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청주의 베옷은 일곱 근이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물어올 것도 아니요, 내가 대답할 것도 아니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는 차수(叉手)하거나 합장하지 말라. 나도 선상이 불자로 대답하지 않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생각과 기억으로는 미칠 수 없는 곳은 무엇입니까?”
“이쪽으로 오너라.”
“이쪽으로 오는 것은 미칠 수 있는 곳입니다. 무엇이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까?”
스님께서는 손을 일으켜 내세우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것을 뭐라고 부르느냐!”
“손이라고 부릅니다만 스님께서는 뭐라고 부르십니까?”
“백 가지 이름으로 나는 말할 수 있지.”
“스님의 백 가지 이름에는 미칠 수 없겠으니, 우선 뭐라고 부릅니까?”
“그게 바로 그대가 생각과 기억으로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생각과 기억이 미치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무엇입니까?”
“석존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이 그대의 스승이다.”
“조사와 부처라면 옛분들이 다 말씀해 놓았는데, 무엇이 생각과 기억으로도 미칠 수 없는 곳입니까?”
“석존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이 그대의 스승이다.”
“조사와 부처라면 옛분들이 다 말씀해 놓았는데, 무엇이 생각과 기억으로도 미칠 수 없는 곳입니까?”
스님께서 다시 손가락을 들어올리면서 말씀하셨다.
“뭐라고 부르겠느냐?”
그 스님이 한참을 잠자코 있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뜻 말하지 못하고 다시 무엇을 의심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스님의 가풍입니까?”
“나는 귀가 어두우니 큰 소리로 물어라.”
그 스님이 다시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나의 가풍을 물으니 내가 그대의 가풍을 알겠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온갖 경계가 한꺼번에 일어날 때는 어떻습니까?”
“온갖 경계가 한꺼번에 일어난다.”
“한 번 묻고 한 번 대답함은 일어난 것입니다. 무엇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선상(禪床)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 스님이 막 절하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문답을 기억하겠느냐?”
“기억합니다.”
“어디 한번 기억해 보아라.”
그 스님이 말을 꺼내려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눈앞의 부처입니까?”
“불전(佛殿)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양만의 부처입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 그대로가 그것이다.”
“마음 그대로인 것이라 해도 그것은 테두리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 없는 것이다.”
“마음 있음과 마음 없음을 제가 가려내도 괜찮습니까?”
“마음 있음과 마음 없음이 이미네게서 다 가려졌는데, 더 이상 내게 무슨 말을 하란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멀리서 와 스님께 귀의하온데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사람들에게 말해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나의 가풍이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지 않아도 이미 4해(四海)에서 몰려들어 스님께 귀의하는 것은 어찌합니까?”
“그대는 바다일지라도 나는 바다가 아니다.”
“바다 속의 일은 어떻습니까?”
“내가 한 개를 낚아올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와 부처도 가까이할 수 없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조사와 부처가 아니다.”
“가까이하지 못한 걸 어찌합니까?”
“그대에게 ‘조사와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면 되겠느냐?”
“그게 무엇입니까?”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조사이거나 부처이거나 중생이다.”
“그렇게만 해서도 안됩니다.”
“결국 너하고는 이야기가 안되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평상심(平常心)입니까?”
“늑대와 여우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슨 방편을 써야만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습니까?”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것은 그만두고 이제껏 무얼 들어왔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듣자오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빛깔 따라 달라지는 마니주’라는 것이 있다는데, 무엇이 본래 색깔입니까?”
스님께서 그 스님의 이름을 부르니 “예” 하고 대답하자 “이 쪽으로 오너라”하니, 그 스님은 이 쪽으로 와서 다시 물었다.
“무엇이 본래 색깔입니까?”
“자, 색깔 따라 달려가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평상시의 마음이 된 사람도 교화를 받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문전은 밟아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쪽 사람을 침몰시킨 것이 아닙니까?‘
“아주 훌륭한 평상심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제가 보임(保任)할 물건입니까?”
“미래제(未來際)가 다하여도 가려내지 못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이가 수행을 많이 한 사람입니까?”
“절 안의 강유(綱維:대중의 기강을 통솔하는 직책. 유나)이다.”
“저는 이제 막 왔기 때문에 이 집안일이 어떤지 전혀 모릅니다.”
“그대는 이름이 무언가?”
“혜남(惠南)입니다.”
“모른다는 그것이 참 좋다.!”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배우고자 하나 그것은 스님을 비방하는 것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비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이름이 무언가?”
“도교(道皎)입니다.”
“조용한 곳으로 가거라, 이 쌀통아!”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으 큰 뜻입니까?”
“크고 작은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스님의 큰 뜻 아닙니까?”
“털끝만큼이라도 있으면 만겁토록 여여하지 못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 ‘만법은 본시 한가한데 사람 스스로가 시끄럽다’하는데, 이것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나오는 족족 죽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한 이 말씀은 부정논법〔斷語〕입니다. 무엇이 부정논법 아닌 것입니까?”
“하늘 위 하늘 아래 나만이 존귀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입니까?”
“나는 어려서 출가한 이후로 눈병을 앓아본 적이 없다.”
“스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부디 그대가 비로자나의 원만한 상호를 길이 보기를 바라노라!”
“부처님과 조사가 계실 때에는 부처님과조사가 서로 전하지만, 부처님과 조사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누가 전합니까?”
“예나 지금이나 모두 내 일〔分上〕이다.”
“그 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들도 모두 생사에 속하는 것이다.”
“조사스님을 매몰시키지 마십시오.”
“그럼 무엇을 전하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범(凡)도 성(聖)도 다했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대는 부디 고승대덕이 되거라. 나는 불조께 폐나 끼치는 지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멀리서 조주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는데, 어째서 보이지 않습니까?”
“내 허물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공중에 떠 있을 때, 방안의 일은 어떻습니까?”
“나는 출가하고부터 살 궁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금시(今時)를 위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 병도 못 고치면서 어찌 남의병을 고치겠느냐.”
“제가 의지할 곳이 없게 되는 건 어찌합니까?”
“의지한다면 땅을 디디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동쪽이건 서쪽이건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마음이 헤아리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누구를 헤아리는가?”
“자기 자신을 헤아립니다.”
“둘이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을 때는 어떻습니가?”
스님께서 물병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어냐?”
“물병입니다.”
“정말 훌륭하다. 그 끝과 겉을 보지 않음이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근본으로 돌아감입니까?”
“돌아가려 하면 곧 어긋나버린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여의지 않고서 어떻게 해야 해탈할 수 있습니까?”
“말을 여의는 것이 해탈이다.”
“조금 전에 아무도 저를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여기까지 왔느냐?”
“스님께서 어찌 가려내지 못합니까?”
“나는 벌써 가려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이 아니면 지혜에 즉(卽)하지 못합니다. 스님께서 한마디 해주십시오.”
“내가 그대만 못하다.”
“무엇이 귀결점입니까?”
“귀결점이다.”
“어느 귀결점 말씀입니까?”
“내가 귀결점이거늘 그대는 말을 물을 줄 모르는구나.”
“묻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귀결점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무엇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훌륭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대로 본받아라.”
“어디를 말씀입니까?”
“남의 자리를 차지하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공겁(空劫)가운데는 누가 주인입니까?”
“내가 그 안에 앉아 있다.”
“무슨 법을 설하십니까?”
“그대가 묻는 것을 말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옛 말씀에 ‘텅 비고 밝아 스스로 비춘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스스로 비춤’입니까?”
“남이 비추지 않음을 말한다.”
“비춤이 닿지 않는 곳은 어떻습니까?”
“그대는 말에 떨어졌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바로 그것〔的〕’입니까?”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왕입니까?”
“주부(州府)의 대오아이다.”
“스님이 아니십니까?”
“그대는 모반을 일으켜 왕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의 마음입니까?”
“그대는 마음이고 나는 부처이나, 받들 것인지 아닌지를 그대 스스로 살펴라.”
“스승이 없는 건 아니나 받들어 모실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교화해 보아라.”
“3신(三身)가운데 어느 몸이 본래 몸입니까?”
“하나만 빠져도 안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이 나라에서 어느 분이 조사이십니가?”
"달마스님이 오신 이래로 이 쪽에서는 모두가 조사이다.“
“스님께서는 몇 번째 조사이십니까?”
“나는 순서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 곳에 계십니까?”
“그대 귓속에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근본도 버리지 않고 지말도 좇지 않으니 무엇이 바른 길입니까?”
“매우 훌륭한 출가승이로다!”
“저는 여태 출가한 적이 없습니다.”
“귀의불하고 귀의법하라.”
“나갈 집이 있습니까?”
“곧장 집을 나서면 된다.”
“그를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집 안에 앉아 있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눈 밝은 사람은 모든 것을 본다는데, 빛깔도 봅니까?”
“후려쳐버려라!”
“어떻게 후려칠 수 있습니까?”
“힘을 쓰지 말라.”
“힘 쓰지 않고 어떻게 후려칠 수 있습니까?”
“힘을 썼다 하면 어긋나버린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와 부처의 큰 뜻은 누구를 위함입니까?”
“다만 금시(今時)를 위한다.”
“그럴 수 없는데야 어찌합니까?”
“누구의 허물이냐?”
“어떻게 알아들어야 합니까?”
“지금 같아선 아무도 알아들을 자가 없다.”
“그렇다면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없다고 하지는 말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일을 다 마친 사람은 어떻습니까?”
“정작 큰 수행을 하지.”
“스님께서도 수행을 하십니까?”
“옷 입고 밥 먹는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은 일상사인데 수행이랄 것이 있습니까?”
“그럼 말해 보아라. 내가 매일 무얼 하더냐?”
최랑중(崔郞中)이 물었다.
“큰 선지식도 지옥에 들어갑니까?”
“내가 맨먼저 들어가지.”
“큰 선지식이신데 어째서 지옥에 들어갑니까?”
“내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낭중을 만날 수 있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날 때는 어떻습니까?”
“천지차이로 벌어진다.”
“털끝만큼도 차이가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천지차이로 벌어진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잠들지 않는 눈입니까?”
“범안(凡眼)과 육안(肉眼)이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비록 천안(天眼)을 얻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육안의 힘이 이와 같다.”
“어떤 것이 잠자는 눈입니까?”
“불안(佛眼)과 법안(法眼)이 잠자는 눈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대유령 꼭대기까지 쫓아갔으나 무엇 때문에 의발을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스님께서 누더기를 잡아당기면서 말씀하셨다.
“이 옷은 어디서 났느냐?”
“이것을 물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잡아당겨도 떨어지지는 않겠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합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것은 어떻게 구분합니까?”
“그대도 한 개를 가졌고 나도 한 개를 가졌다.”
“이것은 합치는 것입니다. 무엇이 흩어지는 것입니까?”
“그대가 합쳐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길을 잘못 들지 않는 것입니까?”
“마음을 알고 성품을 봄이 길을 잘못 들지 않는 것이다.”
“밝은 구슬이 손바닥에 있을 때, 빛이 납니까?”
“빛이 없지는 않으나 무엇을 구슬이라고 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신령스런 싹에 뿌리가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대는 어디서 왔느냐?”
“태원(太原)에서 왔습니다.”
“정말 훌륭하다. 근원이 없다니.”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부처가 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몹시도 힘을 들이는구나.”
“힘을 들이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부처가 되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둔하고 어두워 한번 들떴다가 한번 가라앉고 하는데, 어찌해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스님께서 그대로 자리에 앉아계시기만 하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스님께 진실로 여쭌 것입니다.”
“그대의 어느 곳이 들떴다 가라앉았다 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범(凡)에도 있지 않고 성(聖)에도 있지 않으니 어떻게 이 두 갈래 길을 면할 수 있습니까?”
“두 갈래를 없애고 오면 대답해 주마.”
그 스님이 “안녕하십니까?”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인사말은 어디서 나왔느냐? 여기에 있을 때는 나에게서 나왔다 하겠거니와, 시장에 있을 때는 어디서 나오겠느냐?”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정하지 못하십니까?”
“내 그대에게 가르쳐 주마, 왜 ‘오늘은 바람이 좋습니다.’하고 말하지 못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천제(大闡提:성불할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까?”
“내가 대답해 주면 그걸 믿겠느냐?”
“스님의 지중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천제인(闡提人)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이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
“갑자기 나타나면 어찌합니까?”
“데리고 가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작용은 없지 않으나 나타나는 건 누구냐?”
한 스님이 물었다.
“공겁(空劫)에도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무엇을 공겁이라고 하느냐?”
“한 물건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비로소 수행이라고 하겠는데, 무엇을 공겁이라고 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출가입니까?”
“높은 명성도 따라가지 않고, 더럽고 허물어짐도 구하지 않는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한 법도 가리키지 않고서 무엇이 스님의 법입니까?”
“나는 묘산(茆山:唐代 道敎의 중심지)의 법은 설하지 않는다.”
“묘산의 법은 말씀하지 않으신다니, 무엇이 스님의 법입니까?”
“너에게 묘산의 법은 설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더냐.”
“그게 바로 스님의 법입니까?”
“나는 이제껏 이것으로 사람들을 가르친 적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눈앞에서 홀로 벗어나는 한 길입니까?”
“둘도 없고 셋도 없다.”
“눈앞의 길에 제가 나아가도 됩니까?”
“그러면 천리만리 어긋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부처님 이마 위의 향상사(向上事)입니까?”
“나는 그대 발 밑에 있다.”
“스님께서 어찌하여 저의 발 밑에 계십니까?”
“그대는 원래 향상사가 있는 줄을 몰랐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합당한 것입니까?”
“그게 바로 네가 합당치 못한 것이다.”
“무엇이 합당치 못한 것입니까?”
“앞 구절에서 알아내도록 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분명한 뜻입니까?”
“그만, 그만! 더 말하지 말라. 나의 법은 미묘하여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한 스님이 물었다.
“너무나 깨끗하여 한 점 티끌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구덩이에 바지고 굴 속에 떨어진다.”
“무슨 허물이 있어서입니까?”
“그대가 그런 사람을 몰아넣기 때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출가하여 위 없는 깨달음을 맹세코 구할 때는 어떻습니까?”
“아직 출가치 않았을 때는 깨달음에 부림을 받지만, 출가하고 나서는 깨달음을 부릴 수 있다.”
한 선비가 스님 손에 있는 주장자를 보고 말하였다.
“부처님은 중생의 바람을 빼앗지 않는다는데,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스님께 손에 든 주장자를 달래도 되겠습니까?”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는 법입니다.”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노승도 부처님이 아닙니다.”
스님께서 절 밖에 나왔을 때 한 노파가 밭에서 모종 심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갑자가 사나운 범을 만나면 어찌하겠소?”
“마음 쓸 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스님께서 “퉤퉤!”하니 노파도 “퉤퉤!”하였다.
스님께서 다시 말슴하셨다.
“아직도 그게 남아 있구나.”
한 선비가 하직 인사를 하며 말하였다.
“저는 여기 있으면서 스님께 오래도록 폐를 끼쳤으나, 스님께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뒷날 한 마리 나귀가 되어 와서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내게 안장 매는 법을 가르쳐 주게.”
스님께서 도오(道吾:769~835)스님의 처소에 갔을 때, 승당에 들어가자마자 도오스님이 말하였다.
“남전의 화살 한 발이 왔구나.”
“화살을 보십시오.”
“지나갔다.”
“명중하였습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백골이 썩어 흩어지고 한 물건만이 길이 신령스러울 때는 어떻습니까?”
“오늘 아침도 바람이 인다.”
한 스님이 물었다.
“3승12분교는 묻지 않겠습니다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물소가 새끼를 낳았으니 잘 보아라.”
“그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만국이 와서 조공(朝貢)을 올릴 때는 어떻습니까?”
“사람을 만나도 부르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하루 스물 네 시간에 어떻게 깨끗이 씻어냅니까?”
“내하(奈河)의 물은 흐리고, 서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급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문수보살을 친견할 수 있습니까?”
“이 멍충아! 어디 갔다 오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량입니까?”
“그대는 도량에서 와서 도량으로 간다. 전체가 다 도량인데 도량 아닌 데가 어디냐.”
“싹이 아직 트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갈라진다.”
“냄새 맡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같은 한가로운 공부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수량을 헤아립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로 헤아림에 구애받지 않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세계에 밤낮이 없습니까?”
“바로 지금이 낮이고 밤이다.”
“지금을 물은 것은 아닙니다.”
“난들 어찌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 ‘가섭의 두타의(頭陀衣)는 조계의 길을 밟지 않았다’고 하는 데 어떤 사람이라야 입을 수 있습니까?”
“허공은 세간에 나오지 않고, 도인은 전혀 알지 못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섞여도 잡스럽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오래도록 채식만 해왔다.”
“그래 가지고 초연할 수 있겠습니까?”
“공양을 다 마쳤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옛사람의 말씀입니까?”
“잘 들어라, 잘 들어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꺼리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나는 청주에서 베옷 한 벌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출가한 사람입니까?”
“천자도 배알하지 않고 부모가 도리어 절을 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얼굴을 서로 마주하는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대가 바로 얼굴을 마주한 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