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윤심덕과 사의찬미
오늘은 <사의 찬미>라는 노래를 부르고 30살에 죽은 비련의 여주인공 윤심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윤심덕을 본받기에는 좀 껄끄럽습니다만,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인공이고, 또 춘천과도 인연이 있기에 소개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다양한 삶을 본다는 취지에서 ‘이런 삶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 춘천에 윤심덕이 오게 된 사연: 윤심덕이 춘천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있었던 시기는 1914년 10월 초-1915년 3월말 사이로 당시 나이는 18-9세 사이였다.
윤심덕이 춘천에 오게 된 것은 총독부관옥국장 멱살 잡은 대담성에서 비롯되었다. 윤심덕이 원주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있을 때, 여름방학이 되어 윤심덕의 출신학교인 평양여고보 동창회에 참석했다. 그때 총독부 관옥 학무국장이 단상에 올라왔다. 그러자 윤심덕이 단상으로 올라가서 관옥국장 멱살을 잡고, 자신을 시골 원주로 보낸 것을 따졌다. 동창생들은 모두 웃어댔고, 관옥국장은 당황했지만 아릿다운 처녀의 해프닝으로 받아 들였다. 그 때문에 춘천보통학교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고 한다.
▶ 윤심덕의 인물: 윤심덕(1897-1926)은 20세기 초 연극인과 성악가로 30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비련의 주인공이다.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에다 옛 것을 지키는 전통과 신문명을 수용하는 개화가 공존․대립하는 가운데서 갈등을 겪던 근대화의 과정기이다. 윤심덕은 아주 똑똑하고 대담하고 서구 문물을 수용하는데 앞장섰던 개화기의 선구적인 여인이었다.
▶ 윤심덕의 태생과 일생: 윤심덕은 평양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풋나물장사를 하고, 어머니는 관혜여의원의 사무원이었다. 윤심덕은 평양여고보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경성 여고보 사범과에 우등으로 졸업하여 원주보통학교에 처음으로 부임한다. 이어 횡성과 춘천보통학교 교사생활을 거쳐서 1915년에는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유학의 길에 오른다. 일본에서는 음악을 전공하게 되는데, 그 후 경성사범부속학교 음악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음악인과 연극인으로 활동을 한다.
▶ 원주에서의 일화: 윤심덕은 모든 남자교사들에게 서글서글하게 대하니까 다들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고 들떴다가 실망을 했다고 한다.
▶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마치고 귀국해서 잠시 음악교사로 있다가 그만두고 극예술협회, 동우회 등에 출연하여 성악가와 배우로써 명성을 얻는다. 이때 방송 출연 등 레코드취임을 하게 되는데, 이때 레코드 취입을 한 것이 윤심덕이 작사하고 노래한 <死의 讚美>이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윤심덕은 자주 울었다고 한다. 벌써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이리라.
▶ 윤심덕의 죽음: 윤심덕은 유부남 연극인 김우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윤심덕은 김우진과 함께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관부연락선 「덕수환(德壽丸)」 갑판 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
▶ 윤심덕에 대한 춘천의 기록: 1927년 춘천보통학교 20회 졸업생들이 낸 개교 20주년 기념문집 <성내천(聲乃泉)>에 윤심덕은 명예회원인 전직교사로서 30세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윤심덕이 작사하고 노래한 <사의 찬미> 내용: 노래 제목처럼 죽음을 찬미한 노래이기 때문에 상당히 염세적이다. 내용은 이렇다.
1절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서름
2절
우는 꽃과 웃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도 다 같이니/ 생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로다
3절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혔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의 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도 다 업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