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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31)
아비멜렉의 반역
본문 ; 삿 8:29-9:6
<기드온의 타락이>
우리는 때때로 큰 유혹은
잘 이겨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오는 작은 유혹에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집니다.
온갖 어려운 시험을 다 이기고
난 이후에 의외로 시험 같지도 않은
시험에 걸려 크게 실족합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단의 계략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단은 은혜(승리)의 뒷자리를 노립니다.
기드온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는
백성들의 요구를 겸손히 물리쳤습니다.
큰 시험을 잘 이겨낸 것입니다.
그 대신 한 가지를 요구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마엘 사람들
(미디안, 아말렉, 동방사람)에게서
탈취한 것들 중에 금귀고리나,
금으로 된 패물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자신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작은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기드온은 그 금을 가지고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과 기드온의 집에
올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8:27).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로’에 있는
제사장을 찾아가지 않고,
기드온의 성에 있는 ‘에봇’을 음란하게
섬긴 것입니다.
음란하게 섬겼단 말은 한 미디로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종교생활을 하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기드온이 만들어놓은
금 에봇은 계약 백성의 신앙생활을
단지 복만 추구하는 종교생활로
타락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승리 이후 40년 간의
기드온의 삶은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져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왕은 아니지만 왕에 버금가는
권력의 단 맛에 취한 그는
많은 사람들과 사돈을 맺었습니다.
이는 고대 왕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또 권력자와 사돈을 맺으면
알게 모르게 많은 이권이 있었기에
그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먼저 많은 유력한 사람들이
사돈을 맺자고 제안을 해 왔을 것입니다.
<8:29-31>
29절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30절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31절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결국 기드온은 많은 축첩을 하였고
무려 70명이나 되는 많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딸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자식을 낳았을까요?
게다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는
첩들도 있어 그들에게서도
많은 자식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는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 위반입니다.
신17:17(이스라엘의 왕을 향한 말씀)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결국 이와 같은 기드온의 타락은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에게도
큰 올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비멜렉의 음모>
오늘 본문은 기드온이 죽은 다음
그의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31절을 보면 세겜에 있는
첩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었습니다.
누가 지었을까요?
아마도 기드온이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의 뜻이 희한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원래 이 이름은 블레셋 왕의
이름이었습니다.
왜 이런 이상한 이름을 지었을까요?
그러니까 뒤로 갈수록 기드온은
왕으로 불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40년 동안 왕처럼 군림하면서
기드온은 이렇게 많은 아내를 두고
호사를 누리며 왕처럼 살았습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태도는
자식들에게도 악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70명의 아들들은 왕자에 준하는
지위와 권세를 누렸을 것입니다.
70명의 아들들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자신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이
거의 아들들로 인해 곤욕을
치르지 않았습니까?(소통령)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기드온의 후계자가
되기 위하여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소외된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첩의 자식들입니다.
그들은 서자였기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아무 것도
이어받을 수 없는 참으로
원망스러운 조건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정식 부인의 아들들이 70명이나 되는데
첩의 자식인 자신들에게 차례가
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왕이 되고픈 아들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예, ‘아비멜렉’입니다.
이 ‘아비멜렉’이 음모를 꾸밉니다.
그는 세겜의 외가 친척들을 모아 놓고 말합니다.
<1-2절>
1절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2절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드온의 아들 70명이
다 너희를 다스리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좋으냐?”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세겜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가 남이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지역감정,
혈연주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악한 것이지만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세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3절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었습니다.
“그는 우리 형제라”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귀에 말하매” 그랬습니다.
아니 그럼 귀로 듣지 어디로 듣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단어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기울고 병드는 것이
귀로부터 시작됨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듣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멀쩡하던 사람도 죄로 유혹하는
말을 들으면 현혹되는 것입니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들으니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배울만큼 배우고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왜 그런 일이 생깁니까?
그들의 말을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현혹하는 말에 마음이 기운 것입니다.
한번 마음이 기울면 회복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성경의 자의적 해석 등의 이유로
이단성 논란을 빚고 있는
은혜로교회 신옥주 목사가
신도들을 피지에 이주시키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신옥주 목사는 평소 신도들에게 대환란을 피해
피지로 가야한다고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신옥주 목사측은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지역에
그레이스로드 팜을 설립하고,
신도들을 이주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150여 명 정도가 이주를 마쳤고,
신도들을 계속해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가정 파괴현상까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단의 특징은 가정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도 있을 텐데
왜 분별을 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속이는 말에 현혹되어
이미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기울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가르치셨습니다.
죄로 이끄는 친구의 말
‘한 번인데 어때’, ‘남들도 다 그러고
살아’하는 말 한마디에....
인생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단이 어디 멀리 있는 줄 아십니까?
내 마음을 악한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할 이유입니다.
어떤 말에 마음이 기우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기울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시19:7-10>
7절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절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저와 성도님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는
고백이 나오기를 축복합니다.
<자기 형제 70명을 한번에>
‘아비멜렉’은 교묘한 말로
확실한 자기편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4-5절>
4절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5절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세겜 사람들은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었습니다.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신전이 세겜에 있었습니다.
세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의미 있는 땅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분배를 마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에 모아 놓고
하나님과 계약갱신을 맺은
바로 그곳입니다(세겜 언약 - 수24장).
한 마디로 세겜은 가나안 땅에 있는
‘시내산’과 같습니다.
언약의 증거(돌)가 있는 곳입니다.
창12:6-7절을 보면,
아브람이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 세겜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자손들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창33:20절을 보면 야곱도
세겜에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창35:1-4절에는 거기서
야곱이 자기 가족들에게 이방신상을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세겜은 이들에게 영적인 고향과도
같은 곳이며 하나님이 약속이
숨 쉬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바알브릿
신전’이 세운 것입니다.
그것은 계약 백성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 심장부에 비수를 꽂은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토록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더군다나 기드온이 미디안 세력들을
물리친 이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물리친 이후에도
철저히 바알의 신전을 부시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세겜 사람들은 여전히 바알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여룹바알이란 그의 별명이 무색).
‘아비멜렉’은 바알브릿 신전에서 얻은
70개의 은화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을
용병으로 고용하였습니다.
기드온의 집 오브라로 가서
70명의 배다른 형제들을 모이게 하고
한 바위에서 모두 죽인 것입니다.
단 한 사람 막내아들 요담만이
몸을 숨겨 살아남았습니다(5절).
기드온이 ‘금 에봇’을 만들고
그것을 우상처럼 섬기게 한 일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삿8:27)가 된 것입니다.
스스로 왕처럼 군림하여 여러 명의 처첩을
둔 것이 궁극적으로 이런 비극을
가져온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 것입니다.
<왕이 된 아비멜렉 그러나...>
‘아비멜렉’의 계획은 일단 성공적이었습니다.
6절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에 의해서
그의 아버지 기드온도
이룰 수 없었던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드온의 왜 왕이 되는 것을
거부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에는 왕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입니까?
예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사사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기에
이 모든 재앙이 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외에
다른 왕을 구하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비멜렉’이
왕이 된 것은 철저히 하나님을
향한 반역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을 3년 동안 다스렸으나.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어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했습니다.
<삿9:22-24>
22절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절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세겜 사람들이 가알에게
‘아비멜렉’을 쳐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의 심복인 세겜성의 군대장관
스불이 가알의 기도를 ‘아비멜렉’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은 세겜성을 선제 기습공격하여
세겜성을 진멸하였습니다.
그 후 ‘아비멜렉’은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해
데베스를 공격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이 데베스의 망대 밑에
가까이 가서 이를 불사르려 하다가....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가 깨어짐을 당하였습니다.
자기의 소년 군사를 불러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하여 자신을 찌르도록 하여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악한 음모를 꾸몇던 ‘아비멜렉’도,
그를 도와주었던 세겜도 망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죄악을 갚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었습니다(56-57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와 불법을 자행합니다.
뇌물을 주고 협박을 하고,
인맥을 동원하여 어떠한 악도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어쩌면 이들이 정도를 걷는 사람들보다
출세의 길이 빨리 열리고 인생의 승리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정도를 가는 사람들은 때로
그 모습을 보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
악인의 승리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영원한 승리를 쟁취할 수 없습니다(시37:35-36).
하나님의 심판,
역사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맺는 말씀>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큰 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의 불철저함이,
그의 타락이 이스라엘과 자신의 가문에
‘올무’를 놓았습니다.
‘아비멜렉’의 음모가 성공한 듯이 보여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저와 성도님들이 말씀의
거울 앞에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비멜렉’의 탐욕을 품고 살지는 않는지...
자신을 반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한 가지 결심을 하고
그것을 평생 지켜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오직 주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
언제나 주님과 동행함으로
최후 승리를 쟁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