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이 답하였습니다.
오, 여인이여! 내가 그대의 질문에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모든 질문이 말하는 것은 지고의 나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는 이름이 없고 묘사될 수 없으므로 공간보다 더 미세하다. 마음도 감각들도 그것에 도달하거나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순수한 의식이다. 씨앗 속에 나무가 존재하듯이, 원자적인 의식 안에 온 세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때 세상은 의식으로서 존재하지, 세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모든 것이 하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모든 것의 나이기 때문에 그 의식은 존재한다. 그것이 존재하므로 모든 다른 것이 존재한다. 그 나는 공간처럼 비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한다. 하지만 마음과 감각들이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의 나이지만, 그것은 경험의 대상으로서 누구나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이지만 존재하는 무한한 원자들 속에 투사되므로 다수인 것처럼 보인다. 팔찌가 실재인 금의 상상적인 모습이듯이, 그것의 외적인 모습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비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이나 무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의 나이고,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자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의 나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것의 존재는 장뇌의 존재를 그 향기로 경험할 수 있듯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것만이 의식으로서 모든 것의 나이며, 세상의 모습을 가능하게 만드는 실체이다.
흐르는 물의 속성으로 소용돌이가 생기듯이, 의식이라는 무한한 바다 속에서 삼계라는 소용돌이가 자발적이면서 자연적으로 일어난다. 의식은 마음과 감각들의 범위 너머에 있기 때문에,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 지식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분리될 수 없기에, 내가 그대이며 그대가 나이다. 그러나 분리할 수 없는 의식은 나도 그대도 될 수 없다.‘그대’와‘나’라는 거짓 개념을 버린다면, 그대도 없고, 나도 없으며, 모든 것이 없다는 자각이 생긴다. 그것만이 전부일 것이다.
나는 무한하기에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원자 안에 영원히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가지도 오지도 않는다. 공간과 시간은 그들의 의미를 오로지 의식에서 끌어내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 안에 있는데, 나가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항아리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질 때, 그 안의 공간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늘 공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대신은 계속 말하였습니다.
활발하지 않은 것과 외관상으로 관련될 때, 순수 의식의 성품을 가진 나는 둔하고 감각들이 없는 듯이 보인다. 무한한 공간에서 이 무한한 의식은 무한한 대상들을 나타나게 했다. 이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그런 효과는 단지 상상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완성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의식과 둔감한 것, 행위자와 비행위자 둘 다이다.
불 속에 있는 실재는 이 나 즉 의식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것을 태우지도 자신이 타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 안에 있는 실재이며,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양, 달, 불에서 반짝거리는 영원한 빛이다. 그러나 그것들로부터 독립적이다. 이러한 불들이 졌을 때조차 그것은 빛난다. 그것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빛나게 한다. 그것만이 나무, 식물, 넝쿨 안에 거주하는 지성이며, 그리고 그것들을 보호한다. 보통의 관점으로 볼 때 나 즉 무한한 의식은 모든 것의 창조자, 보호자, 지배자이지만, 절대적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모든 것의 나이므로 그런 제한적인 역할들이 없다.
이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있는 세상은 없다. 그러므로 산들조차도 원자 같은 나 안에 있다. 그것 안에서 순간적이기도 하고 시대적이기도 한 공상이 일어난다. 꿈에서 보이는 대상이 꿈을 꿀 당시에는 사실인 것처럼 보이듯이, 이러한 것들은 실재하는 시간의 척도인 것처럼 보인다. 눈을 깜박이는 동안에 한 시대가 존재하듯이, 전 도시가 작은 거울 안에 투영된다. 그러하거늘, 어떻게 실재를 이원이나 비이원이라 주장할 수 있는가? 이 원자적 나 즉 무한한 의식만이 한 순간이나 한 시대에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들 내부에서 서로 모순이 되지 않는다.
팔찌를 팔찌로 보는 한, 그것은 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팔찌는 말에 불과하다. 그것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 금이 보인다. 그처럼 세상이 실재로 여겨지면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추측을 버리면 의식이 깨우쳐진다. 그것이 모두이므로 그것은 실재이다. 그것이 경험되지 않으므로 그것은 비실재이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야의 마술일 뿐이다. 그것은 의식 속에서 주체와 대상이라는 분리를 만든다. 그것은 꿈 속의 도시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지만 오래 지속되는 환영이다. 창조주 브람마에서 작은 곤충에 이르는 다양성은 분리의 가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의 씨앗 속에 나무의 다양한 특성이 늘 있듯이, 나 속에는 늘 이런 분명한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의식으로 있다.///