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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무안 23코스 제2부
조금나루-낙지공원-장재선착장-외덕마을-하수장마을-봉오재마을
20221026
1.탄도만이 그리는 환상적 풍경
지난 가을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뒤늦게 겨울날 기록하니 그 추억이 더 아름다운 환상을 자아낸다. 마치 영화 '러브 레터'의 장면처럼 가슴에 사무친다. 오겡끼 데스까? 사라진 그날의 추억을 이 겨울날 따스하게 불러내 잠깐이라도 아득함에 젖어든다. 서해랑길 23코스의 나머지 추억을 포장하여 나의 님에게로 보낸다. 오겡끼 데스까?
여울섬 '탄도' 출입구인 조금나루 해송숲을 한 바퀴 돌면서 탄도만과 주변의 풍경에 도취하였다. 가까이서 손짓하는 여울섬 탄도로 저벅저벅 걸어가고 싶다. 배가 아니라 물 위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풍력발전기가 끊임없이 안부를 보내는 내리串에는 탄도만을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데도 먼 이국땅처럼 걸어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데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여울섬에는 그냥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바다는 풀밭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아, 미끄러지듯 건너고, 그 사이 모래밭을 저벅저벅 걸어가면 여울섬에 금방 다다를 것 같다.
여울섬 탄도를 그리며 노을길을 걷는다. 노을노을, 노을 같은 길에 해당화 묘목이 노을처럼 길게 조성되어 있다. 물탱크차를 몰고 온 기사님이 노을거리는 해당화 묘목에 물을 선물한다. 생명의 물을 머금은 해당화가 하늘하늘 웃음 짓는 모습이다. 해당화 묘목이 자라 내년에는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해당화 꽃이 노을빛에 물들면 어떻게 될까? 그리움에 젖어서 하염없는 기다림의 자세일까? 불타는 정열에 임 찾아 떠나는 모습일까?
무안 낙지공원의 낙지조형물 몸 안으로 들어갔다. 지상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탄도만 풍경을 조망하지만 유리창이 더럽혀져 풍경이 명료하지 못하다. 낙지 몸 안에 들어가 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낙지공원 광장에서 드넓은 탄도만을 조망하며 사무친다. 저기, 저기, 그곳, 그곳, 그래, 맞을거야. 무안군의 탄도를 중심으로 신안군의 고이도, 선도, 지도, 이 세 개의 섬이 탄도만 외곽을 감싸고 있다. 탄도만을 빛내는 섬들이다. 남파랑길 여자도의 여자만, 득량도의 득량만이 탄도만의 아름다움과 견줄 수 있을 것이지만, 여자도와 득량도를 감싸주는 섬들이 여자만과 득량도에는 없어 탄도만 풍경이 우위를 점하는 것 같다. 내게는 지난 가을날의 탄도만 풍경에 압도된 추억에 사로잡혀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탄도만 풍경은 망운면 송현리 해안과 목서리 해안, 현경면 송정리 해안과 용정리 해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그 위치에 따라 각각 독특한 절정을 뿜어내는 독특함이 있다. 그 풍경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대섬(竹島)과 요강섬, 엄섬(漁隱島)이다. 어머니가 두 자식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으로 대섬 좌우로 요강섬과 엄섬이 있다. 그런데 탄도만 어느 위치에서 이 섬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풍경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세 섬이 모두 다 보이는 곳, 두 섬만 보이는 곳, 한 섬만 보이는 곳이 있다. 탄도만 풍경은 중심이 되는 탄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 세 섬이 화룡정점이 되어 최절정의 풍경을 완성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이 현경면 송정리-용정리 해안이며 그곳에서 중심의 탄도는 저 멀리, 그를 에워싼 신안군의 고이도와 선도, 지도는 더 멀리서 원을 그리듯 아득한 그리움을 실어 보낸다. 아득하면 되리라. 멀리서, 가까이서 모두 아득하다. 아득하면 되리라.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0.4km 중 10.56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8분 중 3시간 16분
오른쪽에 조금나루 선착장, 그 뒤는 탄도, 중앙 맨뒤는 신안군 지도, 중앙 앞은 신안군 선도, 맨 왼쪽은 무안군 운남면 내리
조금나루 선착장 뒤에 탄도, 그 뒤는 무안군 해제면 창매리 중매산, 오른쪽 뒤는 무안군 현경면 오류리 홀통, 맨 왼쪽 뒤는 신안군 지도일 것이라 가늠한다.
조금나루는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작은 조금에도 나룻배를 탈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해안은 길게 뻗은 백사장과 소나무숲이 펼쳐져 있어 명사십리라고 불린다. 조선시대에 이곳은 세곡을 징수하여 영광 목관에 운송하던 주요 창구였다. 조금이 되면 칠산바다 고기잡이 배들이 조금나루로 들어와 쉬어가는 곳이었으며, 선도, 고이도, 매화도 등 인근 섬 주민들이 바다를 건너 함평장과 망운장을 가기 위해 모이는 곳이었다.
탄도 들어가는 배
탄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뱃길이 이곳에 있다. 배를 타고 갯골을 건너가다 보면 쉬어가는 물새들과 갯벌 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조금나루 출발 : 오전 8시, 탄도 출발 : 오후 3시, 문의 전화 : 010-3898-2262
송현항 어촌뉴딜사업 공통사업 시설공사 중으로, 조금나루 선양장 공사와 선착장을 연장하여 높이고 넓히는 공사 중이다. 왼쪽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은 무안군 운남면 내리, 중앙 뒤는 신안군 선도이다.
"무안군 망운면 탄도는 송현리 조금나루에서 직선거리로 3㎞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다. 면적은 16만여평, 해안선 길이는 4.5㎞. 그리고 남과 북의 길이는 1㎞ 정도이며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행정구역명으로는 망운면 탄도리 탄도 마을이다.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배가 물때(아침 저녁으로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는 때)에 따라 하루에 두 차례씩 조금나루와 연결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10분에서 20여분이 걸린다.
이 마을은 주산인 왕령산(안개산으로 부르기도 한다)을 포함하여 돌개산(石犬), 용머리산, 어바우산, 덤벅산, 작은모시리산 등의 크고 작은 산이 있다. 준나리 어덕과 대포리에 펼쳐져 있는 백사장은 천연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으며 준나리 어덕에서 야광주산으로 이어지는 비단길은 노을빛에 보면 금빛 모래로 이루어진 길이다. 특히 왕령산은 산이 별로 없는 망운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또한 왕령산 뒤쪽에서 나오는 생수는 칠산바다로 나가는 어선들에게는 반드시 챙겨야 할 식수였다. 왜냐하면 이 물은 한 달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왕령산 뒤쪽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밑에는 당산제를 지낼 때 사용했던 당산샘이 있기도 했다. 제를 지내기 전 제관들은 이 샘에서 목욕재계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비린 것을 멀리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어느날 주민 중 한 사람이 당산나무를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무를 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뒤 그 사람에게는 후손이 생기지 않아 斷孫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 섬에는 야광주라는 작은 섬이 딸려 있다. 예전에 이곳에 불을 켜서 주변을 왕래하는 배의 항로를 밝혀준 적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여의주라 부르는데 그것은 용머리가 있기 때문이다. 섬에서 보면 칠산바다 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맥을 ‘용머리’라 부르는데 그 앞에는 둠벙(용샘)이 있고 그 너머에 이 작은 섬이 있어서 마치 용이 여의주를 갖고 놀고 있는 듯한 지세(地勢)를 보이고 있다." - 무안문화원
맨 왼쪽은 해제면 창매리 중매산(매령산), 중앙 왼쪽에 삐죽 튀어나온 곳이 현경면 오류리 홀통, 중앙 앞쪽의 산은 검무산, 그 오른쪽 낮은 산이 현경면 용정리 작은봉대산, 그 오른쪽이 봉대산이며, 그 오른쪽 아래가 봉오재마을로 23코스 종점이다.
"탄도라는 지명의 유래를 보면 원래 나무가 무성하여 숯을 많이 산출하므로 '탄도(炭島)'라 하였다고 이야기를 하나 지명의 한자 표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섬의 크기로 봤을 때도 숯을 만들 만큼의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문헌상으로 炭島라고 표기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식으로 표기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해 본다. 지형상으로 봤을 때 탄도를 사이에 두고 서해안의 물줄기가 운남면과 망운면으로 갈리어 나가는 여울목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원래 지명이 ‘여울도’였던 것이다. 따라서 ‘숯섬’을 뜻하는 ‘炭島’보다는 ‘여울목’을 뜻하는 ‘탄도(灘島)’가 적합한 표기라 여겨진다. 마을유래지에도 ‘여울도’라 부르다가 ‘숯’이 많이 나는 섬이라고 하여 ‘탄도(炭島)’라 칭했다고 했으나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마을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기록된 사람은 김해 김씨 김약휘(1623 - ?.자-문중)다. 병자호란을 피하여 함평군 나산면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분수를 지켜 자연과 벗하며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다고 하나 기록은 없다. 현재 김해 김씨 외에 강씨, 박씨, 이씨, 최씨 등 20여 가구 50여 명이 살고 있다." - 무안문화원
왼쪽 맨 끝은 무안군 운남면 내리, 그 오른쪽은 신안군 선도, 중앙 맨 뒤는 신안군 지도, 오른쪽은 무안군 망운면 탄도이다.
맨 오른쪽이 현경면 오류리 검무산과 홀통, 그 왼쪽이 해제반도로 이어지는 현경면 마산리와 가입리이며, 그 왼쪽으로 탄도만 해안의 해제면 유월리, 영학리, 천장리, 창매리이며, 중앙 왼쪽의 산이 창매리의 매령산으로 위치 확인의 기준이 되어 준다.
오른쪽의 섬은 망운면 죽도(대섬)와 요강도(요강섬), 중앙 앞쪽의 산이 현경면 용정리 봉대산으로 그 아래가 23코스 종점이다. 그 왼쪽으로 현경면 해안이 오른쪽 해제면 유월리 해안으로 이어지며, 탄도만의 무안군 해안선이 동그랗게 멋진 풍경을 그린다.
조금나루를 한 바퀴 돌아오는데 약26분이 걸렸다.
송현마을 입구로 되돌아와서 망운면 송현리 해안을 따라간다.
현경면 송정리 해안에서 망운면 목서리를 거쳐 현경면과 해제면을 빙 돌아가는 탄도만 해안이 드넓다. 중앙에 솟은 산이 현경면 오류리 검무산이며 그 왼쪽에 홀통, 그 오른쪽에 작은봉대산과 봉대산이 보이며 봉대산 오른쪽이 23코스 종점이다.
왼쪽 바다갯벌은 송현리 어장, 직진하면 망운면 송현리 낙지공원과 목서리 내덕·외덕마을, 오른쪽은 송현마을 방향이다.
바다로 나가는 시멘트길 끝 왼쪽 뒤에 낙지산란장이 보인다. 낙지잡이를 끝낸 어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다.탄도만 오른쪽 끝에 현경면 오류리 홀통, 중앙에 솟은 산이 해제면 창매리 매령산(중매산), 왼쪽 뒤의 산이 신안군 지도의 선황산이라 가늠한다.
맨 왼쪽에 망운면 송현리 조금나루, 그 뒤 풍력발전기가 있는 운남면 내리, 그 뒤가 신안군 고이도, 그 오른쪽이 신안군 선도, 맨 오른쪽은 무안군 망운면 탄도이다.
낙지잡이를 끝내고 돌아온 어부의 낙지바구니에 낙지들이 뭉쳐 있다. 전국에서 가장 명품으로 알려진 탄도만 갯벌낙지이다.
오른쪽은 송현마을 어장, 왼쪽은 송현마을 가는 길, 맨 뒤쪽에 조금나루 해송숲이 보인다.
탄도만 송현리 해안길이 이어질 날이 언제일까? 서해랑길은 해안길로 이어지지 않고 노을길로 이어진다.
노을길 언덕에서 뒤돌아보았다. 조금나루 해송숲과 운남면 내리串, 그 왼쪽 뒤에 신안군 고이도가 가늠된다.
망운면 송현리 송현(松峴)마을은 송림이 많은 고개 밑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솔고개’ 또는 ‘솔재’라고 부르는 이곳은 밭을 경작하기 위하여 소나무를 많이 없애버려 민둥 고개가 되어 버렸다.
노을길에서 솔고개 끝 팽나무숲이 눈에 들어온다.
양파밭에서는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면 양파 모종에 물을 뿌리고 있다.
팽나무가 맞는지 분명하지 않다. 여름날 시원한 나무그늘이 그려진다.
무안군에서는 노을길에 해당화 가로수를 조성하였다. 물 탱크차 운전기사님이 해당화 묘목에 물을 뿌리는 작업을 마쳤다.
노을길에 해당화 가로수가 끝까지 조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는 송현리 송현마을, 직진하면 목서리 외·내덕마을, 왼쪽으로는 낙지공원과 노을길야영장이다.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 낙지공원에 낙지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 탄도만을 조망할 수 있다.
어부는 모랫벌에서 무엇을 잡고 있을까? 탄도만 해안의 해송숲과 모래밭이 길게 이어지고, 탄도만은 망운면 송현리-목서리로 이어져 현경면 송정리와 용정리로 빙 돌아간다. 맨 왼쪽 용정리 봉대산, 그 아래 봉오재마을이 서해랑길 23코스 종점이다.
탄도만 망운면 송현리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해안이 이어지며 모래밭과 해송숲이 펼쳐져 있다. 왼쪽 끝에 툭 튀어나온 운남면 내리곶(串), 그 뒤쪽에 신안군 고이도, 그 오른쪽으로 신안군 선도, 오른쪽에 무안군 망운면 탄도가 가늠된다.
중앙 왼쪽 뒤는 신안군 고이도, 오른쪽 뒤는 신안군 지도 선황산, 중앙은 무안군 망운면 탄도, 그 오른쪽은 야광주도일 것이다.
왼쪽에 무안군 망운면 탄도, 그 오른쪽 뒤에 신안군 지도의 선황산, 중앙에 해제면 양월리 대월산, 그 오른쪽에 해제면 창매리 매령산. 그 오른쪽 뒤가 봉대산일까? 맨 오른쪽은 해제면 천장리 해안일 것이다.
맨 왼쪽은 해제면 양월리 대월산, 그 오른쪽은 창매리의 매령산, 그 오른쪽 뒤가 봉대산인 듯. 오른쪽은 검무산과 그 왼쪽에 홀통이 삐죽 나와 있다. 탄도만의 무안군 해제반도 해안선이 북쪽을 가로막고 있다. 그 뒤쪽은 함해만(함평만)이다.
무슨 문양일까? 작품 설명이 없다. 군상(群像)이라고 할까? 사람들, 물고기와 낙지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조형물 왼쪽 뒤는 현경면 오류리 검무산과 그 왼쪽에 홀통, 조형물 뒤가 용정리의 봉대산, 오른쪽의 섬은 목서리의 대섬과 요강섬이다.
맨 왼쪽은 현경면 오류리의 홀통과 검무산, 그 오른쪽에 현경면 용정리의 작은봉대산과 봉대산, 오른쪽 섬은 목서리의 대섬과 요강섬, 맨 오른쪽에 목서리 장재선착장이 가늠된다.
망운면 송현리 해안의 모래밭과 해송숲이 이어지고 그 끝에 망운면 목서리 장재선착장, 맨 왼쪽의 섬은 대섬과 요강섬이다. 서해랑길은 해송숲이 펼쳐진 모래밭 해안으로 이어지지 않고 해송숲 동쪽의 노을길로 이어진다.
낙지공원에서 약 40분 동안 조망을 즐긴 뒤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노을길 야영장을 살피며 낙지공원과 노을길 야영장을 빠져 나가 노을길로 나간다.
망운면 송현리451-47지역으로, 시점 12.3km, 종점 7.2km 지점이다.
해당화 묘목이 심어져 있는 노을길을 따라간다.
노을길을 걸으며 탄도만을 바라보니, 해안 언덕에서 억새풀이 맞은편 탄도만 해안을 향해 하늘하늘 손짓하고 있다.
중앙 왼쪽 뒤에 팽나무숲이 있는 솔고개에서 내려와 오른쪽 해안의 낙지공원에서 여유를 부린 뒤 출발했다.
망운면 송현리에서 목서리로 내려간다. 바다에 대섬이 떠있고, 그 왼쪽 뒤에 봉대산과 작은봉대산이 보인다. 봉대산 오른쪽 아래에 있는 봉오재마을 입구가 23코스 종점이다. 노을길 앞 해안에 장재선착장이 보인다.
맨 왼쪽에 탄도, 그 오른쪽에 신안군 지도의 선황산, 맨 오른쪽에 봉대산, 그 왼쪽에 해제면 창매리 매령산이 가늠된다. 사진 중앙의 뾰족한 산봉은 해제면 양월리 대월산이며 그 왼쪽 무안군 해제면 양월리 명양마을에서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로 넘어간다.
망운면 목서리로 넘어왔다. 왼쪽 뒤에 현경면 용정리 작은봉대산과 봉대산, 바다에 대섬, 오른쪽 해안에 장재선착장이 있다. 망운면 목서리에 대한 지명 유래를 무안문화원에서 옮겨온다.
"망운면은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었던 지역이 아니라 목장을 관할하던 관청인 감목관이 있었던 곳이다. 목관 터는 현재 망운초등학교 체육관이 있는 자리에 있었으며 당시 망운에서 관할했던 목장지는 세 군데로 지금은 모두 신안군에 속해 있는데 자은목장, 장산목장, 압해목장이다. 현재 망운면의 소재지는 예전에 목관 또는 목내라고 부르는 곳을 4등분하여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목동, 목남, 목서, 목북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이 목내를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삥 둘러싸고 있는데 이를 목성이라 부르기도 하며 대체적으로 나무의 수령은 300여 년이 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추정컨대 목관이 설치되면서 심은 나무들로 여겨진다. 나무로 둘러싸인 소재지는 오목한 분지의 형태로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영광군에 속해 있었으며 인조 때 감목관 설치로 영광군 목장면으로 불리게도 되었다.
목서리는 목관의 서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목서, 내덕, 외덕, 장재, 목북, 대곡 등 6개의 자연 마을을 포함하고 있다. 里의 중앙으로는 809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밖으로는 망운-현경 간 외곽도로가 지나고 있다. 처음엔 영광군 망운면에 속했다가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목북리, 덕림리, 내덕리, 애당리, 대곡리, 장재동, 용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목서리에는 망운초등학교, 망운천주교회, 망운파출소 등의 공공기관이 있다." - 무안문화원
맞은편 왼쪽에 현경면 오류리의 홀통이 길게 바다로 뻗어나와 있다. 그 오른쪽에 오류리의 검무산, 그 오른쪽에 용정리의 작은봉대산이 보인다. 바다의 작은 섬은 망운면 목서리의 요강섬, 그 앞의 섬은 대섬(죽도)이다.
왼쪽에 요강섬과 대섬(죽도), 맞은편 해안은 현경면 송정리-용정리 해안이며, 바로 앞에 망운면 목서리 장재선착장이 있다.
오른쪽 위로 국도77호선 공항로가 달리고 있다. 공항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올라가면 목서리 장재마을, 직진하거나 노을길을 따라가거나 모두 외·내서마을로 이어진다. 왼쪽 장재선착장 앞에 국헌횟집이 있다.
"장재는 목서6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마을이 형성된 역사가 짧다. 원래는 옆 마을인 대곡과 한 마을이었으나 1980년대에 분리(分里)가 되면서 대곡은 목서3리, 장재는 목서6리가 되었다. 조선시대 문헌인 호구총수에는 목서촌만 나오나 1912년과 1917년의 자료에는 망운면 장재동으로 나온다. 지명의 유래는 ‘마을유래지’에 의하면 ‘망운면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있어 ‘長子’로 불려오다가 후일 현재의 ‘壯才’로 부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 장재로 불리게 되었는지 오히려 궁금해 했다. 마을회관 앞에는 부자터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현재는 빈자리로 남아있는데 왜 집을 짓지 않느냐는 물음에 주민들은 예부터 그 자리에 집을 지으면 孫이 없다 해서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 무안문화원
왼쪽에 국헌횟집, 앞쪽에 장재선착장이 있다.
망운면 목서리 885-5 지역으로, 시점 14.3km, 종점 5.2km 지점이다. 외덕마을은 1.8km 거리에 있다.
선착장 뒤쪽에 낙지산란장이 조성되어 있다. 맞은편에 길게 바다로 뻗은 홀통과 검무산, 그 오른쪽 뒤에 작은봉대산이 보인다. 앞에는 요강섬과 대섬(죽도)이 있다.
장재방조제 제방길을 따라가다가 노을길로 나간다. 맞은편 해안은 현경면 송정리-용정리 해안이다.
요강섬과 대섬, 낙지산란장이 멋지다. 요강섬 뒤에 현경면 오류리 검무산과 그 왼쪽에 홀통이 길게 바다로 돌출해 있다.
"요강도(오강섬이라고도 한다)는 섬의 모양이 요강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대섬은 원래는 자라섬이라고도 했는데 섬에 시누대가 많아서 대섬이라고 한다. 오강섬은 마을 어촌계에서 길을 내놔 외지에서 가족단위 소풍객들이 많이 찾는다. 대섬은 풍수적으로 뛰어난 지형을 갖고 있어 일제감정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서 수난을 많이 당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섬의 자라목 부분에 쇠말뚝을 세 개나 박았고, 외덕마을의 일본군 부대에서 대포를 쏴 이 자라목을 자르려고까지 했다. 그 자라목 부분에 온통 바위뿐인데 그 위에 관리가 잘 된 무덤이 몇 기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대섬은 약초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지네가 많다. 예전에는 사람도 살았던 적이 있어 옹달샘이 남아 있다. 요즘에는 맷돼지 등 큰 동물이 살고 있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오강섬은 마을 소유인데 반해 대섬은 개인 소유다." - 무안문화원
왼쪽 위에 국도77호선 공항로, 오른쪽 뒤에 탄도, 그 뒤에 신안군 선도가 가늠된다.
바다에 요강섬과 대섬, 맨 오른쪽에 봉대산과 봉오재마을, 대섬 왼쪽 뒤에 검무산과 홀통, 맨 왼쪽에 매령산이 가늠된다.
무슨 일을 하는가 살펴 보았더니, 노을길에 조성한 해당화 묘목이 시들거나 쓰러져 있는 것을 가꾸고 바로 세워 주었다.
볼수록 요강섬과 대섬이 사랑스럽다. 두 섬 사이로 현경면 마산리에서 가입리로 이어지는 해안과 그 뒤에 봉대산이 보인다.
노을길에 해당화 묘목 조성은 무안군의 핵심사업인 듯. 탄도만 남쪽의 섬들이 이제 모두 확인된다.
물이 들고 있다. 어부는 매어둔 배의 끈을 풀어 바다로 나가려고 한다. 앞은 내덕선착장인 듯. 서해랑길 23코스 종점인 용정리 봉오재마을이 맨 왼쪽 끝에 보인다. 맞은편은 현경면 송정리 해안이다.
물이 차오르고 있다. 어부는 바다로 나가기 위해 배를 타러 간다. 대섬 뒤에 작은봉대산과 봉대산이 있다. 현경면 송정리 해안이 빙 돌아가며 용정리 해안으로 이어져 무지개 형상을 이룬다.
두 섬 사이로 맞은편에 신안군 지도읍 선황산이 가늠된다.
바다에는 요강섬과 대섬(竹島) 그리고 엄섬이 있다. 요강섬은 조그마한 규모인데 섬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졌으며 마치 요강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섬은 제법 규모가 큰 섬인데 지금도 대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한때는 주민들이 거주하기도 했다. 해안가에 아주 크고 넓었던 바위인 유암포(油岩浦)가 있었다. 기름바위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 바위에 고여 있던 물이 바위에 있는 철성분과 만나 흘러내리면서 마치 기름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유암포는 크고 넓었던 이유로 주변학교의 아이들이 소풍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한자로 遊岩浦로 쓰기도 했다. 이 해안에는 일제강점기 때 수송부대를 포함하여 일본군 1개 대대가 주둔하였었다.
망운면 목서리에서 현경면 송정리로 넘어가며 바라본, 오른쪽 언덕에 자리잡은 마을은 목서리 외덕마을이라 가늠하였다.
"외덕은 목서3리에 속한 마을로 내덕마을과 같이 붙어 있다. 원래 내덕과 외덕은 한 마을로 德林이라 불렀다. 덕림이란 지명은 마을의 주산인 德雲山에서 비롯되었다. 마을이 형성될 때 입향조가 덕운산 아래에서 터를 닦았기 때문이다. 덕운산은 세항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김해 김씨 조상묘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마을 주변에는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지만 예전에는 훨씬 많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해서 마을 이름도 덕운산의 德과 소나무 숲의 林이 만나서 덕림이 되었다.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는 이곳에 고분들이 많이 있었으며 특히 석곽묘가 마을 앞뒤로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유씨와 남씨가 먼저 살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 성씨들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아서 공식적으로 이 마을의 입향조는 홍주 송씨 송필하다.
宋弼夏(1691-1756. 자-여보, 호-德雲庵)는 나주시 금천면 광암리에서 살았으나 뜻을 펴기엔 광암리가 여의치 않음을 알았다. 해서 좀 더 좋은 환경을 찾아다니다 1700년대 초기에 소나무로 둘러싸인 소쿠리 형국의 아담한 이곳을 발견하여 가솔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입향조는 여기에 터를 잡은 이후 집안이 안정되자 곧바로 조그만 초가를 지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을 운영하였다. 이런 연유로 처음엔 이 마을을 서당골이라 하였다. 이어서 1700년대 중반에는 나주 광암리에서 함께 살던 청주 한씨 韓宗吉(1715-1754. 자-명보, 호-죽계)도 이 마을에 들어왔다. 이어 가솔들이 불어나자 가족의 일부가 1800년대 말에 마을의 아래쪽인 현재의 내덕으로 분가를 하였다.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덕림의 안쪽이라 하여 내덕이라 하였다. 1912년 일본인들이 만든 마을 자료를 보면 덕림과 내덕이 표기되어 있지만 외덕은 없다. 왜냐하면 1936년에 가서야 덕림을 외덕으로 고쳐 현재처럼 내덕과 외덕으로 나누어 불렀기 때문이다." - 무안문화원
망운면 목서리에서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 현경면 송정리로 넘어간다.
해안의 노을길을 따라왔다. 오른쪽에 대섬과 맨 오른쪽 뒤에 해제면 창매리 매령산이 확인된다.
현경면 송정리 해안 노을길을 따라간다. 왼쪽 뒤에 용정리 봉대산과 그 아래에 봉오재마을, 앞쪽은 송정리 하수장마을이다.
"송정리(松亭里)는 현경면소재지에서 해제면 방향으로 3㎞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로 서해바다가 남으로는 망운면 목서리와 접해 있다. 본래 목포부의 망운면 지역으로서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 의하면 ‘소나무 정자’가 있었으므로 ‘松亭’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다경면 上水長洞으로 나온다. 이후 현경면으로 통합되면서 1970년대 초에 24번 국도가 지나면서 길을 경계로 상수장 마을과 하수장 마을로 나뉘어진다." - 무안문화원
어은도(漁隱島)가 줄어서 엄섬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엄섬 뒤에 검무산과 홀통, 오른쪽에 작은봉대산과 봉대산이 있다.
현경면 송정리 하수장마을이 현해로에서 탄도만 바다를 향해 있다.
"하수장(下水長)은 송정1리에 속하는 마을로 처음에는 水長이라 불렸다. 그러다 1970년대 24번 국도가 마을을 가르며 포장 되면서 상수장 하수장으로 分里가 되었다. 지형적으로 국도변 아래에 있다 해서 하수장이라 하고 상수장은 국도변 위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장이란 지명의 유래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단지 물길이 좋아서 붙여진 이름 같다’고 말한다.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서도 ‘마을 앞 우물의 수질이 좋고 물의 양이 풍부하여 수장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지로 상수장과 하수장에는 수량이 많고 물맛이 좋기로 널리 알려진 샘들이 있다.
마을에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격납고가 있다. 원래는 두 개가 있었으나 하나는 밭 주인이 깨버려 현재는 하나만 남아있다. 또한 망운초등학교 뒤와 해동 마을 뒤에도 격납고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 마을의 격납고만 남아있다. 이처럼 이 마을 주변에 4개의 격납고가 있었던 것은 일제강점기 때 가당골에서 현경면소재지가 있는 곳까지 임시 비행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격납고가 있었던 곳에 1990년대 중반까지 격납고 감시초소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마을 주변에는 뽕나무 밭이 많이 있었다. 해서 마을에는 제법 규모가 큰 잠실이 있었으며 잠실에는 일본부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 무안문화원
오른쪽 뒤 외덕마을 앞을 거쳐 해안의 노을길을 따라왔다. 앞에 보이는 시설은 바리류 우량종자 종묘 양식장이라고 한다. 그 앞에 수산생물검역시행장이 자리하고 있다.
바리류 우량종자 종묘 양식장, 그 앞의 수산생물검역시행장, 왼쪽의 전통한옥 '마음의고향' 펜션, 오른쪽은 송정마을 어장이다.
송정마을 어장 오른쪽 뒤에 엄섬(어은도), 그 오른쪽에 대섬, 그 왼쪽 뒤에 요강섬이 보인다. 멀리 운남면 내리와 그 뒤 신안군 고이도가 분명히 확인된다.
엄섬, 요강섬, 대섬은 어머이와 두 아이처럼 보인다. 요강섬 왼쪽에 운남면 내리串과 그 뒤에 신안군 고이도, 대섬 뒤쪽으로 탄도가 살짝 보이고 그 뒤로 선도가 있으며 그 오른쪽 뚫린 뒤로 신안군 병풍도가 있을 것이다. 맨 오른쪽은 신안군 지도의 선황산이다.
오른쪽 뒤 망운면 목서리 해안, 중앙 뒤 외덕마을, 현경면 송정리 해안, 바다의 엄섬(어은도)이 정다운 그림이다.
왼쪽에 탄도, 그 뒤에 선도, 그 뒤에 병풍도가 가늠된다. 중앙에 신안군 지도의 선황산, 오른쪽에 검무산과 홀통이 확인된다.
현경면 송정리에서 용정리로 넘어왔다. 왼쪽에 오류리의 검무산과 그 뒤의 홀통, 중앙에 용정리의 작은봉대산과 오른쪽의 봉대산, 봉대산 아래로 향한다. 바다에 백로들이 한가로이 가을날을 즐기고 있다.
현경면 용정리 봉오재마을 앞 탄도만 해안이 앞으로 쑥 나왔다가 뒤쪽 오류리 검무산 아래 해안으로 이어진다.
봉대산과 그 아래 봉오재마을이 오른쪽에 보인다. 목적지가 가깝다. 왼쪽의 봉긋한 산은 작은봉대산이다.
노을길에서 현해로로 나가 봉오재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무안농협서부지점 앞을 거쳐 앞의 봉오재삼거리로 향한다. 그 직전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현해로 도로표지판 아래에 서해랑길 무안 23·24코스 안내도와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의 이름이 혼동스럽다. 도로표지판에는 봉오제삼거리, 현해로의 마을표지판에는 봉오재마을이라고 적혀 있다. 봉오제는 저수지, 봉오재는 고개인데 어느 하나로 통일했으면 좋을 듯싶다.
이곳은 무안군 현경면 용정리 516-1 지번이다.
거리 19.5km, 소요시간 6시간 30분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걸은 거리는 20.4km, 전체 6시간 8분이 소요되었다.
죽파정과 죽산 안씨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현경면 용정리 봉대마을이라고도 불리는 봉오재마을 입구이다.
"봉대는 용정5리에 속한 마을로 조선시대 봉화를 올렸던 봉대산(옹산, 봉오산이라고도 함)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대 밑 또는 봉오재마을이라고도 한다. 봉오재는 마을에서 오류리 사교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하는 이름인데 왜 봉대재라 하지 않고 봉오재라 하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아는 주민이 없었다. 단지 추측키로 봉대산 아래의 다섯 마을이 있어서 봉오재라 하지 않았는가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산에 벌(蜂) 집 형태의 명당이 있어 蜂宇山이라고도 불렀는데 봉우산이 변하여 봉오산으로 그리고 봉오재라 변했다 하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 마을은 거문고 형국으로 마을 길이가 3km가량에 이른다. 마을이 현해로 옆에 위치하다 보니 오랫동안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입향조가 뚜렷하지가 않다. 또한 조선시대 옹산원(院-고려와 조선시대 주요 도로 상에 여행자를 위해 설치한 여관)이 있었다 할 정도로 번화가였기 때문에 주민들의 이동이 잦았다. 해서 처음엔 장씨, 유씨, 정씨 등이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살지 않고 파평 윤씨, 죽산 안씨, 밀양 박씨 등이 살고 있는데 이중 어느 성씨가 먼저 이 마을에 정착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마을의 입향조나 유래를 알 수 없는 것은 이 마을이 갖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그런 것으로 여겨진다." - 무안문화원
현경면 용정리 죽산 안씨 공원에 죽산 안씨 가문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현경면 수양리 출신인 안진규 선생이 생전에 녹색혁명과 후학들의 교육 정진을 위해 경운장학회 설립 등 지역발전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데 대해 선생의 뜻을 기리고, 고향 분들의 귀감으로 삼고자 2011년 10월 28일 안진규선생공덕비가 제막되었다.
안진규 선생은 무안-해제간 국도 24호선 24Km에 벚꽃나무와 은행나무 등 가로수 7만주를 식재했으며, 1996년 2억5천만원의 장학금을 조성해 현경고등학교에 경운장학회를 설립했다. 또한 각급 기관과 학교는 물론 무안 남산 등에 조경용 고급수종 7천주를 기증, 녹색운동에 앞장서 왔다. 죽파 선생은 현경면노인회 분회장, 무안향교 전교를 지냈으며, 문교부장관 감사장, 내무부장관 감사장(2회), 전남도지사 표창, 자랑스러운 광주 시민상, 무안군 제1회 군민의 상 등을 수상했다. - 무안신문 참조
바다에 대섬이 떠있고, 맨 오른쪽 운남면 내리串-연리-하묘리-망운면 송현리-목서리로 이어지는 탄도만 해안이 아득하다.
맨 오른쪽 망운면 목서리에서 그 왼쪽 현경면 송정리-용정리로 탄도만 해안이 이어지고 언덕에는 목서리 외덕마을, 송정리 하수장마을, 그리고 맞은편 중앙 뒤쪽에 송정리 상수장마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