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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야기 | <조선시대>- 제9대 성종, 13세에 왕위 등극, |
정희왕후와 한명회의 결탁 예종이 병약한 몸으로 왕위를 오래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서부터 정희왕후는 왕권 찬탈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세조의 유명을 받든 한명회를 비롯한 원상들과의 결탁이었다. 이 결탁 과정에서 그녀의 생각은 자신의 장자인 의경세자의 아들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한다는 것이었고, 한명회는 자을산군을 내세웠다. 논의 과정에서 정희 왕후는 장손인 월산군을 지목했을 것이지만 한명회의 반대에 부딪쳐 자을산군으로 낙착을 보았다. 정희왕후와 권신들은 이러한 선택이 종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예종이 죽던날 곧 바 로 자을산군을 왕위에 앉혔다.
| 구성군 유배 배경 성종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장성하고 재질이 뛰어나며 인망이 있는 종친은 왕권을 위협하는 인물로 구성군을 지목하게 되었고, 섭정을 하고 있던 정희왕후와 원로 대신들 역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몹시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대신, 대간들은 구성군을 집요하게 탄핵하기 시작했고, 1470년( 성종1년) 마침내 정희왕후는 그에게 유배령을 내리게 되었다. 그 10년 후 구성군은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 이 사건은 성종초의 왕권이 불안정하였던 시기에 원로 대신들의 입김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이 후 종친의 관료 등 용은법으로 금지되었으며 '경국대전' 완성 이후 이법은 정착되었다. 말하자면 구성군 사건은 신권 견제를 위한 왕의 종친 중용 정책의 종말을 고하는 동시에 신권이 정치를 주도하게되는 계기가 된 셈이었다.
| 성종의 성장 과정, 13세의 성종 등극, 성종은 1457년 세조의 큰 아들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와 세자빈 한확의 딸 한씨(소혜왕후로 추존)의 둘 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혈이다. 태어난지 두 달도 못되어 아버지 의경세자가 죽자 세조의 손에 의해 궁중에서 키워졌는데, 천품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었으며 사예와 서화에도 능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어느 뇌우가 몰아치던 날 옆에 있던 환관이 벼락을 맞아 죽어 주위 사람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였는데도 그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조가 이를 보고 그가 태조를 닮았다고 하면서 기상과 학식이 뛰어날 것임을 예견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성종은 다섯살이 되던 1461년에 세조에 의해 자산군에 봉해졌고 1468년 자을산군으로 개봉되었으며, 열한살이 되던 1467년 한명회의 딸과 가례를 올렸다. 그리고 1469년 11월 숙부인 예종이 죽자 열세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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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쏠쏠한 재미 좋은글 사랑합시다.
전주향교/鶴田/옮김/한문희총대장 감사합니다.
본래의 마음,자유인 한문희총대장,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 백두대간종주대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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