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발현!
(에제키엘 1장)
유대인들은 자기 자신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수호신 하느님은, 유일하고 고정된 성소 예루살렘에만 계시는 분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 성전과 도성은 주전 587년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비참하게 파괴되고 불태워져 사라졌다. 이 시대 아직 하느님 이해가 성숙하지도 완전하지도 못한 그들은 그 안에 계시는 하느님도 함께 파괴되고 불태워졌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역사에서 버림받고 잊혀지고 망국민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유배 5년 사제이며 유배자인 에제키엘은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크바르 강에서 엄청난 환시를 본다. 하늘이 열리며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계시)환시를 본다.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의 멸망과 함께 죽은 또는 숨어버린 자신들의 신 하느님이, 적의 땅 크바르 강가에 포로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 임재하시고 계시를 보여주는 것이다. 경천동지할 일이다. 붙박이 고정된 성전에만 계시던 하느님은 어떻게 바빌론 크바르 강으로 오실 수 있었을까? 거룩하고 엄위하신 하느님의 모신 이동 성전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북쪽에서 번쩍거리는 폭풍이 불어온다. 그러면서 광채로 빛나는 큰 구름 번쩍거리는 불의 자연현상에 둘러싸여 나타나는 네 생물이 나타난다. 이들의 모습은 반인반수伴人半獸 반은 사람이요, 나머지 반은 짐승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해설판 공동성서 1,5) 사납고 힘센 사자, 황소, 매서운 독수리의 모습을 가졌다. 이 생물들은 짐승 중에 가히 으뜸이 되는 것들로, 바빌론 신전 벽에 새겨져 바빌론 주신 마르둑 우상을 받들고 섬기던 존재들이다. 이제 에제키엘서 1장에서 이들은 바빌론의 주신 마르둑 우상이 아닌 온 천하 만민을 다스리는 참되고 유일한 야훼 하느님을 모시는 생물들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날개도 넷을 가졌다. 둘로는 하늘을 향하고 둘은 스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날개 밑에는 손이 있었다. 다리는 구리처럼 반짝거리고 곧고 발은 송아지 발바닥처럼 생겼다.
네 생물은 움직임은 날개가 담당하지 않는다. 각각 하나의 바퀴를 가지고 있다. 바퀴 테두리는 모두 높고 보기에 무섭고 테두리 사방에는 눈이 가득하였다. 생물들이 움직이거나 날고자 하면 바퀴들이 그대로 따랐는데, 생물들의 영은 바로 그 바퀴들 안에 있었다. 생물들이 움직일 때는 날개 소리가 들리는데, 큰물이 밀려오는 듯, 또는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린 듯, 군중의 고함, 또는 진영의 고함 같았다.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이 있었고 궁창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 사람처럼 보이는 분의 형상이 앉아 있었다. 그분은 허리 윗부분은 금붙이와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허리 아랫 부분도 광채로 둘러싸였다. 사방으로 뻗은 그 광채로 빛나는 모습에 에제키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이동 성전을 이용해 사제이며 예언자인 에제키엘 앞에 나타나신 분은 바로 주님이셨다.
주님은 유다민족의 수호신으로 유다 땅과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고, 왕국멸망과 성전 파괴와 함께 없어지거나 숨어계시는 분으로 알았는데 이 어찌된 일인가.....?
에제키엘은 크바르 강가에서 자신에게 내리는 이 계시를 통해 하느님의 정확한 본질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각 민족마다 나라를 보호하는 지역신 수호 신이 아닌, 유다, 바빌론을 포함한 모든 민족과 나라을 다스리시는 보편 신이심을. 죽거나 숨거나 하는 물신이 아닌 인격 신이심을. 조국 유다왕국의 멸망과 이 유배는 그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기 않고 반역한 것에 대한 징벌이며 심판임을, 에제키엘은 경천동지 아연한 중에 깨닫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도망치거나 숨어버린 신이 아닌 크바르강가에서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절망과 실의에 빠진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희망의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 전하는 에제키엘에게 '유다인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호칭이 따른다. 그리고 이 호칭은 유다인만이 아닌 모든 믿는이들에게도 마땅하다. 기나긴 인류역사이래 계속되어 온 신관)하느님 이해인 다신,물신, 지역과 민족의 수호신을, 위대한 에제키엘부터 유일신,인격신,보편신으로 통찰하고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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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가’車駕(수레거, 가마가)
에제키엘서 1장의 하느님을 모셔온 이 도구에 ‘병거 발현’이란 제목을 보았다. 병거는 안 어울린다. 타신 분이 주님이시기에, 적당한 이름이 뭘까....? 혹 일종의 ‘수레’라고 생각해보았다. 적당한 한자를 찾아보니 천거天車 신거神車(하느님이 타시는 수레)가 있다. 임금이나 천자가 타는 수레는 ‘거가’車駕(수레거, 가마가)라고 한다.
'가마'라는 친한 표현을 쓰고 싶은데 좀 약하고, 신거와 천거는 낯설어서 '거가'라고? 이 또한 낯설어서 '수레'라고 하다
*마르둑Marduk:
마르둑은 바빌론인들이 섬기는 주신主神으로 수도 바빌론의 수호신이기도했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왕 때부터 구 바빌론의 주신으로 숭배되었다. 이후 수메르의 ‘벨(Bel)’신과 합쳐져 ‘벨-마르두크’로 불리기도 했다. 바빌론은 다신을 섬겼기에 이 외에도 여러 다른 신들이 있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5년 11월 13일 PM 23;47/수정 20260807;PM 20:15
참고: 이 글은 개인적 묵상과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