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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4:8-13 세심한 배려 2019.8.25
톰 행크스가 주연한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비행기가 갑자기 망망대해로 추락을 합니다. 주인공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외딴 섬에 홀로 머물게 됩니다. 이 섬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 섬에 주인공이 가장 먼저 발을 내딛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홀로 고립된 주인공에게 친구가 하나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비행기 화물칸에서 떨어져 나온 윌슨회사에서 만든 배구공 하나를 주워 말상대로 삼습니다. 우연치 않게 피 묻은 손으로 하얀 공을 만진 것이 사람의 얼굴 모양새가 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의 상단 부분에는 이름 모를 풀이 자라기 시작해서 꼭 사람 얼굴 모양과 흡사합니다.
주인공은 이 공을 부를 때에 <볼. 공>이라고 부르지 않고, <wilson, 공 회사 이름>라고 부르면서 공하고 대화를 합니다. 물론 주인공 혼자서 말하고 대답하고 생각하는 혼자만의 대화입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무인도에서 4년간 홀로 남은 고독감과 외로움을 이겨 나갑니다. 나중에 섬을 탈출하여 바다로 나오면서 태풍을 만나 이 공을 떠나보냅니다. 공하고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서 울부짖는 그 장면을 보면 애절하기 그지 없습니다.
공에다가 사람 이름을 붙여서 인격적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너가 없으면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중에 극적으로 구조를 받아서 주인공은 사람 사는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지만,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공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생활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윌슨>라고 부르면서 인격적으로 대하였던 공은 실제로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사랑하는 애인이었고, 또한 자신을 가다리고 있는 여러 명의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주인공이 끊임없이 ‘너’를 동경하는 인생 여정이 암시하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할 ‘진정한 당신, 영원한 당신’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성도는 하나님을 만나 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원초적 당신’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 주시고, 또한 내가 하나님을 만나 발견하는 순간, 하나님과 나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내가 온전히 연합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의 비워져 있는 공간을 다 채우게 됩니다. 그 결과 끝 모를 것 같던 공허함과 불안감은 단번에 영원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의 존재입니다. 관계가 어려우면 인생은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관계가 좋으면 인생은 행복하고 살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동떨어진 외톨이로 살아야 됨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 믿음을 지키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성도는 세상의 소금과 빛,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는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름이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수넴에 살고 있는 한 여인이 수넴을 방문한 엘리사 선지자를 위하여 정성을 다해 수고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수넴이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하였지만, 이곳에 달리 유숙할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야외에서 노숙을 할 수는 없는 난처한 상황 속에서 이 여인은 엘리사를 위하여 모든 것을 공궤합니다.
음식을 만들어 제공을 합니다. 또한 엘리사가 수넴에 머무는 동안 편히 쉬도록 작은 방을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준비하여 엘리사가 머무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배려를 합니다.
그 결과 본문 8절에서 이 여인을 이릏게 부르고 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한 명의 귀한 여인”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번역본 성경에서는 <귀부인. a well-to-do woman>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비록 그 여인의 이름은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이 여인을 두고 귀한 귀부인이라는 존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를 향한 정성과 사랑이 어린 배려의 행동과 모습 때문에 성경은 이 여인을 두고 귀한 행동을 하였던 귀부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를 정성으로 배려하고 감동시킨 결과, 여인은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들을 가지게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사람을 욕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대입니다. 타인을 섬기고 선행을 먼저 베푸는 배려심이 매우 부족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 수넴 여인처럼 내가 먼저 있는 곳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베풀 수 있는 덕민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본문을 통해서 수넴 여인이 보여 주었던 배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배려입니다
9절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이 여인의 고백을 통해서 유추해 보건대, 엘리사는 자주 수넴 지역을 방문하였거나 지나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열왕기하에 기록된 엘리사 선지자의 대부분의 활동이 갈멜의 남쪽 지역인 것을 감안하면, 수넴 지역 또한 엘리사의 주요한 활동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넴 여인은 자신의 집으로 모시게 된 엘리사를 두고 남편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안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단순하게 엘리사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그런 뜻을 뛰어 넘어, 엘리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와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존재하였던 당시에는 가짜 선지자, 거짓 선지자, 선지자 흉내를 내면서 사람들에게서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였던 짝퉁 선지자들이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가짜 선지자들은 자칭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였지만, 세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수넴 여인이 칭찬 받아 마땅한 것은,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선지자요, 하나님의 사람을 구별할 줄 알았던 영안이 있던 자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는 당시 세상에서 엘리사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넴 여인의 이런 영적 분별력이 이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더욱 빛나게 한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일 점심시간에 제가 몇몇 분들에게 책 하나를 보여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책 겉면에는 “성도를 이단으로부터 100% 지켜 주는 책”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두께도 보통 두꺼운 것이 아닙니다. 총 820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책이고, 책 가격도 무려 3만원 중반대입니다. 이 책 하나만 사용하면 설쳐 되는 이단들을 다 박살 낼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이단을 대처하는 책이 아니라 도리어 이단으로 인도하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만, 책 내용 중에 정말로 황당한 내용들이 많아서 그 제목의 일부분만이라도 잠시 소개할까 합니다.
저자(자칭 목사 주**)는 이 책을 통해서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분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책을 힘들게 저술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은 초신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적을 채우기 위하여 어설픈 신학과 성경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호도하고, 왜곡하며 진리를 거스르는 사악한 행동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수넴 여인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당당하고도 자연스럽게 고백을 합니다. 이 여인은 이전에 엘리사를 만난 적이 없었던 여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처음으로 엘리사를 만나고, 그리고 엘리사를 돕고 배려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올바른 믿음의 고백을 드러냅니다. 자신이 엘리사 선지자에 대하여 들었던 여러 가지 소문들과 말들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믿은 결과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올바른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이것 저것 다 잘 듣지만 믿음을 올곧게 세울 수 있는 말을 더욱 더 잘 듣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수넴 여인과 같은 하나님의 귀한 성도가 되어 칭찬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캐나다 앨버타 주에 큰 홍수가 갑자기 발생을 했습니다. 가옥이 물에 잠기고 시민들이 고립되는 가운데 그 지역 소방서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하여 출동을 합니다. 소방관 중에 션 위브(Shawn Wiebe)소방관이 출동을 하여 집안에 홀로 남아 있는 고령의 할머니 한분을 대피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고령인 데다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션 위브는 그 할머니를 직접 안고 피해 현장을 벗어납니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지만 할머니를 안고 나오는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 소방관의 품에 안긴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합니다. “이렇게 멋지고 든든한 남자의 품에 안긴 건 결혼식 이후 처음인 것 같아”할머니로부터 뜻밖의 고백을 전해 들은 위브는 피곤을 날리는 할머니의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다하였다는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할머니의 위트가 담겨 있는 이 말 한마디가 지치고 힘들었던 소방관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용기와 힘을 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가시보다 아픈 마음의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수넴여인은 자신이 존경해 마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어떤 말을 하였을까요? 엘리사 선지자 또한 정성을 다하여 자신을 배려하고 있는 수넴 여인에게 어떤 따뜻한 말로 격려를 하였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넴 여인은 자신이 믿고 있는 믿음에 따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고, 섬기며 배려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였습니다.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 또한, 하나님의 사람답게 말하고 행동하고 섬기는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말과 삶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숙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엘리사를 향한 수넴 여인의 세심한 배려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행동으로 실천하는 섬김의 배려입니다
10절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본 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수넴 여인의 열정과 헌신된 봉사가 돋보입니다. 그녀의 설득으로 남편은 다락에 덧붙여 지은 방 하나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 방은 엘리사를 위한 안락한 휴식처로 제공이 됩니다.
수넴 여인은 말로만 떠들어 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를 존경하고,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의 집에 모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주경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 여인이 살고 있는 집이 부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이 수넴 여인의 가정은 물질로 넉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 선지자를 위하여 방을 만들어 제공을 합니다. 방만 덩그러니 만들어 놓고 사람의 몸만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방안에 사용되는 모든 도구를 함께 제공을 합니다. 10절에서 수넴 여인은 남편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엘리사가 사용할 물품들에 대하여 언급을 합니다.
엘리사를 위한 전용 방을 만들어 놓고, 그 방안에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갖추어 놓습니다.
그냥 침상만 넣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이런 여러 가지 생활도구를 함께 준비하여 배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엘리사 선지자가 단순하게 휴식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휴식과 연구를 위한 쾌적하고 편안한 최적의 공간을 제공하였다는 말입니다.
정말로 수넴 여인이 보여주는 이 모습은 대단하고 세심한 배려의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세심한 배려가 눈에 선명하게 보입니다. 또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과 섬김의 배려가 충만하게 보입니다.
저는 수넴 여인의 이런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수넴 여인은 자신이 제공하였던 작은 방과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믿음과 사랑과 섬김이 있는 여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물질이나 물건보다 더 큰 세심한 배려가 모두를 감동케 합니다. 이런 세심한 배려와 정성과 사랑이 담긴 배려가 나에게서 드러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피곤한 엘리사가 수넴 여인이 만들어 놓은 방에 들어가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세상 그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편안함과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는 방이라고 평가를 내렸을 것입니다.
세심한 배려가 충만한 작은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피로가 회복되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방의 구모는 작은 방이지만, 실제로 이 방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방인 것입니다. 작은 방이지만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영적으로 큰 방입니다.
이처럼 세심한 배려와 행동으로 보여 주는 믿음은 사람을 기쁘게 만듭니다. 사람만 기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또한 감동시키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감동을 받은 그 결과 여인은 귀한 아들을 얻게 됩니다.
수넴 여인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거나 요구하면서 엘리사를 접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댓가도 요구하지 않는 깨끗한 배려를 보입니다. 본문 13절을 보세요.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수넴 여인의 사랑과 세심한 배려에 감동한 엘리사가 여인에게 질문을 합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요구할 것이 있으면 말하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들어서 응답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인은 자신은 백성 중에 거주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은 일반 백성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인 것을 고백한 말입니다. 자신이 엘리사를 대접한 것은 무슨 보상이나 보답을 받기 위한 수단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깨끗한 봉사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하고 깨끗한 봉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본이 되고 감동이 됩니다. 내가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하는 봉사가 물질욕이나 명예욕을 채우는 수단이나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깨끗하고 사심 없는 마음과 태도로 끝까지 섬기고 봉사하면, 하나님이 크게 인정하시고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른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아야 할까요?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우리는 배려가 없는 무례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무례한 세상이라고 해도, 여러분은 세심한 배려를 드러내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