도둑질하러 다닌다. 완벽한 몸매의 고등학교 음악교사 홍무혁(이범수), 인자한 대학교수 아버지 홍만석, 현모양처 어머니 명애, 미성년자라 아직 도둑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고등학생 홍찬혁까지, 이들은 낮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만 밤이 되면 정의를 위해 의적 활동을 일삼는 홍길동 가문의 후예들이다.
이들 일가에게 가장 큰 적은 정재계를 아우르는 블랙 커넥션의 실체인 이정민(김수로)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불의도 마다치 않는 비뚤어진 세계관을 가진 냉혈한이다. 그는 악당 캐릭터의 세계적인 추세대로 극악한 동심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 취향으로 나온다. 어린이 취향을 가진 악당의 행동들이 영화를 만화영화처럼 단순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그래서 영화는 단순하다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단순함에서 오는 쾌락과 웃음을 선사받을 수 있다. 여기에 악당 이정민을 붙잡겠다고 불철주야 공무에 힘쓰는 불의를 못 참는 검사 송재필(성동일)을 투입시켜 웃음을 배가시킨다.
한마디로 <홍길동의 후예>는 건물과 건물을 넘나들고, 자전거로 묘기를 선보이는 화려한 액션이 주는 쾌감과 온몸을 던진 개인기로 코미디를 선사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이루어 낸 화려한 조화가 살아 숨 쉬는 코믹 액션의 성찬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